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Different Way to Record Our Lives

우리를 기록하는 다른 방법

기록하는 방식은 대개 이렇다. 누군가는 펜을 들고 노트에 적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카메라나 휴대폰 셔터를 누르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 조금 다른 방식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한 아버지가 있다. 23년을 기자로 살아온 김병기의 이야기다. 그는 방학 때마다 전국 각지로 가족 신문 만들기 여행을 떠났다. 아이들의 삐뚤빼뚤한 글과 엉성한 그림으로 채운 열두 편의 가족 신문은 천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가보가 되었다. 당시 아이의 말과 생각, 가족의 추억이 담긴 지면에는 한 가족의 성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가족 구성원 모두가 주체가 되는 기록이다. 《글쓰기 가족 여행》의 저자 김병기를 만나 가족 신문을 통해 그가 배우고 느낀 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13-04-02

2006~2012년, 열두 차례 가족 여행 기록을 모아 가족 신문을 만들었어요. 계기가 궁금합니다.
사실 저는 밤낮없이 일만 하는 워커홀릭 아빠였어요. 기자라는 직업이 업무 특성상 주말도 없이 일할 때가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아이들과 조금씩 서먹해지더군요. 한번은 둘째 딸이 저를 옆집 아저씨 대하듯 쳐다보는 게 느껴졌어요. ‘아, 계속 이렇게 살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내가 아이들 체험 학습차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해서 문득 가족 신문을 만드는 건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그동안 글을 써온 사람이라 자신도 있었고, 아빠로서 위상도 세울 좋은 기회라 생각했죠. 더불어 아이들과 추억도 만들고 체험 학습도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일석삼사조였던 거예요.

혹시 가족 신문 만들기 여행 콘셉트나 규칙 같은 게 있었나요?
막무가내 여행이었어요.(웃음) 대부분 여행을 떠날 때 부모가 사전에 계획을 짜서 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솔직히 전 계획 짜는 게 귀찮기도 했고, 아내도 딱히 신경 쓰지 않아서 아이들한테 가고 싶은 데 아무 데나 정해서 가자고 했지요. 하나의 큰 원칙은 A4 용지 20~30장 준비하는 것과 하루에 한 꼭지 이상 기사를 쓰는 거였어요. 신문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또 하나는 가급적 한 여행지에 오래 머물자는 거예요. 한 지역을 꼼꼼히 두루두루 돌아보겠다는 거죠. 왜냐하면 운전할 수 있는 사람이 아내밖에 없는데, 매일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 운전하는 사람은 피곤해서 힘들고, 애들은 계속 잠만 자게 되거든요. 시간이 너무 아까운 거예요. 이걸 최소화하기 위해 꼭 박물관에 들렀어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파악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막무가내 콘셉트라고 하기엔 결과물이 짜임새가 있네요.
현장에서 막무가내로 취재한 것을 모아놓고 나중에 콘셉트를 정하는 거예요. (웃음) 사전에 꽉 짠 기획이 있는 게 아니었고요. 가족 신문 9호 여행지는 태백이었는데, 처음엔 태백석탄박물관을 중심으로 여행 계획을 짰어요. 사실 애들이 눈썰매장에 가고 싶어서 정한 곳이긴 했지만요. 그런데 가족 신문 최종 제목은 〈태백산 강을 찾아서〉예요. 낙동강과 한강의 발원지가 태백에 있다는 것을 지나가다 우연히 안 거죠. 막상 가보니 더 인상 깊은 게 있었던 셈인 거죠. 돌발 변수를 즐기는 게 우리 여행의 콘셉트에 맞은 거예요.

기자 입장에서 아이들이 쓴 기사를 보면, 교정하고 싶은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실제로 많이 고쳤나요?
아니요, 아이들이 쓰고 싶은 것을 그대로 쓰도록 내버려뒀어요. 물론 글을 보면 엉성하죠. 그런데 저는 우리의 민낯,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기록’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글쓰기는 퇴고가 중요한데, 우리 가족 신문은 퇴고 작업이 하나도 없는 날것이에요. 그 순간을 일필휘지로 쓴 기록인 거죠. 물론 지금은 이렇게 말하지만 사실 그때 저도 귀찮았어요.(웃음) 내 글 하나 쓰기도 바빴으니까요.

아이들 입장에서 여행 가서 기사 쓰는 게 귀찮고 힘들었을 거 같은데....
처음에는 저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요. ‘여행 가면 안 그래도 피곤한데 애들이 과연 기사를 쓸까?’ 하고 말이죠. 그런데 가서 보니 오히려 애들이 적극적이었어요. 기사 안 쓰고 자려는 엄마와 아빠를 아이들이 다그치는 거예요.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가족 신문은 일이 아니라 놀이였거든요. 그것도 엄마 아빠랑 함께 하는 놀이. 놀이 규칙도 아주 간단했고요. 하루에 한 꼭지 기사 쓰는 것 말고는 없어요. 기사 분량과 형식에 대해 누구도 가르쳐주지 않았고요. 또 하나는 온 가족이 자기들의 방학 숙제를 도와주었기 때문에 되레 고마운 일이었던 거예요. 개학을 하고 방학 숙제를 학교에 가져가면 ‘참 잘했어요’ 도장을 받아왔어요. 친구들도 다들 부러워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가족 신문 자체가 아이들한테 자부심이었던 거 같아요.

가족 신문 1호부터 12호을 살펴보면 어휘력은 물론 기사 구성 능력까지 아이들의 글 쓰는 실력이 일취월장하는 걸 알 수 있어요. 초등학생이 쓴 글이라고 보기엔 놀라울 정도예요.
첫째 아이는 원래부터 글 솜씨가 조금 있었고, 둘째 아이는 네 살 때부터 시작한 일이라 개발새발일 수밖에 없었어요. 하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저는 아이들 글을 고친 적이 없어요. 그냥 아이들이 즉석에서 쓴 그대로 놔뒀어요. 자유롭게 내버려두면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죠. 책을 마무리하면서 아이들을 짧게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첫째 아이에게 가족 신문의 가장 큰 장점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글쓰기가 두렵지 않다고 하더군요. 마음대로 쓰게 놔두니까 그런 두려움이 없어진 거죠.

구체적으로 아이들을 지도한 글쓰기 교육 방식이 궁금합니다.
글쓰기가 힘들다고 느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예요. 첫째는 취재 내용이 부실한 경우인데, 그건 자세히 꼼꼼하게 보지 않았다는 뜻이죠. 멀리서 보고 아름답다고 말하면 안 돼요. 가까이 다가가서 현미경을 들이대고 봐야 해요. 그런데 우리 아이들 같은 경우 현장에 가서 직접 보니까 호기심이 발동하고, 호기심이 생기니 자세히 보게 된 거죠. 또 하나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머릿속이 복잡한 경우에요. 쓸 건 많고 취재한 내용은 많은데 어떻게 배열할지 모르는 거예요. 가끔 아이들이 어떻게 글을 써야 하는지 물어볼 때가 있었어요. 그럴 때 전 거꾸로 아이들에게 물었지요. “뭘 쓰려고 하는데? 그래서 그게 어떻게 생겼는데, 그때 기분이 어땠는데?”라고요. 이렇게 서로 대화한 뒤 아빠한테 이야기한 내용을 적으라고 했어요. 머릿속을 정리해주는 거죠.

13-04-01

모두가 글을 잘 쓰고 싶어 해요. 성인 대상으로 글쓰기 세미나가 유행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글을 잘 쓴다는 것’의 의미가 과연 뭘까요?
글은 소통의 수단이에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우선 쉬워야 해요. 상대방 눈높이에서 이야기하고, 과장하지 않아야 해요. 솔직하게 군더더기 없이 이야기하는 게 제일 중요한 거죠. 가끔 후배들에게 이런 말을 해요. 글 쓰는 기술자가 되지 말라고. 기술은 쉬운 거예요. 처음엔 어색하지만 자꾸 하다 보면 배울 수 있는 거죠. 저는 오히려 생각의 근육을 키우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봐요. 생각의 깊이에 따라 글의 깊이가 달라지기 때문이지요. 아무 생각 없이 무작정 던진 말에 상대방이 호응하진 않아요. 심사숙고해서 던지는 글, 생각의 근육으로 쓰는 글이 호응을 이끌어내는 거죠.

가족 신문에는 단순히 아이들의 글쓰기 성장 과정만 담겨 있진 않아요. 더 큰 의미에서 아이들의 지적인 성장도 묻어나는데, 아빠로서 느끼는 감회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가족 신문은 우리 가족의 나이테예요. 글을 보면 생각의 크기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알 수 있어요. 작은아이의 경우 처음에 글씨는 물론 그림도 제대로 그리지 못했는데, 2~3년 사이에 확 달라진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사진 속에 아이들 키가 커가는 만큼 생각의 크기도 크고 있었던 거예요. 아이들이 성장하는 걸 보고 있으면 아빠로서 뿌듯한 건 당연하죠.

아이들도 나중에 결혼해서 가족 신문을 만들겠다고 했어요.
아이들도 가족 신문 만들기가 본인들한테 소중한 경험이란 걸 알고 있어요. 요즘 애들은 중학생만 되면 부모와 여행 가는 걸 꺼려요. 그런데 저희 애들은 지금 큰딸이 대학교 1학년, 작은애가 고등학교 2학년인데도 시간만 되면 가족 여행을 가자고 해요. 최근엔 해외여행으로.(웃음) 과거 소중한 기억을 계속해서 축적하고픈 바람이겠죠.

아이들의 글을 보면서 기자로서 깨달음의 대목이 인상적이에요.
아이들에게 “기사는 이렇게 쓰는 거야”라고 가르친 적은 없어요. 애들은 그냥 일기 쓰듯 쓰니까 1인칭 시점으로 글을 쓰더라고요. 바람과 나무, 땅과 하늘조차 의인화했어요. 자기 나름대로 색다른 시선에서 묘사를 하는 거죠. 그걸 보며 규격과 형식에 맞춰 쓰던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벗어나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오마이뉴스에 1인칭으로 기사를 쓰는 경우도 늘었고요. 3인칭으로 글을 쓰면 이른바 객관으로 포장해서 그 뒤에 숨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1인칭으로 쓰면 내 글이 평가받을 수밖에 없어요. 대부분 기자를 ‘심판자’라고들 하는데, 저는 객관적인 기사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계가 있으니까요. 저는 제가 본 것을 최대한 검증해서 보여주고 독자에게 평가받자고 생각해요. 그래서 사실 얼마 전에도 이명박 씨(전 대통령)를 전주국제영화제 스크린에 초대해 1인칭 시점으로 편지를 쓰듯 말을 건넸어요.

여행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어요. 어느 순간부터는 민박 대신 캠핑을 하게됐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자연과 직접 맞닿을 수 있는 게 캠핑이라고 생각했어요. 모처럼 여행 가서 편한 곳에서 자는 것보다 조금 불편하더라도 자연과 함께하는 것이 훨씬 좋았거든요. 아이들과 텐트에서 자고 싶기도 했고요. 또 캠핑하는 게 저렴했어요. 보통 아이들 방학 때 맞춰 여행을 가는데, 마침 그때가 성수기예요. 하룻밤에 10만 원 넘는 곳이 대부분이죠. 그 돈으로 맛있는 거 먹고, 좀 더 괜찮은 곳 구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혹시 즉흥적으로 캠핑 장소를 정한 적도 있을까요? 예를 들어 뷰가 너무 맘에 들어 이곳에 머물러야겠다거나....

어쩔 수 없이 결정하는 경우가 많았아요.(웃음) 그... 통영 공설해수욕장이었나, 밤 12시까지 숙박 시설을 찾아다녔는데, 20만 원이 넘는 거예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그냥 주차장 시멘트 바닥에서 자려고 했는데, 이건 또 아니다 싶어 해안가 근처에서 캠핑을 하기도 했어요. 비슷한 경우로 타이어가 갑자기 펑크 나서 텅 빈 광장에서 잔 적도 있고요.

여행과 취재의 공통점을 들자면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혹시 가장 기억에 남는 만남이나 에피소드가 있나요?
개인적으로 최고의 만남은 새로운 우리와의 만남이에요. 아버지 팔순 때 온 가족이 함께 제주도로 여행을 갔어요. 더위를 피해 계곡에서 쉬고 있는데, 갑자기 큰딸이 할머니 발을 씻겨드리겠다고 하더라고요. 어머니가 아이에게 발을 내준 채 서로 웃고 있는 모습을 보는데, 순간 울컥했어요. 또 한번은 아내가 고된 운전 때문에 자동차 안에서 쉬고 있는데, 작은아이가 빈 비닐봉지에 물을 담아 엄마한테 갖다주는 거예요. 철부지인 줄 알았는데 대견하더라고요.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 제주도 여행 사진을 액자에 끼워두셨어요. 그러면서 “그때가 가장 좋았다”고 말씀하시곤 했죠. 자식 된 사람으로서 아버지에게 그런 추억 하나 제대로 만들어드리지 못한 게 죄송하기도 했어요. 여행을 통해 새로운 아이들을, 부모님을, 그리고 저를 만난 거죠.

‘아버지의 주말’이라는 이번 호를 기획하면서 가족과의 시간을 기록한다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봤어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과의 추억을 사진으로 혹은 영상으로 기록해요. 그런데 가족 신문은 아이들도 직접 기록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제가 책을 마무리하면서 큰아이에게 가족신문은 무엇이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우리 가족의 총천연색 앨범”이라고 하더라고요. 요즘 사진은 많이 찍지만 앨범으로 만들진 않잖아요. 과거 사진이 귀하던 시절에는 앨범으로 만들어 가끔 들춰보곤 했는데, 요즘은 그런 문화가 없죠. 그런데 저희 가족 신문에는 당시 사진과 글 그리고 함께 여행하면서 느낀 점이 자세히 나와 있어요. 앨범보다 가족에게 더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존재인 것이지요.

저서 《글쓰기 가족 여행》에서 가족 신문을 ‘가보’라고 표현했어요. 아빠로서 52주의 주말은 어떤 시간이었나요?
사실 가족 신문을 만들기로 했을 때 아이들한테 선물을 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곧바로 깨달았어요. 오만이란 걸. 제가 오히려 아이들한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아이와 소통하는 법, 담백하게 글 쓰는 법을 말이에요. 주말은 아빠 역할을 제대로 한 시간이라기보다 아이들과 함께 즐긴 시간이에요. 가족과의 관계와 소통의 성장판을 발견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죠. 앞서 말한 것처럼 가족 신문은 우리의 총천연색 기록이에요. 이 신문을 천만금 주고 살 수 있겠어요? 세상에 하나뿐인 신문인데, 그럴 수 없잖아요.

가족 신문 만들기 여행을 계획 중인 분에게 건네고 싶은 구체적인 조언이 있나요?
책을 사서 보시면 제일 좋을 거 같은데요.(웃음) 일단 주말이나 방학 때 가족 여행을 떠나세요. 떠나야 뭔가 시작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아이들 가방에 A4 용지를 20~30장 챙기기만 하면 여행의 질이 달라질 거예요. 아이들이 알아서 할 거고, 아이들이 아빠와 엄마를 이끌 겁니다. 그때 아이들 뜻에 몸을 맡기고, 귀찮더라도 아이들과 잠깐 놀길 바라요. 여행지에서 매일 딱 1시간만 투자하면 돼요.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줄 수 있고, 또 부모인 여러분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