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Father’s Role to an Adolescent Child

사춘기 자녀가 아빠에게 기대하는 것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부모의 자격〉 작가 최효찬은 아들과 함께 길고 긴 사춘기 터널을 통과했다. 그 과정에서 사춘기 자녀에게는 엄마 역할보다 아빠 역할의 비중이 더 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02-01

보호하고 싶은 엄마, 생존을 가르치려는 아빠
전설에 따르면 인도에서는 아이가 태어나면 엄마는 아이를 기쁜 마음으로 안고 이렇게 이야기한다. “엄마가 편안하게 해줄게.” 반면 아빠는 아이를 산 정상으로 데려가 진지하게 말한다. “보아라, 이것이 바로 세상이다. 너에게 세상을 보여주겠다.” 이 전설은 마이클 다이아몬드가 쓴 책 〈사랑한다 아들아〉에 소개된 내용이다. 물론 자녀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끌기 위해 노력하는 열성적인 유형의 엄마도 많지만, 본능 면에서 엄마 역할과 아빠 역할은 조금 다르다고 교육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엄마는 기본적으로 아이를 편안하게 해주려는 모성 본능을 지니고 있다. 아이를 10개월 동안 잉태했기에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이 모성 본능은 자녀 양육에도 반영된다. 반면 아빠는 잉태하지 않아 본능적으로 아이를 보호하려는 성향이 덜하다. 대신 아빠는 아이가 세상의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도록 ‘생존의 기술’을 가르쳐주려고 한다. 자신이 실패한 경험, 자신이 세상을 살면서 불리하게 작용한 약점과 단점을 자신의 아이만큼은 경험하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가 자신보다 사회적으로 더 유능하고 대접받는 인재로 성장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악기를 다루지 못하고 수영을 잘하지 못하는 아빠는 자녀가 악기 연주나 수영을 잘하길 원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가장 필요한 취미 중 하나가 악기 하나를 근사하게 연주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다 수많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 피아노를 근사하게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이 중학교에 진학할 때 피아노 학원만큼은 줄곧 보내고 싶었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내가 살아가면서 제일 부러웠던 게 있다면 피아노 같은 악기를 잘 연주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아들만큼은 피아노를 배우면서 중2병 혹은 사춘기의 터널을 건너기를 바랐다. 하지만 중학생을 원생으로 받아주는 학원은 거의 없었다. 수소문한 끝에 한 곳에 다닐 수 있었지만 1년도 안 돼 그만두어야 했다. 학원 영업에 지장을 준다는 것이었다. 다들 초등학생인데 아들만 중학생이어서 함께 가르칠 수 없다는 이유였다. 그때 아내는 아들이 그런 불편한 환경에서 피아노 학원에 굳이 다닐 필요가 있느냐며 반문했다. 아내와 내가 아이에게 제공해주고 싶은 사랑의 종류가 달랐던 것이다.

엄마는 한발 뒤로, 아빠는 한발 앞으로
물론 우리 사회에서 엄마가 자녀에게 학교 공부며 학원 공부를 너무 닦달해서 아이에게 엄청난 스트레스를 주는 경우도 많다. 세상으로 안내하는 길잡이 역할을 해야 하는 아빠가 뒷짐 지고 모르는 척하는 탓에 엄마가 담당하는 가정도 무척 많다. 따라서 여전히 의문이 생길 수 있다. 아이를 세상으로 이끄는 길잡이 역할에 아빠가 더 적합하다고 말하는 것에 대해 말이다. 그 해답은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에서 찾을 수 있다.
“어머니는 우리를 탄생시킨 고향이고, 어머니는 자연이고 대지이고 대양이다.” 아이는 출생 후 자궁 밖에서 살고 있지만 심리적으로 어머니에게 완전히 의존한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독립의 정도가 높아진다. 그런데 사춘기에 접어들면, 즉 어머니로부터 심리적 이유기에 해당하는 초등학교 6학년 정도가 되면 아이는 어머니 품에서 벗어나려 한다. 이 시기에는 엄마 대신 아버지와의 관계가 점점 더 중요하게 된다. 프롬은 “아버지는 인공적 사물, 법률과 질서, 훈련, 여행과 모험 등의 세계를 대표하고 있다. 아버지는 어린애를 가르치는 사람이고, 어린애에게 세계로 들어서는 길을 지시해주는 사람이다”라고 강조한다.
자신과 아이를 분리해 생각하지 못하는 부모의 왜곡된 사랑, 본능적으로 아이와 자신을 한 몸으로 여기는 엄마의 집착이 부정적 결과를 초래하는 사례는 많다. 때로는 사랑이라는 구실로, 때로는 의무라는 구실로 아이를 자기 자신 속에 묶어두려는 부모, 옆에 두고 자신의 분신처럼 자신이 못다 한 욕망을 자녀를 통해 이루려는 부모의 이야기는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다. 자신의 뜻대로 아이를 주무르기 위해 잔소리는 늘어가고 그럴수록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참다못한 자녀는 부모에게 반항하고 심지어 가출하기도 한다. 부모에게 늘 모범생으로 보이던 자녀는 어느 순간 부모의 속을 새까맣게 태우는 존재로 변하기도 한다.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면 엄마 역할보다 아빠 역할의 비중이 더 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로 아이를 엄마의 품에서 데리고 나와 세상 속으로 내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사춘기에는 본능에 기초한 엄마의 역할보다 세상으로 인도하는 아버지의 역할이 더 중요한 것이다. 이때 엄마는 남편과 상의해 아이를 더 넓은 세상으로 이끄는 아버지로서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촉매 역할을 해야 한다. 엄마는 잔소리보다 아이를 신뢰하고 응원해야 한다.

떠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영화 〈정복자 펠레〉는 노동자인 늙은 아버지가 사춘기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는 장면으로 끝난다. 아들의 이별 장면이 하얀 눈보라가 치는 겨울 바닷가를 배경으로 펼쳐지면서 막을 내린다. 늙은 아버지는 아들을 멀리 떠나보내며 손을 흔드는데.... 애잔한 배경음악이 흐르는 마지막 장면을 보면 절로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눈시울을 붉히게 된다. 이 영화에서 펠레는 ‘정복자 군주’가 아니라 미래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꿈의 정복자’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아들이 초등 6학년 여름방학 때부터 고2 겨울방학 때까지 12회에 걸친 도보 여행을 방학 때마다 다녀왔다. 그러는 사이 아이는 사춘기의 터널을 무사히 지났다. 도보 여행을 하면서 나눈 아들과의 길 위에서의 대화는 그야말로 살아 있는 인성 교육이었다고 생각한다.
사춘기 자녀를 둔 부모라면 엄마와 아빠의 역할 분담만 잘한다면 무사히 ‘중2병’ 혹은 ‘앙팡 테리블 enfant terrible’ 시기를 건너 더 넓은 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를 무사히 건널 수 있지 않을까. 자녀가 사춘기에 이르면 엄마는 아이 곁에서 한발 뒤에 머물고, 아빠는 한발 앞으로 나아가며 세상 속으로 이끄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무엇보다 아이가 사춘기를 무사히 지나갈 때 엄마 아빠도 갱년기를 무사히 지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부모와 자녀 간에 얼굴 화끈거리는 시기는 길어지고 불화는 오래 지속될 것이다.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의 모습은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이라고 했다. 아마도 그 시작은 엄마 아빠의 역할 분담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02-02

최효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할 땐 외교관이 꿈이었다. 경향신문사에 입사해 돈을 벌어 유학을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기자로 살다 보니 17년의 세월이 훌쩍 흘렀다. 신문사를 그만두고, 초등학교 6학년이던 아들과 방학 때마다 도보 여행을 했다. 그 경험담을 〈최효찬의 아들을 위한 성장여행〉으로 출간했고, 〈5백년 명문가의 자녀교육〉, 〈세계 명문가의 자녀교육〉, 〈부모의 자격〉 등 부모 역할에 대한 고민을 담은 책을 꾸준히 발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