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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도 '짬' 대우가 필요하다고요?

Grade Schooler's Experience Needs to Be Respected Too?

  • 2020.07.09
  • Editor. 김하민
  • Writer. 권영민
  • Illustrator. 김다예

아이 공부를 봐주며 열받고 참고 화내기를 반복하고서야 깨달았다. 육아에서 학습으로, 초딩 아이를 존중하기 위한 몇 가지 팁들.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오늘은 피아노 연습도, 학교 과제도 하나도 하지 않은 아이를 몹시 다그쳤다. 아이는 말없이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우린 왜 이렇게 돼 버렸을까’ 방으로 들어가는 아이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왜인지 모르게 나의 군 복무 시절이 떠올랐다. 아이 모습에서 상병 진급만 하면 말을 듣지 않던 후임들이 보였다. 또 거기에 열받아 어쩔 줄 몰라 하던 내 모습도 겹쳐 보였다.

당시 나는 또래보다 일찍 입대해 어린 병장이 되었다. 좋은 고참 노릇을 못하고 있었기에 좋은 고참이 된다는 건 뭘까 더 자주 고민했던 것 같다. 그때 얻은 결론이 있다면, 후임을 언제나 신참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신병으로 온 이등병도 시간이 지나면 ‘짬’이 찬다. 그 짬에 맞게 대우해 주지 않으면 후임들은 선임이 명령을 해도 듣는 척만 할 뿐이다. 그야말로 선임이 ‘종이호랑이’ 신세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지금은 달라졌겠지만, 일병 진급이 되면 모자를 동그랗게 말아도 되었고, 일병 4호봉이 되면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며, 상병이 되면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라떼’는 그랬다.

아이 공부를 봐주며 열받고 참고 화내기를 반복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이도 짬 대우를 받고 싶어 한다는걸.
말하자면 내 아이는 열한 살 만큼의 ‘짬’이 찼는데,
나는 서툰 고참처럼 아이를 여전히 신병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모든 선임이 제대하듯, 아이도 독립할 때가 온다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부모라면 ‘아이의 짬에 대한 감각’을 길러야 한다. 비교적 짬을 계산하기 쉬운 군대와 달리 아이의 성장은 저마다 다르고, 변화도 갑자기 찾아온다. 나와 아내의 지도에 군말 없이 따르던 내 아이 역시 언젠가부터 ‘내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딴지를 걸기 시작했다. 또 일과표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 겨우 습관이 됐는데, 이제는 일과표 자체를 답답해 한다. 하지만 이건 부모가 결코 힘으로 누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아이가 성장하고 있으니, 지금까지의 학습 방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이를 ‘짬’에 맞게 대우해줄 수 있을까? 아이를 ‘짬’에 맞게 대우한다는 것은 더 많은 것, 더 어려운 것을 가르치고, 더 개입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아이에게 덜 가르치고, 덜 말하고, 덜 개입하는 것, 그래서 더 많은 자유로운 시간을 확보해주는 것이 성장하는 아이에 대한 적절한 짬 대우다.

그렇게 확보한 자유로운 시간을 아이가 ‘공부로부터 해방’으로 느끼지 않게 하려면 아이 스스로가 학습 계획을 세우고, 그렇게 세운 계획을 따르는 것이 기분 좋은 일임을 깨닫게 도와야 한다. 좋은 식습관을 가졌다면 다이어트를 할 필요가 없고, 좋은 금융 습관이 있는 사람은 돈을 더 벌기 위해 집착할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이가 좋은 학습 습관을 가진다면, 부모는 공부를 더 열심히 많이 가르치기 위해 고군분투할 필요가 없는 법이다. 

습관은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준다. 하지만 그 습관이 아이 스스로의 것이 아니라 부모가 주입한 습관이라면, 이것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것이다. 초등학생의 학습 목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 ‘공부 잘하는 아이’로 키우는 것일까? 아니면 아이가 자신만의(auto) 습관(nomos)으로, 다른 누구도 아닌 오직 ‘자기 자신’이 되게 하는 것일까? 모든 선임이 제대하듯, 아이도 독립할 때가 온다. 

아이 연령 별 ‘짬 대우’를 위한 구체적인 조언
내 아이를 존중하고, 자율적인 존재(autonomy)로 성장하도록 돕기 위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본다. 

8~9세 : 아이의 계획표와 부모의 계획표를 분리하세요

이제 막 초등학교에 입학한 여덟 살 아이들은 계획을 잘 따르기 어려운 나이입니다. 전체를 파악하기 아직은 부족한 나이라 부모가 주도적으로 계획을 세워야 합니다. 대신 아이의 계획과 부모의 계획을 분리하고, 아이가 생활 습관을 기를 수 있도록 격려해 주세요. 아이의 계획표는 시간 단위로 촘촘한 것 보다는 꼭 필요하고 잘 지켜나갈 수 있는 것들 위주로 기입합니다. 아이가 계획을 따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한다면 충분합니다. 계획에 따라 생활하고 좋은 습관을 갖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임을 아이가 이해하도록 많이 칭찬해 주세요. 일어나면 침대 정리하기, 식사 후 양치하기, 집에 돌아오면 손 씻기, 숙제하기 등을 중심으로 크게 배치하고, 여유 시간을 많이 확보해야 즐겁게 습관을 만들 수 있습니다. 대신 아이의 계획표가 아닌 부모의 계획표에서는 운동이나 음악 같은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여러 활동을 넣어두세요. 작은 성공의 경험, 다양한 탐색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여덟 살 아이는 갓 입대한 어리버리 신병처럼 아직 도움이 많이 필요합니다. 

10~11세 : 자율성은 해야 할 일을 ‘빼야’ 생깁니다. 

아이가 스스로 계획 세우는 법을 배워야하는 시기입니다. 빠른 아이들의 경우 사춘기가 시작되고, 자아가 강해집니다. 아이와 대화를 통해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맞춰 ‘해야 할 일’을 적절히 조정해야 합니다.
우선 방과 후 학습량이 너무 많으면 계획 자체의 의미가 없어져 버립니다. 어차피 매일 가야 할 학원이 있고, 해야 할 공부가 있다면 계획을 세울 필요가 없으니까요. 학습량에 대해서는 부부가 함께 의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학습량보다 ‘학습 계획을 세우고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일관되게 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한 일을 할 수 있는 아이’로 성장하는 것이 목표라면 부모로서 욕심을 조금 제어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부모의 욕심이 아이의 계획을 앞서면 아이의 자발성과 학업 의욕은 감소하고, 아이는 점점 부모의 눈을 피하게 됩니다. 힘이 없는 아이는 아빠와 싸우기보다 결국 마음을 조금씩 닫기 시작합니다. 아이를 기르는 데 있어서는 뭔가를 하는 것보다 안 하는 게 어렵습니다. 과감히 뺄 건 빼야 아이와 행복해집니다. 

12~13세 : 아이가 직접 계획을 세우도록 가르쳐주세요. 

아이가 목표를 탐색하고, 그 목표에 따라 계획을 세우고, 따를 수 있도록 격려가 필요한 시기입니다. 이 시기부터 아이들은 부모보다 또래에 의해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11세 이전까지 계획이 해야 할 일 위주였다면, 이제부터는 시간을 고려해 해야 할 일을 지켜나갈 수 있도록 좀 더 세부적인 계획 수립을 도와주세요. 그리고 아이가 세운 계획을 존중해 주시되, 더 자주 그 계획의 의미를 묻고 토론하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더 나아가 아이에게 계획을 세우고 따르는 것이 주는 ‘자율성의 가치’도 자주 이야기해 주세요. 
말보다 보여주는 것이 빠를 때가 있습니다. 부모가 계획을 세우는 방법과 따르는 모습을 먼저 보여주세요. 아이에게 아빠가 가진 계획을 공유하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스스로, 제대로 된 계획표를 만들어 따르는 것은 몹시 어려운 일입니다. 많이 기다려 주셔야 해요. 아이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괜찮아, 다시 해보자’라는 격려가 부모를 좋은 고참으로 만들어줍니다.

모던 파더 | 권영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인 ‘철학본색’을 운영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숙원하던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아내 대신 아들 선재를 키워낸 값진 경험을 육아 일기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어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6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선율이 덕분에 다시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아이 둘이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 2020.07.09
  • Editor. 김하민
  • Writer. 권영민
  • Illustrator. 김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