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Middle Aged Because I’m Sick?

아프니까 중년이다? 나의 신체 변화에 부쳐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10-01-01

보시다시피 이런 몸입니다
몸에 대한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나는 로베르토 볼라뇨 Roberto Bolano의 말을 떠올렸다. “그와 나의 관계는 그리스 선박왕과 그 아내의 관계, 다시 말해 아내를 사랑하는 유부남이지만 아내를 최대한 안 보려는 관계지요.” 말하자면 내 몸과 나의 관계가 그렇다. 나는 내 몸을 사랑한다. 그리고 나는 내 몸을 최대한 안 보고 싶다.
방금 나는 이름도 생소한 칠레 출신 소설가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시작했는데, 내가 특별히 잘난 척하길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게 내 직업이기 때문이다. 나는 9년 차 서평가. 책을 읽고 인용하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걸 직업이라고 할 수 있나? 원고료나 인세 수입보다 강연이나 라디오 출연 등의 부수입이 더 많은데?

“Grow up and get a real job!”

가끔 할리우드 영화나 미드를 보다가 이런 식의 대사가 나올 때면 괜히 뜨끔해진다. “철 좀 들어. 그리고 제대로 된 직업을 구해!” 파리에 가서 화가가 되겠다느니 무인도를 찾아 혼자만의 나라를 세우겠다느니 타임머신을 발명하겠다느니 하는 꿈을 좇아 허송세월하는 청춘 남녀 주인공에게 주변 사람들이 하는 잔소리다. 그런데 왜 내가 찔리는 건지 모르겠다. 서평가가 제대로 된 직업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내가 청춘이 아니라는 거다.
서평가라고 해서 서평만 쓰는 건 아니어서 내가 가장 최근에 쓴 책의 제목은 《아무튼, 택시》다. 이렇게 시작하는 책이다. “누군가 내게 택시를 좋아하냐고 물으면 나는 곤란해진다. 택시는 내게 다리나 마찬가지다. 좋아한다기보다는 없으면 곤란한 것이다. 그래도 굳이 따지자면 다리보다는 택시가 좋다. 다리는 내 것이지만 택시는 내 것이 아니니까.”
지금쯤 당신은 내 몸에 대한 그림을 어느 정도 그릴 수 있을 것이다(그리고 싶진 않겠지만). 글을 쓴답시고 책상 앞에 죽치고 앉아 있느라 배는 나왔겠고, 택시를 다리처럼 생각한다니 팔다리는 가늘 것이며, 원고 노동자들의 직업병인 거북목과 건초염과 팔목터널증후군은 기본이요, 불면증과 만성피로는 옵션일 것이다. 마감 시간에 쫓겨 밤을 밥 먹듯 새우고 밥은 제때 먹지 않으며 커피나 담배를 입에 달고 살 테니 피부는 푸석푸석하고, 때마다 위염이니 식도염이니 장염 같은 것이 도지기도 하겠지.
하지만 이런 식의 추측은 위험하다. 특정 직업군에 대한 편견을 바탕으로 한 것이기 때문이다. 자칫 차별과 배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그 추측이 틀렸다는 말은 아니지만....

예전 같지 않다
나라고 처음부터 이 모양이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 그 흔한 태권도 도장에 다닌 적은 없지만 병원 신세 한 번 안 지고 나름 건강하게 잘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때는 PC 통신을 한다고, 대학교 때는 술 마신다고, 군대에서는 2교대로 야간 근무를 돈다고, 서평가가 되어서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고 낮밤이 바뀐 생활을 20년 넘게 해왔지만 별문제 없었다는 말이다. 적어도 30대 중반까지는.
여름에 어떻게 딱 붙는 청바지를 입고 다니느냐고 말하는 복학생을 비웃으면서. 맵지도 않은 음식을 먹으면서 땀을 뻘뻘 흘리는 아저씨들을 신기하게 바라보면서. 겨우 한 층도 계단 대신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이해 못 하면서. 건강 때문에 담배도 끊고 술도 끊는 선배들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꾸준히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기 위해서 매주 마라톤을 하고 등산을 하며 건강관리를 한다는 선배들을 멀리해야겠다고 다짐하면서...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나는 여름이면 청바지에는 발가락도 집어넣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정수리의 땀이 기화하면서 서늘해지는 기분을 느끼며 밥 먹는 사람이 되었으며, 무조건 엘리베이터를 타는 사람이 되었다. 꼭 건강 때문은 아니지만 담배는 끊었고 술은 줄여야겠다고 생각하며, 술· 담배와는 별개로 마라톤을 하건 등산을 하건 뭐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되었다.
물론 마라톤도 등산도 하지는 않았다. 대신 《달리기와 존재하기》, 《럼두들 등반기》 같은 책을 읽기는 했다. 《불량헬스: S라인과 식스팩에 돌직구를 날리다》(어쩐지 제목이 끌려서), 《현대복싱교본》(어릴 때부터 로망이어서), 《스트레칭이라도 하셔야겠습니다》(정말 스트레칭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같은 책을 사기도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은 21세기잖아! 그런데 왜 읽기만 해도 피로가 풀리고 뱃살이 빠지고 이두박근이 튀어나오는 책은 아직 없는 거지?
책 속에 답이 없다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갑자기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한 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도통 알 수가 없다.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차고 자리에 앉을 때면 에구구 소리가 절로 나고 계단을 오르내릴 때면 묵직하게 흔들리는 뱃살이 느껴지며, 목이나 어깨나 허리가 항상 뻐근한 상태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거지? 지금까지 몸을 막 대한 대가를 치르는 건가? 이렇게 죽음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가는 건가? 조금씩 조금씩 더 나빠지면서?
그래서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법을 가르쳐주세요》라는 책을 읽기도 했는데, 이유 모를 만성통증에 시달리던 작가가 우연히 명상에 입문해 자신의 몸과 마음, 나아가 세계를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이 담겨 있다. 적당히 유머러스했고 조금은 감동적이기도 했다. 정말 명상이라도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스스로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부류의 인간이 아니다. 물론 나는 나의 내면을 사랑하지만 그 내면을 최대한 안 보고 싶다. 몸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벅차다.

더불어서 태연하게 살아가는 법
그래도 나는 거듭 책을 읽었다. 《나는 왜 늘 아픈가》나 《스트레스: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 같은 책부터 《어떻게 죽을 것인가》나 《구원 확률 높이기 프로젝트》 같은 책까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마구잡이로 읽었다.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았으니까. 그나마 내게 익숙한 것은 책을 읽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마치 시시포스라도 된 기분이었다. 언덕 꼭대기까지 밀어 올리면 굴러떨어지는 바위를 다시, 또다시 밀어 올리는.... 살다 보면, 특히 나이를 먹다 보면 쓸데없이 비장해지는 순간이 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그랬다. 지금은 아니다. 운동을 시작하지도 않았고, 컨디션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다. 우연한 계기에 한 권의 책을 마주쳤을 뿐이다(또!). 물론 책 속에는 답이 없다. 답은 책 바깥에 있었다. 책장을 정리하다 우연히 손에 든 앙드레 지드의 소설 《코리동》의 표지에는 이런 문구가 인쇄되어 있었다.

“중요한 것은 치료를 받는 것이 아니라, 병과 더불어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노화를 병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노화 역시 어떻게든 늦추거나 피하려고 애쓰기보다는 늙어가는 몸과 더불어 태연하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무엇보다 나와 내 몸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해야 할 것이다. ‘생애 전환기’란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모양이다.

10-01-02

금정연

마감에 허덕이는 프리랜스 서평가. 그전에는 인터넷 서점 알라딘에서 인문 분야 MD로 일했다. 서평가로 불리지만 서평 아닌 글을 더 많이 쓴다. 《아무튼, 택시》, 《서서비행》, 《난폭한 독서》, 《실패를 모르는 멋진 문장들》, 공저로 《일상기술연구소》, 《문학의 기쁨》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