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to Be Apart

기꺼이 함께하지 않기

이홍안·안가청 부부에게 주말은 각자의 조각을 채집하는 시간이다. 공통분모를 나누거나 교집합을 찾으려 애쓰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궁리하고 실현하는 데 몰두한다. 남편이 게임과 만화, 영화 감상을 할 수 있는 고립된 방을 꾸리는 동안 아내는 아이와 함께 짧거나 긴 여행을 떠난다. 시시각각 자유롭게 각자의 흥밋거리를 찾아가는 과정의 조각들이 형형색색의 빛깔을 만들어낸다. 결국 이 생동감 넘치는 파편들은 가족이라는 하나의 그림으로 귀결된다.
부모로 살아가는 동안 내가 희석되는 것은 너무나 쉽다. 내가 없이 가족 구성원의 이름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공허해진다. 이들 부부가 개인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지내온 숱한 주말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곳에는 아주 단순한 법칙이 하나 있다. 가족 구성원 중 그 누구도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나의 행복.

13-02-02

일요일에 각자 행복한 일을 하면서 보낸다고 들었어요.
(가청) 저는 일요일 아침에 농구를 하러 가요. 홍안이 피곤해 보이면 단테를 제가 데리고 나가고요. 아이가 더 어릴 때에는 아기띠를 하고 친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야구하는 데 데려간 적도 있어요. 다른 아빠들이 와이프나 애들과 야구하러 오면, 친구 와이프한테 단테를 맡기고 잠깐 야구 하고 오기도 하고요.(웃음)
(홍안) 농구는 워낙 체력 소모가 크니까 꼭 오후에 낮잠을 자줘야 하거든요. 예전에는 저희도 이거 때문에 많이 싸웠어요. 농구까지가 자유 시간인지, 농구 이후의 낮잠까지가 자유 시간인지 서로 생각이 달랐던 거죠. 그런데 제가 최근에 알았어요. 진정한 행복은 농구하고 배불리 밥 먹고 나서의 낮잠이라는 것을요. 그래서 낮잠까지 그의 시간으로 주기로 했어요.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남편이 단테를 데리고 나가요. 단테가 원하는 자전거 타기나 킥보드 타기 같은 걸 하죠. 저는 휴일에 밖에 나가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거든요. 단테랑 남편이 나가면 그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면서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죠. 그렇게 보통 일요일을 마무리해요. 제가 혼자 있고 싶은 욕구를 해결하면서 나가고 싶지 않은 모드가 되면, 남편은 좋아하는 농구도 하고 아들과 시간도 보내는 거죠.

농구가 너무 좋아서 과외도 받는다고 들었어요.
(가청) 농구를 제대로 배운 적이 없거든요. 20대 초반까지 농구를 했다가 다시 30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하고 있어요. 평일 중 하루는 가볍게 농구를 배우고 있죠. 야구를 해보니까 배운 사람이랑 아닌 사람이랑 차이가 크더라고요. 자세가 좋아야 잘 칠 수 있거든요. 자기 능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물론 농구는 안 배우고도 할 수 있지만, 제대로 배우면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것 같아서 시작하게 됐어요.

가족 구성원의 희생 없이 개인의 행복을 말하는 건 어렵기도 해요. 이런 어려움은 어떻게 조율했나요?
(홍안) 물론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있지만 회사를 떠올려보세요. 누구 하나가 희생한다고 잘 굴러가나요? 그건 아니잖아요. 서로 조율을 잘해야 하는 거니까요. 한 명만 야근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사업체마다 사칙이 다르잖아요. 어떤 회사는 주 5일이고, 어떤 데는 주 6일인데 휴가 사용이 자유롭고요. 우리 집의 룰은 개인의 행복이 1위예요. 교집합을 위해서만 노력하지는 않아요. 각자가 충족되었을 때 함께 있어도 만족도가 높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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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안 씨는 단테와 여행을 많이 떠났어요. 블로그에서 여행이 진짜 끝나는 건 일상으로 돌아와서 침대에 가족이 다 같이 누워 있을 때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어요. 각자의 시간을 보내도 결국 우리로 귀결된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홍안) 맞아요. 개인의 행복이라는 건 각자가 만족스러운 거잖아요. 만일 내가 희생하거나 양보한 느낌이 든다면 기분이 안 좋은데, 어떻게든 자신이 하고 싶은 걸 결국 하니까 그런 게 또 굉장히 만족스럽죠. 세 가족이 놀이공원이나 피크닉을 떠나는 게 좋아 보일 수 있지만, 모든 가족이 똑같은 걸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개인에 집중하고 개인의 욕구가 충족됐을 때가 좋거든요.

‘따로 또 같이’의 시간이네요.
(홍안) 저희 집에서 흔한 풍경이기도 해요. 보통 단테가 밤에 잠들면 남편은 방에서 오락하거나 영화를 보고, 저는 거실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써요. 남편이 영화를 무척 좋아해서 ‘명예의 전당’이라는 파일을 만들어요. 종종 제가 좋아할 만한 영화를 추천해주기도 해요. 영화를 골라서 USB에 담아주죠. 그럼 또 그걸 같이 보는 게 아니라 저 혼자 봐요. 최근에는 〈Youth〉를 추천해주더라고요. 저희 집은 거실에 3인용 소파가 없어요. 혼자 있고 싶을 때마다 세 가족이 돌아가며 1인용 암체어에 앉아요.

한국 사회 전반에 가족이 무언가를 꼭 다 같이 해야 한다는 압박 같은 게 은연중에 있기도 해요. 건강한 퍼스널 플레이를 위해 필요한 태도가 궁금해요.
(홍안) 내 행복을 어필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동물원을 무척 싫어하거든요.
(가청) 그래서 제가 동물원도 단테랑 둘이서 다녀왔어요. 놀이공원도 단둘이 가기도 하고요.

꼭 다 같이 할 필요는 없다는 걸 인정하는 거군요.
(홍안) 저는 제가 좋아하는 것을 즐겁게 하고 싶지,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하는 걸 원하지 않아요. 희생하는 느낌으로 하기는 싫거든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즐기는 것으로 충분해요.
(가청) 저희가 동물원에 갔을 때 아빠랑 아들이랑 온 사람은 전체에서 저희뿐이었어요.(웃음) 각자 좋아하는 거 하면 되죠. 비눗방울도 쏘고 재미있었어요.

단테가 다니는 어린이집이 조금 특별하다고 들었어요.
(홍안) 단테가 20개월 때 지금의 집으로 왔으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5년 정도 지났네요. 합정동은 공동육아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성미산공동체에 속해 있어요. 어린이집도 공동육아 어린이집이에요. 부모가 출자해서 부모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4년 차인 지금은 공동육아의 장단점을 잘 이해하고 있어요. 공동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좋다는 확신이 들어서 모든 스케줄이 어린이집 일정에 맞춰져 있죠. 제주 반 서울 반 생활도 어린이집에 맞춘 거예요.

한 달의 반은 제주에서, 또 반은 서울에서 사는 것을 계획했어요. 남편은 서울에서 혼자 지내는 건가요?
(홍안) 사실 저희는 세 가족이 주말마다 “이번 주 일요일에 뭐 하자”라고 정한 적은 없어요. 저희는 실용적인 사람들이에요. 목표가 ‘우리 가족의 행복’이 아니라 ‘나의 행복’이거든요. 나의 행복이 우리의 행복이고, 우리의 행복이 아이의 행복으로 연결되는 거죠. 그래서 우리의 욕구는 궁극적으로 나의 행복에서 시작한다고 봐요. 제주 반 서울 반 살이도 각자의 행복을 이해한 데서 시작한 면이 있어요. 남편은 남편의 일이 있으니 보통 단테와 저만 움직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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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층에는 아빠만의 비밀스러운 놀이방이 있어요. 자기만의 공간이 있다는 의미가 궁금해요.
(가청) 저희가 처음 결혼했을 때 복층 오피스텔텔에서 살았어요. 그러니 제 방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복층은 내가 쓰고 싶다고 했죠. 아주 작은 단칸방이라도 다오, 하면서요. “나는 방이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다”라는 논리로 지금까지 지켜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공간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해요. 아내가 자기만의 시간이 중요하다면 저는 제 공간을 지키는 것에 필사적이에요.

단테도 아빠 방에 종종 올라가잖아요. 방을 어지르거나 아빠의 물건을 탐내는 경우는 없나요?
(가청) 단테는 절대 방을 어지르지 않아요. 제가 아주 어릴 때부터 신신당부를 했거든요. 세뇌 교육을 한 거죠. 여기 있는 것은 모두 아빠 거다. 이곳은 아빠의 공간이고 너는 잠시 내 방에 방문한 것이다, 하면서요. 네가 말을 잘 듣는다면 커서 줄게. 그래서 오늘 아침에도 “아빠, 나 크면 이거 나 줄 거야?” 묻더라고요. 그래서 대답했죠. 말 잘 들으면. 지금은 다 제 거니까 줄 수 없어요.(웃음)

아빠 방에는 엄청 큰 오락기도 있더라고요.
(가청) 큰 오락기는 손님이 오거나 단테 친구들이 왔을 때 종종 해요. 단테 친구들이 오면 아주 좋아하죠. 빈티지 오락기는 옛날부터 조금씩 수집해왔어요. 어린시절 부모님이 저를 위해 사주신 것도 있고요.

홍안 씨는 놀이방에 거의 안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취미와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일까요?
(홍안) 완전 다르죠. 저는 집이나 방 자체보다는 화장실을 좋아해요. 저에게 쉬는 공간은 침대나 소파가 아니라, 샤워실인 거예요. 샤워할 때 마음이 가장 편안해지거든요. 남편이 자기만의 방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저는 샤워실이 중요한 거예요. 처음 견적이 300만 원 정도 든대요. 애매한 가격이었어요. 여행을 가거나 코트를 살 수 있는 돈이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행을 가지 않거나 코트를 사지 않아도, 이사 갈 때 가져갈 수 없다 하더라도 한 번의 쾌적한 샤워가 중요했어요. 저에게 가장 밀접한 일상이니까요. 그걸로 계속해서 설득했죠. 남편은 화장실이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저를 이해해줬어요. 그가 동굴에 들어가서 게임하고 영화를 보는 걸 이해받았다면, 저는 쾌적한 화장실에서의 따뜻한 샤워에 집착하는 걸 이해받은 거예요.

반대로 가족이 꼭 함께 하는 일도 있을 것 같아요.
(가청) 산책요. 그것도 모두 시간이 맞으면 같이 해요. 화요일에는 꼭 셋이 다 함께 하원을 하거든요. 그럼 산책도 하고 맛있는 저녁도 먹어요. 자연스럽게 그런 시간이 만들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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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랏차차한의원’의 업무 시간이 길지 않은 편이더라고요.
(가청) 짧은 편이에요. 진료 시간이 짧은 건 아니고 업무 시간이 그렇죠. 선생님들이 일주일에 35시간 정도 일하는데 다른 한의원에 비해 근무 시간이 8시간 정도 적어요. 보수는 높은 편에 속하고요. 다른 이유는 없고 정당한 보수와 대우를 통해 저도 행복해지고 싶거든요.
(홍안) 역시 나의 행복.

단테랑 함께하는 출근길 영상에서 ‘#내 인생의 전성기’라고 쓴 표현이 인상적이었어요.
(가청) 정말 그렇게 느껴졌어요. 아이가 반짝거리는 성장기이기도 하면서 저에게도 젊음이 있는 상태잖아요. 아이도 건강하게 크고 있고요. 오래 살진 않았지만 돈이나 외적인 것들과는 별개로 인생 전체에서 가장 빛나는 시기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행복하죠.

단테에게 이따금 아빠가 좋아하는 레게를 들려주기도 하더라고요.
(가청) 동요를 계속 들려주면 동요만 듣고 싶어 하는 것 같더라고요. 애들이 동요만 들으면 동요가 아닌 음악에 대한 거부감이 들 수 있어요. 저는 그게 듣고 싶으니까.... “너도 들어봐! 이거 괜찮아!” 하면서 권하죠.(웃음)
(홍안) 애한테 무조건 맞추려고 하지는 않아요.

절대 부모의 행복도 놓치지 않는 거군요.
(가청) 단테가 다른 애들이랑 다른 점이 하나 있어요. 내가 우리 집 왕이 아니라는 걸 아주 잘 아는 거예요. 저희 집에서는 징징거리거나 떼써도 안 되는 건 안 해주니까 눈치껏 아는 거죠. 본인이 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물론 떼쓰면 해줄 때도 있지만 그 덕에 기본적으로 혼자서도 잘 놀고요.
(홍안) 단테가 그런 말을 해요. 엄마는 우리 집 대마왕이야.
(가청) 서열이 정해진 거지.

아빠의 레게처럼 단테가 좋아하는 것도 있나요?
(가청) 요즘에는 팽이 놀이요. 저한테는 가짜 팽이 비슷한, 잘 안 도는 거 주고 자기는 좋은 팽이를 가져요. 그러면서 팽이 싸우자고 하는데, 바꿔달라고 하면 안 바꿔줘요. 단테는 아직 엄마 아빠와 같이 놀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요.

10년 후에도 하고 싶은 취미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세 가지를 꼽아주세요.
(홍안) 여행, 캠핑요. 그리고 먼 미래에는 하고 싶은 게 바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걸 계속 찾아가는 게 저의 정체성인 것 같아요. 하나는 물음표로 남겨둘래요.
(가청) 지금 하는 거 아무것도 안 할 것 같아요. 저는 물음표 세 개로 남겨둘래요. 아, 아니다! 게임은 계속할 것 같아요. 팔기 귀찮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