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owing on the Road

길 위에서 자란다

오소희가 처음 여행을 떠난 때는 중빈이 세 살 되던 해였다. 갓 36개월을 지난 아이와 단둘이 이역만리 먼 곳으로 떠난 여행은 쉽지 않았다. 불안함과 두려움을 떨쳐내는 것부터 현지에서 의식주 문제를 해결하는 것까지 온전히 엄마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동양의 작은 나라에서 온 모자와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다. 사람은 결국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그때였다. 터키부터 아프리카까지, 이들을 한 뼘 성장시킨 것은 바로 나눔의 여행이었다.

14-10-01

중빈 군이 세 살 때부터 함께 여행을 시작했어요. 한국 사회에 염증을 느꼈다고 설명했는데, 여행을 시작한 계기와 당시 상황이 궁금해요.
(소희) 처음 결혼하고 남편의 군 복무 때문에 계룡산 부근에서 3년간 산 적이 있어요. 사회 정규 코스에서 본격적으로 이탈한 시간이었죠. 그 전에는 대학과 취업이라는 획일적 목표 안에서만 달렸으니까요. 자연 속에서 지내면서 내 삶을 돌아보게 됐어요. 항상 나만 돌보기도 버거웠는데 그제야 타인을 돌볼 수 있을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를 갖고 싶었고, 그때 중빈이를 임신해서 서울로 올라왔지요. 당시 저는 중빈이에게 한글이나 숫자를 가르치는 것보다 함께 산책하러 가고 달 보러 가고 비 맞으러 다니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중빈이가 만 세 살이 되니까 또다시 주변 간섭이 심해지더라고요. “한글나라 안 시키니?”, “미리 조기교육하는 게 좋아”, “너는 애를 이상하게 키운다” 등등. 계룡산 시절을 거치면서 진짜 저를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돌고 돌아서 제자리에 왔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 순간 의문이 들더라고요. ‘정말 다들 아이를 이렇게 키우는 걸까?’ 그때 터키로 한 달 동안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어요. 정확히 중빈이가 36개월이 되었을 때였어요.

터키를 시작으로 레바논, 시리아, 라오스, 미얀마,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다양한 곳을 다녔어요. 긴 여행이었는데 중빈 군은 힘들지 않았나요?
(중빈) 세 살부터 열두 살때까지였어요. 엄청 힘들었죠. 그런데 만약 지금 갔으면 더 힘들다고 느꼈을 것 같아요. 어릴 때는 힘듦에 대한 인지가 덜하잖아요. 그리고 당시 여행에서는 제가 너무 어리다 보니까 직접 한 것은 없고 어머니께서 거의 다 해결해주셨으니까요.

아이와의 여행인데, 조금 더 편안한 국가로 떠났을 수도 있었을 텐데요.
(소희) 우리 여행은 무조건 세 가지 사항을 반영해요. 저렴한 숙소, 저렴한 교통수단, 저렴한 음식. 그러면 깨끗하고 반질반질한 곳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있는 곳으로 향하게 되거든요. 대체로 GDP가 낮은 국가인데, 보통 집에 뭐가 없으니까 아이들이 모두 나와 길 위에서 놀아요. 그러면 중빈이는 그 아이들과 같이 놀죠. 그동안 저는 옆에서 부모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이들의 진짜 생활을 만나고요. 터키에서 보낸 첫날, 트램을 타고 이동하는데 고개를 돌리면 아이가 이 무르팍, 저 무르팍에 가 있는 거예요. 자리가 하나 남으면 앉으려던 아저씨가 다시 일어나서 양보해주기도 하고요. 무수한 배려와 보살핌이 그곳에 있었어요. 처음 떠날 때 많은 유형의 삶을 보고 싶었는데, 역동적으로 살아 숨 쉬는 삶의 단면들을 마주할 수 있었죠.

여행을 통해 학교에서 전해주지 않는 것, 경험할 수 없는 것을 아이들이 누리기 위해 부모는 어떤 자세를 갖춰야 할까요?
(소희) 페어 플레이를 하는 거죠. 보통 부모와 아이의 관계가 민주적이지 않은 경우가 많으니까, 이게 어렵거든요. 저도 중요하고 아이도 중요해서 둘 다 만족스러운 하나를 찾고 싶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아이도 그곳에 가서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해요. 그럼 아이는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하고, 부모는 설명하고 설득하는 법을 배워야겠죠. 세 살짜리 아이는 말이 잘 통하지 않아요. 그런 경우엔 눈높이에 맞춰 정보를 제공해줘야 하고요. 교통수단에 한창 관심이 많을 때였거든요. 트램을 무척 타고 싶어 했는데 그렇게 계획을 짜고 나니 더욱 흥미를 갖더라고요. 실제로 터키에서 하루 스케줄을 트램 일곱 번 타는 걸로 짜기도 했어요. 다음 여행을 계획할 때 “터키에서는 트램을 탔지. 여기서는 무엇을 할까?” 하면서 아이도 자기만의 여행 히스토리를 쌓아가는 거예요.

여행의 주도권을 아이와 부모가 공평하게 갖는 거네요.
(소희) 무엇보다 부모에게는 다른 삶의 방식을 궁금해하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봐요. 우리는 탐험이 필요한데 탐험하려 하지 않거든요. 탐험은 여러 가지 불편함을 동반하니까요. 단순히 오감을 만족하는 여행과는 다른 거죠. 여행하면서 호기심과 궁금증을 충족하는 기쁨, 깨달음의 기쁨이 커야 아이도 만족하거든요. 여행을 통해 무엇을 배우라고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스스로 질문하도록 도와주는 거죠. 어떤 것이 내 삶에 들어와야 하는지 자문하고, 그 질문에 답을 줄 만한 곳에 다다르는 과정을 부모가 함께하고요. 호기심을 갖는 자세를 아이들이 배울 거예요. 부모만이 원하는 여행은 불균형일 수밖에 없어요.

당시 중빈 군은 어린 나이였어요. 이 시기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은 나중에 커서 기억하지 못하니 아깝다 여기는 사람도 있어요. 여행이나 배움이 결과물 없이 경험으로 그치는 데 대한 아쉬움일 거예요.
(소희) 본전에 못 미치면 아까워하는 경향이 있죠. 많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 중 하나는 그 순간을 향유하는 힘이에요. 여행을 가서 그 시간이 좋으면 충분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 무엇을 뽑아서 보탬이 될지를 고민하는 것 같아요. 그게 사진이든, 학교에 제출할 과제가 되었든 성과물이 무엇일지 생각하는 거죠. 그러면 어른이 아이들에게 좋을 거라고 짐작하는 여행이 되거든요. 아이들이 원하는 게 아니고요.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교육적으로 도움이 될 만한 것만 고르는 거죠. 사춘기 아이들이 BTS 승합차가 지나가는 걸 보고 싶어 하면 그걸 해줘야 해요. 여행을 통해서 자신의 바람이 성취되는 걸 느끼잖아요. 그러면 그다음 여행도 마음껏 즐길 준비를 하거든요.

어려움도 있었을 것 같아요.
(소희) 여행 운도 좀 따라야 해요. 저는 사전에 예약하거나 리서치하는 편은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 여행길에서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여행 내용이 완전히 달라지죠. 이런 즉흥성은 인내심을 키워주기도 해요. 어디를 갔는데 때 아닌 우기였다거나, 그나마 계획한 것을 하나도 못 하는 날이 있을 수도 있고요. 좋을 거라고 마음먹고 갔는데 별로일 수도 있죠. 그런데 그게 또 생각할 기회를 주거든요. 저는 그런 게 좀 능숙한 편이기도 하고요. 주어진 상황에서 의미를 찾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 같아요. 예전에 라오스에서 급하게 숙소를 구했는데 침대 뒤편으로 개미 천지인 거예요. 게다가 뜨거운 물이 안 나와서 찬물에 끓는 물을 섞어보려고 하는데 포트가 하도 오래돼 도저히 물이 끓을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이런 일이 생기면 오히려 마음이 아주 차분해져요. 왜냐? 물이 하도 늦게 끓으니까. (웃음) 근데 돌이켜보면 느리지만 찬물에 씻지 않았고, 개미가 있었지만 개미는 오로지 제 갈 길로만 가거든요. 오히려 개미의 영역을 제가 침범한 셈이지요. 어제보다 오늘이 못하다고 비교하는 마음은 좋은 일이 벌어지도록 충분히 기다리지 못하게 만들어요. 조바심이 생기거든요. 예기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든 저 자신을 생각하고 성숙하게 만드는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해요.

아이와 떠난 한 달간의 여행, 남편과는 어떻게 의논하고 협의했는지 궁금해요.
(소희) 당시 남편은 회사를 다니고 있었어요. 휴가는 길어봐야 일주일이었죠. 매달 10만 원씩 여행 적금을 붓고 있었는데, 그게 좀 모이자 여행 이야기를 꺼냈죠. 저는 가고 싶다고 하고, 남편은 어렵다고 했어요. 그렇다면 우리 먼저 다녀오겠다고 말했지요. 기다려봐야 한 달 휴가를 낼 일은 없을 거고, 이러다간 영원히 못 갈 것 같았거든요. 아이가 너무 어려 못 간다는 이유도, 언제가 다 큰 건지 기준이 명확하지 않잖아요. 여덟 살이면 다 컸나? 여덟 살도 사실 어리잖아요. 내가 괜찮다고 할 때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저도 걱정이 많아서 현지에 가서 아이가 아프면 어쩌지 하고 고민했는데, 그때 남편이 말하더라고요. “언제라도 그냥 돌아오면 되지.” 남편이 회사를 그만둘 때 저도 비행기표부터 끊어줬어요. 그만두기까지 얼마나 마음고생이 많았겠어요. 그도 조직을 떠나 자기 자신과 대면할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그 완급을 조절해주지 않으면 인간은 절대 성장할 수 없거든요. 그렇게 남편은 홀로 히말라야에 다녀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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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빈 군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에는 여행을 위한 시간을 어떻게 확보했나요?
(소희) 중빈이가 1학년 때에는 공립 초등학교를 다니다가 2학년 때 대안학교로 전학했어요. 그때 방학이 한 달 있어서 그 기간에 떠나곤 했어요. 남미에 갔을 때에는 아직 갈 곳이 너무 많이 남았길래 선생님께 이메일을 보냈어요. “선생님, 남미 학교가 많이 크네요. 조금만 더 이 학교를 다닐게요” 하면서요.(웃음) 최소 출석 일수는 맞추는 편으로 했고, 선생님도 조금 봐주시기도 했죠.

열두 살이 되던 해 대안학교에서 국제학교로 옮긴 건 중빈 군의 결정이었다고 들었어요.
(중빈) 대안학교에서 여러 가지 생각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었어요. 수학을 예로 들면 단순히 공식을 달달 외우는 게 아니라, 계속해서 “왜?”를 묻게 되니 지금의 사고방식에 긍정적 도움이 됐어요. 그런데 제가 일반 공립학교를 다니다 옮겨서 그런지 자유로운 수업 방식이 어느 시기에 저랑 잘 맞지 않다고 느꼈어요. 공립학교에 다니는 다른 친구들을 보면서 학습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공립 초등학교에 다니는 애들이 우리보다 더 많은 양의 공부를 한다는 것을 대안학교 친구들끼리 얘기하기도 했고요. 학년이 올라갈수록 이런 차이가 막연한 두려움으로 다가오기도 했죠. 대안학교 학생이라면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은 하는 것 같아요. 특정 교육 시스템이 옳다고 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맞는 환경과 분위기를 찾아야 하는 거죠. 건너 듣기로 국제학교는 자신이 듣고 싶은 수업을 필수와 선택으로 나눠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무조건 시험을 위해 주입식으로 공부하도록 강요하기보다는 학생들끼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하고요. 무엇보다 저는 영어가 편하기도 하고 무척 좋아하는데, 국제학교에서 영어를 주요 언어로 쓰는 게 마음에 들었어요. 그러니까 국제학교는 공부 위주의 공립학교와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대안학교 사이에서 제가 찾은 협의점인 거죠. 저에게 잘 맞았어요.
(소희) 여러 여행을 통해 아마도 대상 너머를 보는 눈을 갖추게 된 것 같아요. 그래서 주도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싶어 하더라고요. 아마도 자기가 살아온 삶의 방식과 가장 싱크로율이 높은 학교였던 것 같아요.

‘world schooling’은 여행을 떠나서 책이나 자료가 아닌 현실 세계의 경험을 통해 학습하는 개념이에요. 두 분의 여행이 이 말과 언뜻 비슷해 보이기도 해요.
(중빈) 저 자신도 여행을 다닌 시간에서 굉장히 많은 영향을 받았어요. 모든 사람이 자랄 때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잖아요. 너무 어릴 때에는 정확한 상황이나 장면, 시간의 순서가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분명 때마다 깨달은 게 있어요. 그리고 그 깨달음을 토대로 지금의 저로 성장했고요. 나눔에 대한 개념도 여행이 아니었으면 지금만큼 알거나 직접 실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소희) 중빈이가 남미를 다녀온 열 살 때 쓴 일기에도 나와 있어요. 일하는 또래 아이를 보면서 세상은 불공평하다고요. 여행을 다니면서 배울 수 있는 것이 학교에서 배우는 것보다 훨씬 살아 있고 생생한 것이었을 거예요.

나눔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해요. 발리의 고아원도 정기적으로 방문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중빈) 우붓의 ‘페르마타 하티’ 고아원에 처음 간 건 제가 중학교 1학년 때예요. 당시 그곳 아이들 사이에 구전으로 내려오는 노래는 있었지만, 그걸 체계적으로 표현하는 수단은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간단하게 음계와 음악 요소를 가르쳐줬거든요. 그걸 배우면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굉장히 넓어지니까요. 그 이후에는 후원자에게 악기를 받게 되어 밴드를 형성했어요. 호텔에서 크리스마스 공연을 하면서 돈을 벌기도 했고요. 1년 뒤에는 실력이 일취월장해서 발리 내 밴드 경연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어요. 아주 빠르게 성장한 거죠. 가장 마지막으로 간 게 올해 6월이었는데, 저는 바이올린을 켜면서 같이 연주를 했어요. 한국 노래도 같이 불렀고요. 김광석의 ‘먼지가 되어’ 같은 곡들요.

여행을 떠나 봉사를 하는 ‘voluntraveling’을 직접 시작한 것도 그 일의 연장선인 건가요?
(중빈) 음악을 가르칠 당시에 중1이었는데, 제가 가르친 걸로 밴드 활동을 시작한 거잖아요. 물론 제가 한 일은 미미하지만요. 그런데 만약 전문가들이 온다면 얼마나 큰 변화를 줄 수 있을까, 생각이 들더라고요. 다른 분야의 길도 함께 열어주고 싶어서 여행 중 여유가 되는 분들의 시간을 빌리고 싶었어요. 저는 중간에서 스케줄만 짜주고, 하루 이틀 정도 사람들이 자신의 지식 기부를 할 수 있도록 연결해주는 거죠. 물론 ‘내가 뭘 가르칠 수 있지?’라는 생각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너무 많은 걸 알고 있거든요.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건데 그쪽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많아요. 물론 제가 아무런 계획도 없는 분을 아이들 앞에 세우지는 않아요. 아이들의 시간도 귀중하니까요. 지금까지 총 400여 명이 오셨어요. 많은 분이 적극적으로 오셔서 사실 놀랐어요.

여행을 통해 다양한 국가, 인종, 역사, 환경을 지닌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런 여행이 중빈 군에게 무엇을 남겼다고 생각하나요?
(중빈) 당황하지 않는 마음요. 사실 한국에서는 일상적으로 외국인과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요. 인종 다양성이 적은 나라 중 하나인 것 같거든요. 하지만 여행을 통해 ‘사람은 다 사람이다’라는 생각을 했어요. 나이와 성별, 국적에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죠. 물론 성격과 태도는 차이가 있어서 제가 누굴 찾아가서 먼저 말을 거는 유형은 아니지만, 누군가를 만날 때 어색해하지 않는 것 같아요.

언어적인 흥미가 굉장히 높아요. 그동안 여행 중 다국어를 접한 경험도 한 요인이 되었겠죠?
(소희) 영어를 만국 공통어로 쓴다는 것을 아는 것 자체가 앉혀두고 영어 중요하다며 강조하는 것보다 훨씬 자극이 된 것 같아요. 말이 통할 때마다 기분이 좋잖아요. 각 나라의 간단한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이게 아주 단순한 말이라도 그들을 존중하는 방식이라는 걸 체득하게 되고요.

여행 작가로서의 여행과 엄마로서의 여행은 그 색깔이 다른가요?
(소희) 아뇨, 같았어요. 엄마로서 떠난 여행 그 자체가 작가로 마주한 여행이었으니까요. 엄마로서의 여행을 얘기하자면 엄마는, 그러니까 아이가 있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든 현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어들어 편하게 이야기 나누기 좋은 위치예요. 아이가 있는 사람끼리 통하는 동료 의식이 있거든요. 그렇게 만나는 부모들은 서로의 삶 자체가 배움이 되는 거예요. 그럼 질문들이 잇따라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무엇이 행복일까?”, “인간은 무엇으로 살아갈까?” 등등. 제가 여행 작가여서가 아니라 이러한 만남과 깨달음이 있는 곳이기에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하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둘의 여행이 다를 수가 없는 거죠. 중빈이가 어떤 아이랑 노는 동안 저는 그 아이의 엄마네 집으로 가요. 부엌에서 그 엄마 일을 돕기도 하고 서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요. 어떤 날에는 “오토바이 타고 장 보러 갈 건데 같이 갈래?”라고 해요. 그럼 같이 시장에 가고요. 그 순간만큼은 제가 관광객이 아니라, 그들 삶의 일부가 되는 거예요. 그렇게 농밀하게 그들의 생활을 관찰할 수 있는 거죠.

14-10-07

중빈 군의 경험을 바탕으로 낸 책 《그라시아스 행복한 사람들》과 《열일곱,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청소년 권장 도서로 선정됐어요.
(중빈) 권장할 만큼 누군가 읽었다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깜짝 놀랐어요. 첫 번째 책은 사실 엄마 책에 미니 북으로 들어갈 계획이었어요. 제 일기였거든요. 그걸 보면 제 생각의 변화가 보이는 게 저도 흥미롭기는 해요. 그런데 미니북이 아니라 한 권의 책으로 출간되어 놀랐지요. 그리고 두 번째 책은 처음부터 기획하고 쓴 거였어요. 잘 쓰려고 노력했죠. 무언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인데 너무 어렵더라고요. 긴 작업이기도 했고요.

문화적 차이에 부모가 자칫 잘못 개입하면 선입견과 편견을 아이에게 잘못 심어줄 수 있어요. 문화 다양성에서 부모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요?
(소희) 상대방의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위해 갖춰야 할 것이 있어요. 간단하게 안녕하세요,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저는 누구입니다 등 다양한 말을 외우는 것도 그들을 존중하는 방식 중 하나예요. 평소에는 여행자로서 그곳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조심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곳에 갔을 때 평가하지 않아요. 그게 음식이든 집이든요. 마사이 부족 집에 가면 창문이 없어요. 그런데 그 안에서 요리도 하고 잠도 자니까 조금 답답할 수 있잖아요. 어떤 여행객은 불평을 늘어놓기도 해요. 그럼 저는 중빈이에게 말하죠. 이곳 사람들은 계속해서 흙집을 지어야 하니까 창문이 없는 작은 집을 짓는 게 효율적일 거라고요. 외부자의 눈으로 바라보고 이래야지 저래야지 하는 건 무례한 자세예요. 저는 그저 아이가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는 거죠.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이 궁금합니다.
(중빈)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것을 계속해서 배워나갈 예정이에요. 뭔가를 더 배우고 경험하면 더 많은 생각을 할 것 같아요. 일단은 그 안으로 달려 들어가고 싶어요.
(소희) 엄마들이 서로를 북돋아주고 응원할 수 있는 ‘언니공동체’를 이어가고 있어요. 엄마 개개인 각자 분리돼 있던 삶을 하나의 공동체를 통해 엄마들끼리 더 연대하려고 해요. 그걸 전국적으로 좀 더 활발하게 운영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