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ghtheartedly in Trainers

운동화 신고 가볍게

주말여행은 일상과의 단절이 아니라 연속이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매주 걷기 여행을 떠난다.

“아이코, 여기서 이걸....”
“에이, 일찌감치 광이나 팔고 가마있을걸.”


수백 년을 살아온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서 화투가 한창이었다. 백과 나는 마을 할머니들이 벌이는 화투 전쟁을 참관하고 있었다. 꽃무늬 담요 위로 화투가 와르르 섞였다가 승자 할머니의 손에서 경쾌하고 절도 있게 착착 소리를 내며 정리되었다. 다시 패가 돌아가고 또다시 전쟁이 시작되었다. 산전수전을 겪을 대로 겪은 노병들의 손마디는 느티나무 껍질처럼 단단해 보였다. 손이 형편없이 물렁한 백과 나는 신참내기 병사처럼 가만히 앉아 전쟁을 관전했다.


노병들의 입에서는 능숙하고 유려한 언어들이 튀어나와 화투패에 착착 붙었다. 너무나 잘 익어서 점 하나 획 하나 덜고 더할 것이 없는, 운율과 의미를 완벽하게 버무린 언어들이었다. 한 판 한 판이 속전속결로 진행되었고 화투장들은 저마다 노병들의 노련한 언어를 등에 업은 채 분주히 짝을 찾아다녔다. 화투장에 붙지 못한 언어들은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다 8월의 뜨거운 공기 속으로 스며들었다. 신참내기들은 감히 낄 수 없는, 베테랑들의 전쟁이 평화롭게 진행 중인 그곳은 정선 가수분교 느티나무 아래였다.

우리가 걷는 주말여행을 시작한 이유
지난주 나의 월·화·수·목·금요일도 전쟁이었다. 책임감은 답답했고 의무감은 무거웠다. 번역 작업은 먼 곳에서 출발한 언어들을 모국어로 데려오는 일로, 답답하고 지루한 여정이다. 이따금 출발어가 모국어로 도착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곳에서 길을 잃기도 한다. 자칫 출발어가 잘못된 곳에 도착하면 2쇄를 찍기 전까지는 ‘오역’의 불명예를 안고 살아야 한다. 혹시라도 책이 잘 팔리지 않아 초판에서 끝나면 잘못된 도착지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야 한다. 매 순간 지루하게 이어진 징검다리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싸우는 기분이다.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백의 일상도 전쟁일 것이다. 점심시간도 나보다 짧고 산책 시간도 없는 회사에서 마주치는 모든 사람이 참전하는 더 치열하고 고단한 전쟁.


오래전, 우린 이러한 지루하고 무거운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을 했다. 그때 우리가 택한 여행은 지금의 여행과는 달랐다. 우린 근사한 풍광을 보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오는 여행을 계획했다. 멋진 곳에 가기 위해 무수한 계획을 세웠고, 소문난 맛집에 가려고 기나긴 줄을 섰다. 맛집에서 그 음식을 먹지 못하는 날이면 마치 여행 전체가 실패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기대한 것보다 시시한 풍경은 세련된 커피 컵 뒤 배경으로 뭉갰다. 가장 맛있는 것을 먹고 세상에 다시없을 근사한 경험을 해야 할 것 같은 여행은 어느덧 주중의 일상처럼 피곤하고 거추장스러운 이벤트가 되었다. 많은 돈과 시간이 들었고 여독이 다음 주 일상에 무겁게 드리워 주중의 일상은 더 고단했다. 그리고 그런 여행이 이내 시들해졌다.


한동안 여행을 가지 않았다. 소파에 누워 토요일 개그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일요일 개그 프로그램으로 마무리하며 주말을 보낸 날도 많았다. 이따금 실망했던 여행지 뒤로 난 이름 없는 야트막한 숲, 유명한 맛집 모퉁이를 돌면 나오는 작고 아담한 골목길들, 뭉개버린 풍경 너머 활기차게 돌아가던 타지의 일상이 떠오르곤 했다. 문득 일상에서 벗어나려고 한 것이 잘못된 출발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일상은 고단하긴 해도 달아나고 단절의 벽을 세워야할 그 무엇은 아니었다. 이런 생각이 들 무렵 우연히 다른 일정 때문에 찾은 타지에서 예정에 없던 하루를 더 보내게 되었다. 그날 우리는 운동화에 아주 가벼운 가방만 메고 타지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연인처럼 다시 여행에 빠져들었다.


우리를 매료시킨 여행은 걷는 여행이었다. 어느 곳이든 도착한 여행지에서 걷기 좋은 길을 찾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걸었다. 어떤 날은 꼬박 6시간을 걷기도 했다. 호젓한 성곽길이나 무명의 숲길, 작은 마을길 등을 걷고 또 걸었다. 천년 고찰의 섬돌을 쓰다듬고, 어느 사찰에서 울리는 저녁 타종 소리를 듣고, 계절마다 다른 소리를 내는 흙을 밟으며 걷는 시간들이 길에 쌓여갔다. 걷지 않으면 도저히 만날 수 없는 순간들이 구석구석 반짝였다. 걷는 것만으로도 여행은 충만했다. 우리가 지나온 모든 길에 다른 날, 다른 바람, 다른 이야기들이 중첩되어 여행은 점점 풍요로워졌다.


걷기에만 집중한 여행의 곁길에 잔잔한 일상이 스몄다. 걷다가 눈에 띄는 마을 식당이나 시장에서 밥을 먹었다. 청송에 간 어느 날은 사과를 한 보따리 사서 하루 종일 사과만 먹으며 다니기도 했고, 영월에 간 어느 날은 옥수수 한 봉지를 사서 그걸로 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타지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그 지역에서 열리는 장터에서 시장을 봤다. 나무 아래 평상에서 낮잠도 자거나 한참을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도 했다. 교통 정체를 피하기 위해 되도록 이른 새벽 시간에 여행을 시작했고 오후에는 여행을 마쳤다. 돌아오는 길에 온천에 들러 걸어서 생긴 피로를 말끔히 씻어냈다. 여행지에서 보낸 일상은 주중의 일상에 윤기와 깊이를 더하며 나란히 이어졌다.

기대 없이, 가볍게
여행을 가장 무겁게 만드는 것은 기대다. 처음에는 콩알만 하던 기대도 목적지에 도착할 즈음이면 집채만큼 부풀기 마련이다. 무거운 기대는 과도한 시간과 노력을 기어이 쓰게 만든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나는 가혹한 더위나 추위, 암울한 비, 누군가의 SNS에서 본 사진과는 너무도 다른 밋밋한 실물 풍경 등은 예리한 바늘처럼 기대의 풍선을 찔러 바람을 뺀다. 바람이 빠지기 시작하면 괜스레 불안해진다. 벼르고 별렀는데 한순간이라도 망치지 않을까, 남들이 누린 것을 나만 못 누리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에 스마트폰으로 밋밋하고 무신경한 풍경에 예쁜 필터를 씌워 찍는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해 불안과 조바심이 실망과 허무함으로 바뀌기라도 하면 그때부터 여행은 빛을 잃고 피로해진다. 결국 기대는 쪼그라든 풍선처럼 볼품없어진 모습으로 일상의 톱니바퀴에 지저분하게 엉겨 붙는다. 그러면 주중의 일상도 뻑뻑하고 고단해진다.


일출과 운해, 노을 지는 바닷가 등 궁극의 아름다운 순간을 만나는 것도 여행이지만, 일출을 본 후 평범한 햇살을 받으며 터벅터벅 내려오는 길도 여행이다. 노을이 진 뒤 묻은 모래를 털고 모기를 피해야 하는 저녁도 여행이다. 아름다운 풍경의 뒤안길에 웅크린 불편하고 마뜩찮은 모든 길 또한 여행이다. 기대가 가벼우면 모든 뒤안길이 반짝인다. 관심 없던 들꽃에 설레고, 여행을 망친 주범 같던 비가 대지에서 끌어낸 초목의 향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불편과 실망은 모험과 낯섦으로 바뀐다. 그 틈으로 사색이 비집고 들어오기도 한다. 여행지에서의 사색은 아주 먼 기억과 언어를 불러와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그 이야기 속에서 아주 오랫동안 고민하던 어떤 갈등이 녹아내리기도 하고, 골치 아프던 문제가 해결되기도 한다. 거추장스럽고 복잡하던 길들이 명료하고 단순해지기도 한다.


백과 내가 기대를 잔뜩 짊어지고 처음 정선을 찾았을 때 그곳은 교통이 불편하고 볼 것도 별로 없는 그저 그런 마을이었다. 사람들은 무뚝뚝했고 이정표마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헛걸음치기 일쑤였다. 정선 여행이 이어질수록 기대는 시들해졌다. 거의 모든 기대가 다 빠져나간 후, 다른 목적지로 가다가 잠시 밥이나 먹고 가려고 들른 정선은 마침내 투박하고 반짝이는 길을 열어주었다. 시장 앞 조양강 산책로, 덕우리마을에서 대촌마을 가는 길, 낮잠 자며 쉬기 좋은 도사곡, 가슴이 먹먹해지는 사북의 박물관과 야생화들이 지천으로 피어 있는 만항재, 그리고 그날 우리가 찾은 동강 자락에 조용히 자리 잡은 가수리마을.... 그 어느 곳도 ‘헛걸음’이던 곳은 없었다.


좋은 날 익을 대로 익은 낮곁이 느티나무 아래로 길게 누웠다. 느티나무 잎사귀들 사이로 바람이 걸러졌다. 바람에는 동강의 푸른 물기가 묻어 있었다. 500년 전 이 나라의 이름이 조선이던 때도 이 나무는 이런 모습으로 서 있었을 것이다. 고작 주중의 일상이 고달프다고 징징대는 내게, 이제 막 껍질을 벗고 세상을 처음 만나 죽어라고 울어대는 매미에게, 물기가 빠져나가 마르고 단단해진 노병 할머니들에게 늙은 나무는 자신의 유구한 일상을 드리워주었다.


“아이고, 무르팍 재리다.”
“하마 4시네. 고마할란다.”


화투 전쟁이 시들해지고 있었다. 최후의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어 보이는 휴전이다.


“그짝에 좀 둔눠요. 여 바람이 선선해서 잠이 잘 와.”


평상 주변을 기웃거리는 신참들에게 노병들이 자리를 권했다. 신참들은 노병의 권유를 마다하지 않고 누웠다. 누군가 우리 머리 밑으로 물이 들어 있는 삼다수 페트병을 넣어주었다. 물베개였다. 익숙한 직사각형 생수병이 머리 밑에서 시원하고 낯선 감촉으로 물컹거렸다.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플라스틱 생수병에서 동강이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불규칙한 리듬을 만들며 어딘가를 토닥여주었다. 연한 물비린내와 찰랑거리는 소리가 눈꺼풀에 엉겨 붙어 있었다. 의식과 무의식의 몽롱한 경계를 햇살이 자꾸만 지웠다.


눈을 떠보니 낮아진 해에 그늘이 저만치 밀려나 있었다.


우린 작은 다리를 건너서 마을을 산책했다. 오래된 소나무와 붉은 절벽과 푸른 강이 있는 마을이었다. 산책은 게으르고 느렸다. 우린 이름도 모르는 풀들의 안부를 궁금해하고, 알지 못하는 나무의 생애를 기웃거렸다. 모르는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쪼그리고 앉아 개미들의 기나긴 이동 행렬을 바라보기도 했다. 사람의 옆모습이던 구름의 경계가 기괴한 형상으로 뭉개지는 광경을, 요란하던 매미의 울음이 돌연 멈추면서 생긴 찰나의 정적을, 따끈하고 비릿한 공기가 코로 들어와 정수리로 빠져나가는 순간을, 맨발가락에 부드러운 흙먼지가 뽀얗게 내려앉는 흙길을 누렸다. 목적이 없었으므로 이룬 것도 없는 산책이었다.


산책에서 만난 모든 순간이 정신 사납게 뒤척이는 일상의 머리 밑에 물컹한 물베개를 밀어 넣어줄 것이다. 다음 주에 맞이하는 월·화·수·목·금의 일상 어딘가에서 동강의 물비늘이 찰랑거릴 것이다. 우린 물베개를 베고 뒤척이며 늙은 나무와 노병들을 그리워할 것이다. 그리고 결국 길을 나설 것이다.

박여진

주중에는 번역을, 주말에는 여행을 하고 있다. 파주 번역인 작업실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역서로는 《내가 알고 있는 걸 당신도 알게 된다면》, 《빌브라이슨의 발칙한 영국산책2》, 《비비안마이어 나는 카메라다》 외 다수가 있다. 저서로는 일상의 여행을 콘셉트로 전국 걷기 좋은 산책길 62곳을 소개한 《토닥토닥, 숲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