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ome for My Heart at 40

마음을 다잡는 불혹의 집 짓기

어떤 상황에서든 역경을 만났을 때 열심히,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반드시 희망이 있다고 배웠다. 하지만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거대한 벽을 만났을 때 우리는 과연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생계와 일상의 쳇바퀴를 스스로 멈출 수 없었던 한 가장에게 요즘 세상은 움직일 수 없는 벽으로 다가왔다.
사회 구성원의 일원으로, 남편으로, 아버지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왔다 자부했지만 돌파구는 보이지 않았다. 불혹의 나이에 엄습한 불안의 시간, 그 치열함의 끝에 아내와 아이가 보였다. 퇴사를 했고, 가족 여행을 떠났다. 그리고 한적한 양평 시골 마을에 집을 지었다. 거기서 그는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던 나만의 파랑새를 발견했다.
정병수는 두려움에 맞불 작전처럼 시작한 집 짓기가 건강한 사색 시간을 선물해주었다고 한다. 그리고 튼튼하고 견고한 마음의 집을 지은 것이 집보다 더 큰 선물이었다고 고백한다. 박공지붕을 얹은 네모반듯한 23평 ‘결이고운가’는 세 가족을 넉넉히 품어주는 작지만 큰 깨달음의 집이다. 그는 오늘도 여행을 떠나는 행복한 마음으로 50km의 퇴근길을 달린다. 그리고 이 안락한 행복의 보금자리를 천천히 매만져가며 가족의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려 한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다 퇴사를 선택하고 집을 지은 진솔한 경험담이 블로그를 통해 화제가 되었어요.
사실 집을 지어야겠다는 인생의 계획은 없었습니다. 단지 현재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고, 아니 불행하다고 느낀 것 같아요. 지금 잘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아내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어요. 저는 셋톱박스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장기 출장이 반복되었고 일의 특성상 작업 결과물에 대한 인증, 그 승인 여부에 따라오는 압박감이 무척 심했죠. 실패했을 때 돌아오는 회사의 금전적 손해와 질책은 물론이고, 무엇보다 타인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었어요.
나라는 사람의 가치가 업무적인 잣대로 결정되고, 유리온실 속에서 만천하에 공개되는 듯한 느낌을 감당할 수 없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어요. 아내와 아들이 말을 걸어도 들을 여력이 없었습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신이 미약한 상태였죠. 현실에 매몰되어 어떠한 개선 방법도 찾을 수 없었어요. 일단 이 상황을 멈춰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고, 심사숙고 후에 결정한 것이 퇴사였습니다.

가장으로서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 같아요.
지금도 누구보다 아내에게 가장 감사합니다. 아내의 동의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이렇다 할 계획도 없었으니까요. 당장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절실했어요. 우선은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가족의 시간을 채우자는 의미에서 퇴사 5일 후 무작정 여행을 떠났습니다. 최대한 관광객이 없는 곳을 찾았어요. 그래서 네덜란드 티엘과 스위스 빌트하우스라는 한적한 마을에 에어비앤비로 숙소를 잡았죠. 24시간 부대끼며 69일을 머물렀어요. 너무 좋았어요! 광활한 자연 속에 자리한 아름다운 마을에서의 생활은 매 순간이 감동이었습니다. 그 감정들을 기억하고 싶어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기 시작했고요.

퇴사를 하고, 가족 여행을 떠나고, 그 이후 집을 지은 셈이네요.
열심히 돈을 모아 재테크를 하고 경제적 자유를 얻은 후 마음껏 누리겠다, 이게 사실 말처럼 쉽진 않잖아요. 물질이 삶의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되겠구나, 수입이 한정적이라면 돈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바꿔보자,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내려놓자는생각을했어요.상황이나여건이안돼서못 한다는 얘기들을 많이 하잖아요. 실제로 우리의 여행 자금은 퇴직금이었고, 수입도 없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최악의 상황이었을 거예요. 하지만 저는 그러한 상황에서도 집을 지어야겠다는 무모한 생각까지 들더라고요.

03-02

집을 구입하는 것과 땅을 사서 짓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데, 그 과정은 어땠는지 궁금해요.
행복의 중요한 요건 중 하나가 ‘가족이 사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 우리만의 집 짓기를 시작했어요. 막연히 집을 생각할 때 아파트를 떠올리진 않잖아요. 우리 모두가 아주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품어온 집, 집의 원형에 가장 가까운 그런 집은 마당이 있는 주택일 거예요. 우선 인터넷으로 ‘전원주택’을 검색했고 필지를 보러 간 첫날, 마치 운명처럼 양평 전원주택 단지의 자그마한 필지를 분양받게 되었죠. 살던 아파트를 바로 처분하고 승용차도 팔고, 대출도 받았어요.

집을 짓고 10년은 늙는다고 할 만큼 힘든 여정이라고 하는데, 실제 집을 지으며 어려움은 없었나요?
저는 오히려 10년 젊어진 것 같아요. 집 짓는 모든 과정이 정말 행복했으니까요. 집 짓기의 괴로움이라면 계약을 했는데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거나 사람 사이의 문제점이 대부분이에요. 다행히 저희는 좋은 시공사를 만나 큰 어려움 없이 공사를 마칠 수 있었어요. 보통은 현장 소장이 건축주와 통화하면서 의견을 반영하는데, 직장이 없었기에 착공하기 3개월 전 방 한 칸짜리 월세를 얻어 살며 집 짓는 과정을 직접 감리할 수 있었지요.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건축가 없이 시공사의 도움으로 아내가 직접 도면을 제작했어요. 집 안의 가구며 집기도 직접 만들기로 했고요. 집을 짓는 과정에서 가장 힘든 점이라면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선택의 순간을 마주한다는 거예요. 그 순간마다 고민하고 결정할 것이 너무 많으니까요.

03-07

“수입이 한정적이라면 돈으로 상황을 바꾸려고 너무 애쓰지 말아야겠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살아가는 태도를 바꿔보자,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더내려놓자는 생각을 했어요.”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요소는 무엇인가요?
집 짓기 과정의 모든 선택은 비용과 연결돼요. 그중 가장 큰 비용이 드는 일은 집의 외관, 즉 입면을 만드는 거예요. 입면이 복잡할수록 집은 예뻐요. 흔히 머릿속으로 상상하는 그럴듯하고 멋진 집은 우리가 가진 돈으로 지을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외형보다는 집 안에서 보내는 시간에 초점을 맞추고 집을 짓기로 했지요. 단순한 형태의 입면을 그리는 대신 가장 편한 내부 동선에 신경 쓰고, 친환경 재료를 쓰기로 했어요. 네모난 상자 위에 삼각 지붕을 올린 박공 모양 집. 어린 시절 스케치북에 그리던 바로 그 집요. 23평의 단층 건물에 10평짜리 다락을 올려 작지만 알찬 목조 주택을 지었어요. 그 선택은 너무 만족스러워요.

집을 짓고 다시 직장으로 복귀했어요.
우리가 가진 전 재산의 턱밑, 아니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온 대출의 수위를 낮춰야만 했기에 떠나고 싶어 발버둥 친 옛 직장으로 복귀했어요. 하지만 정말 놀라울 정도로 많은 것이 달라졌어요. 바꿀 수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 제 태도가 스트레스로부터 저를 지켜주더라고요. 똑같은 상황임에도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결이고운가’에서 달라진 일상에 대해 들려주세요.
집 이름은 아들 결이의 이름을 따서 지었어요. “결이 곱다”는 말을 참 좋아하는데, 이 집을 긴 시간 동안 그렇게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마당은 아내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죠. 아내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날에도 기어이 나가 무언가를 만들고 심고 가꿔요. 이런 일상이 무척 행복하다고 해요. 아이가 하원 하는 4시가 되면 짱똘이(반려견)와 함께 마을 앞 유치원으로 마중을 나가요. 결이는 마치 나의 어린 시절처럼 논두렁과 골목을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뛰놀아요. 이웃에 사는 한 사진가가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모습을 사진에 담아준 적이 있는데, 너무 예뻐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요. 정말 행복하다,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출퇴근길이 쉽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사람들은 집을 지었다는 사실보다 양평에서 분당까지 50km가 넘는 출근 걱정을 먼저 해요. 분명히 쉽진 않지만 저는 매일 그 길이 여행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퇴근길 가로등도 없는 깜깜한 마을에 들어서면 아내가 밝혀놓은 노란 외벽 등이 저 멀리 보여요. 나를 기다리는 따스한 빛에 미소가 절로 지어져요. 그동안 출퇴근 거리가 짧을수록 삶의 질이 높아진다고 믿고 13년 동안 이사를 열 번이나 했어요. 지금 살면서 가장 먼 거리를 출퇴근하고 있는데,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어요.

당신에게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집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집을 짓고 나서야 알았어요. 집은 아버지의 관점에서 보면 가족과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고, 무언가를 시작하기 위해 집을 나서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잖아요. 우리의 하루가 시작되는 집이 이토록 행복한 공간이어서 너무 좋구나, 집이 모든 사람에게 그런 공간이면 좋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요.

Lessons for fathers

정병수·유지영 부부가 들려주는 실패 없는 집 짓기에 대한 현실적 조언

03-10

예산에 맞는 합리적인 집을 짓자
집 짓기의 시작은 예산을 정하는 일이다. 집의 크기나 모양, 건축자재 선정 등 집 짓기의 핵심이 되는 사항을 결정하는 것이 결국 예산이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구성원에 맞는 집 규모에 대해 곰곰이 고민해보고 거품이 없는 합리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

아내의 이야기를 들어라
집 짓기 과정은 수많은 선택과 고민의 연속이다. 집에 대한 두 사람의 완벽한 의견 일치를 기대하기 어렵다면 집에서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아내의 생각에 동의하는 게 좋다. 의견 차이로 집을 짓기도 전에 지쳐버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호텔을 선택하듯 시공사 후기를 살펴라
요즘에는 온라인 카페를 운영하는 시공사가 꽤 많은 편이다. 집 짓기를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의 질문, 완공 후 후기, 활발한 커뮤니티 활동까지 온라인 카페가 활성화되고 있는 시공사라면 신뢰도가 높은 곳일 가능성이 크다.

현장 소장에게 모든 것을 의지하지 마라
현장 소장이 건축주의 모든 말을 귀담아들을 수 없다. 중요한 부분이라면 요구한 재료를 정확한 위치에 제대로 시공했는지 직접 확인하자. 무심코 흘러가게 되면 추후 일정에 차질이 생겨 수정하기가 어려워진다. 일주일에 최소 두세 번은 현장에 들러 확인하도록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