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w to Translate the Meaning of Ageing

나이 듦이라는 변화를 해석하는 법

한쪽에서 말한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고. 반대쪽에서 말한다. 그 나이 먹도록 뭐 했냐고, 사람이 나잇값 하고 살아야 한다고. 나이 듦에 대해 생각하면 언제나 모순된 질문에 다다른다. 우리는 자기 나이를 의식하고 살아야 하는 걸까, 잊고 살아야 하는 걸까? 자기 관리 열심히 해서 최대한 젊게 살아야 하는 걸까, 늙어감을 포용하는 법을 배워야 하는 걸까? 나잇값 한다는 건 정확히 어떤 뜻이며, 늙어감을 포용한다는 건 또 무슨 뜻일까?
중년기에 접어들며 품게 되는 이러한 의문과 혼란에 대해 우리는 거의 말하지 않는다. 먼저 이 시기를 통과한 나의 부모와 ‘같이 늙어가는 처지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고 싶다는 로망도 있지만, 인식 차이에 가슴을 치거나 부끄러움에 익숙한 안부만 묻는다. 그래서 김예찬 가족의 이야기가 특별하게 다가왔다. 사위 둘과 장인, 남자 셋이서 장인의 환갑을 기념해 아이슬란드를 여행했다. 하루 10시간 이상 운전하며 섬을 일주한 6박 7일의 여정. 그 길 위에서 이들은 어떤 대화를 했을까? 서른셋과 예순하나, 각자의 자리에서 바라본 나이 듦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장인과 사위만 떠나는 여행이라니, 친밀감의 비결이 궁금합니다.
(예찬) 결혼한 친구들이 처가에서 소파에 눕는 데 3~4년은 걸린다고 하던데, 저희는 1년도 안 걸렸어요. 형님과 제가 둘 다 특이하게 결혼한 경우거든요. 혼전 임신으로 아이가 생긴 다음에 처음으로 인사를 드린 터라 바짝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어요. 얼굴 보자마자 엎드려 절부터 해야 하나 온갖 걱정을 했는데, 아버님이 정말 편하게 대해주셨지요. 따지고 계산하고 채점하는 듯한 모습이 전혀 없으셨어요. 아내가 자라온 이야기를 들어봐도 늘 하고 싶은 걸 지지하고 도와준 아버지였던 것 같아요. 나이와 상관없이 상대를 인격체로 존중해주시는 모습이 첫 만남에서 고스란히 느껴졌어요.
(기원) 저는 오히려 제 친아버지보다 장인어른과 더 편하게 지내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보면 아버님은 말 걸어주길 기다리는 대신 본인이 먼저 말 거는 쪽이에요. 아버님이 스스럼없이 먼저 다가와주시니 저도 얼마 안 되어 먼저 전화해서 “아버님, 술 한잔하시죠” 하게 되더라고요.

두 딸이 모두 혼전 임신 소식을 알렸는데 평정심을 유지했다니 놀라워요.
(필인) 지인 딸이 혼전 임신을 했다는 소리를 들으면 “너, 자식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그러냐”고 나부터도 역정 내던 사람인데, 막상 내 자식이 그러니까 어쩌겠나 싶더라고요. 저는 애들 키울 때도 이미 벌어진 일에 대해서는 혼내지 않았어요. 장난치다 뭘 깨뜨리면 다음부터 조심하면 되는 거지 이미 깨진 걸 혼내서 뭐 해요. 또 막내딸은 자라는 내내 독신주의자로 살겠다고 공언해 걱정하던 차라 내심 좀 반갑기도 했어요. 집에서든 회사에서든 똑같아요. 이미 벌어진 일로 소리 질러야 무슨 소용이에요? 혼내면서 교육시키는 방법도 있긴 하지만, 사고 쳐서 이미 미안해하고 있는데 혼내기까지 하면 사람이 주눅 들고 멀어져요. 이렇게 하면 제멋대로 할 것 같지만, 절대 아니에요. 오히려 스스로 점검하고 조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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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끼리도 함께 낯선 곳으로 여행을 떠나보면 몰랐던 서로의 모습을 새로 발견해요. 그게 싸움의 원인이 될 때도 있고요.
(예찬) 이번 여행이 형님에겐 신혼여행 이후 첫 해외여행이고, 아버님에게는 아예 인생 첫 해외여행이었어요. 저는 혼자 아이슬란드 여행을 해본 경험이 있고, 그때 너무 좋았기 때문에 아이슬란드에 두 분을 모시고 싶었죠. 이번 여행을 계획할 때 제일 중요하게 여긴 목표가 아버님이 환갑 평생 해보지 못한 경험을 선물하는 거였어요. 제 딴에는 평생 일하느라 바쁘고 힘들게 사셨으니까 여행지에서만큼은 숙소에서 편히 느긋하게 늦잠 자는 경험을 좋아하시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요. 평생 아침부터 밤까지 일해온 터라 몸에 비축된 생활 체력이 있으셨던 거죠. 환갑 어르신 체력은 이 정도일 거야 짐작했는데, 실제론 30~40대 체력이라 종일 이어지는 일정을 꽉꽉 채워서 소화하고 싶어 하셨어요. 처음에는 여유 있게 섬의 절반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루트를 짰는데, 아버님께서 이미 본 길을 똑같이 보면서 돌아오기 싫다 하셔서 일주를 강행하게 됐지요. 아버님이 한번 가본 길은 절대 다시 안 간다는 사실을 전에는 몰랐어요.
(기원) 저희가 하루에 최소 10시간씩 운전했어요. 지루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아이슬란드 풍경은 내내 경이로웠어요. 특별한 뭔가를 하지 않아도 기분이 좋았죠. 아버님께서도 당연히 운전을 즐기셨고, 빙하 탐험 때는 가이드에게 그 누구보다 질문을 많이 하시더라고요. 호기심이 무척 많은 분인데, 음식에 대해서만큼은 익숙함이 필요했어요. 동서가 현지 식당을 열심히 알아봤는데, 일정 대부분을 갖고 간 컵라면, 햇반, 멸치, 고추장으로 한식을 만들어 먹었죠. 아버님 입장에선 먹는 즐거움이 아쉬웠을 것 같아요.
(예찬) 여행지에서 겉으로 드러난 갈등은 없었어요. 오히려 귀국해서 제 마음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죠. 제가 아버님이 좋아하실 거라고 상상한 것과 아버님이 실제 좋아하시는 것 사이에 괴리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거든요. 그 인정이 좀 힘들더라고요. 아버님 환갑 기념 여행인데 왜 이렇게 아버님께 만족감을 못 드렸을까, 죄책감과 저 자신에 대한 실망감도 들고요. 그래도 그 경험 덕에 다음 가족 여행 때는 괴리감을 좁힌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아요.
(필인) 우리 나이대 사람은 입이 즐겁고 눈이 즐거우면 돼요. 동남아나 중국이 오히려 낫겠더라고요. 아이슬란드는 좀 황량했어요. 볼 거라곤 폭포, 까만 산, 이끼, 얼음이 다였어.(웃음) 여행지에선 현지인 구경하는 것도 재미인데 인구밀도가 워낙 낮으니까 동네에 가야 사람도 볼 수 없어요. 대신 공기가 너무 맑아서 눈도 종일 맑고 코딱지도 안 끼더라고. 공기 질 하나는 죽기 전에 경험해볼 만했죠. 이건 내 생각이고, 우리 두 사위가 언제든 다시 오고 싶다고 말할 정도로 만족했으니까 괜찮아요.

무조건 좋게 포장하려 하지 않고 솔직하게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이여서 좋아 보여요. 흔히 말하는 꼰대와 소통 가능한 어른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기원) 저는 꼰대란 말을 들으면 저희 아버지가 생각나요. 많이 고지식하시거든요. 본인이 정한 규칙을 어기면 절대 안 되는 분이지요. 어릴 때 밖에서 놀다가도 반드시 6시가 되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어야 했어요. 시간을 어기면 때리셨거든요. 그런데 신기해요. 물론 저희 아버지만큼은 아니지만 저에게도 그런 모습이 있더라고요. 자꾸만 시간표를 촘촘히 짜서 효율적으로 살려고 해요. 변경할 수 없는 규칙을 정해놓아야 하루 일과가 정리되는 느낌이 들거든요.
(예찬) 모든 아들들이 그래요. 자기는 아빠만큼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네 아빠랑 똑같아”라고 하면 발끈하지요.(웃음) 저도 꼰대라는 말을 들으면 저희 아빠가 생각나요. 엄청난 꼰대셨고, 지금도 꼰대이시지만, 제가 아빠가 되면서 이해하는 지점이 생겼어요. 그분들의 시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돼요. 그 시대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생각을 하는 거죠. 특히 엄청난 꼰대라고 느끼던 아빠가 조금씩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고, 내 말에 설득되고, 함께 살아가고자 애쓰시는 모습을 볼 때 그래요. 꼰대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향해 가진 내 안의 편견을 확인하면서 ‘아, 내가 젊은 꼰대였구나’ 깨달아요. 그래서 요즘은 꼰대라는 말에 미안함을 느껴요.
(필인) 똑같이 나이를 먹어도 고지식한 사람이 있죠. 자기 경험치가 세상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돼요.

나이 들수록 유연해지고 싶은데, 쉽지 않아요.
(필인) 다들 놓는 걸 못 해요. 나이 들수록 모든 욕심이 더 많아져. 덩달아 살고 싶은 생각도 많아지고요. 입버릇처럼 75세에 죽을 거라고 말하던 사람도 막상 그 나이가 되면 그렇게 더 살고 싶어진대요. 지금 생각으로는 나도 치사하게 오래 살 욕심내지 않고 적당한 시점에 생을 끝내고 싶은데, 그 나이가 안 되어봐서 장담할 수가 없네요. 나이 들수록 놓는 연습을 하면서 자기 인생을 정리해야 하는데, 대부분 더 욕심부리죠. 나이 팔십 먹어서 돈을 수천 억 가졌는데도 못 놓고 더 움켜쥐려 하는 일부 재벌들 봐요. 내려놓아야 곱게 늙어요. 저는 그런 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퇴임해서 봉하마을에서 보여준 소탈한 모습이 참 좋았어요. 제일 막강한 권력을 잡아봤으면서 홀가분하게 내려놓았잖아요. 반면 우리 주변에 얼마나 많아요. 예전에 우두머리 한 번 해봤다고 지금도 자기가 정점에 있는 줄 아는 사람들, 예전에 어느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을 이용하는 사람들, “옛날에 내가 뭐 했어” 하면서 으스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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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내려놓는 연습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필인) 나와 내 가족이 먹고 쓰는 돈만 내 돈이라고 생각하면 편해요. 내 몸에 지니는 돈이 내 돈이지 나머지는 내 돈이 아닌 거야. 요즘 사람들 자꾸 집 사고 빌딩 사고 소유를 늘리려고 애쓰는데 그거, 죽을 때 가져가지도 못해요.

생각해보면 결혼은 ‘자유로운 연애’에 대한 가능성을 포기하는 일이고, 출산은 ‘나를 우선 순위에 두고 시간 쓸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하는 일입니다. 결국 스스로에게 한계를 부여하는 것인데, 이런 일들이 어떤 측면에서 가치 있다고 보나요?
(기원) 결혼 전에는 밤낮없이 술 먹고 친구들을 만났어요. 자유로웠죠. 근데 생각보다 힘들었어요. 결혼 뒤 잡아주는 사람이 생기고 책임감도 생기면서 훨씬 행복해졌어요. 저는 시간을 정확하게 쓰길 좋아하거든요. 삶의 변수가 줄어들고 협상 불가능한 상수가 늘어난다는 안정감이 있죠.
(예찬) 저는 되게 구속되고 싶은 사람이에요.(웃음)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생기면 오히려 내 범위 안에서 내 역할만 하면 되니까 편해요. 어제 가족을 태우고 운전하며 든 생각이 있어요. 옆에 아내가 핏덩이 같은 셋째를 안고 있고, 뒤에 첫째, 둘째가 타고 있었어요. 내가 너무 사랑하는 아내, 첫째, 둘째, 셋째. 내 인생에서 사랑하는 사람이 넷이나 생긴 거예요! 누군가는 책임질 사람이 늘어난 거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아이를 셋 낳고 사랑하는 마음이 더 뜨거워졌어요. 더 치열하게 싸우고 더 도전적으로 살게 되었어요.

10-11-18

나이 듦도 결국은 내가 할 수 없는 일이 조금씩 많아지는 걸 받아들이는 과정이죠. 더 어린 친구들의 반짝반짝한 모습을 볼 때 어떤 생각을 하나요?
(기원) 저는 지기 싫어서 더 열심히 하는 편이에요. 회사에서도 젊은 친구들에게 전혀 밀리지 않고요. 언젠가 정말로 지게 될 날이 오겠지만, 최대한 뒤로 미루고 싶어요. 적어도 환갑 때까지는. 아직은 밀리고 싶지 않아요.
(예찬) 요즘은 고등학생도 깜짝 놀랄 정도로 영상을 잘 만들어요. 제 자리는 물론 제 직업 자체가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이 듦에서 오는 대체 불가능성에 대해 고민을 아주 많이 해요. 기술적으로 반짝거리고 제가 따라 해보려고 해도 할 수 없는 감성으로 창작하는 어린 친구들이 있지만, 그들이 할 수 없는 부분도 분명 있어요. 결혼하고 아이 셋을 기르는 나만이 할 수 있는 뭔가를 찾아야죠. 물론 그게 어렵겠지만, 나이 듦이 나만 할 수 있는 뭔가를 선물해준다는 믿음은 있어요.
(필인) 나이 드는 건 이런 느낌이에요. 징검다리가 있어요. 머리로는 다리를 쭉쭉 뻗어서 건너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몸이 안 따라줘서 물에 퐁당 빠지는 듯한 느낌이죠. 그래도 그러려니 해요. 젊음과 비교해 우울해할 필요는 없어요. 자연스러운 변화예요. 사람은 언젠가 죽는데 나도 그날이 가까워지는구나 하면서 받아들이는 거예요.

10-1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