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come First or Time First?

소득 먼저일까, 시간 먼저일까

우리는 너무 자주 ‘시간’이라는 재화의 존재를 잊곤 한다.

나는 지난 십수 년간 마감이 있는 인생을 살아왔다. 마감은 스트레스와 히스테리, 온갖 질환과 노화를 촉진한다. 가히 악의 축이라 할 만하다. 나는 거의 매번 마감이 코앞에 닥쳐야 울면서 일했다. 이런 내가 나도 싫었다.
시간 관리라거나, 규칙적 일과의 중요성이라거나, 일은 항상 마감 전에 끝내 상쾌한 기분으로 살라는 어느 스님의 조언도 마음에 거듭거듭 새겼지만, 그때뿐이었다. 마감이 저 멀리 해수욕장의 부표처럼 멀리 떠 있을 때에는 느긋해도 이렇게 느긋할 수가 없었다. 다시 말해 머리는 완전히 굳어버리고 긴장감은 바닥을 치는 것이다.
튜브에 몸을 끼우고 멍청한 얼굴로 물 위에 둥둥 떠 있던 나는 어느 순간 발이 바닥에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득히 멀리, 나와는 관계없는 어떤 상징처럼 떠 있던 부표가 내 코앞에 있다. 저 멀리 해변에서 구조 요원이 호루라기를 불며 소리친다. “아줌마! 아줌마! 나오세요!” 아줌마인 나는 그가 나를 아줌마라고 불렀다는 사실에 분개하는 동시에 공포에 떤다. 그제야 나는 사태의 시급성을 깨닫고 울면서 일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사노 요코의 산문집 《사는 게 뭐라고》를 읽으며 가장 무서웠던 것은, 육십이 넘은 이 할머니 역시 매번 위가 꼬이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감이 닥치지 않으면 일을 못 하고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룬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노 요코 할머니를 좋아하지만 사노 요코 할머니의 인생이 내 이상향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육십까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다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11-02-01

그런데 1년쯤 전부터 나는 규칙적으로 일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감은 웬만해선 넘기지 않는다. 원래의 마감일보다 이틀 정도 앞당겨서 달력에 동그라미를 쳐놓고 그날에는 끝낸다. 여름에는 오전 5시부터 오전 11시까지, 겨울에는 오전 6시부터 낮 12시까지 매일 비슷한 시간에 일한다. 일하면서 딴짓도 하고 밥도 먹고 집안일도 하지만 아무튼 해야 할 일은 한다. 오후에는 또 다른 일을 하는데, 그것도 오후 6시나 7시가 되면 무조건 끝낸다.
그러고 나면 더 이상 일하지 않는다.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도 절대 하지 않는다. 그저 멍하니 앉아 TV를 보거나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 기분이 좋다. 아무 생각도 걱정도 없이 놀고 있다는 사실에 문득 놀라서 불안해질 때도 있는데, 그럴 때면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일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노는 시간이야. 내일 아침에 다시 일하기 위해서 지금은 푹 쉬어야 해.” 그러면 다시 기분이 좋아진다. 너무 좋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쉽지 않았다. 지난 10여 년간의 고군분투를 통해 나는 겨우 규칙적으로 일하는 몸을 만든 것이다. 그러고 나니 마감을 미루는 일도, 스트레스를 받는 빈도도 줄었다. 아아, 나는 드디어 시간 관리의 승자가 된 것이다. 무려 10년 만에.
그런데 이렇게 마감과 시간에 쫓기지 않는 데,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바로 ‘적당히’ 일하는 것이다. 절대로 무리해서는 안 된다. 일은 조금만 하되 하나하나에 정성을 기울인다. 나도 안다. 내가 적당히 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회사에 다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을.

한창 신혼일 때 입버릇처럼 남편에게 하던 말이 있다. “우리 그냥 네가 반나절, 내가 반나절 나눠서 일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딱 월급의 절반만 받으면 좋겠다. 나머지 시간에는 번갈아 아이들을 돌보고 집안일을 했으면 좋겠다.”
그 시절 남편은 검은 양복을 입고 새벽에 나가 새벽에 들어오는 회사원이었고, 나는 아이 둘을 낳고 키우느라 집에서 생지옥을 경험하고 있었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그때 나는 아마 그런 말도 했을 것이다. “돈보다 시간이 중요해.”
10년 만에 우리는 꿈을 이뤘다. 남편은 이제 회사원이 아니다. 그는 작은 사업을 한다. 우리는 하루의 절반 이상을 일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회사원처럼 오랜 시간 일하지는 않는다. 버는 돈은 때에 따라 다르지만 회사원으로 이 정도 일했다면 받았어야 하는 연봉보다 못하다. 아이들은 어느새 손이 거의 가지 않을 정도로 다 자랐고, 요리도 설거지도 청소도 빨래도 둘이서, 때로는 넷이서 나눠서 하는 게 당연해졌다. 심지어 남편과 나는 일도 함께 한다.
다시 회사라는 데를 다닐 수 있을까? 그 생각을 할 때마다 어디에선가 불길한 징조처럼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는 느낌이다. 가끔 회사원을 부러워하기는 한다. 이를테면 월급이나 소속감 같은 것. 그 사람들은 다음 달에 당장 길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지 않아도 되겠지. 인생을 좀 더 긴 안목으로 설계할 수 있겠지. 그래도 다시 회사라는 데를 다닐 수 있을까, 집단에 속해 타인이 정해준 일과에 맞춰 움직이고 밥 먹고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게 된다. 어떤 삶에나 명암은 있게 마련이다.

어쩌면 지금보다 더 열심히, 진이 빠지도록 열심히, 제 몸을 불살라버리기라도 하듯 열심히 해야 하는 게 아닐까. 지금 여기서 좀 더 나가줘야 하는 게 아닐까. 우린 너무 안일하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너무 느긋한 건 아닐까. 하지만 우리는 언제나 더 해야 할 것 같을 때 멈춘다. 왜냐하면 그래야 오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 오래 지속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 부부는 돈보다 시간을 더 중시하는 삶을 산다. 우리에게 아이들이 없다면 이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이들이 있기 때문에, 자신을 혹사하고 시간을 물 쓰듯 써버릴 수가 없다. 아이들에게는 우리가 필요하다. 그래서 야근을 거부하고, 물에 젖은 솜처럼 지친 몸으로 집에 와 밥을 지어 먹고, 아이들과 함께 누워 TV를 보고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아이들과 산책 가고 외출하고 여행을 간다. 시간이 우리가 아이들에게 줄 수 있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막 가정을 꾸린 시절,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던 시절, 내가 원한 건 딱 두 가지였다. 가족이 다 함께 저녁을 먹는 것, 그리고 산책을 하는 것. 그 정도는 인간으로 살면서 바랄 수 있는 가장 낮고도 쉬운 수준의 행복인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지금도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 다 함께 저녁을 먹을 수 있고, 산책을 할 수 있으면 된다. 그 단순하고 작은 것이 매일 지속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어떤 행운이 따라야 하는지 이제는 잘 안다. 쉬워 보이지만,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일 수 있다.

11-02-03

한수희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했고 잡지사에서 기자로 일했다. 〈어라운드〉, 〈대학내일〉 등의 잡지에 글을 쓴다. 《우리는 나선으로 걷는다》, 《온전히 나답게》, 《여행이라는 참 이상한 일》,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이라는 책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