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Get a Third Community

제 3의 커뮤니티를 갖는 법

2005년 이태원에 ‘그림집’이라는 작은 그림가게가 문을 열었다. 그림이 궁금해 들른 손님, LP 컬렉션에 꽂혀 기웃거리던 동네 사람, 공간에 끌려 머물다 간 단골들은 오며 가며 마주치다 친구가 되었고, 그 인연은 그림 가게가 이태원에서 회현동으로, 마포로, 그리고 신수동으로 옮겨온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그 세월 속에서 20대 청춘은 어느덧 결혼해 아이를 낳았고, 40대 위기의 회사원은 고민한 끝에 퇴사하고 귀촌을 택했다. 나이도 직업도 모두 다른 이들은 지금껏 서로의 인생 변곡점을 함께 지나오며 술 한잔 없이도 하루 종일 놀 수 있는 담백함을 익혔고, 그 흔한 단톡방도 만들지 않는 느슨함으로, 또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유연함으로 관계를 이어나간다.
유급 경제활동이 아닌 것은 평가절하하며 모든 삶의 목적을 ‘먹고사니즘’으로 귀결해버리는 요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우리의 인간관계는 점점 단순해진다. 그리고 그런 관계는 삶에 위안을 주기 어렵다. 일상의 쳇바퀴에서 잠시 내려와 취미와 교양을 함께 나누며 온전한 ‘내 자리’를 느낄 수 있는 관계가 필요하다. 따라서 일, 가정 이외의 제3의 커뮤니티를 만드는 일은 나이 듦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고, 삶을 좀 더 입체적으로 살아나게 만드는 동력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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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흥제

남. 40세. 그림 가게 ‘greemZip’ 운영, 아트 딜러.

김정은

여. 38세. 대안 공간 ‘이너프 라운지’ 운영.

반윤욱

남. 53세. 디자이너, 텃밭 가드너.

김소은

여. 39세. 마이머, 공연 기획 연출가.

전석병

남. 41세. 프리랜스 포토그래퍼.

강은미

여. 37세. 패브릭 인테리어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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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령대나 직업이 다양한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이리도 오랜 친구가 되었나요?
(흥제) 시작은 그림이었죠. 제가 ‘그림집’이라는 그림 가게를 연 뒤 찾아오는 손님들과 ‘그림계’라는 걸 하게 됐어요. 소소한 회비로 그림도 사고, 작가 작업실에도 놀러 가고 서로 재미난 일도 도모해보고자 시작한 거였죠. 그러니 표면적으로는 그림과 예술에 대한 관심을 연결 고리로 볼 수 있지만, 언젠가부터는 꼭 그림이 아니어도 만났어요. 오늘 나오지 않은 멤버까지 하면 20명이 넘는데, 20대 대학생부터 60대 선생님까지 직업도, 나이도 다양해요. 이 사람들을 어울리게 하는 힘이 뭘까,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결론은 공통점이 없다는 거였어요.
(윤욱) 동감해요. 이 모임이 이렇게 지속될 수 있었던 건 오히려 하나의 틀로 묶이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각자의 자리에서 살다가 어느 날 문득 만나고 싶어서 오면, 어제 만난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게 시간의 간격이 좁혀지거든요. 멀리 떨어져 사는 ‘이웃’ 같은 느낌이죠.

함께 소소한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크고 작은 프로젝트를 벌이기도 한다고요. 일반적인 ‘중년의 모임’과는 좀 달라요.
(윤욱) 여기 모인 사람들의 성향이 좀 그래요. 이 나이대가 되면 대부분 술이 없으면 대화가 안 되는데, 이 친구들은 술 마시고 노는 것보다는 관심사가 다양해요.
(흥제) 누가 뭔가를 해보고 싶다고 하면 관심 있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해보는 걸 좋아해요. 다 같이 공연을 보러 간다든가, LP감상회도 했고, 마켓에 참가한다든가, 미니카 대회도 열었고요.
(정은) 한번은 ‘오만 가지 헌책방’이라는 이름으로 가게를 연 적도 있었어요. 한 사람은 모은 책을 팔고, 다른 한 사람은 추천한 책을 가지고 토론회를 열고, 또 다른 사람은 책보자기나 책갈피 같은 소품을 가져와 팔았죠. 이처럼 각자 좋아하는 것, 자기가 갖고 있는 것을 모아보니 다양하고 재미있는 놀이가 되더라고요.

“그거 한다고 쌀이 나오냐 밥이 나오냐?” 같은 질문, 혹시 받아본 적 있나요? 사회에서 말하는 ‘생산적인 일’은 흔히 돈벌이가 되는 유급 경제활동에 국한될 때가 많잖아요.
(윤욱) 그런 뜻이었는지는 몰라도, 이곳이 카페니까 가끔 양복 입은 회사원들도 오는데 어른들이 게임이나 소모임을 하고 있으니까 “근데 여기 뭐 하는 데예요?”라며 의아해하더라고요.
(흥제) 근데 저희는 사실 행사를 할 때도 돈을 왕창 들여 하지 않고 대부분 자기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움직이니까 실제로 손해 보는 것은 없어요. 오히려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게 더 많죠. 회사나 다른 곳에서 못 해본 자기다운 것을 마음껏 표현해보는 기회가 되기도 하고, 하다 보면 그 취미가 돈이 되는 시점이 오기도 하거든요. 그러니 ‘생산적인 일’이라는 범위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는 거죠.
(정은) 희한한 것이 저희끼리 돈 좀 벌어보자며 벌인 일도 좀 있었는데, 꼭 그렇게 벌인 일은 망하더라고요.(웃음) 재미로 한 일은 오히려 잘됐고요.

대부분 아빠들의 대인 관계가 일로 만난 관계와 가족밖에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커뮤니티는 일로 만난 관계와 무엇이 다른가요?
(소은) 우선 목적 없이 만난 관계라는 게 다른 것 같아요. 아무 얘기나 해도 대홧거리가 될 수 있고, 오랜 시간 얘길 해도 재미있죠. 일로 만난 사람과는 일 얘기가 끝나면 마땅히 할 얘기가 없잖아요.
(윤욱) 경험상 일로 만난 관계에서 일 얘기가 아닌 이야기를 꺼내면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취미로 LP를 모은다고 하면 특이하다면서 ‘아웃사이더’ 취급을 하죠. “그런 거 하지 말고 골프를 쳐”라고 훈수를 두기도 하고.
(흥제) 우리 사회가 경쟁에 익숙하다 보니 그런 것 같아요. 뭐든지 남보다 빨라야 되고, 얼마 버는지, 어디 사는지만 관심을 갖기 때문에 다른 이야기를 꺼내기 어려운 구조이죠. 반대로 이 자리는 왜 편할까 생각해보면, 그냥 그 자체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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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기 때문에 나이가 들수록 이런 제3의 커뮤니티가 많은 위안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여러분은 이 모임에서 어떤 위안을 받나요?

(흥제) 일종의 신뢰감 같은 게 형성되어 있어요. 예를 들어 이 친구들에게는 우리 집 형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아도 어디 가서 험담하지도 않을 거고, 결이 비슷한 대화를 할 수 있는 거죠. 그런 안정감이 사회 속에서 생기는 불안감을 줄여주는 것 같아요.
(석병) 비무장지대 같다고 할까요. 내가 이 관계를 통해 어떤 이익을 취할 것인지, 혹은 서로의 사회적 위치 같은 건 생각 안 해도 되니까요. 다 내려놓고 나를 이야기할 수 있는 자리죠.
(윤욱) 여기 사람들은 늘 뭐든지 좋대요. 제가 무슨 아이디어를 내면 “너무 좋은데요? 해볼까요?” 그래요. 그러니 계속 새로운 걸 시도해보는 거죠. 그래서 이런 관계, 이런 모임이 나이가 들어갈수록 좋은 역할을 하는 거 같아요. 내 얘기를 들어주고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건 정말 소중하고 행복하죠.

하지만 많은 사람이 그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막상 일상이 너무 바쁘다는 이유로 시간을 내지 못하죠.
돈 버는 일 말고는 사회에서 ‘내 자리’를 느낄 시간을 줄여가도록 몰아가는 사회 분위기도 문제인 것 같아요.

(윤욱) 저도 직장 생활을 20년 정도 했는데 늘 시간이 없었어요. 내 취미를 생각하거나 아이들과 놀아주는 건 엄두도 못 냈죠. 어떤 분은 직장 은퇴한 뒤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들고있더래요. 뭘 해야 할지 모르는 거죠. 그때 뭘 할지 알기 위해서는 직장을 다니면서 취미 생활도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렇게 여유가 있으면 직장에선 도태된다고 생각하죠. 내 인생이 이게 맞는지, 어떤 길로 가야 할지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요.
(흥제) 그래서 제가 예전부터 늘 캠페인처럼 하던 말이 있는데, “하루에 30%의 시간을 비워놓자”는 거예요.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한다면 그중 3시간 정도를 비워놓는 거죠. 생각도 일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 말이에요. 저도 일이 많지만 하루에 2~3시간 정도는 꼭 비워놓으려 노력해요. 조급하게 두 가지 일을 하는 것보다는 과감하게 하나를 포기하고 비워놓을 때도 있죠. 그 시간을 ‘여유’라고 하잖아요. 그 여유가 아주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새로운 무언가를 할 기회가 왔을 때 시도해볼 수 있겠죠.
(정은) 말은 이렇게 쉽게 하지만, 저희도 사실 엄청 노력해요. 그 여유를 확보하기 위해서요.

이런 관계를 이어온 지가 10년이 넘었으니 서로의 인생 변곡점마다 늘 함께했겠네요.
(정은) 그러네요. 20대에 만나 서로의 인생에 큼지막한 시기를 함께했죠.
(소은) 저희끼리는 늘 한결같아 시간 가는 줄 모르다가, 아이들을 볼 때 문득 느껴요. “숨(흥제와 정은의 아들)이가 이만큼 컸구나...” 하면서.
(윤욱) 누가 회사를 그만두거나, 창업을 한다든지 하는 과정에서도 고민을 얘기해보기도 하고 지켜보기도 하면서 함께 지나왔지요.
(정은) 심지어 서로의 연애사도 얼추 다 꿰고 있어요.(웃음) 최근에는 두 사람(은미와 석병)이 결혼을 했죠.
(석병) 저흰 결혼식도 지금 이 장소에서 평소대로 게임하면서 파티하는 걸로 대신했거든요. 근데 그게 엄청 즐거웠어요.
(흥제) 서로의 인생 과정을 그냥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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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관계인데도 아직 서로 존댓말을 한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또 각자의 상황이 바뀌면서 와해되는 경우도 많은데, 이렇게 지속해서 관계를 유지를 할 수 있는 비결이 있나요?
(정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배려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 같아요. 여기서는 뭐든 인정하는 곳이라고 해서 아무거나 해도 되는 건 아니거든요. 서로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 선에서 배려와 다름에 대한 존중이 절묘하게 함께할 때 관계가 유지될 수 있으니까요.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윤욱) 저희가 지금까지 반말을 하지 않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죠. 반말을 하기 시작하면 엄청 가까워지는 관계는 될 수 있지만, 그로 인해 깨질 수도 있는 관계가 되기도 하죠. 그래서 저희는 언뜻 보면 서로 데면데면한 느낌이고 아주 가깝지 않은 듯 보이지만, 그래서 오히려 늘 적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싶어요.
(은미) 관계가 유연하고 느슨해서 가능한 것 같아요. 누군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또 거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관심사도 함께 이동하고요. 상황에 따라 더 자주 만나는 시기가 있고 덜 만나는 시기도 있지만, 아예 깨지지는 않죠.

이제 막 제3의 커뮤니티를 꾸리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분도 있을 거예요. 그런 분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고 싶나요?
(정은) 작고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려고 하고, 생각하는 연습을 하는 게 중요해요. 요즘 뭐가 유행이고 누가 뭘 하면서 논다더라 같은 남들의 기준에 맞추지 말고, 스스로 고민하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어요.
(흥제) 이런 관계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어요. 대신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찾으면 그게 관계로 이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그러니까 어떤 클럽에 가입하기보다는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가까운 사람들하고 그걸 찾는 게 시작이 되지 않을까 해요. 그리고 그 시작점은 남의 이야기를 어떤 편견도 없이 온전하게 들어주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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