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ary of an Overweight Father

뚱보 아빠가 쓰는 ‘몸에 관한 일기’

나는 ‘살’에 신경을 쓰는 동안 ‘몸’에 무관심했다. 날씬해질 수 있다면 보잘것없는 몸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몸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2016년 3월 9일. 오늘은 오전에 현미에 무채가 들어간 무침과 호박전을 먹었다. 아침 식사가 늦어 점심에는 커피를 한 잔 마시는 것이 전부였다. 오늘은 아이 생일이라 아이가 원하는 스시 뷔페에 갔다. 방울토마토를 30개는 족히 먹은 것 같다. 뷔페에 가니 본전 생각이 나 토마토라도 많이 먹자는 마음에 좀 과하게 먹었다. 토해낼까 하다가 말았다. 아이 생일날인데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다. 돼지감자와 여주차를 먹고 있는데 돼지감자 가루는 맛이 없다. 저녁에는 러닝머신을 40분 타면서 라디오를 들었는데, 지루했다. 그리고 다리 근력 운동을 종류대로 두 세트씩 20회 했다.

2016년 3월 10일. 돼지감자 가루는 맛도 별로지만 이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빠는 돼지라서 돼지감자 가루를 먹느냐고 묻는 아이. 내 아이가 아니었다면 때렸을 수도 있다. 점심은 선식을 먹었다. 어제 좀 과하게 운동을 한 탓인지 허벅지 안쪽이 무척 아팠다. 몸을 풀기 위해 헬스장은 건너뛰고 늦은 밤에 동네를 한 바퀴 걸었다. 걷는 내내 소설가 김영하가 읽어주는 다비드 르 브르통의 《걷기 예찬》을 들었는데, 걷는다는 것은 세계와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고, 혼자 걸을 때의 침묵이 자연의 소리에 귀 기울이도록 만들고, 새로운 생각을 가져다준다고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미문을 따라 침묵의 가치를 생각해보다가 도시의 11시 밤공기를 가득 메운 돼지고기 굽는 냄새가 내 마음을 온통 사로잡았다. 그리고 걷기는 브르통의 말대로 내게 새로운 생각을 주었다. 여기 ‘육박사’라는 고깃집에서 언젠가 반드시 육박사가 손질한 돼지고기를 숯불에 굽고 싶다는 생각 말이다. 뚱보 자아는 상처도 잘 받지만, 잘 죽지도 않고, 욕망은 강하다.

110. 110. 140
내가 몸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것은 당뇨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부터다. 당뇨는 음식 조절이 중요하다고 해서 내가 하루 동안 먹은 음식을 매일매일 기록하기 시작했다. 이 일기를 쓰기 시작한 시점에 내 몸무게는 110kg이었다. 아침 공복에 잰 혈당은 110mg/dl이 나왔고, 혈압은 140mmHg였다. 내 키는 180cm이니 나는 고도비만에, 경계성 당뇨병 환자이며, 혈압도 정상범위보다 높은 수치다. 다른 것보다 특히 높은 혈당 수치는 깊은 충격을 줬다. 마흔도 되지 않았는데, 당뇨라니....

80, 110, 76, 95
어릴 적부터 거의 항상 뚱뚱했던 나는 뚱뚱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언제나 내가 뚱뚱하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조금이라도 뚱뚱해 보이지 않으려 노력하며,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살았다.
처음 해본 다이어트는 고등학교 2학년 때 옆 학교의 여자아이를 좋아하면서 시작했다. 그때도 나는 110kg 정도였는데 살을 빼겠다는 일념 아래 오전에 우유 하나를 마시고 온종일 굶다시피 했다. 우유를 마시면 어김없이 설사로 오전 내내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그리고 복부의 지방을 분해하려면 뱃살을 주물러야 한다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고 수업시간 내내 뱃살을 주물렀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몇 달이 지나자 체중은 눈에 띄게 줄었다. 수능 시험을 치를 때는 몸무게가 80kg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 아이 눈에는 80kg으로 살이 빠진 내가 여전히 110kg로 보였을 것이다. 체중을 유지하다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 다시 체중이 불기 시작했다.
그 이후에도 다시 살이 쪘다가 빠졌다가 하는 일을 몇 번 반복했는데, 결론적으로 말해 다이어트는 단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 성공을 했다가도 항상 끝은 실패였고, 지금도 여전히 뚱뚱하다. 그리고 예전에는 뚱뚱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건강까지 나빠졌다. 《팻》이라는 뚱보에 대한 문화 인류학적 보고를 담은 책에서 돈 쿨릭과 앤 매넬리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의 76% 는 다이어트를 시작한 지 3년 뒤에 다이어트 이전보다 살이 더 찌며, 5년 뒤에는 95%나 살이 더 찐다”고 했다. 나는 정확히 그 76%와 95%에 해당한다.
다이어트 실패율이 높다는 통계는 내게 절망보다 오히려 위로를 줬다. 이 통계는 내가 뚱뚱한 게 특별히 음식을 무절제하게 좋아하거나 게으르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준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 파트너도, 내 어머니도, 나와 함께 밥 먹는 그 어느 누구도 식탁에서 내가 다른 사람에 비해 과식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또 나는 게으르지 않다. 원고를 쓰고, 강의를 하고, 아이를 돌보고, 남편으로서,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일도 하고자 애써왔다. 나는 집에 앉아 있는 것을 싫어하는 편이라 산책을 하자고 먼저 말을 건네는 쪽은 파트너가 아니라 항상 내 쪽이다.
이런 이야기를 같은 대학 체대를 다닌 친구에게 말하니 비웃음 섞인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럴 리 없어. 살찌는 것은 단순해. 먹는 것만큼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지.” 한마디로 내가 너무 많이 먹든가 아니면 게으르다는 건데 그 이야기를 듣고서 정말 그런 것인지 잠시 멍해졌다. 그러고는 ‘도대체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열심히 산단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나는 더 열심히 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것도 아니라면 ‘다른 사람들은 생산성의 많은 부분을 포기하고 그저 보잘것없는 몸을 위해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06-01

은폐된 몸의 존재
어쩌면 친구의 대답이 아니라 내 의문에 내가 살을 빼지 못하는 한 가지 이유가 담겨 있다. ‘보잘것없는 몸’을 위해 생산성을 포기하는 것을 어리석은 일로 여기는 자에게 몸이 주는 대답은 몸을 비대하게 만들고, 건강을 앗아가는 것일 수밖에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보잘것없는 몸을 위해 아무것도 투자하고 싶지 않았다. 다이어트를 하는 시기에도 나는 내 몸을 ‘가혹하게’ 다뤘고, 운동도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써야 할 글이 밀려 있고, 아이를 봐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는데 도대체 운동을 언제 한다는 말인가?’ 늘 그렇게 생각했다.
게다가 나는 러닝머신이 너무 지루했다. 러닝머신 앞의 TV를 보며 운동하는 것은 왠지 모르게 모욕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내가 머리 앞에 나무 장대로 음식을 매달고 그것을 먹겠다며 따라가는 동물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걸으며 철학했다는 칸트도, 하이데거도, 니시다 기타로도 러닝머신 위에서는 ‘사유’하지 않았을 것이다. 단지 러닝머신 위에서는 나 자신이 ‘강제되고’ 있다는 불쾌한 기분 외에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이제야 건강이 나빠졌다는 감각이 생기니 생산성 없는 그 건조한 경험도 생산성 있는 활동일 수 있다는 자각이 생겼다. 나는 온갖 병이 내게 다 달라붙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혈당 수치도 비교적 높고, 혈압도 높고, 손목이 아프고, 무릎 관절이 좋지 않고, 편도가 커서 열이 자주 나고, 알레르기 때문에 감기에 자주 걸린다.
그러니까 나는 ‘살’에 신경을 쓰는 동안 ‘몸’에 무관심했다. 저 여자가 나를 어떻게 여길지를 생각하고,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 매장에서 내게 맞는 사이즈가 없다고 할 때 느끼는 불쾌감을 생각하는 것의 단 절반만큼이라도 살 대신 몸에 집중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몸에 좋지 않은 음식을 먹고, 불규칙하게 생활하고, 적당하게 몸을 움직이는 일에도 무관심했다. 즉 ‘뚱뚱함’에 대한 저항이 역설적으로 ‘몸’의 존재를 은폐시켰다. 날씬해질 수 있다면 보잘것없는 몸이야 아무래도 상관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내가 몸에 관한 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살에 관한 일기가 아닌, 다이어트에 관한 일기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나에 대한 일기가 아닌 나의 가장 내밀한 부분인 몸, 나의 물질적 기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일기를 쓰는 것이다. 물론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기라도 써서 글로 남겨두지 않는다면 보잘것없는 몸을 위해 보내는 내 시간과 노력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뚱보 자아의 발견
다니엘 페나크가 쓴 《몸의 일기》는 철저히 오직 자신의 물질적 기반인 몸에만 집중해서 쓴 글이다. 사뮈엘 베케트는 매일매일의 일기가 우리 기억을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사실이 아니라 허구라고 하지만, 베케트가 염두에 둔 일기는 어디까지나 ‘내면 일기’, 그러니까 우리의 정신 변화를 기록하는 글만을 일기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다니엘 페나크는 정신의 변화가 아니라 오직 몸의 변화만을 기록한 일기를 쓴다. 그래서 우리가 ‘내면 일기’를 쓸 때 자주 하는 기억에 대한 미화나 자신의 판단에 대한 합리화가 몸의 일기에는 들어설 여지가 없다. 페나크는 열 살 무렵부터 죽음에 이를 때까지 전 생애에 걸쳐 이명, 건강염려증, 동성애, 구토, 티눈, 성 불능, 자위, 똥 모양, 치매 등 몸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사건을 주제로 자신의 아내도 모르게 일기를 썼다. ‘존재의 장치로서 몸’에 관해 쓴 일기에는 베케트의 지적과는 달리 기억의 재구성이 없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몸에 대한 일기는 내면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하게 해준다. 매일 먹는 것에 대해 쓰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관찰하면서 내가 나 자신에게조차 숨기고 싶은 손톱을 물어 뜯는 습관, 팔뚝에 난 지방 뾰루지, 몸에 일어난 각질과 체취까지 정면으로 마주하다 보면 그동안 내가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리고 나는 몸에 관한 일기를 쓰면서 무엇보다 놀림받고, 모욕당하고,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이지 않는 ‘뚱보 자아’가 내 마음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도 발견하게 되었다. 다니엘 페나크는 87세 19일, 그의 마지막 일기에 이렇게 썼다. “그래, 나의 도도, 이젠 가야 할 때가 된 것 같구나. 겁먹지 마, 너도 데려가줄게.” 다니엘 페나크의 일기는 결국 죽음의 두려움에서도 벗어나게 만들었다. 나 역시 당뇨를 비롯한 갖가지 병에 대한 두려움을 이기려 일기를 써왔지만, 나도 결국 두려움에서 벗어나 내 아이에게 겁낼 필요가 없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내 두려움인 뚱보 자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래서 일기를 쓴 후 살은 좀 빠졌냐고? 살은 모르겠다. 그러나 혈당은 떨어지고 손톱 물어 뜯는 습관을 고친 것은 다행이라 해야겠다. 2017년 2월 1일에 쓴 일기다. 지금 나는 98kg이다.

아침엔 미역국을 먹었고 여주 가루를 먹었다. 여주 가루는 목으로 넘어가면 말도 못 하게 쓰기 때문에 눈물이 다 날 지경이다. 점심때 주변 산을 1시간 걸었고 아메리카노를 한 잔 마셨다. 오후에는 아이와 함께 오리고기를 먹었는데, 이제 오리고기도 많이 먹지 못한다는 생각에 먹으면서도 뭔가 참울한 기분이 들었다. ‘오리고기와 혈당’이라는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니 오리고기의 기름을 떼어내고 먹으면 괜찮다는 내용이 나왔는데, 제길 오리고기에서 기름을 빼면 그걸 오리고기라 할 수 있나? 그런 식이라면 만두에서 만두소를 빼면 만두가 되나? 냉면에서 면을 빼고, 잡채에서 당면을 빼고, 비빔밥에서 밥을 빼면 그게 냉면이고 잡채고 비빔밥인가? 저녁 식사를 마치고 아이와 목욕탕에 다녀왔다. 근간에 한 운동 중 가장 격렬한 운동이었다. 무엇보다 몸에서 때를 벗겨내는 것은 손톱을 물어 뜯을 때 못지않은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았다. 목욕을 마치고 아이가 편의점에 가자고 졸라댔다. 아빠는 먹을 것이 없으니 네 것만 사라고 하니, 아이는 같이 먹자며 이렇게 말했다.“아빠, 얼굴 좀 작아졌어. 턱 쪽에 붙어 있던 살이 좀 나갔어.” 다음 주에는 용기를 내 체중을 달아보리라.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무거운 용기로 말이다.

03-02

권영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인 ‘철학본색’을 운영하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숙원하던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아내를 대신해 아들 선재를 키워낸 값진 경험을 육아일기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어 <철학자 아빠의 인문육아>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6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선율이 덕분에 다시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아이 둘이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