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e You Happy in Your Apartment?

아파트 생활, 만족하세요?

“원고지다. 불 켜진 창마다 언어가 사는. 불 꺼진 창마다 언어가 숨는 소설이다. 시다.” 조혜전 시인이 ‘고층 아파트’에서 쓴 것처럼 아파트 칸칸이 들어차 있는 건 우리의 삶이고, 생활이고, 이야기다. 당연한 삶의 배경이 된 아파트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How Apartments Developed
아파트가 이렇게 변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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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단지식 아파트의 시작
한국 아파트의 가장 큰 특징은 단독 아파트가 아니라 단지을 이룬다는 점이다. 1960년대 마포아파트는 단지식 아파트의 최초 사례로 10개 동 642가구로 지었다. 단지 안에 녹지, 운동장 등 커뮤니티 공간을 배치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이후 한국의 아파트 단지는 담장을 두르며 폐쇄적으로 변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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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모델하우스 문화의 발단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한강변 아파트 건설 붐이 일었던 1970년대를 상징한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모델하우스를 지어 선분양한 사례이기도 하다. 박철수 교수는 책 《아파트의 문화사》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가짜 집을 구경하면서 진짜 들어가 살 집으로 착각하게 하는 잘못된 주택관을 만들어내는 데 결정적 동기를 제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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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아파트 신도시의 등장
노태우 정부는 1가구 1주택 보급을 목표로 분당, 일산, 평촌, 산본 등 서울 외곽에 신도시 200만 호 건설을 추진한다. 1989년 11월에 분당 1차 시범단지 모델하우스를 개관했는데, 첫날 15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투기를 단속하려고 국세청 직원까지 투입했지만 프리미엄이 붙은 분양권이 현장에서 곧바로 거래됐다. 온 국민이 아파트 시세 차익을 통해 자산 증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학습한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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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브랜드 아파트의 출현
삼성물산이 래미안 용인 구성 1차 아파트를 2000년에 지으면서 아파트에 브랜드 개념이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그리고 불과 20년도 채 되지 않아 브랜드 이미지가 곧 나의 이미지라는 생각, 아파트 브랜드가 매매 가격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일, 영어 이름을 선호하는 흐름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최혜정의 논문 〈아파트 이름의 사회언어학적 고찰〉에 따르면 한국 아파트 상호명은 ‘삶의 편안함과 행복 추구’, ‘신분 상승 및 차별화된 삶 희구’라는 두 경향으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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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발코니 확장 허용과 아파트의 초고층화
1976년 잠실주공5단지를 15층으로 지은 이래 1990년대 신도시 아파트들이 20층 이상으로 올라갔고, 2000년에는 73층짜리 타워팰리스가 등장했다. 2005년 발코니를 주거 공간으로 사용하는 것을 허용하면서 이후 건설한 재개발·재건축 아파트들은 고층으로 보편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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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메가톤급 단지의 출현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지은 송파 헬리오시티는 9510가구로 현존하는 가장 큰 아파트 단지다. 일반 주택 건설과 달리 아파트 건설을 할 땐 건설사가 상하수도, 전기, 도로 관련 법규의 제약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단지 설계를 할 수 있다. 커뮤니티 시설을 제공할 여지가 많은 대형 단지가 좋다는 인식이 보편화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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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고 살아도 생활에 큰 지장은 없다. 하지만 읽고 생각하고 고민해보면 분명 다른 눈을 뜨게 된다.

Questions to ask About Apartments
아파트에 살며 한 번쯤 던져야 할 질문

우리나라 총인구의 60%가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살고 싶은 집을 물어보면 대부분 마당 있는 주택을 말합니다. 동시에 단독주택은 관리하기 힘들다는 두려움도 언급하지요. 사람들 마음속에 이런 모순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 사회가 제공할 수 있는 주거 형태가 획일화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아파트 주거율 60% 이외의 주거 형태 중 다수가 다세대·다가구 주택이에요. 그에 비하면 아파트는 좋은 주거 공간입니다. 창문을 열면 앞집이 그나마 멀리 있고, 녹지도 어느 정도 있고, 바람도 잘 통하고…. 고장 난 것이 있으면 관리사무소에서 다 고쳐주죠. 주택은 동네 집수리 아저씨와 평소에 인간관계를 잘 맺어두어야 합니다. 그 사람이 바가지를 씌우지는 않을지, 필요할 때 재깍 달려와줄지 알 수 없으니까요. 아파트는 다른 공동체 일원과 관계를 잘 맺는 부담 대신 관리비라는 일종의 보험료를 매달 내는 시스템입니다. 일하느라 바쁜 사람들, 집을 숙소처럼 사용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편리하죠. 우리 마음속의 유토피아에 따르면 자연과 가까운 곳에서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리고 인간 친화적 삶을 누려야 하는데, 우리는 너무 바빠요. 그래서 아파트에 살면서 새로운 공간을 꿈꾸지만 현실을 따지다 다시 아파트로 돌아가는 패턴이 반복되죠.

외국에도 아파트가 있지만 우리나라식 아파트처럼 단지를 이루고 담장을 두르진 않습니다.
개발 과정을 유심히 보면 이해할 수 있어요. 상하수도, 가스, 전기 등 도시 인프라는 공공이 제공하는 게 원칙입니다. 주택가의 경우 이런 인프라를 집 앞 골목까지 끌어오는 일을 정부가 합니다. 각 개인은 자신의 집으로 연결하는 것만 하면 되죠. 아파트를 지을 땐 정부가 건설사에 빈 땅을 넘겨버립니다. 도로, 상하수도, 전기 등 기존에 존재하던 법규의 제한을 받지 않아요. 건설사 입장에서는 자율권을 가지고 거주민이 갹출한 돈으로 단지 인프라를 구축합니다. 쉽게 말해 공공이할일을민간의돈으로한겁니다.그래서 점점 더 게이트 커뮤니티화되어가고, 도시 전체로 보면 맥이 끊기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의 폐해가 생깁니다. 하지만 단지 안에 사는 사람들로선 권리를 주장하는 이유가 타당하니 이 문제는 아파트 단지의 어디까지를 사적 공간으로 보고, 어디서부터 공공 공간으로 볼지에 대한 논의를 촉발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주거가 늘 사적 재산권으로만 다뤄졌지, 공공성의 관점에서 다뤄진 적이 없어요. 각 개인이 자기 소유의 일정 부분을, 실제 공간이든 삶의 편의성이든 내놓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논의가 이뤄질 수 있는데, 우리는 그런 훈련이 되어 있지 않죠.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아파트가 확산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어느 나라나 도시에 몰려든 노동자에게 주거 공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아파트를 지었다는 사실은 똑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아파트가 자산 증식 도구, 계층 상승 기제였기 때문에 대량 보급됐어요. 서구에서는 집을 투자 대상으로 선호하지 않다 보니 자산 증식을 위해 아파트를 대량생산·공급하는 상황이 벌어지지 않죠.

다수가 아파트를 선호하다 보니 그 외의 삶에 대한 막연한 선입견이 존재합니다.
앞서 말했듯 단독주택이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지만, 눈감고 있는 아파트의 불편함도 분명 존재합니다. 지금까지 여러 단지를 답사했는데, 사회적으로 선망하는 아파트가 실제로는 살기 좋은 아파트가 아닌 경우가 꽤 많았어요. 평수는 40평 이상인데 4인 가족이 살기에 불편한 경우도 보았고, 에너지 효율도 굉장히 떨어지는 아파트도 있었죠. 건설사가 살기 좋은 공간을 만든 게 아니라, 팔기 좋은 공간을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브랜드, 학군 등 부가적 요인으로 가치가 높게 평가된 아파트가 무작정 살기 좋을 거라 믿기보다는 실제 공간이 제공할 삶의 질을 따져보면 좋겠습니다.

아파트 브랜드명이 점점 복잡한 영어 단어 조합 방식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생기면서 정말로 집이 아니라 상품이 되어버렸습니다. 브랜드는 줄 세우기 좋은 도구일 뿐이죠. 1980년대만 해도 비어 있는 아파트 부지가 많았습니다. 짓기만 하면 되니까 단순하게 건설사명으로 아파트 이름을 지었는데, 1990년대 후반부터는 이미 주거 지역이던 곳을 재개발해서 아파트 단지로 바꾸다 보니 수익률과 상품성을 높이기 위한 뭔가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브랜드가 등장한 겁니다. 충분히 주거 환경이 좋을 땐 브랜드가 시세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반대로 실제 주거 환경의 우열을 가리기 힘들 때 브랜드가 힘을 발휘합니다. 만약 정부에서 일괄적으로 주거 바우처를 제공하면 사람들은 분명 이름값이 아닌 진짜 살기 좋은 아파트를 선택하려고 할 거예요. 하지만 지금 현실에서 브랜드에 포함된 거품 같은 뭔가가 실질적으로 돈이 되니까 포기가 안 되는 거죠.

위 세대의 재산 증식 방식이 더 이상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습니다. 3040 세대에 맞는 집의 의미 모델이 부재한 상태예요.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대부분 주거를 기본권으로 받아들이고 정책을 펼칩니다. 그런 환경에서라면 ‘집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를 생각할 수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집이라는 건 누구에게는 스위트 홈이고 누구에게는 투쟁입니다. 아마 지금 40대 후반이 월급을 아껴서 아파트를 분양받고 평수를 넓혀가면서 살 여유가 있었던 마지막 세대일 겁니다. 그 아래 세대에게 시급한 문제는 그들이 월급을 모아 만든 종잣돈 규모에 맞는 좋은 주거 형태가 없다는 점입니다. 부모님이 한 채 물려주는 경우가 아니라면 일찌감치 내 집 마련을 포기해야 해요. 패배주의적 생각이 아닙니다. 현실 인식과 노선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 3040은 자신의 자산으로 누릴 수 있는 주거 공간의 현실을 두루두루 살펴보고, 그 대안을 조금이라도 확장할 수 있는 방법을 공공에게 요구하고 얻어낼 수밖에 없는 세대입니다. 운동 같은 걸 할 수밖에 없어요. 정치적 발언을 해야 하고, 정 안 되면 임대차 관련법이라도 독일 등 선진국처럼 임차인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꿔달라고 요구해야 해요. 주거를 공공의 기본권으로 보지 않고, ‘개인이 노력하기 나름, 모든 건 각자의 노력에 달렸음’이라고 치부하면 해결 방법을 찾는 게 불가능합니다.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는 〈볼드저널〉 독자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은가요?
아파트에 사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당 있는집에서살고싶다는꿈이있어도이룰수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현실 가능한 꿈으로 아파트를생각할수있습니다.대신진짜살기좋은 아파트를 잘 골라서 오랫동안 사는 게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오래 살아야 ‘내 집’이라는 인식이 생기거든요. 특히 자녀들을 생각하면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겐 방의 넓이나 쾌적함보다 집이 상징하는 문학적· 감성적 측면이 훨씬 크고 중요합니다. 아이들이가진집관련한기억이단순히내부거주 공간에서만 쌓이는 게 아닙니다. 동네, 학교, 지역과 두루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어디에서 자랐는지 맥락화해서 기억하니까요. 주거 안정성이 떨어져서 2년에한번씩집을옮기는게일상화되는사회라면 집에 대해 아이들이 지닐 기억이 어떨지 우려가 됩니다.

보통 3040 아버지들은 예산, 직장과의 거리, 자녀의 학군 등 외적인 제약에 맞춰서 살 동네와 거주할 집을 고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굳이 “내가 살고 싶은 집은 어떤 모습인가?” 질문하고 상상할 필요가 있을까요? 매일매일 일상을 사는 것도 바쁜데요. 집에 대한 사유가 왜 필요한 걸까요?
우리가 꼭 현실에서만 사는 건 아니니까요. 우리가 어디까지 볼 수 있는지, 어디까지 상상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 현실도 조금씩 바뀝니다. 일례로 제가 어릴 때 새집으로 이사를 갔는데, 정말이지 하루도 그곳에서 살기가 싫었습니다. 그런데 가족 구성원이 조금씩 사는 사람 입장에서 집과 관계를 맺으니 차츰 우리집, 나의 공간이 되었습니다.나의 집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지 질문하고 상상해야 그 공간을 자기화할 능력이 생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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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태

정림건축문화재단 상임이사로 일하며 〈건축신문〉, 건축학교, 통의동집, 라운드어바웃 포럼 시리즈 등을 기획하고 있다. 〈월간 미술〉 기자, 〈인서울매거진〉과 〈공간〉 편집장 등 예술 디자인 관련 저널리스트, 예술 문화 콘서트 ‘페차쿠차 나잇 서울’과 ‘TedxSeoul’의 초대 큐레이터로 활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