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Much Does it
Take to Educate a Child?

아이 교육에는 얼마가 필요할까?

부모의 욕심에서 시작된 교육열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어이 흔들리고 만다.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내 아이만 뒤처지는 기분이다.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해주지 못하는 부모로서 자괴감이 든다.

이광구는 첫째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강화도의 작은 마을로 이주했다. 세 자녀는 이제 어엿한 성년으로 자랐다. 큰딸 나리(28)는 대안학교 졸업 후 생태 운동을 하다가 하고 싶은 공부를 찾아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고, 아들 온달(26)은 인천 과학고를 나와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있다. 호기심 많은 막내 보리(24)는 대안학교 졸업 후 바로 사회에 나와 다양한 경험을 쌓다가 현재 서울시 청년혁신활동 지원센터에서 일한다.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그래도 자식 농사는 제일 잘 지었다”며 부러움을 사곤 하지만, 집에서는 “아빠는 만날 아빠 하고 싶은 것만 했지!” 하며 타박받기 일쑤다. 그도 그럴 것이 삶의 행적이 남다르다. 이광구는 서울대 법대 82학번으로 운동권에 몸담느라 졸업을 못 했다. 이후 일용직 용접공, 자동차 정비 공장, 철거 회사, 부동산 회사, 두부 공장, 대안학교, 대리운전, 로컬푸드협동조합, 증권사 등 20개가 넘는 직업에 종사했다. 자연과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세 아이를 키워낸 이야기를 담은 그의 저서 《희망교육 분투기》를 읽고 부모로서 묻고 싶은 질문이 많았다. 첫눈이 소복이 쌓인 어느 주말 아침 아빠 이광구와 두 자녀를 만났다.

11-07-01

《내 인생의 첫번째 재무설계》, 《희망교육 분투기》, 《돈이 결코 마르지 않는 인생 2라운드 50년》 등 저서를 통해 자녀 교육, 주거 문제, 노후 대책 등 각 개인의 가정경제 문제를 지적해왔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를 고비용 사회로 정의한 점이 인상 깊었어요.
재무 상담 일을 하면서 변호사나 공무원 같은 고소득 가정 대부분이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가장 튼튼해야 할 중산층이 은행 아파트에 월세를 살면서 과도한 교육비, 결핍에 의한 소비를 버티고 있었습니다. 죽을 때까지 마이너스 안 내고 재무 설계가 되는 사람, 서울에서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덕연구단지의 연구원들을 상담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분들은 신기하게 그게 되더군요. 살펴보니 가장 큰 차이는 집값과 교육비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큰돈 먹는 두 마리 하마’입니다. 100세 시대 정년은 짧아졌고 더 긴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데, 돈에 대한 해법 없이 돈에 끌려다니는 삶을 사는 것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한국 중산층의 속살을 들여다본 경험으로 얻은 것은 무엇이었나요?
사람들은 돈 문제에 대해 남들보다 더 많이 벌 생각만 하지, 왜 언제까지 얼마를 벌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따져보지 않아요. 재무 상담은 벌고 쓰는 문제를 의식하고 객관적 수치로 설계해본다는 면에서 의미가 있어요. 저는 재무 설계의 핵심은 목표 설정이라고 보는데, 그 과정을 통해 내 인생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 목표를 정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 사회 통념에 얽매이지 않고, 내 처지에 맞게, 내가 스스로 정한 목표여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오래 실행할 수 있고, 하는 과정이 즐거우며, 결과에 대해서도 스스로 감당하게 됩니다. 결국 재무 상담은 인생 상담과 가깝습니다. 돈이 소재가 되는 것뿐이죠. 고객 중 남편이 대기업을 그만두고 천체 사진가로 전향한 젊은 부부가 있어요. 〈볼드저널〉 퇴사 호에 나온 권오철 씨 부부예요. 재무 설계 이후 아내도 아이와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겠다며 회사를 그만뒀어요. 부부 소득은 줄었지만, 훨씬 행복해졌다며 가족과 식사를 제안했는데, 참 고맙고 보람 있는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사회 전반에 불안이 확장되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은퇴 후 노인의 고독한 삶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프로를 보다가 아내가 묻더라고요. “우리는 어쩔 거야?” 어느 가정에나 있는 괜한 불안감의 하나일 겁니다. 우리 집 순자산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가 되었고, 아이들도 경제적 자립을 했습니다. 넉넉한 친구들에 비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지만 분명 10년 전, 5년 전보다 수치상으로 훨씬 나아졌습니다. 아내의 걱정은 상당 부분 마음의 문제입니다. 저는 이러한 불안감의 원인을 ‘가족의 해체’로 봅니다. 핵가족화가 가속화되면서 오로지 개인이 중요한 사회가 되었습니다. 가계소득이 높아지면 불안이 사라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을 겁니다. 막연한 불안감이나 박탈감은 돈의 양이 아닌 관계에서 옵니다.

1인 가구가 늘고 핵가족화되는 변화는 막을 수 없을 텐데요.
막을 수는 없더라도 이 시대에 맞는 사회적 관계를 공고히 하는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경쟁과 성공보다는 함께 하는 관계나 협력에 가치를 두는 사회로 나아가야 하지요.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때 우리는 불필요한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개인의 각성도 중요하지만, 이를 위해선 사회적 캠페인을 진행할 필요가 있습니다. 과거 사회운동의 원천이 분노와 박탈감이었다면, 지금은 사회적 성숙도가 훨씬 높아졌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도 청년 실업, 장애인 복지 등 사회문제에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곤 합니다.

“살펴보니 가장 큰 차이는 집값과 교육비였습니다.
이 두 가지가 ‘큰돈 먹는 두 마리 하마’입니다.”

많은 부모가 교육비만큼은 기꺼이 희생을 감수합니다. 양질의 사교육에는 많은 비용이 들기도 하고요.
사교육이 문제라고 보진 않습니다.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경제적 여력이 허락하는 선에서 적절한 교육이 이루어진다면요. 다만 경계해야 할 것은 과도한 사교육이 아이의 자발성, 내적 동기를 해칠 수 있다는 겁니다. 온달이는 농어촌 특례로 과학고에 입학했습니다. 이런 제도가 없었다면 입학 자체가 어려웠을 겁니다. 과학고는 우수한 아이들이 모여 있기도 하지만 정말 공부를 많이 시킵니다. 12시 이전에 기숙사 문을 안 열어줘서 학부모가 문제를 삼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 속에서 학원 한 번 안 가본 온달이는 1등으로 졸업했습니다. 저는 온달이가 특별히 영재라기보다는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나리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강화로 터전을 옮겼습니다.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당시 하던 사업이 망해 경제적으로 어려웠어요. 1997년 당시 부천 전셋집을 빼서 빚 일부를 갚고, 강화에 월셋집을 얻었습니다. 지금 집은 국유지에 위치해 있어 4000만 원에 구하고 2000만 원을 들여 고칠 수 있었죠. 나리가 학교에 입학할 즈음 강화에 놀러갔다가 지인을 통해 1학년 담임 맡을 거라는 분 얘기를 들었는데 이런 분이라면 아이들을 맡겨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시 어린 보리가 모세기관지염으로 입원을 했는데, 아이들이 자연 속에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는 점도 좋았고요. 물론 아이들 아토피나 기관지염도 싹 나았지요. 강화에서 아이들을 키운 건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곳에서 서당 교육, 공동육아로 내 아이 네 아이가 아닌, 우리 아이로 함께 키우고 자라는 것을 경험했으니까요.

자녀 교육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부모의 역할이 있다면요?
자녀 교육에서 제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몸과 마음의 건강, 원만한 대인 관계, 자립심입니다. 올바른 인생관을 더하고 싶지만 이건 살면서 끊임없이 나아져야 하는 것이니까. 또 굳이 가르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니 스스로 깨달아가도록 지켜보는 정도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학식이 높거나 사회적 지위가 괜찮은 부모는 스스로 많은 답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 부모 자식 사이에 문제가 생기고 어려움이 있습니다. 부모의 기준, 사회적 기준을 아이에게 주입하지 말아야 합니다. 나리, 온달, 보리는 각자가 지닌 개성이 참 다릅니다. 하지만 공통점이라면 각자의 길을 모두 스스로 선택했다는 점이죠. 이건 어느 날 갑자기 되는 일은 아니에요. 어려서부터 작은 것이라도 스스로 결정해봐야 해요. 자유와 책임을 지우는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중학생 정도면 어른 취급을 해야 하고, 성인이 되면 경제적으로도 자립할 수 있어야 합니다.

11-07-04

“사회적 신뢰가 회복될 때
우리는 불필요한 불안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세 아이 모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경제적으로도 자립을 이뤘습니다.
저는 오래전부터 아이들에게 대학 때부터는 돈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자고 제안했어요. 부모 뜻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게 한 탓인지, 이러한 제안을 무리 없이 받아들이더라고요. 아내는 내가 돈을 많이 벌지 않아 애들이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 거라지만, 저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온달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학비와 생활비를 스스로 해결했어요. 대학등록금은 대통령장학금을 받았는데, 생활비 중 부족한 부분은 과외로 채웠어요. 만약 장학금을 받지 못했더라도 스스로 해결했을 거로 생각해요. 서울대 대신 장학금 혜택을 주는 사립학교를 선택할 수도 있고, 학자금 대출도 있고.

하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돈 때문에 진로를 바꾸거나 학창 시절을 충분히 즐기지 못한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론 누군가는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제 주변에 학비 때문에 가고 싶은 대학을 낮춰 간 친구들이 있는데, 그들이 인생을 더 당당하게 살아왔다는 느낌을 받아요. 문제는 주어진 상황을 얼마나 스스로 잘 헤쳐나갔느냐는 점이에요. 부모가 여유 있으면 학비를 대주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고, 자녀가 그걸 바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부모가 학비를 대주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면 좋겠어요. 특히 돈이 있고 성공한 사람들이 그런 원칙을 실천해서 그것이 자녀를 씩씩하고 건강하게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줬으면 해요. 현재 직장 때문에 주중에는 서울에 얻은 전셋집에서 온달·보리와 같이 지내고 있는데, 반발은 있었지만 두 아이 모두에게 매달 15만 원의 방값을 받도록 했어요. 지금은 보증금 일부를 아이들이 부담해 따로 받진 않아요. 저는 성인이 되면 아이들에게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철저히 자신의 노동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자세를 가르쳐주고, 이런 원칙을 몸에 배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 아이들도 이런 뜻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건강하게 자신의 앞길을 헤쳐나가리라 믿어요.

주변 시선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소신을 지키며 살고 싶은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함께하라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과 어울리면 비교할 일이 적고, 남 눈치를 덜 보며 살 수 있어요. 삶의 가치가 높아지면 돈에 대한 통제력이 자연스럽게 올라갑니다. 진정한 자신을 되돌아보는 삶을 기본으로, 가정과 이웃의 관계를 튼튼히 하고, 협력하는 삶을 살다 보면 마음이 고요하고 충만해져서 소비 욕구도 낮아집니다. 돈을 더 버는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을 잘하는 데 관심이 가게 되지요. 아이 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남들이 다 하니까 시키는 사교육, 번듯한 대학과 일자리, 이 모든 게 사회적 잣대와 기준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입니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고 싶은지, 아이들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뜻이 맞는 부모와 함께해보세요. 서울을 조금만 벗어나면 집과 교육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어요. 또 성미산마을이나 동작구도서관처럼 지역사회 안에서 대안을 만들어가는 방법도 있고요.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하네요.
현재는 직장에 충실하고 있지만, 여전히 꿈을 꾸며 삽니다. 하고 싶은 일을 묻는다면 세상을 바꾸는 일, 특히 관심 있는 분야라면 장애인 복지와 청년 주거 문제입니다. 제가 생업을 자주 바꾸는 것을 두고 아내와 아이들은 늘 타박하곤 하지만, 그때마다 이렇게 얘기해주곤 합니다. 아빠는 희소성 있는 사람이라고요.(웃음)

11-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