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My Child a Problem Child?

내 아이가 문제아인가요?

공교육 교사에서 대안학교 교사로 변신한 박준규에게 대안학교에 관한 질문을 던졌다. 내 아이의 다름에 자책하는 부모를 대변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ADHD의 진실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ADHD 학생을 위한 대안학교 ‘지지학교’를 설립했어요. 학교와 사회에서는 ADHD로 진단받거나 의심받는 아이들은 ‘문제아’, ‘학습부적응자’라고 생각합니다.
아인슈타인, 뉴턴, 베토벤, 다윈에게는 두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스퍼거(타인과 소통하는 데 어려움이 있는) 장애를 포함한 자폐 증세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한 가지는 그 성향을 토대로 인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발견을 이룩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현장에서 만난 많은 자폐 아이도 놀라운 집중력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미세한 부분을 보는 독특한 능력이 있었습니다. 당연한 것에 질문을 던지고, 끈질기게 탐구하는 특성이 창의성과 독창성의 원천이 될 수 있는 거죠. 과거 자폐증 ‘오티즘 Autism’ 이라고 부르던 것이 요즘 ‘자폐 스펙트럼 장애 ASD’라는 말로 부르면서 덩어리가 커졌습니다. 전교 1등인 자폐아, 거친 행동을 하는 자폐아, 아무런 특징이 나타나지 않는 자폐아도 있어요. ADHD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포함되고요. 미국에서는 5% 안팎의 어린이와 청소년에게서 발병하고, 한국에서는 10% 안팎으로 보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약물 치료를 최선책으로 여겼지만, 지금은 그저 사회의 일부이고 다른 캐릭터라고 보는 것이 지배적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편리한 삶이 과거 몇몇 사람의 그 독특한 기질 덕분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해해야 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기질을 개성이라고 인정해도, 학교에서는 공교육이 아닌 대안학교를 권유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산만하거나 ADHD, 아스퍼거 등의 진단을 받은 학생이 대안학교로 옮겨가는 것이 좋은 선택일까요?
서울에 40개, 부산에 6개 사립 초등학교가 있고, 전국 중·고등학교의 40%는 사립학교입니다. 사립 초·중·고도 공교육 학교입니다. 따라서 공교육 학교의 다른 이름은 ‘다인수학급운영학교’입니다. 20~30명 학생을 담임이든 교과 선생님이든 혼자서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특별한 요구를 하는 ADHD 학생이나 아스퍼거 증후군 학생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ADHD의 경우 지시가 아닌 공감에 의해 컨트롤할 수 있지만, 교사의 자질과 개성에 상관없이 교실 안에서는 공감 활동이 거의 불가능합니다. ADHD 아이는 인원수가 적은 교실에서 개개인의 욕구를 경청하고, 느리게 활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실 밖에서 몸을 쓰는 활동은 필수적입니다. 이 아이들을 받아주는 학교가 몇 군데 있었지만 현재는 대부분 문을 닫은 상황입니다. 학교 운영은 큰 경비가 들어가므로 학부모의 교육비만으로 지속 가능하지 않기 때문이죠. 이런 현실을 반영한다면 대안학교 선택을 고민하기보다는 의사나 상담사와 의논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이가 ADHD 판정을 받으면 부모는 스스로의 양육 태도를 후회하며 자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유발 요인은 무엇인가요?

특히 많은 엄마가 자신의 탓이라며 자책하곤 합니다. ADHD는 ‘Attention deficit hyperactivity disorder’의 약자로, 주의가 산만하며 과잉 행동을 하는 질환을 뜻합니다. 최근에는 ADHD도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일부로 보고 있지요. 놀라운 사실은 전 세계 많은 의사가 자폐의 원인을 부계 유전으로 본다는 겁니다. 형제 중 한 명에게 자폐 성향이 있을 경우 다른 형제에게도 자폐가 나타날 확률은 17%이고, 이란성쌍둥이에게는 40%, 일란성쌍둥이에게는 60% 이상 높아진다는 것이 근거입니다. 자폐증 유발 요인이 유전이냐 환경이냐를 두고 수십 년간 공방을 벌였어요. 최근 학계의 정설은 80~90%가 유전적 요인으로 발병한다는 쪽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많은 상담가가 환대받지 못하는 아이의 기질을 “엄격한 양육 탓”이라고 말하며 부모의 죄책감을 자극하죠. 자폐 성향은 아이가 타고난 기질의 하나입니다. 엄마 문제로 생긴다거나, 훈육으로 바로잡아야 한다는 잘못된 통념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몇 년 전 실리콘밸리에 ADHD와 자폐증 아이가 많다는 뉴스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실리콘밸리에 근무하는 아빠의 자녀들 중 자폐증이 많은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엉덩이 무겁게 앉아서 연구하고, 한 분야를 깊이 파고드는 인재들 중 자폐 성향이 많다고 예상할 수 있지요. 제가 상담을 통해 만난 자폐아들을 보면 상당수가 아빠에게 특이한 기질이 있었습니다. 한 대를 올라가 할아버지에게도 독특한 기질이 있었지요. 하지만 결코 아빠의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아빠가 이 문제를 정확하게 인식하면 상황을 바꿀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빠를 성공으로 이끈 내면의 특정한 기질이 아이에게는 다르게 발현될 수 있다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의 기질을 긍정적으로 순화시켜주는 겁니다. 이때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려 하기보다 자신의 타고난 기질을 인지하고 스스로 성찰하는 것이 중요해요. 아빠가 바른 신념으로 편법을 쓰지 않으면서 잘 살아가면 그 기운이 아이에게도 전달됩니다. 자폐 성향이 없어도, 아빠가 양육에 참여하지 않아도 아빠의 기질은 분명히 아이에게 발현됩니다.

자녀 교육에 성공하려면 “조부모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라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대안교육을 조사하다 보니 실제 우리나라에 대안교육을 시작하고 이끈 건 아빠들이라는 사실을 알았어요.
맞습니다. 20년 전 우리나라에 대안교육을 뿌리내린 주체는 아빠들이었어요.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잠만 자는 공교육에 제동을 걸고, 활력 넘치는 교실을 만들어보자는 취지 아래 아빠들이 주체가 되어 대안교육이 불타올랐습니다. 사회적으로는 군사정권에서 민간 정권으로 들어서는 변화가 있었고, 교사들 사이에서도 전교조의 출범과 함께 ‘우리나라 교육 이대로는 안 된다’는 움직임이 일었죠. 당시 386 세대에게 대안교육은 또 다른 성취이기도 했을 겁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의 대안학교는 더욱 다양화·세분화되었어요.

대안교육과 관련한 강의도 많이 하는데요, 아빠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무엇인가요?
“좋은 아빠가 되려면 내가 어떻게 변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가장 많이 받습니다. 그에 대한 조언을 한다면 먼저 아빠와 엄마는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엄마는 태교, 모유 수유 등을 통해 아이와 밀접하게 접촉하는 반면, 아빠는 DNA만 툭 던져놓은 존재입니다. 자녀를 바라보는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아빠는 자녀를 훈육할 때 대의명분을 내세웁니다. 대부분 자기 생각이 아니라 주입된 것이죠. 자녀가 명문대에 가고,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이 정말 성공이라고 생각하는지, 자신의 생각을 스스로 성찰해보세요. 좋은 아빠가 되려면 아빠의 시간을 아이에게 기부해야 합니다. 아이와 놀아주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빠들끼리 모여 공부하고, 그럴 수 없다면 혼자 책을 보며 공부하는 것도 좋아요. 부모로서도 성장을 해야 합니다. 인간은 고유한 에너지를 갖고 태어나는데, 가족이라도 그 에너지의 방향성이 다를 수 있고 서로 충돌할 수 있어요. 자녀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을 때는 ‘저 친구는 나와 다른 에너지를 지니고 있구나’라고 인정하세요. ‘너의 에너지를 세상에 맞게 바꿔라’가 아니라 ‘네 안의 에너지를 잘 발현해라’ 는 것이 대안교육의 정체성입니다. “어떻게 해야 잘 성장할까?”라는 질문을 아이가 아니라 아빠인 자신에게 되물어보세요.

대안학교 입학을 고려할 때 부모와 자녀가 가장 중요하게 고민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무엇보다 대안학교를 선택하려는 부모의 입장과 학생 당사자의 생각이 확고해야 합니다. 세상에 대한 폭넓은 경험과 가치관을 확립하고 싶거나, 공동체 생활에 익숙한 배려형 인간으로 자라고 싶다거나, 내신을 만회하고 좋은 대학에 가고 싶다는 등 확실한 목표가 있어야 해요. 그 목표에 부모와 자녀가 반드시 합의해야 하고요. 20년 전 대안학교 초창기에 “놀면서 서울대 가기”를 주장하는 부류가 있었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허황되고 실현 불가능한 이야기인 것은 분명합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부모와 학생은 냉정하게 판단해야 해요. 대안학교에 잘 적응하는 아이는 호기심이 많고 자기 관리를 잘하며 이타적 성격의 학생입니다.

아이에게 딱 맞는 대안학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고르면 좋을까요?
대안학교 입학을 고민할 때 아이가 초등학생인지, 중·고등 학생인지에 따라 학교 선택의 기준이 달라집니다. 설립 주체가 종교 단체(주로 기독교)인지, 진보적 교육 철학을 견지하는 학교인지에 따라서도 고민하는 지점이 다를 것입니다. 하나 추가한다면 기숙형인지 등·하교 형태인지에 따라서도 선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게 여덟 가지 조합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종교 단체 설립-기숙형’, ‘중등-진보적 철학 견지-등·하교’ 이런 식으로. 큰 틀에서 형식을 정한 다음 세부 학교를 찾고 홈페이지나 블로그를 통해 자세히 알아보세요. 물론 직접 찾아가 입학 상담을 해야 합니다.

대안학교를 선택하고 싶어도 ‘교육비’와 ‘부모 참여’ 부분이 걸림돌이 되기도 합니다. 대안학교 안에서 부모의 실제 상황이 궁금합니다.
교육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연간 1000~3000만 원까지 학교마다 학비가 다양합니다. 만약 공립형 대안학교라면 학비가 전혀 들지 않거나 매우 저렴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비인가 학교로, 이는 학력 인정을 위해 검정고시를 거쳐야 한다는 뜻입니다. 검정고시 통과률은 매우 높지만 대입의 경우 검정고시가 불리할 수도 있으니 꼼꼼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의 대안학교는 학생-교사-학부모가 협력하는 공동체로 생각합니다. 진보적 교육 철학을 가진 학교일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따라서 진보적 철학을 견지하는 대안학교를 택할 경우 학부모 활동이 활발해 학교행사나 부모 교육, 교육 세미나에 자주 참석해야 합니다. 또한 늦은 시간까지 행사가 이어지거나 주말과 휴일에 학교에 모여 봉사 활동과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으니 이 점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공교육 학교에 다니다가 갑자기 대안학교로 옮겨가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요?
공교육 학교에서 일단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면 한 학기 정도 무적 無籍 상태로 학교에 가지 않길 권하고 싶습니다. 어른과 함께 국내외 여행을 다니는 것이 좋습니다. 집에만 있으면 부모와 갈등을 일으킬 일이 생기고, 현실적으로 어린이와 청소년 대부분이 휴대폰 게임이나 유튜브 시청으로 시간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잠시 학교를 떠난 경우,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아이의 양육을 맡기는 것은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대안학교에 입학했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공교육으로 돌아오는 친구도 있습니다.
대안학교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분위기에서 생활한 아이가 공교육 학교로 돌아가는 경우 대부분 어려움 없이 적응합니다. 만약 아이가 공교육에 적응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한다면 거의 경쟁 구도에서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라 보면 됩니다. 외형적으로는 왕따 문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큽니다. 왕따를 시키는 아이들은 ‘텃세’를 가장한 억지 우월 의식인 경우가 많습니다. 따라서 공교육으로 복귀한 대안학교 아이가 어려움을 겪는다면 전문가와 상담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문제가 나한테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는 쉽지 않은 미션이며, 어려움을 겪는 동안 부모(형제)와 가정은 조건 없는 안식처로 둥지가 되어줘야 합니다. 이때 “네가 먼저 태도를 고쳐봐”, “평소 어떻게 행동하기에 그런 일이 생기냐?”는 식의 말은 절대 삼가야 합니다.

실제로 자신을 ‘루저’라고 지칭하는 학생이 많습니다. 요즘 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이라고 보나요?
세상 모든 아이가 지닌 공통점을 꼽자면 ‘외로움’입니다. 아이들은 외롭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칩니다. 한국 아이들의 3대 공포는 죽음, 부모로부터 버림받음, 서열에서 열등해지는 것입니다. 부모로부터 버림받음은 교사부터 버림받음, 주변 관계의 단절로 확장됩니다. 버림받지 않으려면 부모의 기대에 일정 수준 부합해야 하는데, 그것이 버겁게 느껴질 때는 비상한 방법을 사용합니다. 무기력함이나 퇴행을 선택하는 거죠. 자신 없는 건 아예 시도하지 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부모가 자신의 공부를 포기하게 만드는 아이가 많아요. 유아기 시절 걷고 기저귀 떼기부터 경쟁을 경험한 아이는 본능적으로 아는 거죠. 책임의 부하를 무겁게 느끼면 행위의 최우선 조건을 ‘생존 가능성’에 두고 살아남을 가능성이 큰 쪽으로 행동합니다. 자신을 루저로 포지셔닝하는 것도 생존을 위한 일종의 방편인 셈이죠. 한국의 많은 아이가 성공과 실패의 프레임에 갇혀 있어요. 아이 스스로 2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이는 부모가 성공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성공하지 않아도, 부자가 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해요. 실패를 허락하세요. 공부든 사회생활이든 아이가 계속 실패할 수 있도록, 웃으며 실패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어야 합니다.

“공교육이야말로 국민에게 의료보험보다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국가 정책”이라고 말씀하셨는데요, 공교육 안에서 대안교육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이 있나요?
교육에도 세 가지 단계가 있습니다. ‘에듀케이션 1.0’은 아이들을 교실에 앉혀놓고 주입식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에듀케이션 2.0’에서는 교사와 학생이 상호작용을 합니다. 학생도 문제 제기를 포함한 질문을 통해 새로운 이슈를 만들 수 있어요. ‘에듀케이션 3.0’에서는 가르치는 자와 배우는 자의 경계가 없습니다.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해가는 것을 지향합니다. 사실 에듀케이션 2.0만 잘 구현되어도 학생은 자유롭게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공교육의 교육과정을 바꿀 수 있어요. 모르는 것을 묻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 이럴 수도 있지 않아요?”라고 문제 제기를 하는 것이죠. 세상을 향해, 친구를 향해, 텍스트를 향해 질문해야 합니다. 학생의 질문이 교실 분위기를 바꾸고,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육에서 대안학교가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안학교는 교사와 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잘 키워보자고 20년 전 합심해서 만든 학교입니다. 대안교육이 우리나라 교육의 ‘인싸’가 될 순 없지만, 정화 역할로서 중요합니다. 대안교육의 쇠퇴는 교육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과 같아요. 이제 제2의 대안학교 운동이 필요한 시점이에요. 아빠들이 새로운 마인드로 다시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를 잘 키우자’가 아니라 ‘부모와 교사가 다시 태어나서 함께 더 성장하자’로 가야 합니다. 인가, 비인가를 막론하고 부모와 교사가 ‘우리가 다시 한번 잘 성장해보자’는 프레임이 되면 아이들이
잘 따라옵니다. 단순히 학제로서의 학교가 아니라, 학교라는 곳에서 살아가는 방편을 함께 모색하고, 직업을 통해 현실화해나가는 방향으로 가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먼저 네트워크를 만들고, 그것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서로 네트워크를 만들어 서로를 지지해주며 함께 생존해나가길 바랍니다.

박준규

초등학교 교사 시절에는 ‘괴짜 선생님’이라고 불렸다. 음악 시간에는 학교 뒷산에서 학생들과 합주를 하고, 주말에는 버스를 빌려 학생들과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아이들은 교실 밖에서 뛰어놀며 자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공교육의 틀 안에서는 할 수 없는, 생동감 넘치는 교육을 꿈꾸며 20 년 교사 생활을 접고 제도권 밖으로 나와 ADHD 학생을 위한 기숙형 대안학교 ‘지지학교’를 설립했다. 《괜찮아 ADHD》(씽크스마트)를 썼고, 지금은 호주 태즈메이니아에서 도움이 필요한 어린이들을 만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