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fessions of a Zoo Veterinarian

어느 동물원 수의사의 고백

쇼윈도의 보드랍고 귀여운 토끼에게 완전히 마음을 빼앗긴 아이는
오늘도 간절한 눈빛으로 나를 본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12-01-01

집토끼의 보편적 미래
토끼를 가지고 또 한 가족이 찾아왔다. 아빠는 조심스레 토끼를 품에서 꺼냈다. 전화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런 줄 몰랐다. 대부분은 미니 토끼인 줄 알고 펫 숍에서 사서 아파트 베란다의 철창에서 키우다가 토끼장을 가득 메울 만큼 토끼가 커버리면 여기저기 찾다가 동물원에 전화하고 주로 엄마들이 케이지에 넣어 가져온다. 약간 서운한 듯한 표정을 짓지만 대개는 획 놔두고 그냥 쌩 뒤돌아 가버린다. 사실 그러면 우리도 편하고 그들도 편했을 것이다. 이곳에서 그런 토끼들의 운명은 그냥 다른 토끼들과 큰 마당에서 잘 어울리며 천수를 누리는 것이다. 마치 귀여움을 잃어 버려진 토끼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다. 상처가 있으면 치료해주고 정 못 견디는 토끼들은 따로 키우는 정도다. 이전에는 수많은 기증 요청을 모두 거절했다. 규모를 감안해서 딱 30마리까지만 기증받기로 결정했는데, 점점 마릿수가 늘어 거절할 시점이 다가왔다. 아파트에서 기르던 그 많은 어른 토끼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아무튼 그 가족은 부모를 비롯해 아이의 코트도 토끼털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고, 토끼의 원주인인 듯한 초등학생 딸아이는 차마 발길을 떼지 못했다. 토끼도 그랬다. 새끼 때부터 인간에게 길든 집토끼는 다른 토끼 무리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식구들은 모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좁은 아파트에서 냄새가 너무 나고 토끼가 답답해해서 더 이상은 키우기 힘들다는 게 이유였다. 그 안타까움은 알지만 일단 분명히 말씀드리고 토끼를 받았다. 이 시간 이후 이 토끼는 완전히 잊으라고. 이곳 동물원에서는 방목을 하고 원래의 야생 무리 생활로 돌리는 게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그들은 내 말을 이해하는 듯했다.
진한 이별 장면을 연출하던 가족이 돌아간 후 토끼는 무척 힘들어했다. 늘 한쪽 구석에서 지내는 외로운 토끼가 되었다. 2주일쯤 지난 어느 날 그 가족에게 전화가 왔다. 토끼가 너무 힘들어 보인다고. 토끼를 보고 싶어 왔는데 다른 애들한테 쫓겨 다니고 살도 빠지고 털도 더러워진 것 같으니 따로 관리 좀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후에도 주기적으로 전화가 왔다. 나중엔 동물 학대범으로까지 몰릴 뻔했다. 정말 생각 같아선 그대로 돌려주고 싶었다. 그렇게 석 달 정도 지나자 그들은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그 토끼도 존재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무리에 스며들었다.

반려동물을 키우며 부모가 겪는 일
이런 풍경이 펫 숍에서 작고 예쁜 토끼를 샀을 때 1년 후 겪게 되는 흔한 미래다. 이들은 예상보다 빨리 성장하고 금세 귀여움을 잃는다. 햄스터, 고슴도치, 이구아나, 열대어, 거북이, 작은 뱀, 열대개구리까지로 이어진다. 대형견은 강아지 때 품종이 좋은 작은 개보다 더 사랑스럽다. 마치 곰돌이 푸 같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더 이상 좁은 아파트에서 키울 수 없는, 감당하기 힘든 존재가 된다.
반려인 1000만 시대, 주변 많은 가정에서 반려동물을 키운다. 때로 어떤 아이는 유행하는 장난감처럼 반려동물을 곁에 두고자 할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든 아이가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 작은 생명체에 호기심을 보이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이를 위해 무엇이든 할 준비가 된 부모라도 이 경우는 선뜻 결정하지 못한다.
이미 부모는 경험치로 동물을 집에 들이는 일이 결코 가벼운 문제가 아님을 안다. ‘사주면 결국 우리가 돌보고 아이는 예뻐만 하겠지, 반려동물에게 너무 돈과 시간을 뺏기는 건 아닐까, 똥오줌은 누가 치우고, 크면 감당하기 힘들 텐데 한 마리 더 사달라고 하지 않을까, 치료나 훈련은 어떻게 감당한담?’ 생명에 대한 책임감 앞에서 부모는 두려움을 느낀다.
한편 아이는 천진한 얼굴로 “내가 다 잘 돌볼 테니 걱정하지 말고 그냥 사주세요” 한다. 이런 복잡한 따로 계산 때문에 안 사주고 버티는 부모는 나쁜 부모가 되기 쉽고, 어떻든 아이에게 떡 안겨주고 차분히 뒷일을 감당하는 부모는 좋은 부모가 된다. 결국 의기소침해하는 아이 앞에서 부모는 결국 항복하고 만다. 그리고 1~10년 사이 앞에서 얘기한 갈등들이 발생하고, 또 한 마리의 집토끼가 이곳에 올지 모른다. 물론 이보다 더 견디기 힘든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사람에 비해 수명이 짧고 질병이 잦은 동물은 천수를 다하더라도 15년 정도다. 질병과 죽음은 아이에게 크나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이 또한 부모가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런 전제는 모두 기우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수많은 개와 동물을 집에서 키워냈다. 때론 온 감정을 다 소모하기도 했고 생로병사에도 시달렸다. 청소년기에 친구 같은 동물이 아파서 죽는 경험이 나를 수의사의 길로 인도하기도 했다. 부모님은 걱정하시면서도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내버려두었다. 대개 나 혼자 그 슬픔과 기쁨을 감당해냈다.
때론 정말 동물을 가족처럼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들, 또 TV에 나와 사람과 동물의 교량 역할을 하는 동료 수의사들을 보면 부끄럽기 짝이 없다. “나도 저들처럼 동물에게 완벽한 감정전이가 된다면 수의사를 더 잘할 수 있을 텐데” 하다가도 “아니 그러면 아마 수의사는 못 했을 거야. 어떻게 저런 마음으로 만날 죽고 아픈 걸 견딜 수 있겠어. 그건 모순이지” 하게 된다. 내 행동에 거의 간섭을 안 하시던 부모님에게 한때는 서운한 적도 있었지만, 그 위치가 되고 보니 모든 걸 훤히 알면서도 짐짓 모른 척해주신 부모님의 심정을 알 것도 같다.

도시에서 모두의 반려동물 만나기
나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동물원에 들어온 이후 집에서 동물을 아직 키우지 않는다. 키우게 되면 누구보다 훨씬 잘 돌볼 것이다. 하지만 그런 선택을 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의 생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소유 동물이 아닌 도시에서 함께 살아가는 모든 동물을 내 반려동물로 만들고 싶다.
아이들이 가끔 집에서 키우는 데 관심을 가지더라도 일단 설명을 한다. “아빠는 동물이 마당이나 야생에서 사는 게 더 좋아 보여. 좁은 곳에 살면서 사람을 동료로 착각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다고 생각해.” 일단 지금까지는 내 진심이 통한 것 같다. 대신 아이들을 동물원, 수족관, 아파트 고양이들, 동네 개들, 아침마다 지저귀는 새들, 유기동물 보호소, 반려동물을 키우는 친구 집에 열심히 데리고 다니며 그들과 함께 쓰다듬고 놀아주는 걸 주저하지 않는다. 펫 숍이나 테마 체험장, 서커스처럼 동물을 상업적으로 사고팔고 괴롭히는 곳은 피한다. 왜곡된 동물상을 심어줄까 두렵기 때문이다.
동물은 인간의 동반자이며 도시 생태계의 구성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도시 지척에서 우리 주변에 있지만 미처 알아보지 못한 다양한 반려동물을 만날 수 있다. 이런 학습 장소는 동물원이든 친구 집이든 공원이든 책이든 어디나 널려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이야기한 건 동물원 수의사인 내 자신의 반려동물에 대한 관점일 뿐이다. 판단은 모두 각자의 몫이다. 주로 아이들 몫이기도 하다. 그런데 반려동물을 키우는 데 앞서 변치 않는 선행 조건이 있다. 내가 또 내 아이가 반려동물과 함께 겪을 이 모든 과정을 함께 이야기 나눠보는 것, 그리고 그것을 겪을 준비가 되었는지 시간을 갖고 차분히 생각해보고 판단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 내가 어떤 동물을 왜 키우고 싶은지, 어떻게 관리해야 할지, 병이나 죽음을 맞이할 준비는 되어 있는지를 말이다. 그보다 앞서 무엇을 소유하고 싶을 때 가장 신중하게 발품을 팔아야 할 것이 바로 동물(생명)이 되어야 함은 어쩌면 너무나 분명한 일이다. 이 글 역시 그 발품의 작은 출발점이 되었으면 좋겠다.

12-01-02

최종욱

현재 광주 우치공원 동물원 수의사. 오직 동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에 동물원을 일터로 선택했고, 국내에서는 드물게 야생동물 수의사로 자리 잡았다. 이후 17년간 700여 마리의 동물 곁에서 함께 즐거워하고, 지루해하고, 아파하고, 기뻐하며 동물원 수의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고 있다. 《동물원에서 프렌치 키스하기》, 《아파트에서 기린을 만난다면?》을 지었고, 어린이 책 작가로서 《동화 속 동물들의 진실게임》, 《호량이야, 사자랑 싸우면 누가이기니?》 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