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 Old Dog’s Time

나이 든 반려견의 시간

100세 시대가 현실로 다가온 우리 인생에 비해, 반려동물의 생애 주기는 너무 짧기만 하다. 사회 초년생이던 20대에 처음 만난 작고 어린 강아지는 어느새 열네 살이 되었고, 안정준은 이제 40대 가장이 되었다. 그는 사회인으로 성장해나가는 과정, 결혼과 아빠가 되는 순간까지 희로애락을 함께한 이 작은 생명의 여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안다. 노령견과 함께 살다 보면 불현듯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사실은 아주 한정적임을 인정해야 하는 순간이 있다.

결혼 11년 차 안정준·김승혜 부부는 작년 말, 첫아이 제이가 태어나며 조금 뒤늦게 아빠 엄마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얻었다. 연애 시절부터 안정준의 ‘여동생’이던 반려견 방울이와 함께한 시간은 이들의 결혼 생활보다 긴 14년. 방울이는 특별한 부연 설명이 필요 없는 가족의 일원이다. 제 새끼를 낳고 키워본 적이 없는데도 본능적으로 아기를 조심스럽게 대해야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듯하다. 아기 옆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보거나, 아이가 잠에서 깨면 가족에게 이를 알리려고 진땀을 빼며 ‘방울 고모’ 역할을 한다. 어머니와 부부, 제이까지 3대가 함께 사는 집이 완성되는 사이, 어느덧 반려견 방울이도 나이가 들어 여기저기 아픈 곳이 늘었다. 요즘 부부의 시간은 갓난아기 아들을 어르고 돌보는 데 맞춰져 있지만, 소중한 방울이의 얼마 남지 않은 노년을 위해 무엇을 함께 할 수 있을지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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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울이와는 어떻게 만났어요?
반려견을 맞이하고자 큰맘 먹고 충무로에 갔어요. 그때만해도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면 충무로 애견 숍에 가서 돈 주고 ‘구입’하는 게 자연스러운 때였어요. 생후 3개월이 채 되지않은 코커스패니얼종이었는데, 집에 데려온 후부터 시름시름 아프더라고요. 파보 장염에 걸린 거였죠. 어떻게든 살려보려고 병원에서 치료를 했지만, 얼마 못 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죠. 이 일을 겪은 뒤 인터넷 카페를 통해 가정 분양을 알아봤어요. 카페에 9개월 된 요크셔테리어 암컷이 올라와 있는데 6만 원인 거예요. 아름다운 얘긴 아니지만, 당시 같은 견종의 암컷에 비해 턱없이 낮은 가격이었어요. 왜일까 궁금하기도 했고, 9개월이면 적어도 아기 때 쉽게 걸리는 질병은 걸리지 않겠구나 싶어 견주와 만났죠. 방울이의 첫인상은 ‘왜 이렇게 말랐을까’였어요. 1.8kg의 작은 체구로 밥도 제대로 못 먹고 학대를 받았나 싶을 정도였죠. 이전에 다니던 동물병원에 가서 여러 검사를 진행했는데, 수의사가 진료실에 들어가더니 제 휴대폰으로 전화를 했더라고요. 이전 견주와 함께 있던 상황이라, 밖에 나가서 전화를 받으라고요. 아이 상태가 좋지 않고, 너무 못생겼으니 사지 말라는 말을 하더군요. 이전 강아지를 보내면서 제가 힘들어한 모습을 본 수의사라 기왕이면 건강하고 예쁜 반려견과 만나길 바라는 순수한 마음에서 한 말이었죠.

방울이와의 첫 만남을 굉장히 짠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요.
보통 가정에서 키우던 강아지를 입양 보낼 경우 기존에 먹던 사료나 배변 패드, 집 같은 것도 함께 주잖아요. 그분들이 저한테 준 그 용품들의 상태가 엉망이었고, 어떤 사료를 급식했는지도 잘 모르더라고요. 수의사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왠지 얘는 이제부터 내가 키워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저희 집에 온 뒤로 금방 살이 붙어 3kg이 되더라고요. 주변에서 그때 데려온 그 아이 맞냐고 물어볼 정도였죠. 잘 못 먹은 기억이 있어서인지 여전히 식탐이 강하고 밥을 빨리 먹어요. 뼈다귀도 한입에 먹으려고 욕심내다 저 작은 이빨에 뼈가 껴 고생한 적도 있고요.

“결혼 후 10년 동안 아이가 없는 저희 부부에게
‘왜 애를 안 낳고 개를 키우느냐’, ‘강아지가 없어야
애가 더 빨리 생긴다’ 같은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우린 한 가족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할까 싶어 속상할 때도 많았어요.”

결혼 10년 동안 아이 없이 반려견을 키우면서 “강아지 예뻐하느라 애 못 낳는다” 같은 말도 많이 들은 것 같아요.
아이를 안 낳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나의 2세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했죠. 그렇다고 딱히 병원에 다닌다거나 특별한 ‘노력’을 하진 않았고요. 언젠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아이가 찾아올 거라 생각했죠. “네가 지금 개를 챙길 때냐? 빨리 아이를 낳아라”, “애 안 낳으려고 개를 키우는구나” 같은 말을 수없이 들었어요. 제이가 태어날 때쯤부터는 “아이와 강아지가 함께 사는 건 위생상 좋지 않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정말 모르고 하는 소리라 생각해 무시했어요.

결혼 전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잖아요. 반려견에 대한 각자의 생각에 차이가 있었을 것 같은데요?
저희 부부 못지않게 어머니가 방울이를 굉장히 예뻐하세요.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주로 어머니께서 방울이를 돌봐주셨고요. 어머니께서 관절이 좋지 않아 전복을 챙겨 드시는데, 방울이도 이제 나이가 들어 관절이 아플 거라며 항상 전복을 챙겨 먹이고, 산책을 다녀오면 항상 다리를 주물러주고요. 가족 모두 방울이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특별한 이견은 없었어요. 오히려 너무 예뻐하다 보니 간식 조절을 잘 못한 부분이 문제가 되기도 했죠. 호칭도 저희 어머니가 엄마, 제가 오빠, 아내가 언니죠. 제이가 태어나면서 방울이는 ‘방울 고모’가 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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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견과 신생아를 한 공간에서 키우는 점에선 부담이 없었나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오기 전 아파트 옆 동에 쌍둥이 아이가 있는 여동생 가족이 살았어요. 어머니가 손주들을 돌보러 갈 때 방울이도 꼭 데려가셨고요. 초등학생이 된 쌍둥이들은 여전히 방울이를 ‘이모’라고 불러요. 그때만 해도 방울이가 젊었던 때라 가만히 쌍둥이를 지켜보다 아이가 깨거나 울면 가족에게 달려가 왕왕거리며 알려주기도 했고요. 쌍둥이가 초등학교에 갈 때까지 방울이도 육아에 참여한 거죠. 쌍둥이와 잘 지낸 기억 때문에 제이가 태어나도 별문제 없을 거라 생각했어요. 방울이는 이제 나이가 들어 귀찮은지 제이가 울면 벌떡 일어나 불안해하면서도 시끄러워 다른 방으로 옮겨가 잠을 자곤 해요. 저희 가족 중 누구도 ‘아이가 태어나면 방울인 어떻게 하지?’ 같은 걱정을 해본 적이 없고요. 놀란 일은 아내 친구가 집에 놀러 와서 제이를 안고 옆방에 눕히려고 일어났더니 굉장히 심하게 짖는 거예요. 마치 “우리 아기 데리고 어디 가냐”고 화를 내는 것 같았어요.

10년 동안 이 집 막둥이던 방울이에게 아기의 탄생이 낯설 것 같아요. 방울이 입장에선 갑작스럽게 새 가족이 생긴 거니까요.
바닥이나 침대에 아기 이불을 깔아두면 절대 밟지 않고 피해가더라고요. 아이 물건을 함부로 건드리지도 않고, 오히려 멀찍이에서 엎드려 바라보고, 아이 주변에선 조심스럽게 행동하고요. 제이가 태어나고 한 달쯤 지나 손님들이 집에 놀러 온 날 샘을 부리는 것 같은 행동을 보이더라고요. 그동안 우리 집을 찾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방울이와 인사를 하고 놀아주던 기억이 전부일 텐데, 모두의 관심이 아이에게 쏠리니 당황한 모양이에요. 장난감을 물어와 입으로 던져대며 짖더라고요. “나 좀 봐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죠. 여태껏 그런 적이 없었거든요. 아침에 아기 분유를 먹이고 있으면, 자기도 안아달라고 다리를 긁곤 하죠. 아기를 돌보느라 변을 바로 치워주지 못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스트레스였나 봐요. 갑자기 구토를 해서 놀란 적도 있어요. 아기한테 관심을 쏟으니 약간의 질투랄까, 어리광이 느는 것 같아요.

“아이가 태어난 후 방울이의 어리광이 잦아졌어요.
가족과 이야기를 나눠 퇴근 후나 외출했다 돌아오면 방울이를 먼저 챙기자고 약속했죠. 저 역시 퇴근 후엔 방울이와 한참 놀아준 후
아이를 안아주고요.”

반려견과 살다 보면 ‘얘 혹시 사람 아닐까’ 싶은 순간이 있잖아요?
밥을 먹고 난 뒤 이불에 올라가 스스로 이를 닦아요. 발로 입을 벌리고 5분 넘도록 치아 구석구석을 이불에 문지르는 거죠. 여태껏 양치 한 번 해주지 않았는데 치석이 조금도 없어요. 병원에서도 “스케일링을 굉장히 자주 했나 봐요”라며 치아 상태가 아주 건강하다고 하죠. 재밌는 건 방울이는 창피한 걸 싫어하는 것 같아요. 예전에 아내가 강아지 패딩 점퍼를 사와서 입혀보니 그 모습이 너무 귀여운 거죠. 가족이 깔깔거리며 웃었는데, 그 뒤로 그 옷은 절대 안 입으려고 해요. 비슷한 상황이던 신발 역시 절대 안 신겠다며 도망다니고요.

방울이가 ‘미식견’이기도 하다고요? 음식 관련한 에피소드가 참 많더라고요.
사람 음식을 반려견에게 주면 안 된다는 걸 잘 몰랐어요. 방울이도 가족이니까, 너무 자극적인 게 아니면 뭐든 같이 먹어도 된다고 생각한 거죠. 어머니 고향이 여수라 해산물을 직배송으로 자주 구입해 먹어요. 방울이는 삭힌 홍어도 재채기를 해가며 잘 먹고, 산낙지나 전복을 잘게 썰어서 보양식 삼아 주기도 하죠. 일식집에서 포장해온 새우튀김을 엄청 맛있게 먹길래 나중에 분식집에서 새우튀김을 사다 주니 먹지 않는 거예요. 튀김옷을 벗기고 나서야 새우만 골라 먹더라고요. 회도 좋아하는데, 동네에서 술안주로 산 9900원짜리 광어는 입도 안 대더라고요. 꼭 비싼 요리만 좋아하는 것처럼 군 적이 많았어요. 열 살이 되면서부터는 몸이 좋지 않아 매달 병원에 다녀요. 웬만해선 사람 음식을 주지 않으려는데, 이미 맛에 길들여진 터라 이 또한 쉽지 않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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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달 병원에 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인가요?
쿠싱증후군 판정을 받았어요. 신장의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호르몬 이상 문제로 노령견에게 잘 나타나는 질환인데, 사람 음식을 많이 먹은 반려동물일수록 쉽게 걸릴 수 있다고 하네요. 복부 팽창 증세가 있어 배가 빵빵하고, 갈증이 심해서 사계절 내내 찬물만 먹어요. 잠결에도 물 달라는 소리에 일어나 찬물을 떠줄 정도예요. 저희 가족이 반려인으로서 무지한 부분 때문에 방울이가 아픈 것 같아 미안하고 속상하죠.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혈액검사를 받고, 치료식을 먹이면서 음식을 줄 때 특히 주의를 기울이고 있어요. 한 달에 고정으로 드는 병원비가 50만 원 이상이에요. 이 정도 비용은 내가 책임질 수 있으니 건강하게 오래 살아주기만 바라죠.

나이 든 반려견을 바라보는 마음은 어떤 것인가요? 아픈 노령견을 돌보는 일이 만만치 않다고 하잖아요.
방울이는 쿠싱증후군 외에도 기관지 협착증이 있고, 췌장도 좋지 않아요. 슬개골과 관절이 약해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통에 걸음걸이도 부자연스러워졌죠. 산책길엔 너무 오래 걷지 않도록 안아주고, 집 안에서는 의자나 침대에서 점프하지 못하도록 항상 지켜보고 있죠. 계단을 혼자 오르내릴 수 없게 막아뒀고요. 나이가 들면서 짖는 횟수가 늘고 목소리도 커진 것 같아요. 뭔가 원하는 걸 바로 해결해주길 바라는 거죠. 사회성도 많이 떨어졌고 겁도 많아진 것 같고요. 지금은 괜찮지만 열 살이 되던 해에 췌장 문제로 입원한 적이 있었어요. 그때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방울이가 우리 곁을 떠날까 봐 너무 무섭더라고요. 분리 불안이 있는 아이라 병원 케이지에 혼자 있는 것 자체를 너무 힘들어했고요. 당시 병원비만 수백만 원 들었는데, 사실 이걸 언제까지 또 얼마까지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같은 현실적인 고민도 컸어요.

방울이를 마당에 풀어놓고 사는 것이 꿈이었다고요? 주택으로 이사를 와 보니 어떤가요?
계속 서울에서 아파트 생활만 하다 1년 전, 경기도 광주에 위치한 주택으로 이사 왔어요. 우선 층간 소음처럼 어쩔 수 없이 신경이 곤두서고 예민해지는 일이 없어서 좋아요. 방울이가 마당에서 뛰노는 장면을 늘 상상했는데, 저희 집이 고양이 ‘츄르’를 잘 제공하는 게 알려졌는지 3마리 이상의 고양이가 항상 놀러 와요. 마당 곳곳에 추위를 피할 수 있도록 고양이 집도 만들어뒀고요. 방울인 고양이가 무서워서 밖에 잘 나가지 않으려고 해요. 흙이나 풀을 밟지 않고 꼭 돌이나 덱에서만 돌아다니고요. 이사를 와보니 이 아이가 굉장히 ‘도시견’ 이었더라고요. 까탈스럽게 구는 듯하면서 고양이 똥을 좋아해서 몰래 냄새를 맡거나 먹다 걸린 적도 있어요. 마당에 편히 풀어둘 수 없는 이유 중 하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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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반려견과 함께하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요?
10년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방울이에게 사람 음식을 절대 먹이지 않을 거란 얘길 자주 해요. 맛있는 냄새를 풍기면서 우리끼리만 먹는다는 게 미안하지만, 처음부터 음식에 관해선 철저하고 냉정하게 대처할 걸 후회가 되죠. 저와 아내 모두 반려견을 떠나보낸 적이 있어요. 그 슬픔이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다 보니 ‘생애 주기’가 다른 반려동물을 또다시 가족으로 맞이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다시는 키우지 않을 거란 결론을 내리죠. 오래 사는 동물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곤 하는데, 거북이는 수백 년을 장수하고 앵무새도 굉장히 오래 살더라고요. 만약 방울이를 떠나보낸다면 다시 반려견을 키울 자신은 없어요. 더 오래 사는 동물과 함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 방울이가 옆에 있기 때문에 이런 고민도 다 쓸데없는 걱정이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