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fort for the Teenage Soul

사춘기, 위로의 기억

누구나 똑같이 방황하고 엇비슷한 무게로 힘든 시절이 있다. 장소와 시기는 다르지만 사소한 무엇인가에 위로받은 기억도 같다. 그리고 인생의 방황이 다시 찾아오는 지금, 다섯 명의 컬처 피플이 첫 사춘기 추억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이 기억들이 지금 당신에게 위로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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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미션

최광희, 영화평론가 <천만관객의 비밀> 저자

돌아가신 아버지 자리를 대신하려는 형과 충돌하며 성장통을 겪던 고2 무렵, 우연히 신문에서 영화 〈미션〉을 개봉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평소에는 동네 극장에서 때 지난 영화를 보곤 했지만, 이번엔 당시 여자 친구와 데이트도 할겸 시내 개봉관에서 보기로 했다. 어머니에게 참고서를 사겠노라 거짓말하고 받은 돈으로 영화를 보러 갔다. 가는 길, 여윳돈이 없던 나는 친구의 지하철 정기권을 빌렸다가 역무원에게 걸리고 말았다. 당시 타인의 정기권을 사용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영화를 보는데 노예상이던 로버트 드니로가 회개하는 의미로 십자가를 메고 이구아수 폭포를 기어 올라가는 장면이 나왔다. 순간, 여자 친구 앞에서 망신당하고 지하철 부정 승차 벌금까지 내야 하는 내 현실이 겹쳐지며 펑펑 울고 말았다. 나중에 여자 친구는 영화를 보며 눈물짓는 내 감수성에 감동받았다고 말했다.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크고도 아프게 느껴지는 시기가 있다. 사춘기가 그렇다. 그날 영화 〈미션〉은 내게 대의를 품고 사는 삶의 위대함을 보여줬고,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크나큰 질문을 스스로 던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사춘기의 특권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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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Enter the Wu-Tang

GFX(신동진), 아메바컬쳐 & 쿨레인스튜디오 아트디렉터

한창 예민하던 10대 시절, 분당으로 이사를 갔다. 새로 생긴 도시였고 새도시에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우리는 쉽게 적응하기보다 같이 고민하고 혼란스러워하는 방법을 택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친구들과 힙합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강남역에 타워레코드가 생기기 전이라 힙합 음반이 한 장에 5만 원씩 할 정도로 비쌌다. 친구 여섯이 각자 한 달 치 급식비를 털어 산 음반을 돌려가며 들었는데, 그때 가장 좋아한 아티스트가 우탱클랜이었다. 우탱클랜 첫 음반이 나온 게 1993년인데 나는 4년이 지난 후에야 처음 들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원하는 음악을 바로 들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우탱클랜은 동양의 사상과 철학, 무술에 영감을 받아 만든 팀이었는데, 당시 만화가를 꿈꾸던 내게 음악과 비주얼 모두 큰 충격으로 다가왔고, 기존 사회가 가르쳐온 틀을 깬 계기가 됐다. 내가 좋아하고 꿈꾸는 것이 사회에 반하는 것이라고 해도 그 나름대로의 가치와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우탱클랜의 이 앨범은 자신들의 취향을 충분히 담았기에 충격적이었고, 지금까지 명반이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도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사춘기를 겪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는 틀리지 않았다. 조금 다를 뿐이다”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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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호밀밭의 파수꾼

박정선, 미디어 링크 콘텐츠 기획자

중학교 2학년 때 시작된 내 사춘기는 대학교 입학 때까지 이어졌는데, ‘나는 왜 태어나서 아까운 산소를 축내는 것일까’, ‘인간은 지구에 암적인 존재가 아닐까’ 하는 중2병 특유의 존재론적 고민에 사로잡혀 있었다. 중학교 2학년짜리가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는다는 건 “사춘기라 위험하니 건드리지 말라”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책상 위에 올려두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알아서 눈치채고 덜 건드릴 줄 알았는데, 그 정도로 섬세한 어른은 내 주위에 없었고 그래서 더 슬펐다. 이 책이 좋았던 건 ‘세상에 이상한 놈이 나 말고도 또 있구나. 위선과 허위에 예민한 영혼이 또 있구나’ 하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이제 막 첫 사춘기를 맞닥뜨린 청춘이건 인생 제2의 사춘기를 맞이한 3040이건 그냥 좀 흔들려도 된다고, 좀 대충 살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꼭 나쁜 건 아니다. 그런 것에 좋다 나쁘다는 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 다만 마음속에 소소하고 조그마하더라도 자신만의 선한 의지 한 토막 정도만 있다면 인간은 잘못되지 않는다는 믿음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다.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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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소친친

유성균, B1A4·국카스텐 뮤직비디오 감독

중학교 때 첫 사춘기를 겪었다. 공부 빼곤 모든 게 재미있던 시절이라 만화, 음악, 농구, 영화 등 당시 10대가 좋아하던 모든 취미에 빠져 있었다. 특히 홍콩 영화 특유의 분위기와 멋진 캐릭터에 심취해 있었다. 〈소친친〉은 중국 영화 마니아이던 단골 비디오 가게 아저씨의 추천으로 보았는데, 고집불통인 주인공 두 사람이 만나 사소한 사건 사고를 겪으며 서서히 친해진다는 내용의 멜로 영화였다. 특별할 게 없을 수도 있지만, 역시 고집이 무척 세고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던 내겐 머리로만 이해하던 소통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해준 작품이었다. 사춘기는 소통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애매한 시기에 찾아오는 거라고 생각한다. 상대방 혹은 세상과의 소통 오류가 원인이 아닐까? 갈등의 시작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는 걸 인정하고, 갈등의 상대를 이해하려는 소통의 기본자세를 갖추도록 노력해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런 방황의 시기에 〈소친친〉의 메인 테마곡을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도입부에 나오는 이 노래는 10년도 훨씬 지난 지금도 OST를 사고 싶어 이베이를 기웃거릴 정도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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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Myself

오재철, 사진작가 · 〈꿈꾸는 여행자의 그곳, 남미〉 저자

내가 진학한 고등학교는 지방에서 공부 잘한다는 친구들이 모이는 명문이었다. 잘하는 친구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내 성적은 갈수록 애매한 수준이 되었다.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좋은 대학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래가 두려워질 무렵,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이 인생의 방향을 바꿨다. “성공 못 해도 된다. 대학 못 가도 되고, 사진이 좋아서 대학 가고 싶은 거면 그냥 아버지 사진관 물려받아서 사진만 배워도 된다.” 그 말은 모든 부담감을 덜어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고3 때 돌아가셨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신해철 2집 수록곡 ‘나에게 쓰는 편지’를 다시 들었다. 노래 자체가 어머니의 말씀 같기도 했고, 당시 8학군 출신의 명문대 학생이던 신해철의 삶도 노랫말과 같았다. 시대의 아이콘이었고, 그 시절에 이미 인생의 다양성을 이야기한 가수였다. 나는 강의 때마다 신해철의 ‘니가 진짜로 원하는 게 뭐야’라는 노래를 들려주곤 한다. 모두가 성공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잘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좋고 하고 싶은 걸 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자기 자신에 대한 확신 없이 사회가 말하는 성공만 좇으니 진짜 잘할 수 있는 것과 하고 싶은 걸 못 하게 되면서 방황하는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