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Age 14, I Decided to Write

열네 살,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이제 갓 사춘기를 지나는 아이들은 학교 안에서 어떻게 자라고 있을까? 서툴고 어리숙하던 그때, 소녀는 글을 쓰기로 했다.


여자 기숙사에서의 첫날 밤,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옆방에서도 앞방에서도 누군가 훌쩍이는 듯했다. 사감 선생님이 이 방과 저 방을 돌며 아이들을 살피는 발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우리는 모두 이제 막 중학교 1학년이 된 참이었다. 어떤 애는 엄마한테 전화 한 통만 하고 오면 안 되냐고 물었고, 어떤 애는 몰래 반입해온 핸드폰으로 초등학교 동창과 문자를 주고받았고, 어떤 애는 입학 첫날 생리를 시작했으며, 어떤 애는 중학교 2학년 선배 중 누가 매력 있는지에 대해 입방아를 찧었다. 마스카라와 아이섀도를 능숙하게 사용할 줄 아는 애가 있는가 하면, 일주일 치 기숙사 짐을 엄마가 대신 싸준 애도 있었다.


나는 자기 손으로 싼 짐을 끌고 기숙사에 들어온 부류에 속했다. 내 캐리어에는 《토지》 1권이 들어 있었다. 화장이나 남자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바가 없었다. 당시 유행하던 통 큰 청바지에 끈 나시와 볼레로를 입고 입학했는데, 그 패션은 나중에 두고두고 놀림을 받았다. 얼굴에 여드름은 없었지만 주근깨와 버짐이 피어났다. 내 몸은 마치 나랑 어색하게 지내는 친구 같았다. 예측할 수 없었고 딱히 좋지도 않았으며, 같이 있으면 불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엉덩이에 살이 붙고, 젖꼭지가 살짝 부풀고, 손가락에는 사마귀가 나고, 예상치 못하게 생리가 터졌다. 몸이 마음을 앞서가는 탓인지 내 자세는 늘 엉성했다.


아침이 되자 아이들은 부은 눈으로 일어나 아침을 먹고 쇄소 교육이라는 걸 받았다. 쇄소란 무언가를 쓸고 닦고 깨끗이 하는 일을 뜻했다. 한마디로 청소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교육을 담당한 동양고전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평화란 모든 게 제자리에 있는 것이다. 생명과 물건과 몸과 마음이 있어야 할 곳에 있는 것이다.” 이게 이 작은 대안학교의 모토이기도 했다. 생명, 평화, 공동체, 연대 따위의 단어가 매일같이 교사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지만 내가 있을 곳이 여기라고 생각하는 학생은 드문 것 같았다. 입학 설명회 때 부모들은 뿌듯한 얼굴로 이렇게 말하곤 했다. “저희 집은 아이의 선택으로 입학을 결정했어요.” 그 말은 맞기도 하고 틀리기도 했다. 열네 살 아이의 선택이 독립적이어봤자 부모의 욕심과 염려를 벗어나기 힘드니까. 우리 부모는 아들딸이 입시에 지치는 청소년기를 보내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대안학교를 권유했다. 시험일랑 생각하지 말고 맘껏 놀며 건강하게 살라고 했다. 내가 그 권유를 받아들인 건 머리를 자르기 싫어서였다. 당시 일반 중학교는 귀밑 2cm 단발이 필수 규정이었다. 긴 머리를 잃으면 끝장인 줄 알았기에 복장과 두발의 자유가 있는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기숙사 생활이 궁금하기도 했다.


기숙사에서 우리는 신발 정리와 이불 정리와 책상 정리와 화장실 청소와 걸레질 등을 배웠다. 또한 나무 복도를 들기름으로 닦는 법도 배웠다. 들기름 냄새는 아주 고소했다. 식당에서 잔반을 남기면 혼났고, 자기가 먹은 그릇은 직접 설거지했으며, 하루에 한 번 두 명씩 짝을 지어 음식물 쓰레기가 담긴 수레를 끌고 밭으로 갔다. 밭에는 양계장이 있었다. 잔반을 던져주면 닭들은 서열 순으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식사를 했다. 양계장 옆으로는 1000평짜리 밭이 펼쳐졌다. 전교생이 각자의 땅을 조금씩 나눠 받고 옥수수, 고구마, 토마토, 고추 등을 심었다. 봄여름에 잡초가 우거지면 새벽마다 김매기를 하러 나와야 했다. 대충 하다가 잡초 아닌 농작물을 뽑으면 농사 선생님께 크게 혼나곤 했다. 할당된 밭을 다 매기 전까지는 기숙사로 돌아갈 수 없었다.


농사가 끝나면 수영하는 날이 많았다. 가난한 학교라 수영장 같은 건 없었으나, 바로 앞에 계곡이 있었다. 계곡의 중앙에는 거북바위가 있었다. 그 바위까지 헤엄쳐서 가면 물이 깊어져 바닥에 발이 닿지 않았다. 손으로 바위를 짚고 위로 발을 디디며 겨우 바위를 탔다. 그러면 먼저 올라가 있던 2학년 오빠들이 위에서 손을 내밀어주곤 했다. 그 손을 잡고 꼭대기로 올라가면 다이빙하는 일만 남는다.


청소를 하거나 농사를 짓거나 계곡에서 헤엄을 치지 않는 시간에는 수업을 들었다. 스무 개 정도의 수업을 자신의 선호에 따라 선택하며, 시간표도 직접 만들었다. 농사와 요가와 예배와 아침 산행은 필수 교과였지만, 나머지 수업은 좋아하는 선생님을 따라 택할 수 있었다.


명랑한 애들은 죄다 송 선생님을 좋아했지만 약간 우울한 애들은 곽 선생님을 좋아했다. 송과 곽은 둘 다 20대 중·후반의 여교사였는데 공통점이라곤 여자라는 사실밖에 없는 듯했다. 찰랑거리는 밤색 단발머리의 송 선생님은 강아지 상이었고, 거친 먹색 모발의 곽 선생님은 몽골 유목민의 첫째 딸 같은 얼굴이었다. 송 선생님은 언제나 눈에 물기가 촉촉했으며 목소리는 나긋나긋했다. 그녀가 가르치는 과목은 과학이었는데, 수업 중에 〈무한도전〉, 유재석, 노홍철, 〈1박 2일〉, 〈패밀리가 떴다〉 등을 주제로 딴 얘기를 하며 아이들을 웃게 했다. 반면 홑꺼풀인 곽 선생님의 눈빛은 매섭고 건조한 편이었다. 그녀는 둔탁한 저음으로 청소년기란 얼마나 끔찍한 시절인지 지나가듯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말만으로도 살짝 구원받는 영혼이 반에 서너 명 정도 있었다.


곽 선생님이 맡은 과목은 글쓰기였다. 내게 그 시절은 곽 선생님을 구경하다가 흘러가버린 느낌이 든다. 곽 선생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 첫 번째 이유는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다른 선생님들이 낡고 수수한 셔츠나 저렴한 생활한복을 입고 출근할 때 곽 선생님만 집시 스타일의 치렁치렁한 상·하의로 멋을 내고 학교에 왔다. 남중생으로 하여금 놀리지 않고는 배길 수 없게 만드는 패션이었다. 남자애들은 놀잇감을 발견한 어린 사자처럼 그녀를 에워싸고 깐죽대며 물었다. “와... 곽 쌤, 그런 이상한 옷은 도대체 어디서 사요?” “왜 그냥 고무줄 말고 성게 모양 머리끈으로 머리를 묶는 거예요?”


그럴 때면 내 나이가 너무 부끄러웠다. 내 또래의 인간들이 그녀에게 형편없어 보이지 않길 너무나 바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곽 선생님은 남자애들의 말에 일말의 아랑곳도 하지 않음으로써 나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남자애들이 두세 마디만 놀려도 난 금방 눈물이 차오르던데, 그는 나와 다른 어른이었던 것이다. 곽 선생님을 울리는 것은 무엇이고, 누구일까? 아직까지도 알 수가 없었다.


나는 주로 여자애 두 명과 같이 다녔는데 한 명은 안경으로 불렀고, 다른 한 명은 다람쥐로 불렀다. 안경과 다람쥐, 그리고 나는 아침 산행을 할 때마다 남자애들보다 먼저 헬기장 정상에 도착할 만큼 체력이 좋았고, 매일 밤 기숙사 책상에 앉아 모든 숙제를 끝내놓고 잘 만큼 부지런했다. 우리가 가장 기다린 요일은 금요일이었다. 곽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첫 수업 시간에 우리에게 나눠준 종이의 맨 위에는 이런 제목이 적혀 있었다.


‘당신의 세계관에 관한 일곱 가지 질문들’


중학교 1학년 중 누구도 세계관이라는 단어의 뜻을 알지 못했으므로 여기저기서 질문이 터져 나왔다. “곽 쌤, 세계관이 뭐예요?” “곽 쌤, 세계관이 무슨 뜻이에요?” “곽 쌔애애앰, 세계관이 무슨 말이에요?” 중학생의 특징 중 하나는 여러 명이 똑같은 질문을 몇 번이고 다시 한다는 점이다. 곽 선생님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가 이 세상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을 물어보는 질문지야.” 나는 얼른 질문으로 눈길을 돌렸다.


1. 당신은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2. 어디로 가고 있는가?
3. 당신은 무엇을 믿는가?
4. 당신이 소중히 여기는 물건에 대해 알려달라.
5. 당신은 최근 무엇을 미워했는가?
6. 무엇이 당신을 울게 하는가?
7. 당신이 좋아하는 시를 적어달라.


이 질문들을 읽는데 가슴이 너무 두근거렸다. 지금까지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고급지고 중요한 것을 물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게 질문을 준비해준 것이 너무나 황송해서 나는 모든 것을 다 바쳐 대답하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뾰족하게 깎은 연필을 꺼내 1번 문항부터 적어 내려가고 있을 때였다. 옆에서 한 남자애가 물었다. “근데 곽 쌤, 세계관이 뭐예요?” 나는 고개를 홱 돌려 그 남자애를 째려보았다. 곽 선생님에게 나의 본질을 알려줄 수 있는 이 중대한 수업에서 저렇게 답 없는 놈이랑 함께 있어야 한다는 게 수치스러웠다. 그날 나는 질문 하나에 거의 스무 줄의 대답을 쓰느라 수업이 끝나도록 질문지를 다 작성하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진지하고 중요한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지 적다가 몇 장의 종이를 꽉 채웠다. 옆에 있던 안경이랑 다람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셋만 나중에 교무실에 가서 따로 질문지를 냈다.


다음 시간에 곽 선생님은 지난주에 적어낸 몇 장의 질문지 중 한두 장을 뽑아서 우리에게 언급하기 시작했다. 나는 곽 선생님이 혹시 내 질문지를 뽑아줄까 봐 너무 떨렸다. 그가 내 질문지를 집어 들어준다면 입에 경련이 일어날 것 같았다. 거의 고통에 가까운 긴장이었다. 그러나 곽 선생님이 뽑아서 언급한 것은 내 글이 아니었다. 안경과 다람쥐의 것도 아닌 다른 여자애의 글이었다. 교실 구석에 앉은 애였고, 옆에 아무도 없었다. 약하고 침울하고 소심해 보였다. 청소년들은 본능처럼 그런 애를 따돌리는 경향이 있다. 그런 애 대신 목소리 크고 잘 웃고 카리스마 있는 애한테 잘 보이려 애쓴다. 즐거우려고, 혹은 관계의 중심에서 도태되지 않으려고.


곽 선생님이 낮은 목소리로 읽어준 그 애의 글은 문장도 단어도 엉망진창으로 틀린 글이었다. 그런데 너무 외로운 이야기여서 나는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 난데없이 느껴지는 슬픔이 낯설기까지 했다. 불쌍하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었다. 글을 들은 뒤에 나는 그 애가 안쓰러워졌지만, 동시에 그가 전하는 슬픔이 너무 빛나서 놀랐다. 누군가의 외로움이 부러운 건 처음이었다. 글쓰기의 세계에서는 가진 것보다 잃은 것이 더 중요한 것 같았다. 어른이 되어 읽은 신형철 평론가의 문장처럼 “나의 없음을 당신에게 주는” 것이 글쓰기일지도 모른다.


그날부터 나는 내 결핍을 찾아 샅샅이 다녔다. 나의 크고 작은 불행, 나의 처연함, 나의 어려움, 내가 받은 상처 따위를 이리 보고 저리 봤다. 그러고는 밤마다 일기를 썼다. 자기 연민과 결핍에 도취된 글이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된다고, 언젠가부터 글쓰기는 내게 말하고 있었다. 애들이 떠들고 웃고 싸우고 뛰는 소리가 복도를 채웠다. 다행히도 그리고 불행히도 기숙사에서는 하루 종일 혼자가 아니었다. 고요하거나 우아하기도 어려웠다. 나의 일기에는 점점 많은 인물과 목소리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떤 날엔 읽는 것만으로도 시끄러운 일기를 완성했다.


나는 아무래도 작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작가가 되지 않기엔 이 기숙사에서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으며, 나는 사람들의 표정과 말을 너무나 생생하게 기억하기 때문이다.

이슬아

열네 살, 남양주에 자리한 산돌학교에서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배우기 시작했다. 매일 일기를 통해 하루를 복기하던 습관이 〈일간 이슬아〉의 힘이 되었다. ‘헤엄출판사’의 대표이자 작가로 종횡무진 활약 중. 반려 고양이 탐이와 건강하게 사랑하며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