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 This the Reality of Ageing?

나이 드는 게 원래 이래요?

나처럼 허무맹랑한 인간도 노후 대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렇게 오래 살다니!
올해 만으로 마흔하나. 《논어》에 의하면 웬만한 세상일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불혹. 쏟아지는 졸음을 참기 힘든 민방위훈련마저 끝나 국방의 의무로부터 자유로워진 X세대 끄트머리이자 영포티 또는 차세대 꼰대.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러운 얘기지만, 나는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몰랐다.내게는 남다른 재능이 있지만 그 남다른 재능은 살아 있는 동안 끝내 빛을 보지 못할 테고, 끈질긴 불운과 가난에 시달리다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세상을 떠날 줄 알았다. 이를테면 빈센트 반 고흐처럼 이번 생은 글러먹었다고 생각했다. 내 책은 (내 입으로 이런 얘기 좀 그렇지만) 정말 재밌는데 더럽게 안 팔리는 것도 운명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어느 날 눈떠보니 빈센트 반 고흐와 달리 웬 여자와 결혼도 했고, 아이도 하나 있는 것이다. 생전에 그림이 더럽게 안 팔린 고흐와 책이 더럽게 안 팔리는 나는 그것 말고 닮은 구석이 조금도 없다. 게다가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초등학교 4학년이 됐고, 얼굴에 난 뾰루지를 거울로 이리저리 뜯어보기 시작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웬 여자와 하루가 멀다 하고 부지런히 술을 마셨을 뿐인데 말이다. 지금도 가만히 눈을 감으면 그 웬 여자와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던 어느 겨울 술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시절이 그립다는 얘기가 아니라, 먹고사느라 숨 가쁜 지금이 이따금 낯설다는 얘기다..

10-07-01

왜 갈수록 돈이 무섭지?
그 시절 나는 돈 없이 살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혼자 먹고살 만한 돈은 곧잘 벌었고, 돈보다 늘 내 만족이 먼저였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산다는 자부심도 컸다. 온종일 만화만 만들다 죽어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리 눈을 감아도 내 만족이나 자부심에 사로잡히던 과거로 돌아갈 수 없다. 만화 원고료는 그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가 없는데, 웬 여자와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던 어느 겨울 술자리는 너무나 아득한 일이 되고 말았다. 남다른 재능은커녕 보잘것없는 재능이라도 쥐어짜내 생활 전선에 투신해야 한다. 눈앞의 현실은 마치 내가 남들처럼 가정을 꾸리길 기다렸다는 듯 무자비하기만 하다.
그렇다. 나는 돈 없이 살 수 있다는 착각에 빠졌을 뿐이다. 전세 보증금이 모자라 살던 집에서 쫓겨날 뻔하던 어린 시절은 까맣게 잊고 살았다. 그 무렵 부모님은 등껍질을 빼앗긴 소라게처럼 동분서주했는데, 철없는 나는 ‘집이 없으면 텐트에서 살면 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방문 틈새로 새어 나오던 부모님의 한숨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무렵 부모님보다 나이가 더 많고, 이제야 잊고 살던 부모님의 한숨을 어렴풋이 이해한다. 웬 여자, 그러니까 아내와 아이와 함께 살려면 텐트 말고 집이 필요했고, 생각보다 많은 돈이 필요했다. 그 무렵 부모님은 어떻게든 가난만큼은 대물림하지 않으려고 필사적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나는 부모님만큼 필사적이지 못했다. 어느 정도 꾸준히 돈을 벌고 있지만, 그 돈으로 세 식구가 살 수는 없다. 역시 만화가인 아내가 버는 돈까지 합해도 내 또래 직장인 평균 연봉이 안 된다. 다행히 내 또래 직장인에 비해 쓰는 돈이 많지 않아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만일 병든 부모님을 부양해야 하거나 집안에 누군가 연대보증이라도 섰다 잘못되면 그대로 풍비박산이다. 그 흔한 생명보험도 하나 없고, 푼푼이 모아둔 저축도 얼마 전 가족 여행으로 탕진했다. 아내와 나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일용직이나 다름없고, 죽을 때까지 경제적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그 경제적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입에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대부분은 저마다 경제적 불안에 시달리지 않을까. 당장 내 주변만 봐도 살 만한 집이 있는 친구들은 대출금 갚느라 생활이 그다지 여유로워 보이지 않는다. 그 친구들에 비하면 가족 여행에 푼푼이 모아둔 저축을 탕진할 수 있었던 우리 집 세 식구가 차라리 훨씬 더 여유롭다. 우리 집 세 식구는 재계약할 때마다 껑충 뛰어오르는 전세 보증금을 감당하지 못해 몇 해 전부터 처갓집 신세를 지기 시작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이 사시던 집을 비워주셨는데, 그 덕분에 친구들은 나더러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게 틀림없다”며 부러운 속내를 감추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집세 아끼는 것만으로도 우리 집 세 식구의 삶은 그전과 완전히 달라졌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지만
그전까지만 해도 가족 여행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 한 번씩 부모님 계신 왜관에 내려갈 때마다 그걸 가족 여행으로 삼았다. 모처럼 외식할 때마다 통장 잔고를 확인해야 했다. 통장 잔고가 모자라 결제가 안 되면 곤란하니까. 생활비가 떨어져 아이 돌반지를 팔 때는 손에 땀을 쥐고 금 시세 정보만 들여다봤다. 돌반지를 내다 팔고 며칠 뒤, 갑자기 솟구치는 금값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보면서 그렇게 원통할 수 없었다. 그래도 아이에게는 용케 가난이 대물림된 것 같진 않다. 그 옛날 부모님처럼 전세 보증금이 모자라 이사가던 날, 아이는 내가 속으로만 했던 생각을 천진스럽게 말했다.

“집이 없으면 텐트에서 살면 되잖아? 재밌겠네!”

물론 아내와 나의 경제적 불안은 선택의 여지조차 없이 궁지에 내몰린 사람들의 경제적 불안에 비할 바는 아니다. 우리 집 세 식구가 한때 아무리 가난했다고 해도 배부른 고민일 수밖에 없다. 다만 돈을 버는 족족 알 수 없는 미래에 쏟아부어야 하는 삶을 행복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다시 말해 우리는 어쩌면 아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어항에 갇힌 소라게 신세가 아닐까. 터무니없이 비싼 대학 등록금과 집값은 수많은 대학 졸업자들과 살 만한 사람들까지 빚쟁이로 만들고, 피부양자가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자가 될 수 없는 부양 의무제는 가족을 무거운 짐처럼 여기게 만들며, 일자리를 잃은 중년과 노후 대비에 실패한 노년은 구제받을 길이 없고,그 옛날 부모 세대처럼 필사적인 소라게만 살아남을 수 있다면 애초에 우리를 에워싼 이 어항이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런데 그 옛날 부모 세대처럼 필사적이면 정말 살아남을 수는 있는 걸까.
아내는 종종 말한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불안한 행복이라도 누릴 수 있는 지금이 우리 인생 황금기라고. 그럴 수 있겠다. 등껍질을 빼앗긴 소라게처럼 동분서주하던 젊은 부모님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정신없었다. 지금은 내가 그 전철을 고스란히 밟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부모님만큼 필사적이지 못하다. 더군다나 이건 내가 꿈꾸던 마흔하나가 아니다. 내가 꿈꾸던 마흔하나는 언제든 눈만 감으면 웬 여자와 다정하게 귓속말을 속삭이던 과거로 훌쩍 돌아갈 수 있을 줄 알았다. 빈센트 반 고흐처럼 제때(?) 죽지 못했다면 책이라도 잘 팔릴 줄 알았다. 나이가 들수록 돈이 필요한데(하다못해 병원비가 더 들 테고), 나처럼 허무맹랑한 인간도 노후 대비는 할 수 있을 줄 알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나이가 들수록 사는 게 점점 두렵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내가 이 정도면 무언가 단단히 잘못됐다.

10-07-02

권용득

남들 일할 때 놀고, 남들 잘 때 깨어 있는 만화가. 평범한 사람들의 보잘것없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대표작으로는 단편 만화 모음집 《예쁜 여자》와 전지적 남편 시점 에세이집 《하나같이 다들 제멋대로》가 있다. 한편 《예쁜 여자》는 2015년에 프랑스에서 번역 출간됐다. 혹시 프랑스의 앙굴렘 만화 축제에서 초청이 오지 않을까 미리 여권까지 만들었으나 지금까지 아무 소식이 없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