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f We Could Walk Together,
Step by Step

나란히 발맞춰 걸을 수 있다면

손바닥만 한 파우치 하나에 기분이 좋아진다. 작은 직사각형 안에 담긴 선명하고 경쾌한 컬러와 패턴이 전달하는 에너지 덕분이다. 직접 디자인한 원단으로 일상에 즐거운 변화를 불어넣는 패브릭 제품을 만드는 키티버니포니.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가업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버지의 든든한 백으로 지금의 회사를 이룬 게 아니냐는 항간의 소문은 오해가 깊다. 시작은 아버지였다. 그 시대 아버지들이 으레 그렇듯 당신의 못다 이룬 꿈은 딸에게 투영되었다. 아버지는 간절히 ‘우리만의 것’을 해보자 했고, 스물다섯 딸은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우선 불안했다. 불황으로 스러져가는 자수 공장, 아버지의 의지를 제외하고는 모든 것이 시작점이었다. 몰라서 더 용감했다. 제품 생산 라인을 구축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공장을 찾아다녔다. 그렇게 아버지의 자수를 놓은 4개의 동물 쿠션이 완성됐고 키티버니포니를 론칭했다.
아버지와 딸은 디자이너와 제작자로서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부녀는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10년간 키티버니포니를 이끌어왔다. 2015년 딸의 이름으로 법인 회사를 만들었다. 완전한 독립이다. 하지만 이들은 여전히 함께 일한다. 엄격하던 아버지 김대경은 언제나 반 발짝 물러서서 딸과 같은 방향을 향해 자세를 고친다. 잠시 쉬어 갈 때도, 속도를 늦출 때도 발을 맞춘다. 둘만의 균형은 여전히 유지하며 그렇게 한 발짝씩 함께 걷고 있다.

자수 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권유로 사업을 시작했다고요. 키티버니포니의 시작은 어땠나요?
(진진) 아버지가 1994년부터 운영해오신 장미산업사는 단순한 자수 공장이었어요. 사실 가업이라고 보기는 어려워요. 키티버니포니와 장미산업사는 협력 업체로 보는 편이 더 맞는 것 같아요. 키티버니포니의 시작은 전적으로 아버지의 의지였어요. 오래전부터 당신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 하셨죠. 당시 의류 쪽 인터넷 시장이 아주 활발했어요. 등 떠밀리듯 한번 알아볼까 하고 쇼핑몰 조사를 시작했는데, 리빙 관련 브랜드는 50개가 채 안 되더라고요. 리본이나 프릴이 달린 전형적인 스타일 외에는 디자인이란 게 전무했어요. 승산이 있겠다 싶었죠.
(대경) 저는 엔지니어 출신이지만 사업을 하고 싶었어요. 직장 생활을 하다 그만두고 자수업을 시작했어요. 자수 공장을 차려 잘되다가 사양길에 접어들었어요. 단가는 다운되고 협력사들이 중국으로 공장을 죄다 옮겨버렸지요. 그때 주목한 게 인터넷 시장이었어요. 점포 없이, 유통 없이 소비자와의 직거래장이 열렸으니까. 소자본으로도 승산이 있겠다 했죠. 당시 전자 상거래가 활발했지만 불신도 많았어요. 인터넷 기반의 사업에 신뢰할 만한 제도가 하나둘 마련되면서 기반이 만들어지기 사작하는 시점이었어요. 더 빨랐다면 결과가 좋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시기가 아주 좋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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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아버지가 자식에게 선뜻 ‘도전’을 말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대학원 졸업반 딸에겐 다른 선택지도 많았을 텐데요.
(대경) 저의 욕망이었어요. 내 사업을 하고 싶은 것을 딸에게 함께 하자고 설득한 거죠. 어려서부터 똑부러진 딸에 대한 신뢰가 있었거든요. 시각디자인, 광고 디자인 같은 전문교육을 받은 딸이 해낼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도 들었고. 제가 직장 생활의 끝이 어떤 건지 경험해봤잖아요. 그래서 딸아이가 서툴더라도 더 빨리 자기 일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어요.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못다 이룬 꿈을 자식을 통해 실현하길 바란 것 같아요. 설득하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진진) 네, 정말 맞아요.(웃음) 대학원 석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는 시점이었는데, 진로에 대해 선택의 기로에 있었어요. 아버지는 밀어붙이는 스타일이세요. 어린 시절을 생각해보면 동생과 제게 매우 엄격하셨어요. 그 당시 아버지를 떠올리면 무섭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 정도로. 그런데 성인이 되고 일을 같이 하며 만난 아버지는 달랐어요. 나이가 들면서 부드러워지신 부분도 있지만, 결정권을 완전히 저에게 넘겨주셨어요. “너희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사업이니 네 방향이 맞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저는 일에서만큼은 아버지를 파트너라고 생각해요. 일이 잘못되거나 망해도 끝까지 함께 내 손을 잡아줄 수 있는 믿음직한 파트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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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아버지가 파트너라는 시각이 새롭습니다. 각자의 역할을 나누더라도 세대 간의 의견 차이나 마찰은 있을 것 같아요.
(대경) 저에게 딸의 디자인은 다소 충격이었어요. 우리 시절에는 장식하거나 꾸미기 위한 디자인이 많았거든요. 디자인 샘플이 넘어오면 이질감을 많이 느꼈어요. 그런데 8개월 만에 딸의 디자인에 반응이 오더라고요. 제가 회사 대표였지만 딸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어요. 그게 맞는 방향이라고 생각했어요. (진진) 초기 1년은 온 가족이 다투는 시기였어요. 동생도 함께 참여하면서 가족 사업이 되었는데 모두 의견이 달랐어요. 동생보다는 아버지와 부딪치는 세대 간의 차이가 분명 있었던 것 같아요. 디자인과 제작,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함께 가는 것이 정착되면서 모든 것이 안정되었어요. 아버지가 살아오신 세월이 있고, 그 세대만이 가진 특유의 고집이나 답답함이 있잖아요. 요즘은 아버지를 자식이 바꿀 수 없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어요. 여행도, 운동도, 자기 관리도 젊은 사람 못지않으시지만 변화에 대한 유연한 생각이나 조직을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방식은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 같아요. 전형적인 경상도 남자세요. 강하게 밀어붙이는 스타일이 아버지의 방식이라면, 저는 좀 더 유연하게 접근하고 싶어요. 요즘 시대는 관계를 유지해나가는 일이 굉장히 중요하거든요. 부드러운 방식으로 회사를 만들어나가고 싶어요.

어린 시절의 아버지는 어떤 분이었나요?
(진진) 아버지는 아주 진취적이고 꿈이 많은 분이셨어요. 엄하고 무서웠지만 저희들에 대한 관심만큼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정성을 보이셨지요. 저는 아이와 아버지 관계의 중요성을 몸소 겪어 잘 알고 있어요. 저희 아버지가 그러셨거든요. 엄마는 늘 챙겨야 하는 다른 역할이 많은데, 아빠는 놀아주기만 하면 되잖아요. 지금 생각해도 대단한 건 아버지가 유치원 때부터 중학교까지 동생과 제 일기장을 매일 검사해주신 거예요. 정말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엄마가 된 지금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죠. 대구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버지 따라서 미술관에 다니던 기억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어요. 그래서 아들 도하에게도 저와 남편이 그런 역할을 하길 바라요.
(대경) 어머님이 그림을 아주 잘 그리셨는데 그 피를 내가 받았어요. 학교에는 항상 내 그림이 첫째로 걸렸어요. 그런데 아버지가 그러셨지요. 간판쟁이 하면 굶어 죽는다고. 그때 제 꿈이 사라졌어요. 곁에서 지켜보니 딸이 어려서부터 색채 감각이 아주 뛰어나더라고요. 저는 하고 싶은 걸 못 하고 살았어요. 그래서 자식에게만큼은 원하는 삶을 선택하게 해주고 싶어 미술 공부를 시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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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회사 설립을 통해 두 번의 독립을 겪었네요.
(진진) 2015년 사옥을 준비할 무렵에 법인을 설립했어요. 디자인 디렉터로 운영을 총괄해왔지만 직원의 신분이었죠. 법인을 설립하면서 직함이 대표가 되었고, 아버지는 완전한 제작사로 밀려나신 거죠.(웃음) 그런데 정말 힘든 시기였어요. 책임자 자리에 있다는 것이 이렇게 외롭고 고단한 일이구나 깨달으며 아버지를 생각했어요. 아버지가 자수 공장을 운영할 시절 틈만 나면 “외롭다, 나는 너무 외롭다” 하셨는데 그 말씀이 이해가 되더라고요.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느낀 게 1년도 채 되지 않아요.

아버지랑 함께 일한다는 것, 그 의미가 궁금해요.
(진진) 저는 아버지랑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아버지를 많이 닮았더라고요. 함께 일하며 깨달은 부분이죠. 아들 도하가 미술을 전공한 저와 남편의 영향인지 섬세하고 감각적인 부분이 있어요. 어리지만 예쁜 것을 기가 막히게 알아봐 깜짝 놀라곤 해요.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아버지와 내가 이룬 일을 내 아들이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가업을 이어간다는 것은 이상을 말하는 것 같지만, 오히려 지극히 현실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진의 키티버니포니, 그 정체성에 대해 듣고 싶어요.
(진진) 여전히 고민이 많아요. 우리를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무엇일까? 패턴과 색채는 분명한 지점이죠. 2008년 첫 론칭을 하고 지금까지 제한된 컬러 팔레트 안에서 색을 사용하고 있어요. KBP만의 색채는 파스텔보다는 원색, 선명함, 비비드함, 화려하지만 튀지 않는 등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볼드한 패턴과 선명한 색감을 선호해요. 패턴을 디자인할 때도 선호하는 유닛의 크기와 대비감이 있어요. 꼭 염두에 두는 것은 9년 전 디자인과 지금 디자인이 연결된다는 점이에요. 우리 제품을 계속 사용하다 새로운 제품을 집에 들여놓아도 이질감 없이 어울리도록 하자는 기준이 있어요. 아버지의 자수를 접목한 상품으로 시작했지만, 지금 저희 브랜드의 대표성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좀 더 고급 라인으로 자수 제품은 꾸준히 생산하고 있지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요. 소비자에게 색과 패턴이 가진 아름다움을 잘 전달하고 싶어요. 작은 소품 하나에 담긴 색채와 패턴이 주는 에너지가 당신의 일상을 새롭게 바꿀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키티버니포니는 아버지로부터 시작했지만, 모든 부분에서 완전히 다른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늘 곁에서 해주실 거라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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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or fathers

가족과 함께 일하는
사람을 위한 조언

05-10

역할을 정확히 분담하세요
아무리 속내를 다 아는 가족이라도 의견 대립은 피할 수 없다. 오히려 가족이라서 갈등은 더 깊어질 수 있다. 가족 사업을 운영하려면 아버지는 생산, 딸은 디자인, 아들은 경영 등 각자가 전문으로 맡을 수 있는 분야를 정해야 한다. 가족 내 서열에 상관없이 역할 안에서 각자가 결정권을 갖도록 한다.

자식이 대표로 나서는 것이 이상적
가업을 운영하는 2세대 주자들이 아버지의 벽에 가로막혀 뜻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가족 사업도 그렇다. 특히 부모 세대에서 관성적으로 자신이 해오던 방식을 고집하면 자식 입장에서는 설득하기 어렵다. 시간의 힘이 중요한 기술 영역은 부모를 존중하되 이것을 펼쳐갈 큰 틀은 다음 세대가 만들어가는 것이 힘의 균형 면에서 이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