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Child Not like the Rest

남과 다른 아이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내 아이하고는 다른 속도와 방향을 지닌 다양한 아이와 그 부모를 마주하는 학교 안에서 때론 길을 잃었다. 학부모로 살아가는 녹록지 않은 과정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겪어낸 신혜섭·이달우 부부를 만났다. 초등학교 교실에서 비교적 흔하게 일어나는 몇 가지 사건, ‘학교’에 관한 불신과 두려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장맛비 내리는 강원도 영월 펜션의 텅 빈 수영장을 유유히 헤엄치는 아이들을 보며 학교와 교육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결국 부모인 나를 향한 것은 아니었는지 생각해본다.

14-03-01

아이의 학교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강원도와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어요.
(달우) 첫째 아이 상민이가 서울에서 1학년을 마치고 시골 학교로 전학 온 지 1년 반쯤 되었어요. 서울에서 4시간 거리인 강원도 영월로 아내가 아이 둘을 데리고 내려왔죠. 이곳은 제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이기도 하고, 아이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계세요. 그렇다고 고향에 돌아온 것은 아니고, 서울 집은 그대로 두고 연세로 작은 펜션을 얻었어요. 1년만 이렇게 살아보자며 시작했어요.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서울 마포구에 있는 스튜디오와 집에서 지내고, 금요일부터 일요일까지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이곳으로 와요. 일이 바쁠 때는 아내가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로 오기도 하고.

이런 선택을 한 계기가 아이의 교육 때문이었다고요?
(혜섭) 우리 부부와 가까이 지내는 갤러리 관장님이 “모든 아티스트의 유년기에는 자연에서의 경험이 있다”라고 SNS에 올린 글을 보고 깊이 공감했어요. 첫째 아이의 학교 때문에 고민이 많던 시기였는데, 강원도의 자연과 시골의 작은 학교가 우리가 생각한 교육관과 많이 부합했어요. 그래도 가족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쉽게 결정 내리지 못했는데, 남편이 한두 달 있다가 돌아와도 되니까 일단 떠나보라고 했어요. 무언가 해내지 않아도 괜찮다던 남편의 말이 결정적으로 용기와 추진력을 준 것 같아요.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많은 고민이 있었다고 들었어요.
(혜섭) 상민이는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른 아이였어요. 산만하고 엉뚱하며, 웃기려는 개그 본능이 있는 아이. 초등학교 입학 전까지는 그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어요. 거의 매주 선생님께 지적을 받았는데, 처음에는 고작 초등학교 1학년, 여덟 살 아이들이 틀로 삼아야 할 ‘네모’가 너무 작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몇 가지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는 일기장에 적힌 선생님의 메모에요. “사람을 졸라맨처럼 그리지 말 것.” 상민이는 아기 때부터 동그란 머리 하나와 선으로 사람을 표현했어요.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아이의 특별한 개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학교는 그런 것을 수용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어요. 선생님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늘 같은 방식으로 그리는 아이에게 ‘선이 아닌 면으로 표현해보자’라는 정도의 의미였을 거예요. 아이는 오히려 괜찮았는데, 문제는 저였어요. 아이를 잡았거든요. 좀 더 다르게 사람을 그려보자고, 학교에서 튀지 말라고, 엉뚱하고 모난 행동을 하지 말라고....
(달우) 아내에게 졸라맨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주의력이 산만하다고 걱정할 때도 웃으면서 그랬어요. “내가 성인 ADHD야! 우리 스튜디오 직원 중 세상 최고 산만한 아이 둘이 있는데, 일은 정말 잘해. 평범하지 않다는 거잖아!” 그런데도 아내는 많이 힘들어했어요. 상민이의 산만함이 어느 정도인지, 정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해서 확인하고 고민하더라고요.

아이보다 엄마가 더 힘들었다는 말에 공감해요. 유치원과 초등학교 사이의 간극에서 오는 막연한 두려움을 겪는 부모가 많아요.
(혜섭) 선생님이나 반 모임 엄마들에게 무슨 말을 들을까 봐 늘 마음이 조마조마했어요. 내 위축감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일이 괴로웠어요. 아이의 생각 주머니를 키운다고 걸어 내려가서 마을버스를 타고 다시 가야 하는, 1학년으로서는 상당히 먼 거리를 혼자서 등교하게 했어요. 이런 것을 스스로 처리해야 아이가 성장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미션을 풀 듯 전전긍긍하며 1년을 보냈어요. 아이를 키우며 내 욕망이 아이에게 투영되는 경험을 하면서 나의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 보게 되었지요. 나는 엄마로서도 되게 멋있게 살고 싶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2학년쯤인가, 선생님이 지적한 상민이의 어떤 문제 행동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내렸어요. 세상 사람들이 상민이를 엉뚱하고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할까 봐 너무 무서워서 아이를 안고 엉엉 울었어요. 아이 앞에서 저의 불안을 직접 표현한 것은 처음인 것 같아요. 그때 나조차 내 아이를 왜곡된 시각으로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어요. 너무 미안했어요. 아이를 편견 없이 나의 감정에서 분리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러다 아이에게 신뢰가 생기니 어떤 강박에서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그때부터는 아이가 어떤 특성과 기질을 타고났는지 관찰하고 지켜보는 것이 제 육아의 전부였던 것 같아요.

아이가 다니던 서울 학교는 꽤 유명한 학교 폭력 사건으로 논란이 되었다고 들었어요.
(혜섭) 한 아이의 엄마가 40여 명의 학생을 학교 폭력 가해자로 신고했어요. 저희 가족이 이곳 영월로 전학 온 이후에 벌어진 사건이지만, 그 40여 명 중에 상민이도 포함되어 있었죠. 내 아이가 정신적으로 상처를 받았으니 폭력이다, 신고 이유를 전혀 납득할 수 없다,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올려가며 부모들 간에 치열한 공방전이 오갔어요. 한 교실에서 공부하던 2학년 아이들은 모두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었고, 그 사건 이후 쉬는 시간에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어야 했대요.

그때 선생님은 어떤 역할을 했나요?
(혜섭) 학교폭력위원회가 열리면 선생님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어요. 화해를 권유했다가는 일을 덮으려고 한다는 괜한 오해를 살 수도 있고요. 학교의 중재 기능은 거의 없어 보였어요. 그 일을 겪은 선생님은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아이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을 거예요. 학교 분위기는 침체되었고, 연락이 닿는 엄마들에게 들어보면 학부모 모임에서 나온 사소한 말도 오해나 분쟁의 소지가 될까 봐 서로 눈치부터 살핀대요. 학교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히지 않으려면 상대 아이들도 살펴야 하고, 내 아이도 단속해야 하니까요.
(달우) 당시 아이 학교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 학교에 갈 일이 있어 담임선생님을 마주쳤는데, 제가 그랬어요. 우리 상민이 혼낼 일 있으면 괜찮으니 그냥 혼내시라고. 그랬더니 갑자기 울먹이시더라고요.

우리 아이 학교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어요. 연필로 아이들 손을 찍는 일을 반복하는 아이에게 한 학부모가 직접 대면해 충고를 한 게 문제가 되었어요. 학부모는 물론 선생님까지 학교 폭력으로 신고가 되었고요.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아이들끼리의 크고 작은 다툼은 불가피할 텐데 어른들의 문제 해결 방식이 더 큰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요. 가장 상처받는 건 아이들일 텐데요.
(혜섭) 가끔 자신의 아이와 접촉한 모든 아이를 신고하고 전학을 가버린 그 아이 엄마의 입장은 어땠을까 생각해봐요. 신고 이유를 납득할 순 없지만 그 역시 아이를 위해서였겠죠. 엄마니까. 언젠가 상민이도 학교에서 또래나 선생님에게 상처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피해자든 가해자든 얼마든지 역할이 바뀔 수 있을 거예요. 그때 나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달우) 약하고 모자라 보이는 애를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일은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저는 남중·남고를 나왔는데, 우리 학교 다닐 때도 그랬으니까. 잔인한 말이지만 그게 자연스러운 것일 수도 있어요. 지금이야 사소한 연필 싸움 이겠지만 언젠가 진짜 폭행이 일어날 수 있고, 그걸 부모가 해결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아이는 모든 걸 겪게 되겠죠. 아이가 상처받는 것은 슬프지만 아이가 겪어내야 할 몫을 부모의 개입으로 해결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더 중요한 건 아이의 자존감일 테고, 그것이 결국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될 수 있겠죠.

실제로 청소년의 학교 폭력 같은 문제는 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달우) 청소년폭력예방재단(청예단)에서 학교 폭력 화해 분쟁에 대한 프로세스를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어요. 그걸 맡긴 클라이언트가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극단적인 선택을 한 아이를 둔 아버지였어요. 슬픈 건 부모가 아이의 상황을 몰랐다는 거예요. 얼마 전 상민이가 그러는데, 학교 형아가 자꾸 괴롭히고 때린대요.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편하게 들어줬더니 줄줄이 나오더라고요. 솔루션을 달라고 해서 같이 폭력을 쓰는 것은 안 되니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하지 마!”라고 말하라 했어요. “그래도 안 멈추면?”이라고 묻길래 딱 두 대만 때리면 넘어지는 급소를 가르쳐줬어요. “그래도 안 쓰러지면 어떻게 해?”라고 하더라고요. “어차피 맞을 거 그냥 맞는 것보다 싸우고 맞는 게 더 낫지 않겠냐?” 하며 싸우라고 했더니 웃어요. 아내는 요즘 같은 세상에 같이 때리라고 가르치는 거냐며 나무랐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대화라고 생각해요. 평소에 아이가 어려워하지 않고 부모에게 자신의 속마음을 털어놓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정말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14-03-02

〈원더〉라는 영화에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것 중 하나가 상처받은 아이도, 상처를 준 아이도 스스로 깨닫고 성장했다는 점이에요. 부모나 선생님의 개입 없이도 아이들 스스로 상처받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과정이 아주 건강해 보였어요.
(혜섭) 아이와 나를 완전히 타인으로 분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요. 아이가 곧 내가 되면 감정적으로 치우치게 되고, 아이를 나의 잣대로 판단하고 이끌게 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게 교육은 아닌 것 같아요. 처음에 아이의 전학을 내가 주도했다는 것이 오랫동안 발목을 잡았어요. 개입으로 치면 아주 적극적인 개입인 거죠. 아이 주변 환경과 친구들까지 모두 바꿔버렸으니까. 아이에게 학교라는 선택지는 하나였는데, 이제 또 하나의 선택지가 생겼잖아요. 이게 어려우면 다른 것을 선택해도 된다고 생각할까 봐. 그런데 이곳에 온 후 1년 만에 나타난 상민이의 변화를 보고 안심하게 됐어요.

상민이는 새로운 학교에 잘 적응하고 있나요?
(달우) 학교 가는 것을 너무 재미있어해요. 그것만으로도 좋아요. 아이도 아내도 훨씬 건강해 보이고요. 요즘 상민이는 자존감이 너무 높아져 우월감을 가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옆에서 조금 눌러주고 있어요.(웃음)
(혜섭) 상민이가 전학 와서 처음 자기소개를 할 때 그랬대요. “선생님, 저는 그림도 못 그리고 공부도 못해요”라고. 수업 시간에는 “선생님, 이 문제를 못 풀겠어요. 저는 뒤에 가서 손들고 있을게요”라고. 서울에서 상민이는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집에 와서 얘기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 사이의 이야기, 선생님 이야기 등 말이 정말 많이 늘었어요. 상민이의 학교생활을 아이 입을 통해 들으면서 ‘아, 학교의 역할이 이런 거구나’라고 깨달았어요. 한 학년에 세 명밖에 없어서 선생님이 옆에 앉을 수 있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풀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이런 학교가 상민이에게는 필요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느 날은 “아무것도 하고 싶어 하지 않던 아이가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라고 물어서 키스 해링에 대해 함께 찾아봤어요. 아이의 생각이 시작되는 지점에 집중해 필요한 것을 찾아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골의 작은 학교로 전학을 온 후 가장 좋은 점은 무엇인가요?
(혜섭) 처음 이 학교를 구경 왔을 때 교실에 장난감이 많이 있었어요. 게다가 책상과 의자도 예쁘고, 교구도 다양하고. 정말 시골 학교인데 예상 밖으로 너무 신식인 거예요. 서울의 학교가 더 구식으로 느껴질 만큼.(웃음) 무엇보다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주시는 선생님들이 있는 것이 제일 좋았어요. 학생 수가 적어서 이런 분위기가 가능한 건데, 한편으로는 상민이가 도시 학교로 다시 가고 싶어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상민이를 제외하고 여자아이만 둘이 있는데, 셋은 너무 적은 거예요.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적어도 두 모둠, 여덟 명 정도가 되어야 여러 가지 방식의 수업이 가능하다고 해요. 또래 집단을 통한 배움도 중요하기 때문에 그런 점은 여전히 고민이에요. 이 학교 교장 선생님은 “교육은 서비스다”라고 하셨어요. 아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서비스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시골의 작은 학교는 교육에 대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한 곳이에요. 요즘에는 마음 맞는 지인들에게 시골 작은 학교에 관심을 가져보라고 권하기도 해요. 관심을 보이는 부모도 많고, 실제로 방학 기간을 이용하거나 한 학기 정도 단기 전학을 통해 작은 학교를 찾아서 경험해보는 가정도 늘고 있어요.

결국 도시로 가야 한다는 것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 같아요. 상민이가 3학년인데, 이곳에 언제까지 머무를 계획인가요?
(달우) 내일 일을 계획할 수 없다는 점이 오히려 현재 가장 최선을 선택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상민이의 전학으로 우리가 교육에 대한 어떤 답을 찾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결국 상민이는 또래 친구를 찾아 다시 도시 학교로 갈 거예요. 비교적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어서 주말을 아이들과 함께 보낼 수는 있지만, 가족이 떨어져 지낸다는 것도 긍정적이진 않으니까요.
(혜섭) 교사도 부모도 조금만 여유가 있으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봐줄 수 있는 건데, 이곳에 와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이곳에서 마음의 근력을 키운 것 같아요. 그래서 상민이가 도시의 또래 친구들이 더 필요해지면 원래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려고 해요. 같은 상황이 닥치더라도 위축감이나 불안감으로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생겼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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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영월 펜션에서의 생활은 어떤가요?
(달우) 여름에는 계곡물로 채운 풀장에서 수영을 해요. 저는 너무 차가워서 발만 담갔다가 나오는데, 아이들은 종일 잘도 놀아요. 겨울에는 썰매를 타고 스키도 타요. 스키장이 아주 가깝거든요. 학교 가는 길에 계곡에서 물고기도 잡고 온갖 벌레를 보고... 뭐, 아이들에게는 천국이죠. 물론 아이패드로 게임도 하고 TV도 봐요. 지역의 박물관도 찾아다니고, 생각나면 다 같이 바다도 보러 가고요. 어디를 가든 서울보다 차가 안 막혀서 좋아요.

둘째 아이는 성향이 많이 다르다고 들었는데, 이곳 생활을 만족해하나요?
(달우) 둘째 아이는 욕심이 많은 편이에요. 도시 학교에서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모범생으로 생활하는 데 최적화된 아이죠. 하나를 가르쳐주면 그것을 해낼 때까지 앉아서 해요. 오빠와 비교하면 습득이 빠른 게 보여요. 아내는 시골 생활이 상민이에게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저는 오히려 하림이에게 좋은 것 같아요. 둘의 성향이 너무 다른 점이 걱정도 되었는데, 아이들은 자연 안에서 그저 아이로 잘 자라는 것 같아요.

아이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다면요?
(달우) 상민이 글씨는 버드나무체예요. 글씨가 위로 날아가요. 다른 거보다 글씨를 좀 가르쳐주고 싶어요. 글씨를 바르고 예쁘게 쓰는 게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아내는 빨간 펜을 들지 않아요. 오히려 말하고 느끼는 것을 얼마나 성실하게 표현했는지를 봐요. 저는 글씨체, 맞춤법, 띄어쓰기 등을 신경써요. 아내가 육아를 잘해요. 아이들에게 아빠의 기억이 들어갈 데가 별로 없어 보일 때가 있어요.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부분에 대해 늘 생각하는데, 그중 하나가 글씨인 것 같아요. 제 아버지도 제게 글씨를 바르고 예쁘게 쓰는 법을 가르쳐주셨거든요.
(혜섭) 저와 상민이 단둘이 가는 프랑스 여행을 계획하고 있어요. 자코메티를 보여주려고요. 졸라맨처럼 인체를 표현하는 작가가 있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제가 오랫동안 지적 허영심에 예술을 알고 싶었다면, 상민이의 세계를 확장해주기 위해 공부하고 발견한 예술은 보다 근본적인 것, 자연과 인간에 대한 것이었어요. 사춘기라는 것이 나의 자아를 보기 시작하는 거잖아요. 아이는 점점 나와 대화를 하지 않고 나를 떠나갈 텐데, 아이가 예술 작품과 예술가를 통해 스스로 어떤 의미를 찾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해요.
(혜섭) 도시와 떨어져 영월에서 1년을 한량처럼 지내다 보니 내 안에 무엇인가 꽉 채워진 것 같아요. 지금은 지역사회의 주민들, 엄마들이 함께 모여 소통하는 역할을 하는 작은 작업실 겸 책방을 영월 시내에 마련했어요. 10년을 전업주부로 살다가 내 일을 찾은 거라서 설레는 마음 반 두려움 반에 잠도 안 와요. 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매일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의 목표는 이곳이 모두의 작업실 같은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아가서는 기존의 방식 말고 좀 더 세련된 방식으로 고유의 지역성을 살리는 변화를 모색하고 싶어요. 작업실을 오픈한 지 3개월이 되었는데, 멀리서 찾아오는 분도 있고 이 공간으로 인해 에너지가 모이는 느낌이 들어요.
(달우) 아내와 요즘 이런 말을 해요. “이 영월에서 좀 지내다 보면 다음에는 어디라도 갈 수 있겠다”고. 발리에서 2년 살고, 광주에서도 1년을 살고 싶어요. 정말 그렇게 살아도 괜찮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