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ever Happens, It’s Okay.

무엇이 되어도 괜찮아

출판계 불황이 고질병인 나라에서 묵묵히 책을 만드는 아빠와 딸이 있다. 30년 전, 러시아 문학 전문 출판사로 문을 연 ‘열린책들’ 홍지웅 대표와 예술 서적을 주로 출간하는 출판사 ‘미메시스’의 홍유진 대표 이야기다. 홍지웅 대표가 국내 최초로 러시아와 판권 계약을 맺으며 첫 책인 《붉은 수레바퀴》를 출간했을 때는 아직 우리나라와 러시아(당시에는 소련이었다) 의 국교 정상화가 이뤄지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후로도 그는 업계에서 의아해할 만한 일들을 곧잘 기획했고, 밀어붙였고, 성공했다. 주류가 아닌 유럽 문학을 국내에 소개해온 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건 이제는 너무 유명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였다.
홍유진 대표의 기억 속에 집은 늘 할아버지의 그림과 아버지의 책이 넘쳐나는 공간이었다. 보고 자란 게 팔 할이라 자연스레 미술이 가깝고 책이 재밌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숙원이기도 한 예술 서적을 전문으로 출간하는 출판사를 운영하며 아버지가 그랬듯 외국 서적을 번역하고 단행본을 기획하는 일까지 다방면으로 책과 함께하는 삶을 살고 있지만, 그는 명확하게 선을 긋는다. 아버지가 걸어온 길을 충분히 존경하며 그 부지런함을 닮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자신의 딸에겐 마음의 여유를 물려주고 싶다고 한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쳐 자신에게 전달된 정신적 유산의 가치를 안다. 다만, 자신에게 재미있는 삶은 아버지와 조금 다른 길에 있음을 역시 알고 있다.

03-01

아버지(홍지웅 대표)가 지은 건축물에는 다 미메시스라는 이름이 붙었어요.
지금 대표로 계신 출판사 이름도 미메시스고요. 어떤 의미일까요?

미메시스의 뜻이 모방이잖아요. 모든 건 가장 원초적인 것, 자연에서부터 보고 배우고 그걸 모방하면서 예술이 된다는 철학적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싶으셨던 것 같아요. 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예술에 대한 갈망이 있으셨어요. 어머니와 연애할 때도 초상화를 그리고 뒷면에 시를 써서 선물하는 분이셨대요. 미술이나 건축 같은 예술의 범주에 있는 일련의 일들을 미메시스라는 이름으로 진행하고 싶으셨는지 이미 오래전에 출판사 상표 등록까지 해놓으셨더라고요. 저는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서 바꾸고 싶었는데 못 했죠. 미메시스는 발음하기도 어렵고 일반 대중에게는 개념 자체가 생소하잖아요. 뜻이 뭔지 잘 모르는 분도 많고 뜻을 알아도 “그런데 왜?” 하시는 분도 많더라고요. 처음 만난 분들께 회사를 소개하면 “밍기시스요? 리네시스? 미네시스요?” 별 이상한 조합이 다 나왔어요. 그게 좀 별로였어요. 접근하기 쉬우면 좋을 텐데... 첫인사부터 장벽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요. 저는 열린책들의 회사명이 참 좋거든요. 이름부터 열려 있잖아요?(웃음) 모든 걸 다 꺼내놓고 소통할 것 같은 느낌이고 막 다가가도 될 것 같고....

미메시스 하면 떠오르는 건 예술 서적이나 건축 도서인데, 안타깝게도 사업적으로 밝지는 않은 분야예요.
사실 예술서로 벌어들이는 수익은 제로예요.(웃음) 한 권 한 권 만들 때마다 돈이 나간다고 봐야 해요. 안타깝지만 그래서 해외 판권 계약을 할 때 해가 갈수록 소극적으로 변해요. 해외 예술서의 경우는 판권 가격이 상당하거든요. 데이터며 도판이며 원서에 들어간 공을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가격이 아니지만, 국내 예술서 시장 규모를 생각하면 망설일 수밖에 없어요. 문학과 인문서에 비해 제작비도 몇 배 이상 들어가고요. 예술서를 주로 내는 1인 출판사의 경우엔 요즘 책을 안 내요. 가끔 저희에게 연락이 와요. 정말 좋은 책인데 자신이 내긴 힘드니까 기획이 다 된 책을 가져가달라고 하시는 거예요. 슬픈 현실이죠. 더 슬픈 건 저희가 사정이 조금 낫긴 해도 힘들긴 마찬가지라는 거예요. 그런데도 그게 회사의 정체성이기 때문에 가야 하는 길인 거고, 그러다 보니 문학과 실용 도서도 기획하게 돼요. 그렇게 번 돈을 예술서에 투자하는 거죠. 다만 기존의 저희 책을 알고 계시는, 믿고 지지해주는 독자들에게 앞으로의 미메시스 책이 괴리감을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육아서나 에세이를 낼 때도 회사의 BI를 늘 염두에 두고 있어요. 결이 같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요. 브랜드의 힘이라는 게 있잖아요. 묵묵히 쌓아가다 보면 결국 그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SNS를 보면, 아버지와 여행을 자주 다니는 것 같아요.
얼마 전엔 딸 안이까지 3대가 함께 일본으로 미술 여행을 다녀왔더라고요.

안이가 어린데도 곧잘 따라다녀서 놀랐어요. 저는 아버지와 전혀 거리낌이 없어요. 한창 예민할 고등학교 시절에도 주말에 단둘이 드라이브를 자주 다녔어요. 어린 시절부터 가족 여행도 많이 다녔고요. 주로 이집트, 인도, 터키 같은 곳에 가곤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 당시만 해도 시설이 너무 낙후한 지역들이라 힘들었던 기억이 많아요. 그래도 얻은 게 많았죠.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이집트인데, 피라미드 안에 들어갈 때 맡은 퀴퀴한 냄새, 공기 온도까지 여전히 생생해요. 모든 게 너무 말이 안 될 정도로 크고 웅장해서 이걸 사람이 지었다는 게 진짜일까? 새롭고 신기한 경험이었어요.

그 시절에 가기 힘든 나라들을 다녔네요.
대신 발리 같은 휴양지는 한 번도 못 가봤어요. 아버지 취향이 그랬어요. 여행을 가도 관광지는 안 들르고 대부분 미술관, 박물관, 보통 사람들은 있는지도 모르는 예술가 마을 그런 곳에 주로 갔죠. 아버지는 여행을 사전에 다 계획하고 무조건 공부하는 타입이었어요. 여행 책자를 세 권 정도 사서 그걸 완전히 씹어먹을때까지 익혀요. 혼자만 외우는 게 아니라 저희에게도 설명해주고 사전 정보를 주입하셨죠. 현지 가이드들이 힘들어하는 여행객이었어요. 계속 물어보고 또 물어보고 결국엔 당신이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게 드러나죠. 가족뿐 아니라 회사 직원들과도 여행을 자주 가시는데, 그 주입해야 한다는 강박이 여전해요. 자식이건 직원이건 문화 콘텐츠를 뭐라도 하나 더 넣어서 돌아와야 한다는 거죠. 여기까지 나왔으니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한다고. 여행 다녀온 직원들에게 어디 어디 들렀는지 말해보라고 하시고.... 뭐, 그렇습니다.

그만큼 열정이 대단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러시아 문학작품 번역에 힘을 쏟기도 했고, 미술관을 짓기 위해 포르투갈의 건축가를 모셔 오기도 했어요.
저는 아버지의 그런 부분을 존경해요. 아버지는 하나를 생각하면 몇 년이 걸리든 묵묵히 해내는 분이세요. 작게는 물건을 정리하고 보관하는 것부터 잘 벌진 못해도 돈 관리를 하는 것도 무척 꼼꼼하게 하는 스타일이시죠. 저는 그런 부분을 닮지 못했거든요. 예술적 감수성은 닮았지만, 숫자에도 약하고 물건을 정리하기는 커녕 유지도 못 해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가 끝까지 노력해서 무언갈 결국 해내는 걸 보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고 닮고 싶어요. 요즘에 그릿 GRIT을 많이 이야기하는데, 그런 끈기가 저는 부족하거든요. 노력이나 훈련으로 쉽게 지닐 수 있는 덕목도 아니니까요.


딸 안이도 엄마와 할아버지의 예술적 감수성을 많은 부분 닮았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이가 어떻게 자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나요?

저는 물려주고 싶은 것도 바람도 딱 하나예요. 그냥 마음의 여유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어요. 수익이 안 난 지 3년째고, 엄밀히 말하면 애초에 수익이 나는 사업도 아니었고요. 제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걸 보고 주변에서 가끔 “너 지금 되게 심각한데, 걱정 안 되나 봐?” 라고 물어요. 걱정은 하죠. 다만, 일은 잘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는 거니까 조바심 내지 말자는 성격이거든요. 여유를 가지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좋잖아요. 다음 책이 잘될 수 있는 거고요.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남편이나 아버지는 가끔 안이를 붙잡고, 사업가로 성공하라거나 건축가가 되라거나 본인들이 못 한 걸 애한테 이야기하는데, 그럼 저는 딱 잘라 말해요. “안이야, 네가 되고 싶은 게 돼”, “네가 재미있고, 행복한 게 제일이야”라고요. 그래서 최근에 시작한 수영을 빼곤 따로 교육시키는 것도 없어요. 유일하게 챙기는 건 쉬는 날마다 함께 가까운 미술관에 가는 거예요. 서울 시내에 크고 작은 갤러리가 많잖아요. 아이들이 출입할 수 있는 곳은 어디든 가요. 무료인 곳도 꽤 많거든요. 그런 곳에 가면 꼭 미술이 아니더라도 아이가 많은 걸 배우는 것 같아요. 기본적인 에티켓, 매너 같은 것들요. 엄마가 하지 말라고 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을 컨트롤하고 환경을 이해할 수 있도록 노출시키는 건 좋다고 생각해요.

03-07

출판사 CEO, 단행본 기획자, 번역가까지 책을 다각도로 접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책에 대한 철학이나 자세가 궁금했어요.
책에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믿어요. 말보다 전하는 메시지가 확실하잖아요. 가끔 우회적이지만 되레 섬세하게 전달하는 방법이 되기도 하고요. 한 사람이 접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이 한계가 있는데, 어찌 보면 책은 또 다른 세계를 만나는 통로인 거잖아요. 한계를 뛰어넘게 만드는 거죠. 그런 생각에 책은 무조건 다양하게, 폭넓게 읽자는 주의예요. 자주 접하고 쉽게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저는 중·고등학교 때 책을 거의 안 읽었어요. 성인이 되고 나니 제가 접하는 사람들에 비해 기초 지식이 현저히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만나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 편집자이거나 작가였으니까 더욱 그렇죠. 어떤 책에 관해 이야길 하면 다들 분석적이고 평론가처럼 대화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나만 따라가지 못한다는 생각에 약간 창피했어요. 그래서 무조건 빨리 많이 읽어야 한다는 강박도 있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그렇게 읽지 않아도 돼요. 모두가 전문가가 아닌데 그냥 책을 읽고 감동을 받으면 “아! 감동적이다” 할 수 있는 거고, “난 이 문장이 좋아. 왜? 그냥 좋은데?” 할 수 있는 건데, 그걸 그땐 깨닫지 못했어요.

10대 시절, 책을 멀리한 계기나 이유가 있나요?
우스갯소리로 짜장면집 아들은 짜장면 별로 안 좋아할 거라고 한 적이 있는데, 집에 책이 늘 너무 많았어요. 게다가 아버지가 만날 책 읽으라고 하니까 어릴 때는 잘 읽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딱 읽기 싫어지는 거예요. 중학교 때 안 읽으니까 고등학교 때도 안 읽고 습관이 그렇게 된 거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뒤론 아버지가 “거봐라” 하는 소리 듣기 싫어서 절대 드러나지 않게 뒤에서 엄청 열심히 읽었어요.

그렇다면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와 책은 무엇인가요?
이런 질문을 받으면 아버지는 늘 도스토옙스키를 말씀하세요. 그런데 저는 없어요. 없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저는 한 분야를 파고 싶지 않아요. 모두가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고요. 책을 깊게 읽지 않아도 다양하게 재미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거잖아요. 다만 본인의 이야기를 선호하는 편이에요. 예술이나 건축 같은 경우가 그래요. 어떤 작가의 작품이나 일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문가의 분석보다는 작가 본인의 입과 글을 통해 듣길 원하는 거죠. 예를 들면 앤디 워홀이 직접 쓴 자신의 작품과 철학에 관한 책 같은 걸 좋아해요. 그래서 제가 책을 기획할 때도 그런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만들지요. 최근 출간한 《내가 말해줄게요》라는 책도 그랬어요. 그 책이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게 강주은 씨가 하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는 거였어요.

아버지에게 도스토옙스키 전집처럼, 출판 기획자로서 만들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
저는 트렌디한 게 맞는 것 같아요. 도스토옙스키는 안 맞아요. 《죄와 벌》도 다 못 읽었기 때문에(웃음). 자세히는 이야기할 수없지만 지금 단편 시리즈를 기획하고 있는데 아주 짧은 단편이에요. 커피 한 잔의 비용과 시간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이죠. 지금 우리나라 사람들은 책 읽을 여유가 없다고 생각해요. 예술이나 문학은 더욱 그런 것 같아요. 경제적 여유가 아니라 마음의 여유요. 책을 읽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에게 접근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확실히 부담을 덜어줘야겠다는 생각에 기획 중인데, 이런 설명을 하면 아버지는 ‘다 좋은데 이게 팔리겠니?’ 하세요. 그런데 뭐, 팔리든 안 팔리든 일단 만드는 사람이 재미있고 읽는 사람이 재미있는 데 집중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03-08

Lessons for fathers

어렵지 않아요,
아이와 함께 미술관 나들이

03-09

미술관 시설을 최대한 활용한다
사진, 설치미술 등 여러 장르의 예술 분야 작품 전시를 만날 수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경우 메인 전시 외에 디지털 정보실, 영화관 등 부대시설을 갖추고 있다. 집중력이 짧은 아이들이 다양한 체험을 통해 미술관의 여러 가지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미술관 시설을 최대한 이용하면 어떨까?

야외 공간이 충분한 곳을 선택한다
실내 관람에 지친 아이들이 적절히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야외 공간이 충분한 곳을 선택하는 것도 어린 아이들에겐 좋은 방법이다. 미술관에 따라 별도의 야외 전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곳도 있으니 사전에 알아두면 더욱 즐거운 관람이 될 수 있다.

어린이 체험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상업적 갤러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미술관은 어린이나 가족 단위로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 중인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참가 접수까지 받고 있으니 사전에 미리 아이의 연령, 성격에 맞는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것도 미술관 관람을 친숙하게 만드는 방법일 수 있다.

추천 서울 시내 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 www.mmca.go.kr
국제갤러리 / www.kukjegallery.com
금호미술관 / www.kumhomuseum.com
대림미술관 / www.daelimmuseum.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