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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주만 / 오토바이 수리점 운영 / 55세

오토바이 일은 37년 했어요. 나는 정년도 없고 기술이 있으니까 어딜 가서도 먹고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어요. 시골 가면 농기구 수리를 할 수 있고, 어촌 가면 통통배 엔진도 고칠 수 있지 않겠어요? 남들은 손에 기름 묻히는 일이라고 안 좋게 봐도 나는 이 직업 가진 걸 후회해 본 적이 없어요.

사람은 어딜 가나 만족하며 사는 게 중요해요. 만족감은 스스로 찾으려고 해야 해. 누가 대신 안 찾아줘.

손이 새까맣도록 기름 묻히고 고쳐서 시동이 안 걸리던 엔진이 딱 걸릴 때의 희열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 내가 담배도 태우고 일하면서 매연도 많이 마셔서 폐활량 늘리려고 산에 다니거든요. 그러다 우연히 산삼 캐는 걸 배워서 지금은 1년에 20뿌리는 캔단 말이죠. 산삼 발견할 때의 희열하고 똑같아. 내 손으로 고친 오토바이 시동이 딱 걸리는 걸 볼 때 기분이.

근데 와이프나 애들한테는 일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요. 아빠가 기름 일하는 걸 애들이 보면 기분이 안 좋지 않을까 싶어서 못 오게 해요. 애들은 자꾸 오고 싶다고 하고, 불쑥 찾아오기도 하는데 내가 빨리 가라고 하지. 수리점에 앉아 가만가만 손을 쓰면 나야 재미있지만, 솔직히 바깥 인식에 좋은 직업은 아니잖아요.

내가 자부하는 게 하나 더 있어요. 이 지구상에 나랑 딸 같은 부녀 사이는 없다고 봐요.

딸이 스물다섯 살인데, 지금도 내가 퇴근하면 속옷만 입었든 어쨌든 그냥 뛰어와서 아빠한테 안겨. 우리 집은 식구 누구든 저녁에 귀가하면 먼저 눈 마주친 사람이 끌어안고 뽀뽀하면서 환영해주거든. 집에서 나올 때도 그렇게 하고요. 얼마 전에는 새벽 2시에 딸한테 전화가 왔어요. 홍대에서 놀다가 차비가 떨어졌다고. 그럼 나는 얼른 태우러 가지요. 집에 오는 길에 아빠한테 술주정하면서 클럽에서 누구 만나 놀았는지 시시콜콜 다 이야기해요. 편하니까. 아들도 마찬가지야. 아들이든 딸이든 이성관까지 아빠한테 다 이야기해요.

우리 아버지가 나 아홉 살에 돌아가셨어요. 막낸데도 응석 못 부리고 컸죠. 그래서 일부러 노력했어요. 우리 애들한테는 무조건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매일 사랑한다고 말하려고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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