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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정원이라도 충분해

A Span of Garden Would Be Enough

  • 2020.08.19
  • Editor. 김하민
  • Writer. 정성갑
  • Photographer. 정성갑

좋은 아빠를 만드는 건 무엇일까? 책과 영화, 심지어 이웃집 아빠도 힌트가 되기도 한다. 모던 파더 정성갑은 집 뒤뜰 1평 남짓한 공간에 소소한 정원을 꾸렸다. 이른바 한 뼘 정원. 흙을 만지고, 꽃을 심고, 잡초를 뽑으며 생각했다. 한 뼘이라도 더 나은 아빠에 대하여.

왜 하필 정원이었을까

아파트를 팔고 빌라와 한옥에서 약 8년을 산 후 서촌에 3층짜리 협소주택을 짓게 되었다. 길었던집의 모험이 이렇게 매듭지어지는 기분이다. 10개월 전, 집을 지어 이사를 올 때만 해도 두 번 다시 집을 바꾸는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앞으로 한두 번 더 짐을 싸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집, 새로운 환기, 새로운 리듬이 주는 맛에 어느새 중독됐나 보다. 특히 한옥을 못 잊고 있다. 감각으로 기억된 시간은 힘이 세서 창호문에 일렁이던 빛, 빗물받이 함석판에 떨어지던 빗소리, 듬직하고 푸근하던 천장의 서까래가 종종 생각난다. 시골 태생이라 그런가, 자유롭고 편안하고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은 한옥에서 가장 많았다. 아이들도 마당에서 밥 먹고 물놀이하고 비 구경 하던 순간이 한 번씩 떠오르는 모양이다. 어떤 논리와 개념을 갖고 하는 말인지는 알 수 없는데 한 번씩 ‘한옥에 살고 싶다’고 한숨 쉬듯 이야기한다.

지금 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중 하나는 정원이다. 단독주택을 짓게 되면 건축법상 일정 비율의 흙땅을 마련해야 하고 그 땅은 자연스레 정원이 된다. 그저 흙만 있는 불모의 땅으로 두느니 꽃이 피고 초록의 푸르름도 있는 정원으로 만드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집이 작은 만큼 정원도 작아 집이 지어지는 동안 제발 캠핑 의자 한 개만 둘 수 있을 정도의 폭만이라도 나오길 기도하듯 바랐다. 다행히도 앞 뒤로 캠핑 의자 두 개와 테이블 한 개 쯤은 놓을 수 있을 만큼의 작은 정원이 만들어졌다

평수로 따지면 1평 정도나 될까? 편의상 한 뼘 정원이라고 부르는데 이 한뼘 정원이 주는 기쁨이 크다. 처음 이사를 하고 얼추 집이 정리 됐을 때부터 나는 과천화훼단지에 들러 ‘싹 쓸어와 버릴 거야’ 하고 다짐을 했었다. 이런저런 나무를 정원에 가득 심고, 그 나무들이 봄부터 가을까지 꽃을 피워내는 모습은 상상만으로 즐거웠다. 그리고 마침내 화원에 갔을 때 눈을 번득거리며 산당화와 넝쿨 장미, 라일락과 남천을 사왔다. 백일홍은 이사할 때 한 그루 심어 놨으니 그 옆으로 이 나무들과 화분을 놓으면 마침내 ‘정원의 그림’이 완성될 것 같았다.

그 나무와 화분들을 차 뒷좌석까지 접고 집에 싣고 온 후 하나씩 자리를 잡아주던 날의 기억이 새록하다. 남천은 초록 줄기가 예쁘니 계단 한쪽에 놓으면 좋겠다 싶어 자리를 잡아주었고 어린 장미 묘목은 볕이 잘 드는 보일러실 옆으로 갖다 놓았다. 살굿빛 꽃잎이 사랑스러운 명자나무는 백일홍 옆에 조금 간격을 두고 심었다. 모종 삽으로 땅을 파고, 흙을 만지고, 정원용 호스로 꽃과 나무에 흠뻑 물을 뿌리면서 건강한 노동의 즐거움을 맛보았다. 1시간 넘게 핸드폰도 깨끗이 잊었다. 정원 일을 하다 보면 저 밑에서부터 샘물처럼 깨끗하고 건강한 기운이 차오르는데 그건 노동의 과정과 목적이 생명을 살리는 쪽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다 보면 내 몸에도 물이 차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른 가지를 자르고 거미줄을 걷어내다 보면 책상 정리를 한 듯 마음이 상쾌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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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나무에 물을 주다 보면 내 몸에도 물이 차오른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마른 가지를 자르고 거미줄을 걷어내다 보면 책상 정리를 한 듯 마음이 상쾌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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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의 크기가 중요한 건 아니다

볕이 좋은 날 캠핑 의자에 앉아 꽃밭을 가만 들여다보고 있으면 재미있다. 왼쪽으로 우리 집 벽이 높게 올라가 있고 정원 뒤쪽으로도 대학교 건물이 자리를 잡고 있어 그 사이의 빈 틈으로 어렵게 찾아 드는 빛이 애틋하게 와 닿는다. 라일락과 명자나무, 백일홍을 차례대로 비추다 이내 사라지는 것을 보면 빛이 살아있고 빛에도 생명이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작은 화분에 고인 물 표면에 빛이 가 닿으면 잔물결이 와글와글 일렁이는데 그런 모습은 오랫동안 들여다 보고 있어도 질리지 않는다.       

취재 차 엄청 큰 정원이 있는 딸린 집에도 종종 가는데 정원을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런 집은 정원에 물을 주는 대만 3~4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이건 거의 중노동”이라며 “정원이 너무 클 필요도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비록 한 뼘 정원이지만 내가 겪는 즐거움과 보람이 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집은 그 크기에 따라 금세 움츠러들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이 되기도 하는데 정원은 그렇지 않다. 한 뼘 정원이라도 키우는 꽃과 나무는 있게 마련. 죽은 줄 알았던 나뭇가지에서 꽃망울이 터져 나오면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고 잎사귀를 야금야금 갉아먹는 진딧물을 보면 증오심이 밀려오는데 그런 감정은 정원을 가꾸는 모든 사람이 느끼는 공통의 애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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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이 한 명인 사람이나 열 명인 사람이나 부모가 느끼는 감정과 행복은 엇비슷하듯 정원 역시 그 크기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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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뼘 정원이 한 뼘 좋은 아빠를 만든다

한 뼘 정원은 철부지 아빠의 선생이기도 하다. 며칠 전에 보니 몸살을 앓다 끝내 고사한 줄 알았던 백일홍 나뭇가지에 꽃망울이 달렸다. 딱 3개. 진드기로 넝마처럼 변했던 잎사귀에도 반질반질 건강한 기운이 돈다. 애면글면 애 끓이지 않고, 전지를 하네 올해는 틀렸네 하며 요란을 떨지 않아도 꽃은 피고 성장은 계속된다.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내고 있는 것이다. 지인이 가져다 준 물배추 한 포기는 대야에 집어 넣고 물만 담아 주었는데 열심히 새끼를 치더니 어느새 대가족이 되었다. 작은 대야지만 그 안에서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저런 것이 자족 아닌가 싶다.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서 애들과 뒤섞이는 시간이 더없이 많아졌다. 학업은 학교가, 밥상머리 교육은 부모가 책임져야 하는데 그것들이 구분없이 뒤섞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임계점을 향해 쌓이는 기분이다. 이런 상황에서 잠시 꽃을 들여다보고, 잡초를 뽑고, 봄에 이어 다시 꽃대를 밀어 올린 장미를 기특해 하는 시간이 알게 모르게 밸런스를 잡아준다고 믿는다.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인 것. 그런 작은 순간들이 진짜 별 것이라는 걸 안다.

아이들은 정원에 거의 나오지 않는다. 핸드폰만 붙들고 있다. 아직 꽃이 좋은 나이가 아닐 거다. 하지만 오며 가며 꽃과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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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본능에 가까운 것이겠지만 더 자주 봐야 더 친근하게 느낄 것이고 그런 친근함이 언젠가 자연과 더 깊은 연애를 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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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가 계속되다 보니 정원에 나갈 일이 많지 않다. 캠핑 의자에 앉아 바나나우유를 홀짝이며 볕을 쬐고 있으면 느긋하니 참 좋은데 말이지. 한 뼘 정원은 잠시나마 사람을 순하게 한다. 한 뼘 정원이라도 있기에 꽃잎도 만지고, 사계절도 느끼고, 생명의 신비로움도 가까이 들여다보며 그럭저럭 괜찮은 사람으로, 그럭저럭 성마르지 않은 아빠로 살 수 있는 것 같다.

모던 파더 | 정성갑

초등학교 6학년, 초등학교 2학년 자녀를 둔 아빠. 집에 딸린 정원에서 시간 보내는 것을 좋아한다. 특히 앞집, 옆집의 시야에 들지 않는 보일러실 뒤쪽 공간을 편애한다. 이곳으로 빛이 들어오는 정오 무렵, 약속이 없으면 바나나 우유를 홀짝이며 잠시 망중한을 즐긴다. 새벽 6시면 일어나 수성동 계곡으로 산책을 다닐 만큼 자연을 사랑한다. 월간 <럭셔리>와 네이버 디자인판을 운영하는 디자인프레스에서 문화 담당 기자와 편집장으로 20년 가까이 일했다. 지금은 한 점 갤러리이자 배티라이프콘텐츠 플랫폼인 ‘클립’을 운영하며 공예와 아트, 건축이 중심이 된 기사와 토크,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 2020.08.19
  • Editor. 김하민
  • Writer. 정성갑
  • Photographer. 정성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