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hers with Self-Caring Abilities

자기 돌봄 가능한 아빠들

성인이라면 의식주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줄 알아야 한다.
이는 성별을 떠난 상식이다.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들 줄 알고,
자기 빨래는 자기가 하며, 자신이 머무는 공간을 능동적으로 관리하는 다섯 아빠. 상식을 실천하는 이들의 모습이 별나 보인다면 그건 우리 사회가 그만큼 남성을 가사 노동에서 배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Don’t Expect Men to be Useless in the Kitchen
주방에서의 무능을 당연시하지 않기
최환희 / 헤이그 대학교 국제경영학과 전임강사 / 38세
10-14

최환희는 남자든 여자든 성인이라면 자신 있게 만들 수 있는 반찬 세 가지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그래야 부끄럽지 않은 일이라고 믿는다. 이제 막 성인이 되는 어린 지인들에게 요리책을 선물할 정도로 확고한 신념이다. 어릴 때 식사 시간에 남자는 가만히 앉아 있고, 여자만 분주하게 주방을 오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요리하는 그에게 과도하게 쏟아지는 칭찬도 의아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했어요. 가사 노동을 온전히 이해하는 유일한 방법은 하루의 처음부터 끝까지 집안일을 적어도 한 달 이상, 1년 정도 해보는 거예요. 몇몇 순간의 경험으로 생색내는 것 말고요. 그러면 집안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 거예요.”
그렇게 힘들기 때문에 다들 주방을 멀리하고 가사 노동에서 도망치려 하는 것 아닐까? 최환희는 이렇게 답한다. “요리, 주방 일, 가사 노동은 힘들지만 깨끗하게 정리 정돈된 싱크대, 바삭 마른 행주, 깨끗하게 닦인 유리창 같은 걸 보면 마음이 뿌듯해요. 하루의 시작과 끝을 고요하게 비워내는 느낌이랄까요? 자신이 사는 공간을 시간과 정성을 다해 가꾸고 깔끔하게 정리하며 사는 것이 결국 스스로의 내면을 정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저도 아내도 그렇게 믿어요.”

“요리나 주방 일을 모른다는 건 삶의 큰 결핍이라고 감히 생각해요. 

꼭 거창한 메뉴일 필요는 없어요. 내 입에 들어가는 음식, 내 가족 입에 들어갈 음식,
좋아하는 사람들 입에 들어갈 음식을 자신 있게 차려낼 수 있다면

좋은 삶의 기술이 됩니다.”
When the Father is the Primary Caregiver
아빠가 주 양육자일 때
전창익 / 카페 ‘파인딩 포레스트’ 운영 / 40세
“가족은 같이 있지만 같이 있는 삶 속에서 각자의 삶이 있다고 생각해요.
제게 제 삶의 그림이 뚜렷하게 있는 것처럼 제 아내와 아이도 각자의 삶이 있는 거죠.
아빠 역할, 엄마 역할이라는 고정관념 안에 저희 가족의 삶을 가둬둘 생각은 없어요.”
10-06

아이를 남의 손에 맡기고 직장 생활을 하던 전창익 부부는 아이가 세 살 되던 무렵 가족의 미래와 육아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슷한 연차의 사내 커플로 만나 가정을 꾸렸기에 커리어에 대한 고민은 어느 한쪽이 덜하지 않았다. 오랜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은 아내가 회사에 남는 것이었다. “둘 다 패션 MD였어요. 회사 내 여성 비율도 높은 편이었고, 당시 상황이나 개인의 성향, 잠재능력 등을 고려했을 때 아내 쪽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거죠.”
전창익의 하루는 여느 주부와 같다. 직장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 아내가 먼저 출근하고 나면 7시 반쯤 일어나 전날 대충 끝내놓은 아이의 등원 준비를 한 번 더 확인한다. 아이를 깨워서 아침을 먹이고 셔틀버스에 태워 보내면 집으로 돌아와 어질러진 집을 대충 정리한 뒤 출근한다. 퇴근 시간이 일정치 않은 아내 대신 퇴근 후에는 꼭 한 시간 이상 아이와 이야기하고 놀아준다. 그러다 보니 아들은 자연스레 아빠를 더 찾는다.
전창익은 아이에게 남자와 여자를 구분 지어 이야기하지 않는다. 우선 자신이 사회 통념의 ‘성 역할’에서 살짝 비껴나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아이에게 남녀의 차이를 설명해야 할 때가 있어요. 문제집에 나오기도 하니까요. 그럴 땐 단지 ‘남자가 덩치가 더 커서 힘이 조금 더 세다’고 말해줘요. 그 이상 다른 점은 없으니까요.”

10-07
An Equal Couple’s Co-housekeeping Experiment
평등 부부의 공동 가사 실험기
이민형, 장보영 / 작곡가 겸 프로듀서, 작가 / 35세
10-09

이민형·장보영 부부는 모든 일을 공평하게 나눠 처리하려고 노력한다. 육아 노동의 지분이 높은 아내 대신 설거지와 집 안 청소, 쓰레기 분리수거 등 소모적인 일은 이민형이 전담한다. “5:5는 확실히 아니에요. 제가 잡다한 집안일을 한다고 하지만 여전히 60~70%는 아내 몫이에요. 주변에서 좋은 남편이라는 말을 하면 아내가 억울하겠다는 생각이 들죠.”
결혼 초기, 두 사람 역시 성 역할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TV와 현실을 통해 자연스레 자리 잡은 무의식이 ‘엄마’는 움직이고 ‘아빠’는 앉아 있는 상황을 재현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결혼하고 스스로 놀란 게 저의 기본값이 가만히 앉아 있는 거더라고요. 식사 중에 밥이 더 먹고 싶으면 아내가 주길 기다리는 거죠.”
서울 생활을 접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제주도로 내려오면서 두 사람은 ‘공동육아 시대’를 맞이했고, 의지할 사람이라곤 둘밖에 없는 현실 속에서 모든 자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결혼을 통해 가족이 늘고 해야 할 일도 늘었는데, 모든 걸 한 명이 한다는 건 이상한 거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면 상대는 몇 배로 힘들게 일해야 해요. 결혼했다는 건 이 사람이 내 인생에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건데,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요.” 부부는 ‘주인 의식’이라는 표현을 썼다. 육아에도 가사에도 나의 일이라는 주인 의식을 갖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말이다.

10-08
A Double Duty Father
양성성을 지닌 아빠의 교육
박현수 / 카페 ‘나비 정원’ 운영 / 61세
10-10

박현수는 엄마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고 사진을 찍는 딸 셋을 두었다. 그의 딸들이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이란 주방에서 요리하고 바닥에 둘러앉아 공기놀이를 함께 하던 친근한 얼굴이다. 그의 집에서 엄마 일이라는 건 따로 없었다. 남자는 나가서 돈 벌고 여자는 집에서 집안일하고 아이 키우며 알뜰하게 살림해야 한다는 사고가 가장 평범하게 받아들여지는 시절이었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는 맞벌이를 했으니까 살림하고 요리하는 게 아내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돌아가신 아버지 역시 부엌에 있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보여주셨거든요. 우리 집은 명절에 남자가 설거지했어요.”
딸 셋의 아빠로서 불합리하거나 억울한 일이 없던 것은 아니다. 둘째가 네 살 무렵 목욕탕에 데려갔다 ‘여자’를 데리고 남탕에 왔다고 큰소리치는 사람과 싸운 일이나, 딸이 한 명을 뽑는 대기업 취업 최종 면접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떨어진 것 등 크고 작은 사건은 늘 있어왔다. 그 순간마다 박현수는 딸을 위해 아빠로서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했다. “여자라는 이유로 피해를 보는 경우 꼭 당한 만큼 갚아줘야 한다고 가르쳤어요. 우리 집 가훈이 ‘맞지 않는다. 맞은 만큼 때려라’였죠. 책임질 일이 생기면 그건 아빠가 한다고 했지.” 박현수는 딸들에게 여전히 말한다. “기죽지 마라. 그리고 불평등을 그냥 당하고 있지 마라.”

“예전에 ‘KBS 보도본부24시’ 라는 자정 뉴스가 있었어요. 어느 날, 앵커석에 여자 아나운서가 앉았더라고요. 그때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여자 앵커가 남자와 나란히 앉아서 멘트를 하는 건 정치적으로나 사회 정서상 있을 수 없는 시대였으니까. 그게 그렇게 멋있어 보일수가 없는 거야.
‘여자가 저렇게 당당할 수 있구나! 내 딸도 저렇게 멋진 어른으로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Freedom outside the Man Box
맨박스 바깥의 자유
서한영교 / 시인, 하자센터 교사 / 35세
10-12

문학 소년이던 서한영교가 고등학생이던 2001년, 문단 내 성폭력 문제가 터졌다. 고 박남철 시인이 한 여성 문인을 향해 성적 비하와 욕설을 담아 시를 쓰고, 창작과비평사 게시판에 게재해 커다란 논쟁이 벌어진 것. 서한영교는 동경하던 시인의 성적 폭언에 큰 충격을 받았다. 사건 직후 여성 시인들이 주축이 돼 《페니스 파시즘》이라는 책을 출간해 문단 권력의 구태를 고발했다. 서한영교는 이 책을 읽고 젠더 폭력 문제에 처음으로 눈떴다.
인식의 충격이 한 번 오니 시야가 열렸다. 여성에게 가하는 폭력이 의식할 수 없을 만큼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사회 현실이 보였다. ‘이 사회에서 남자로 자란다는 건 가담하지 않아도 연루되는 일이 생기는 것’이란 자각을 했다. 성 역할을 구분해 차별 구조를 공고히 하는 젠더 박스에서 벗어나야겠다고 다짐했다.
먼저 동성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 얻으려고 일부러 거친 말을 사용하고, 센 척하는 제스처를 취하던 행동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성 친구와 데이트를 할 때 돈을 더 많이 내야 할 것 같다는 스트레스와 자격지심에서 벗어나려 노력했고, 상대의 마음을 공감하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썼다. 틀에서 벗어나기 전엔 약간 두려웠는데, 막상 벗어나니 아무런 문제가 벌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홀가분했고, 심지어 연애도 더 잘하게 됐다. ‘성 역할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는구나. 다 학습된 거였구나.’ 이런 걸 확인한 순간 틀이 깨졌다.
하지만 결혼 전에는 살림이나 집안일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많은 20 대 남녀가 그렇듯 원룸, 투룸, 옥탑방, 반지하방... 수많은 방을 전전했다. 밥은 밖에서 사 먹고, 빨래는 일주일에 한 번 했다. 방은 잠깐 들러 잠만 자는 공간이었다. “그렇게 방만 가져본 사람은 손끝의 기술을 잃어요. 집은 방과 달라서 내 손길이 가야 하고, 눈길이 가야 하며, 발길이 닿아야 해요. 그런 시간 끝에 어떤 길이 생겨서 밖에 나오면 ‘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감각이 생기는 거죠.” 결혼과 동시에 요리책을 뒤져가며 요리 공부를 하고 살림 요령도 익혔다. 집을 길들이는 방법을 배워갔다.
“저는 음악을 좋아하는데, 음악이 이루어지려면 일단 비트가 필요해요. 비트는 동일한 간격을 지닌 소리의 반복을 뜻해요. 여기에 강약이 더해지면 박자가 되고, 거기에 멜로디가 붙으면 음악과 노래가 되지요. 저는 매일 반복되는 살림이 삶의 비트를 이룬다고 믿어요. 아들 서로가 태어난 뒤 동일한 간격의 시간으로 매일 같은 일을 하고 있어요. 6시에 일어나 아이에게 아침을 먹이고 청소기 돌리고 바닥 닦고 아내와 먹을 아침밥을 준비해요. 9시 반에는 배턴이 아내에게로 넘어가 아내가 이유식을 준비하고 다른 집안일을 하죠. 물론 이런 반복이 갑갑한 순간도 있어요. 하지만 한번 몸에 익숙해지면 이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과 육아를 한다는 건 이제 나만 생각하면서 살 수 없다는 한계를 받아들이는 일이에요. 마음대로 나가 놀 수 없고, 마음대로 담배 피울 수도 없죠. 하지만 그렇게 공간의 한계, 시간의 한계를 정해놓고 그 안에서 동일한 비트로 삶을 꾸려가는 안정감과 편안함이 좋아요. 제 삶은 이제 결혼 전과 다른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어요.”

10-13
“저는 아이와 함께 ‘시인의 감성과 시민의 감각을 지니고 시시한 일상을 잘 가꾸며 사는 사람’으로
커나가고 싶어요. 세계의 글썽거림을 알아차리고 타인에 대한 감각을 잃지 않는 사람,
다양한 문제와 이슈가 엮인 사회에서 어떤 입장을 취할지 끊임없이 고민하는 사람, 무엇보다 위대한 사람이 되려는 욕심보다 요리나 청소 같은 삶의 작은 단위부터 잘 가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이 스카프는 제가 직접 목화를 길러 유기농 면을 짜 손수 뜨개질한 것이에요.
이런 작은 일들이 삶을 반짝이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