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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eas — Issue 17. 사이의 세대

아빠 라떼는 말이야

Items From Back in My Day

  • 2020.07.13
  • Editor. 조서형
  • Photographer. 이주연

어린 골목대장 시절, 한가락 하던 학창 시절, 바짝 얼어 있던 사회 초년생을 지나 풋풋한 연애까지. 아빠가 말하는 라떼 물건.

문희배 / 1979년생 / 공장 운영
@moonheebae61

만화 《슬램덩크》 단행본. 발행할 때마다 동네 작은 서점이 북적거리곤 했다. 매번 제일 먼저 달려가서 사 읽은 덕에 대부분이 초판 발행판이다. 중2병을 앓던 나는 등장인물 각각에 자기 투영을 하며 봤다. 여전히 그때 보관하던 신발 상자에 넣어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중·고등학생 시절 ‘미국 형’들 것은 다 멋지고 좋아 보였다. 그중에서도 나와 내 친구들이 열광한 건 ‘소니 스포츠’ 카세트 플레이어. 그땐 돈이 없어 사지 못한 한을 5년 전에야 풀었다. 발매 20년이 지난 지금 봐도 특유의 디자인과 색감은 훌륭하다. 버튼을 눌러 문을 스르륵 열고, 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딸칵’ 하고 누를 때, 그 손맛은 여전히 최고다.

김봉수 / 1981년생 / 바이커
@dust_showroom

헤비메탈은 우리나라에서 생소하던 장르였다. 그 유니크함에 반해 메탈 문화를 깊이 파기 시작했다. 특히 밴드 ‘메탈리카’의 시끄러운 음악과 폭발적 패션에 매료됐다. 스페인에서 유학한 친구에게 라이브 공연 비디오테이프를 빌려 녹화한 다음 표지에 직접 밴드 로고를 그려 넣었다. 1990년대 초, 퀸의 프레디 머큐리 추모 공연 오프닝 무대를 ‘메탈리카’가 장식했을 때도 그랬다. 우리 때는 소장하고 싶은 콘텐츠를 비디오나 카세트테이프에 복사했다. 각자의 오리지낼리티를 자신의 컬렉션에 담았다. 지금의 내 영혼이 완성된 것은 아마 그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승호 / 1983년생 / 교구 수입 및 공간 기획
@pim_chillout_lee

고등학생 때부터 하키 선수로 활동했다. 운동부 소속이라는 것은 우리 때 또래들 사이에서 굉장히 각광받는 일이었다. 이 옷은 대학교에 진학해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하기까지 쭉 입었다. 나의 하얀 스케이트는 경기장에서 나를 더욱 눈에 띄게 만들어주었다. 사람들이 날 주목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면 늘 실력 발휘를 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치열하게 운동하고, 공부하고, 돈 벌고, 외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내 20대는 참 부지런했다. 그때의 열정을 기억하자는 의미에서 이제 이 유니폼을 사무실 벽에 걸어둘까 한다.

안유종 / 1983년생 / 중화요리 주점 운영자
@ahn_yu_j

여섯 살이던 내게 태권도장을 마치고 오락실에 들르는 일은 크나큰 기쁨이었다. 무뚝뚝하고 엄하던 아버지는 오락실을 못 가게 야단치는 대신 당시 고가이던 게임기 ‘재믹스V’를 덜컥 사다 주셨다. 황학동에서 중고로 구입한 게임기가 너무 좋아서 어쩔 줄 모르는 날 보며 아버지도 환하게 웃으셨던 기억이 난다. 조이스틱이 하나뿐이라 친구와 번갈아가며 놀아야 했지만, 우리 집에서 게임을 하고 간 친구는 다음에 자기 집에 초대해 간식과 비디오로 보답하곤 했다. 단순한 구조의 게임이지만 지금 해도 재미있다. 배경음악이 좋아 휴대폰 벨로 설정까지 해두었다.

김현진 / 1984년생 / 돈가스 가게 운영
@oo.kimc

초등학교 동창인 아내를 중학교 때부터 짝사랑했고, 고등학생이 되어 우리는 사귀기 시작했다. 늘 함께한다는 사실에 큰 의미를 두어 유난히 커플 아이템 만들기를 좋아했다. 아내가 서울로 취직을 하면서 우리는 전주-서울의 장거리 커플이 되었다. 각자 스마트폰이 있었지만, 커플 요금제로 휴대폰을 하나씩 더 가지고 다녔다. 2400분 무료 통화를 할 수 있는데도 늘 초과 요금이 나오곤 했다. 어느덧 결혼반지를 나눠 낀 우리는 그 시절을 생각하면 여전히 애틋하다. 두 딸의 부모가 된 지금도 힘들 때면 그때 기억을 꺼내본다.

이대웅 / 1980년생 / 굿네이션 디렉터
@newseoul

어린 시절, 나와 알씨카 RC car의 인연은 과학사 창문 너머로 구경하는 게 전부였다. 서른 살이 넘어서 산 이 모델로 나는 알씨카에 본격 입문했다. 세 살이던 아들도 함께했다. 날씨가 좋은 요즘 두 아들과 자주 밖에 나가 알씨카로 놀았더니 정비가 필요해 보이지만, 아마 평생 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다. 카메라는 어머니가 갓난아기 때부터 나를 찍어주던 제품인데, 최근 브랜드 ‘크리틱 CRITIC’의 룩북도 이 카메라로 찍었다. 아직도 사진이 아주 잘 나온다. 아들에게 물려줄 예정이다.

한영삼 / 1983년생 / 더 레스큐 컴패니 운영
@theresqco.597

20대 후반의 나는 갓 입사한 영업 사원이었다. 천안 입장에 위치한 물류 창고에 가려면 전철을 타고, KTX를 타고, 버스를 갈아탄 다음 다시 택시로 이동해야 했다. 이렇게 분주하게 움직이는 동안 나의 수첩, 서류, 노트북을 안전하게 보관해주던 ‘바이뵤 bybyo’의 새철 백은 버클로 열고 닫아야 하는 불편함까지도 마음에 쏙 들었다. 시즌별로 이 브랜드의 캔버스와 가죽 버전 가방을 사서 번갈아가며 사용했다. 그중 하나는 도둑맞은 적도 있는데, 같은 모델로 다시 구했다. 기합이 빡 들어가 뭐든 열심히 하던 내 모습을 지금도 가끔 떠올린다. 내가 만드는 제품도 누군가에게 튼튼하고 오래 쓰는 물건이길 바란다.

김용환 / 1991년생 / 건축가
@a_yonghwan

등산하지 않더라도 노스페이스 패딩을 입은 것처럼, 운동하지 않아도 트레이닝복을 입는 건 중·고등학교 시절 우리의 유행이었다. 이 아디다스 후드 집업은 나의 유럽·미국 여행과 프라하 교환학생 때 모두 동행했다.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퇴근 후 분리수거하러 갈 때, 아내가 산책 갈 때 함께하고 있다. 날렵한 트레이닝복이라기보다 편안한 ‘추리닝’에 가깝지만, 운동선수보다 더 많은 거리를 움직였으니 목적을 달성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석우 / 1978년생 / 산업 디자이너
@swna.office

나는 초등학교 3학년부터 사진부 활동을 했다. 서로 만져보고 싶어할 정도로 카메라가 귀하던 때였다. 기계를 좋아하던 나는 셔터의 감촉이 유난히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 카메라로 양화대교에서 노을 지는 장면을 찍어 특활반 전시를 하기도 했다. 초등학생이 뭘 알고 찍었나 싶지만, 그때 내가 찍은 인물·사물· 공간 모두 또렷하게 남아 있다. 오래된 카메라지만 아직도 그 멋을 간직하고 있다.

우승우 / 1976년생 / 더워터멜론 공동대표
@harrywoo76

여섯 살 무렵부터 초등학교 저학년 때까지 가지고 놀던 로봇들이다. 어린아이가 가질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던 때라 어찌나 소중하게 다뤘는지, 나조차도 마음껏 가지고 놀지 못했다. 누군가가 로봇을 만지면 혹시 고장이라도 나지 않을까 옆에 서서 노심초사했다. 그런 물건인 터라 40년 가까운 시간을 지내면서 버릴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지금 봐도 버튼을 누르면 주먹이 날아가고, 다리 아래를 열면 조종 버튼이 있는 디테일이 귀엽다. 이젠 정말 버리지 못할 것 같다.

배성호 / 1983년생 / 공간 기획·운영자
@deepsleepcoffee_

갓 성인이 된 나는 히피 문화를 동경했다. 영화 속에서 히피들은 색색의 실을 엮어 차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것과 같은 모양의 실 팔찌를 사서 차고 다니다가,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이후 10년이 넘도록 소원 팔찌를 만들어 나누고, 착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특별한 것은 신혼여행 때 아내 머리를 땋은 실로 만든 발찌다. 얼마 전 태어난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아빠는 값비싼 시계 대신 소원 팔찌를 차고서 네 엄마 손을 잡았다고.

  • 2020.07.13
  • Editor. 조서형
  • Photographer. 이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