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ping for a Miracle

‘우리’가 허물어지지 않기를

한국 사회에서 평균치의 삶 바깥 영역에 머물기 위해선 맷집이 강해야 한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소속이 없거나 많은 사람이 택한 무난한 길 외의 선택을 한 경우 여기저기에서 설명을 요구한다. ‘예민하다’, ‘유별나다’, ‘피곤하게 굳이 왜?’ 등의 추궁을 견뎌야 할 때도 있다. 장 밥티스트 코스와 진유라는 이런 난관을 돌파하는 용기를 경험으로 터득했다. 총각 시절 장은 유라가 아마추어 밴드에서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다. 유라가 이혼 경험이 있고 전남편 사이에 낳은 아이를 기른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꺼이 사랑에 빠져 새로운 가정을 꾸렸다. 장과 유라는 둘째 애나를 낳을 때 자연 출산을 택했다. 차가운 병원 분만대가 아닌 유라가 20 년 동안 살아온 집 욕조에서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원하는 자세로 아이를 낳았다. 의사가 편한 방식이 아니라 산모가 편한 방식을 택했으며, 불필요한 의료적 개입을 거부했다.
“남들이 다 하니까”라며 무리 안에 있기보다는 삶의 매 순간 주체적 선택을 하는 두 사람은 지금 힘든 싸움을 하고 있다. 가족의 20년 역사가 스며 있는 집이 헐릴 위기에 처한 것이다. 주택재개발 정비구역으로 지정된 이후, 온기 넘치던 주택가는 아파트와 시세 차익이란 회색빛 단어로 탈색되었다. 정부, 건설 자본이 펼쳐놓은 아귀다툼의 한복판에서 “우리 집을 지켜달라” 외치는 둘의 목소리는 낯선 질문 하나를 품게 한다. ‘설령 돈을 더 준다고 해도 팔지 않을 소중한 것이 당신과 당신 집에는 있는가?’

흔히 자산 증식의 좋은 기회로 여기는 재건축 사업을 반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유라) 저희에게 이 집은 가족 그 자체입니다. 친정아버지가 평생에 걸쳐 이룬 꿈이고, 제가 열아홉 살 때부터 살아온 곳이에요. 저와 제 동생을 교육시키고 결혼시키는 데 보탬이 된 유일한 버팀목이었지요. 아버지가 은퇴 후 시골로 내려가시면서 저희 부부에게 전세를 내주어 저희 아이들까지 3대째 이어지는 추억의 터전이 되었죠. 계단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노는 놀이터이고, 2층 발코니는 저희 부부의 카페이자 미니바이며, 마당은 이웃과 친구들을 초대해 교류하는 파티장이에요. 심지어 바로 이 집 욕실에서 둘째를 낳았습니다. 이 모든 아름다운 추억들이 개발의 논리에 의해 한순간에 사라지는 상황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듭니다. 누군가는 “돈이 되는데, 그런 추억이 뭐가 중요하니”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죠. 그들의 선택만큼 저희의 선택도 존중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한 개인의 거주 이전의 자유나 행복권보다 자본과 돈의 논리가 우선하는 게 무자비하게 느껴져요. 재개발이 정말로 필요한 지역은 이윤이 남지 않는다는 이유로 외면하면서 말이에요.

재개발에 반대하는 다른 이웃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유라) 저희 집을 포함해 26가구가 반대했지만 조합 설립을 찬성하는 쪽이 다수였습니다. 반대하는 사람들에겐 명도 소송이 들어왔어요. 아파트 건설에 찬성하지 않으면 집을 팔고 나가라는 뜻이었습니다. 압박과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을 팔고 동네를 떠나는 가구들이 하나둘 늘어났어요. 저희 집처럼 여전히 버티고 반대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솔직히 앞날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재건축법은 20%가 아무리 반대해도 80%가 찬성하면 무조건 추진하게 되어 있어요. 소수에게 선택의 여지를 주지 않지요. 프랑스는 도로 하나를 건설할 때도 반대하는 주민이 있으면 설득하기 위해 꾸준한 작업을 해요. 물론 개발 속도는 느리겠죠. 하지만 인간으로서 개인이 가진 거주 이전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을 인정하는 문화가 더 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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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사람으로서 장이 보기에 한국의 거주 문화 중 의아하게 느끼는 점이 있나요?
(장) 두 가지가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이미 아파트가 많은데, 왜 또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저는 코엑스나 잠실 아파트 단지에 가면 공간에서 영혼을 느낄 수가 없어요. 반면 경리단, 이태원, 효자동 같은 동네에 가면 사람 사는 느낌이 나고, 저에겐 그 동네들이 진짜 한국처럼 느껴져요. 이렇게 예쁜 주택가를 없애버리고 또다시 못생긴 아파트를 짓는 게 이해가 안 돼요. 그리고 집주인이 계속 살고 싶다는데 주변에서 집을 헐겠다고 말하는 상황도 이상하고요. 프랑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에요.

한국은 집을 곧 재산이자 돈으로 치환하는 문화가 아무래도 강한데요, 프랑스는 그렇지 않나요?
(장) 프랑스 사람은 평생 동안 이사를 자주 다니지 않아요. 태어난 집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쭉 사는 경우가 많아요. 그래서 집이 가족의 일부분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예를 들어 자식이 출가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한국에서는 부모님이 사시던 집을 상속받아 처분한 뒤 형제들이 나누어 갖는데, 프랑스에서는 그대로 유지하려고 해요. 우리 가족 모두의 추억이 담긴 곳이고, 출가한 형제자매가 다시 모여들 수 있는 공간이라 팔 수가 없다는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죠. 집을 재산으로 보기보다는 가족이 모이는 공간으로 보는 시각의 차이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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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아파트가 많은데, 왜 또 아파트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줍니다”라는 아파트 광고 카피처럼 한국에서는 아파트의 브랜드가 거주자의 사회적 지위를 말해준다고 믿는 경향도 있어요. 프랑스 사람은 집의 어느 부분을 타인에게 자랑스럽게 보이고 싶어 하나요?
(장) 제 눈에는 래미안이나 힐스테이트나 똑같이 아무런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하는데, 그런 문화가 있군요! 프랑스 사람은 집 내부를 얼마나 자기 성격과 취향, 이미지대로 꾸몄는지 보여주는 걸 좋아해요. 프랑스도 건축물은 시대마다 유행도 있었고, 유형화된 틀이 있어요. 나폴레옹 3세 시절에 오스만 파리 시장이 도시를 개조하며 지은 파리의 아파트들이 그 예죠. 오리지낼리티와 개성을 보여주는 걸 좋아하는 프랑스 사람은 인테리어를 통해 자기를 드러내려고 노력해요. 남과 똑같으면 이상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유라) 한국에서는 집, 자동차, 학교, 직장... 모든 걸 줄 세우잖아요. 만약 자신감 있고 삶이 풍요롭다면 어떤 브랜드 아파트에 사는지, 몇 평에 사는지 자랑할 것 같진 않아요. 줄 세우기 문화가 만연하다는 건 자존감이 낮은 사회라는 뜻 같아요. 스스로를 저울질하고 비교하고.... 왜 우리는 인생의 다른 중요한 부분, 이를테면 가족과 함께 저녁을 해 먹고 마당을 가꾸고 대화를 나누는 즐거움 대신 아파트 이름이나 평수에 더 신경 쓰는 문화가 형성된 건지 정말 속상해요.

단독주택에서 살려면 부지런해야 하고, 아파트는 관리인이 다 해주니 편하다는 인식이 강한데, 이에 대한 생각은 어떤가요?
(장) 오래된 집이라 손이 많이 가는 건 사실이에요. 그런데 저는 주말에 쇼핑몰 같은 곳에 나가는 것보다 집에서 여기저기 손보고 고치는 게 더 재미있고 좋아요. 저는 그걸 취미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부터 프랑스에서 부모님이 직접 집을 보수하고 관리하는 걸 보면서 자랐고, 곁에서 도왔기 때문에 내 집은 당연히 내가 직접 손보고 관리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자연스럽게 문화유산처럼 내려오는 집을 대하는 태도지요. 프랑스에 계신 부모님 댁은 1800년대 주택이고, 할아버지 댁은 1600년대 주택이에요. 보일러가 고장 나거나 전등이 나가거나 하는 일을 맞닥뜨리는 게 일상인데, 한국 사람은 너무 바쁘고 피곤해서 집을 관리하는 일을 마치 업무처럼 처리해야 하는 일감으로 여기는 것 같아요. 자유 시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라고 생각해요.

똑같이 집을 손보고 관리하는 일을 프랑스에서는 즐거운 취미로 여기고, 한국에서는 불편한 일감으로 여기는 셈이네요.
(유라) 단독주택에서는 내 재량대로 결정하는 자유 공간이 주어지잖아요. 이렇게 자유가 주어지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아파트를 선호하는 경향도 있는 것 같아요. 주택에서는 각 공간별로 그 안에서 내가 무얼 하고 싶고,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고, 어떻게 꾸미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해야만 해요. 자기 콘텐츠가 필요하죠. 그런 생각조차 할 겨를이 없을 정도로 일만 하고, 집에서는 잠자기 바쁜 일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별생각을 안 해도 되고 관리인이 알아서 다 처리해주는 아파트가 편할 것 같아요. 이해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워요. 결국은 일하는 시간을 줄여야 해결될 문제라고 생각해요.

집을 자산 증식의 수단으로 여기기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일궈가야 하는 공간으로 여기는 사람도 다행히 늘고 있어요.
(유라) 젊은 부부들 중심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죠. 집을 직접 수리하고 꾸미는 게 귀찮은 일이 아니라 즐거운 취미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확실히 늘고 있어요. 젊은 부부들이 지금은 내 집 마련이 어렵기 때문에 전셋집, 월셋집에서 소소하게 꾸미면서 살지만, 그들이 40대 이상 되어 내 집 마련을 할 시기가 되면 사회 분위기가 더 많이 바뀌리라 봐요. 그리고 이 변화를 뒷받침하려면 법과 제도도 분명히 바뀌어야 해요. 지금 한국의 건축법은 오래오래 고쳐가면서 살겠다는 동기부여가 전혀 되지 않는 법이에요. 지은 지 20년만 지나면 때려부수고 다시 지어도 된다고 정해놓은 법이 있는데, 어느 건설사가 50년 100년 가는 튼튼한 건물을 짓겠어요. 어느 누가 오래도록 마을을 가꾸며 살고 싶겠어요.

오늘 지인과 친구 가족들이 전부 모여서 벽화 그리기 행사를 했어요. 어떤 의미의 행사였는지, 왜 이런 이벤트를 벌였는지 궁금합니다.
(유라) 재건축에 반대하는 마음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싶었어요. 물론 거대 자본과 정부 정책에 비하면 힘없는 활동일 수 있지만 이렇게라도 목소리를 내고 싶었고, 작은 저항을 하고 싶었어요. 우리 집이 언제 헐릴지 모르다는 건 슬프고 암담한 일이잖아요. 재건축이 확실시되어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수동적으로 기다리면서 우울하게 매일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이 집에 사는 동안에는 하루하루 즐겁게 살자”는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한편으로는 다른 이웃들이 벽화 그리기에 동참해서 통영 동피랑 마을처럼 재개발이 무산되는 기적이 생기진 않을까 꿈꾸기도 하고요.
(장) 저희가 언제까지 이 집에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은 이곳에 사니까 고치고 꾸미고 벽화도 그리는 거예요. 이 집에 있는 동안은 행복하고 싶어요.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