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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채 / ‘식권대장’ 홍보 마케팅 팀장 / 37세

아빠도 육아, 가사에 참여해야 한다는 인식이 늘고는 있지만, 남자들끼리 있을 때 이런 경험을 여전히 해요. 제가 “나 집에 가서 아이 목욕시켜야 해”라고 하면 “야, 아이 목욕까지 니가 시키냐?”라고 물으면서 자기가 집에서 얼마나 권력을 잡고 있는지 보여주겠다는 듯 구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는 잡혀 살지 않는다는 거죠. 그렇다고 그 사람이 정말로 아이 목욕을 한 번도 안 하느냐, 그건 또 아니거든요. 말로 센 척하는 거예요. 초등학교 때 “야, 내가 싸움 더 잘해.” “야, 우리 형은 중학교 2학년이야” 하면서 말로 힘겨루기 했던 것처럼요. 초등학생 싸움이랑 똑같아요. (웃음)

저는 아버지랑 친하지 못하고 좀 데면데면해요. 어릴 때는 아버지 등산갈 때 따라나설 정도의 관계는 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멀어졌어요. 저에게 알려주고 싶은 게 있을 때 차분하게 대화하거나 훈육하신 게 아니고, 되게 혼을 내신 다음에 돈을 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입장에서는 혼을 낸 다음에 어떻게 말을 붙여야 할지 몰라서 돈 주며 “맛있는 거 사 먹어”하신 건데, 어린 마음에는 상처가 됐죠. 통화 마치고 혹여나 제가 먼저 전화를 끊으면 곧장 다시 전화해서 어른보다 먼저 전화 끊었다고 크게 혼내시기도 했고요. 그런 경험이 쌓여서 어느 순간 아버지가 어려워진 것 같아요.

두 아들을 키우면서 다짐했어요.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인내심을 발휘하겠다고. 아버지처럼 아이 앞에서 화가 튀어나오게 하지 않겠다고. 물론 힘들어요. 도대체 왜 우는지 알 수 없어서 화가 난 적도 있고, 밥상에서 밥을 뱉는 건 안 된다고 수없이 말했지만, 아이가 저를 놀리듯 굴어서 ‘이래서 사람들이 엉덩이 때리는 건가’ 생각한 적도 있고요. 그 일촉즉발의 순간에 심호흡 한 번 더 하고 화를 삭히는 게 어른인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광고대행사에서 일하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이유는 회사에 닮고 싶은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상사가 별로 없기 때문이었어요. 평일에는 내내 일하고 주말에나 겨우 집에 가고, 때로는 주말도 없이 일했으니까요. 열심히 일해서 그 분 위치에 가면 돈은 잘 벌겠지만, 가족하고는 멀어질 것 같았어요.
스타트업 특성이기도 한데, 대표님이 저보다 어려요. 대표님은 작년에 결혼하셨죠. 기자 만나 밥 먹고 이야기 나누는 게 일인 홍보 마케터이지만, 저는 가급적 모든 약속을 점심에 해결하거든요. “밖에서 술이라도 한잔 해야 하지 않나요?”라고 이야기하지 않고, ‘나도 언젠가 아이가 생기면 저런 상황에 처할 수 있다’고 생각해주더라고요. 그게 좋았어요.

우리 사회에 더 필요한 게 바로 그것 같아요.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생각.

임산부 근로 시간 단축, 육아휴직 확대 등 제도를 누리는 사람들을 질투할 게 아니고, 내 여동생, 내 누나, 내 아내도 언젠가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죠. 분명히 공무원들만 좋으라고 만드는 제도가 아니거든요. 일단 공무원 사회에 퍼지고 나면 나머지 사회로도 퍼질 거예요. 아빠 육아 휴직도 미약하게나마 늘고 있는데, 당장 내가 쓸 수 없더라도 언젠가 나 혹은 내 동생 혹은 내 아들이 누릴 수 있는 제도라고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그래야 일과 성취 중심의 경쟁적인 사회 분위기가 달라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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