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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의 역설

Two faces of one-good-habit

  • 2020.06.26
  • Editor. 김하민
  • Writer. 권영민
  • Illustrator. 김다예

좋은 습관을 기르기 위해 애쓰는 아내의 규칙에 아이가 열한 살이 되면서 반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난 왜 자꾸 오버를 할까?

열한 살이 된 큰 아이가 최근 세운 목표는 토론 고수되기다. 전공을 살려 토론만큼은 직접 가르쳐주기로 했다. “우리나라는 난민을 지금보다 더 많이 받아야 하는가” 지난 주 토론 주제였다. 아이는 우리나라에 어려운 사람이 많고, 코로나19 때문에 난민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나는 전 세계적으로 봐도 우리나라의 난민인정비율이 너무 낮고, 코로나19가 위험한 것과 난민은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해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 것 같았다. 유튜브에서 영상을 검색하고, 책장에서 관련 책들을 찾았다. 지쳐버린 탓일까? 아이가 마지못해 난민 수용의 필요성을 인정하려던 찰나, 방문이 열렸다. 아내였다. 

“아직 안 자고들 뭐해? 벌써 열두 시가 넘었잖아! 빨리 들어가 자!”

열두 시까지 아이와 토론하는 나더러 누구는 열정적이라 할지 모르겠다. 그건 아이도 인정하는 부분이지만, 거기에 한 마디를 꼭 덧붙인다. “열정적인 건 좋은데, 아빠는 좀 과해” 과한 건 나도 안다. 원래 한 시간만 이야기하고, 아이가 늘 자야 하는 시간에 맞춰 재워야겠다는 계획이었다. 그런데 결론이 나지 않으면 끝낼 수가 없다. 전염병 때문에 마침 학교도 안가니까, 좀 과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학교 과제가 남아 있어도 마찬가지다. “해야 할 일이 있어도, 시간 되었으니 이제 자야 해”라고 말하는 대신 “자야 할 시간이 됐지만, 해야 할 건 해야 해”라고 말하는 아빠라면, 과할 뿐 아니라 좀 나쁜 아빠인 거다.

아내가 날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점도 이런 부분이다. 그는 매사 계획이 철저하다. 규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에서 마음의 평화를 느끼는 종류의 인간이다. 밥도 늘 집에서, 같은 시간에 먹는다. 리듬이 깨지는 것을 싫어해 여행도 좋아하지 않는다. 습관을 잡아줘야 한다며 백일도 되지 않았던 둘째가 아무리 울어대도 네 시간마다 우유를 줬다. 매일 피아노 연습을 한다. “습관은 만들기는 어려워도 무너지는 것은 금방”이라며 오늘만 친구 집에서 자고 오고 싶다고 아무리 아이가 애원해도 허락지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자주 부딪힌다. 이를테면 아내는 “그걸 지금 꼭 해야 하냐?”라며 나를 다그친다. “여보, 프랑스 속담에 ‘밤이 선생이다’라는 말 있는 거 몰라? 밤이 되어야 할 수 있는 깊은 이야기들이 있다고” 그렇게 말해봤자 돌아오는 답은 뻔하다. “넌 왜 그렇게 자꾸 오버를 하냐? 그거 좀 더 알려주는 게 애가 자는 것보다 중요해?”

하루키보다 고흐, 아리스토텔레스보다 니체

일찍 자는 것이 더 중요한 게 맞다. 나는 알면서도 실천이 잘 안되는 사람, 계획성이 부족한 사람이다. 계획표 같은 것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싫어 다니던 직장도 그만뒀다. 새벽에 일어나 달리기를 하고, 정해진 분량의 원고를 매일 아침 쓴다는 하루키보다, 습관도 계획도 없지만, ‘삘’이 꽂히면 잠도 안 자고, 밥도 안 먹고, 오직 그림만 그리다가 일찍 죽어버린 고흐를 나는 늘 동경했다. 그래서일까?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우고 글을 쓰지만, 어떤 날은 단 한자도 쓰지 않는다. 아이 학습에 대해서도 하루키보다는 고흐의 방식을 선호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빼야 하니까, 아이가 뭔가 잘 따라 주고 있다는 ‘삘’이 오면 계획도, 습관도 걷어 차버렸다.

하루키와 고흐의 차이를 들었지만, 철학에서 비슷한 차이를 니체와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볼 수 있다. “포도주 산지에서 태어난 사람이 포도주를 즐겨 마시는 것처럼, 속박된 정신은 자신의 입장을 합리적 근거가 아니라 습관에서 받아들인다”. 니체의 말처럼, 나는 아이가 습관에 속박되어 포도주 외의 다른 술의 맛을 모르며 살아갈까봐 걱정했다. 습관적 사고에 갇혀 ‘코로나 때문에 난민이 위험하다’는 얼토당토 않은 생각을 가진 채 자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탁월한 사람이라서 올바르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올바르게 행동하기 때문에 탁월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반복적으로 하는 행동, 그것이 바로 당신 자신이다” 아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 말을 좋아했다. ‘코로나 때문에 난민이 위험하다’는 생각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보다, 계획 따라 살아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위험하다는 생각이다.

열정이 욕심이 될 때

아내의 사고방식이 피곤하다고 자주 생각했다. 그러다가 내가 계획도, 습관도 없이 밤을 선생으로 믿고 일하고, 글 쓰면서 살이 찌고, 성인병에 시달리고 나서야 계획 없이 위험하단 말이 하나의 실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고흐의 열정도 다른 관점에선 그저 욕심일 뿐이라는 것도 알게됐다. 계획은 욕심의 속도를 늦춰준다. 책임감을 핑계 삼아 과제를 못 마치면 밤이 늦어도 끝내고 자도록 하는 것, 옳음을 핑계 삼아 잘못된 판단을 하고 있는 아이의 생각을 끝까지 바꾸려 하는 것을 열정이라 할 수 있을까? 그 열정이 정작 아이를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면, 그건 욕심을 열정으로 은폐한 것이다. 계획에 따라 살아가는 습관이야말로 열정이 욕심으로 타락하는 것을 막아주는 것임을 나는 뒤늦게 깨달았다. 

아이에게 습관을 잡아주는 것을 소홀히 하면 부모의 본능이 아이를 지배한다. 습관을 강조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습관에 매이면 생활의 변화는 ‘새로운 가능성’이 아닌 ‘성가신 것’으로 전락한다. 열한 살, 내 아이에게 조금은 부족한 자발성, 지금 내가 가진 건강 문제는 ‘습관’의 다른 측면을 보지 못한 결과이다. 엄마의 엄격한 규칙 덕분에 만들어진 습관으로 아이는 수영도 제법하고, 피아노 실력도 키웠지만 그 어떤 것도 아직 ‘스스로’ 선택한 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또 아빠의 욕심 덕분에 제법 아는 것도 많은 아이가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렇게 얻게 된 앎은 ‘규칙적으로’ 배워 만든 체계적인 지식과는 거리가 멀다.

내 것 아닌 습관도 위험하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금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한용운은 시에서 복종하고 싶은 것에 복종하는 것은 자유보다 더 달콤한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내 아이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걸까? 계획에 복종하는 것을 자유보다 더 아름답다 생각할까? 며칠 전 아이는 미로에 갇히는 꿈을 꿨다고 했다. 엄마가 만든 계획표가 미로가 되어 나타났단다. 다른 한편 아빠의 열정을 자주 ‘오버한다’고 투덜대는 걸 보니, 계획과 습관을 그렇다고 모른 채 하기도 싫은가 보다.

열 살까지는 엄마가 정해둔 계획에 잘 따랐고, 아빠에게 배우는 게 세상에서 제일 재밌다는 아이였다. 열한 살이 되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왜 피아노를 쳐야 하냐고, 왜 매일 수학 문제를 푸냐고 캐묻는다. 아빠가 ‘삘’ 받아 눈을 동그랗게 뜨면, 좀 부담된다며 선글라스를 껴달라고 할 때, 습관이 복종이 되지 않으려면 역설적으로 그 복종이 스스로 결정한 복종이어야 함을 깨달았다. 한용운이 시에서 노래하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 혹은 스스로 규칙을 세워 거기에 따르는 것이 자율이라면, 말 그대로 스스로(auto) 정한 규칙(nomos)을 따른다는 자율(autonomy)은 남이 정한 규칙에 따르는 것도, 규칙 없이 사는 것도 아니다. 습관이 없는 것은 위험하지만 내 것이 아닌 습관도 위험하다. 아이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가르치기 어려운 것은 ‘습관의 역설’을 사유할 시간도, 풀어갈 지혜도, 실천한 용기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 아이들은 해야 할 것 하느라 오늘도 뒤늦게 잠자리에 든다.

모던 파더 | 권영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인 ‘철학본색’을 운영하며 강의를 하고 있다. 숙원하던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아내 대신 아들 선재를 키워낸 값진 경험을 육아 일기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어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6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선율이 덕분에 다시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아이 둘이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

  • 2020.06.26
  • Editor. 김하민
  • Writer. 권영민
  • Illustrator. 김다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