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ssions of a Cost Efficient-holic

어떤 가성비주의자의 고백

지금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결코 내가 옳았다고 생각해서
쓴 것이 아니다. 당신이라면 너그럽게 읽어줄 것으로 믿고,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쓴 글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가품으로
며칠 전이었다. 둘째 아이가 입을 외투를 사기 위해 아이 엄마와 함께 시내에 나갔다. 마음에 드는 외투는 생각보다 가격이 비쌌다. 50% 할인가였지만, 내 기준에는 가성비가 나빴다. 집에 오는 길에 인터넷 검색으로 같은 옷을 더 싸게 파는 곳을 찾아보았다. 단지 몇 분만의 검색만으로 50% 할인된 가격보다 더 싼 가격에 새 옷 같은 헌 옷을 판다는 거래글을 찾았을 때 내 입가에 미소가 번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이렇게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가성비를 따져서 산 것이지만 실패한 물건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둘째를 위해 산 유모차였다. 충분히 알아보고 맘카페에서도 가성비 좋기로 유명한 제품을 샀다. 가성비를 알아보고, 최저가 사이트에서 쿠폰과 카드 할인까지 적용받아 샀지만 아이가 타지 않으려 하니 그 모든 것이 소용없었다. 중고로 팔려고 하니 산 가격의 반도 받을 수 없었다. 유모차는 내개 패배감을 안겨줬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친구들이 많이 갖고 다니는 필통을 사달라고 했다. 장난감 외에는 무얼 사달라고 하는 경우가 거의 없는 아이라 문구용품이라면 기꺼이 사주겠다는 마음으로 어떤 필통인가 검색해보았다. 아이가 말한 필통은 호주 브랜드 제품으로 가격은 3만 원이었다. 필통 가격이 3만 원이나 한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필통이 3만 원이라면 가성비가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에게 산타 할아버지께 크리스마스 선물로 달라고 기도하자고 했다. 시간을 두고 좀 더 찾아보니 같은 모양의 중국산 가품 假品이 있었다. 아홉 살 아이가 눈치챌 것 같지는 않지만, 산타의 선물이 가품이라는 것은 좀 꺼림칙해서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아직 주문은 못 했다.
부끄럽지만 나는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이 갖고 다닌다고 너도 가질 필요는 없어”라거나 “필통 가격이 3만 원으로 많은 어려운 이웃을 도울 수 있어”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나는 그런 가치보다 가성비에 대해 생각했다. 3만 원 필통은 가성비가 나쁘지만 비슷한 생김새의 1만 원짜리 가품 필통은 가성비가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친구들 사이에서 내 아이만 기죽이지 않고 싶다는 생각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나도 아이가 해달라는 것, 아이 엄마가 필요하다고 하는 것, 아이에게 필요한 학원 정도는 산타를 사기꾼으로 만들거나, 가성비 너무 따지지 않는 쿨한 아빠가 되고 싶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에는 돈이 부족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살면 된다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아이와 아이 엄마의 기를 죽이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어찌 보면 조금 지질할 정도로 가성비 따지는 남자가 되었다. 지질한 자신에 대해 느끼는 자괴감보다 아이에게 돈 많은 아빠들 못지않게 해줬다고 믿도록 만들었다는 만족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있어빌리티’
실제로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있는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 능력, 내가 가진 ‘있어빌리티(있어 보임+ability)’는 아버지께 배운 것이다. 내가 브랜드 제품에 눈을 뜬 사춘기 때 어머니는 시장에서 가품 브랜드 옷을 사다 주셨고, 아버지는 계절마다 한 번씩 백화점에서 신발과 옷을 사주셨다. 실제로 우리 집은 풍족한 편이 못 되었지만, 그 당시 나는 백화점에서 비싼 물건을 살 수 있는 우리 집이 꽤 풍족하다고 믿었다. 그건 아마도 아버지의 ‘있어빌리티’ 덕분이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30대에 이미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꽤 알려진 분이셨다. 하지만 섬유업계는 기울어가고 있었기에 겉으로 보이는 것만큼 잘나가는 사업가는 아니었다. 결국 회사는 오래가지 않아 부도가 났다. 아버지는 빚쟁이에게 시달리는 입장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오래된 차이지만 고배기량의 대형 세단을 타고, 휘발유 대신 시너를 넣으며 전국을 다니셨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 아버지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낭비가 심했다는 것은 아니다. 보통 오래된 고배기량 차는 소형차보다 쌌고, 꼭 시너를 연료로 넣었으니까. 아버지는 단지 합리적으로, 그러니까 적은 돈으로 더 많은 효과를 얻고 싶으셨던 것이다. 허름한 행색으로 다니면 아무도 자신을 믿고 투자해주지 않는다며 내가 그 차를 탈 때마다 강조하셨다.

11-08-01

돈이 나를 위협하지 못하도록
가짜 옷을 입고도 진짜인 척하고, 돈이 없으면서도 돈이 있어 보이도록 노력해왔다면 가성비를 잘 따지는 합리적인 행동일까? 아니면 남을 속이려다가 결국 자신까지도 속이는 행동일까?
아버지의 회사가 문을 닫고 집은 더 이상 ‘있어빌리티’로 있어 보이도록 꾸미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경제 상황이 나빠졌다. 대학 등록금도 내기 어려워 나는 휴학계를 내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러던 중 평소 낮은 코가 콤플렉스이던 어머니께서 콧대를 세우는 수술을 하고 얼굴에 붕대를 감고 나타나셨다. 나는 그때 명품만 가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술에도 가짜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어머니는 성형외과가 아니라 의사 면허가 없는 미용업체에서 수술을 받은 것이다. 너무 화가 난 나머지 어머니께 “무슨 돈이 있어서 그런 수술을 했냐”, “가짜 수술이나 받는 인생은 가짜 인생”이라고 소리쳤다. 그때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일 것이라 여긴 아버지가 도리어 내게 호통을 치셨다. “네가 자식이라면 먼저 많이 아프지 않느냐고 묻는 것이 도리”라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닌 척했을 뿐 사실은 돈에 안절부절못하는 사람이었고, 그래서 돈이 없어 보이지 않도록 하려고 애쓰는 사람이었지만 ‘단지 가난한 삶이었다고, 거짓된 삶이었다고, 자신을 속여온 삶이었다’고 내가 생각하지 않는 것은 바로 아버지의 이런 모습 때문이다. 아버지의 있어빌리티, 아버지의 가성비는 비록 돈에 연연하며 살 수밖에 없지만 어머니와 내가 최소한의 자존감은 잃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가족을 위해 기꺼이 더 지질해지는 선택을 했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는 부도 이후에도 돈을 기꺼이 쓰셨다. 여기에는 그 어떤 종류의 가성비도, 자신에 대한 기만도 없었다. 아픈 사람에게 돈 이전에 아픔을 묻는 아버지의 순발력이라고 할까, 지혜라고 말해야 할까, 수술한 돈이 어디서 났는지 대신 많이 아프지는 않는지 물을 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비록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아버지는 돈이 당신의 자존을 위협하지 못하도록 저항해온 것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20년 된 30만km를 달린 대형 세단에 시너를 넣으며 타셨던 아버지의 있어빌리티를 누구도 조롱할 순 없을 것이다.
돈에 흔들리지 않으려 해도 돈에 흔들릴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실존이라는 사실을 나는 아버지를 보며 배웠다. 그리고 계속되는 흔들림 속에서 한 번씩은 흔들리지 않고, 아주 가끔은 가성비 같은 것은 무시할 수 있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것도 인간이라는 존재임을 배웠다.
가난한 대학원 시절, 파트너의 유학을 지지할 만큼 나는 돈이 없었다. 파트너의 꿈과 돈 사이에서 마음이 흔들린 것은 가성비가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지질한 나일지라도 내가 나 자신을 미워하지 않는 것은 내가 돈이 충분히 많은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가끔은 돈 안 되는 일도 선택한 적이 있다는, 돈이 시키는 대로만 살지 않았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비를 피할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비가 온다고 집에만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이제는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밥상머리 훈화 레퍼토리는 나도 모르는 사이 돈에 대한 내 생각이 되었다.

나, 어쩔 수 없는 가성비주의자
비 온다고 집에만 있으면 안 되니까, 돈이 부족하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아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유명 M 스쿠터 대신 그 가격의 반도 안되는 스쿠터를 알아보고, 아이가 사달라는 S 필통은 짝퉁 제품으로 알아봤다. 내가 짝퉁 제품을 사는 것은 욕심 때문이라는 것을 알기에 이걸 두고 옳은 선택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짝퉁을 사는 인생은 인생도 짝퉁인 것일까? 돈에 흔들려서 돈으로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려고 때로는 지질하고 때로는 부끄러운 선택을 하지만, 인생을 짝퉁과 진짜로 가르는 것은 지금부터 내가 돈과 맺는 관계에 달려 있을 것이다. 비록 자주는 아니지만 돈과는 무관한, 돈이 안 되는 것이라도 선택할 수 있는지 말이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일을 줄였고, 수입이 줄었다. 그래서 3만 원짜리 필통은 선뜻 사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가성비를 따져서 아이에게 가품 필통을 사줘야 할지 고민했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가성비 떨어지는 선택을 한 대가로, 나는 날마다 가성비를 따지고, 검색을 하고, 할인 쿠폰을 모으고, 중고 제품을 알아보고, 특가 여행 상품을 알아보곤 한다.
돈과 거리를 두면 결국 돈에 조금은 매이게 된다. 돈에서 벗어나려고 하면 돈에 매이는 역설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실존이다. 그러나 실존을 넘어서는 인간 삶의 진실은 ‘돈에 매여 있는 실존’이 아닌 ‘돈에 매여 있지 않으려 얼마나 노력하며 살아왔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아이와 시간을 보내기로 한 가성비 떨어지는 선택을 한 것에 후회가 없는 이유다. 그리고 행여나 내가 내 아버지에 대해 지금 쓰고 있는 것처럼, 언젠가 내 아이도 아빠의 지질함과 노력과 선택을 부디 약간의 사랑과 약간의 고마움과 약간의 가련함을 가지고 해석해주는 날이 온다면, 그것은 가성비 차원에서도 꽤나 괜찮은 일이 되지 않을까?
가성비 떨어지는 선택을 하고도 가성비가 떨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드는 걸 보면, 나는 정말 어쩔 수 없는 비용 대비 효과를 좇아 살아가는 가성비주의자인가 보다.

03-02

권영민

서울대학교에서 서양철학을 전공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공동체인 ‘철학본색’을 운영하며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숙원하던 음악 공부를 위해 유학길에 오른 아내를 대신해 아들 선재를 키워낸 값진 경험을 육아 일기로 기록했다. 그 기록을 엮어 《철학자 아빠의 인문 육아》라는 책으로 출간했다.
6년 터울로 태어난 둘째 선율이 덕분에 다시 육아 전쟁을 치르고 있지만, 아이 둘이 함께하는 완전한 삶을 만들어보겠다고 매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