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 You Love as You Live?

지금 사랑하며 살고 있나요?

때로 마흔의 가장은 책임감을 상징한다. 어깨에 짊어진 무게를 상상하며 던진, 행복하냐는 질문에 박찬휘는 조금의 주저함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말 어디에서도 가족을 향한 다짐이나 노력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40대 아버지 박찬휘가 말하는 행복을 진실이라고 믿었다. 개인주의가 부부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생각을 나눴다. 누구나 꿈꾸는 행복, 사랑이라는 가치가 ‘결혼’이라는 제도로 인해 퇴색될 수 있다고 여긴 내가 틀렸다. 이들처럼 사랑할 수 있다면 개인주의자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15-04-06

유럽을 배경으로 다양한 연령의 아름다운 커플을 포착한 SNS 사진을 보며 어떤 분인지 궁금했어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특별히 커플 사진을 주제로 찍는 건 아니고 감정이 드러나는 순간을 포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유럽을 다니며 풍경과 인물을 찍지만 그중에서 아내는 가장 좋은 모델이죠. 아내는 늘 제 곁에 있고, 빛이 들면 예쁜 그림자를 만드는 사람이에요. 사진 찍는 걸 사랑하는 저에 대해 잘 알고, 또 귀찮을 정도로 카메라를 들이대도 늘 편안한 표정을 유지해주니까요. 제가 찍은 몇몇 사진은 라이선스 등록되어 있으니 취미로 사진을 찍는다고 보긴 어려울 수도 있겠네요.(웃음) 그렇다고 사진가는 아니고, 현재 독일에 거주하면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습니다. 런던·이탈리아·독일에서 15년째 지내고 있고, 주얼리 디자이너인 아내, 농구를 좋아하는 열한 살 아들이 저희 가족 구성원입니다.

가족 모두가 서핑 트립을 다녀왔어요. 어떤 일정이었나요?
스페인으로 일주일 휴가를 다녀왔어요. 스페인을 끼고 있는 지중해 바다는 여름보다 가을에 파도가 좋아요. 이맘때 서핑 장소로 더할 나위 없는 곳이죠. 가을의 스페인은 성수기에 비해 관광객이 적어 한결 차분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요. 휴가라고 얼마나 마음을 푹 놓았던지 구입한 지 6개월 된 아이폰을 바르셀로나 현대미술관 MACBA 에서 소매치기당해 속상해하던 참이에요.(웃음)

서핑은 가족이 함께 하는 취미인가요?
공동 취미라기보다는 제가 좋아해요. 아내도 스포츠를 무척 좋아하는 편이고요. 아이가 만능 스포츠맨 같은 기질을 지녔으면 하는 개인적 바람이 있는데, 배움의 동기를 주려면 부모가 먼저 즐기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 시간 날 때마다 즐기는 편이에요. ‘내가 해보니 좋아서’ 혹은 ‘내가 이걸 못 해봤으니 너는 배워야 해’ 같은 마음으로 접근하면 레저나 스포츠도 강요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즐기기 위한 스포츠를 아이와 함께 하고 싶어요.

한국의 3040 아버지들 상황과는 달라 보여 부럽기도 해요. 결혼 후 유럽에서 자리를 잡은 건가요?
한국에서 대학 시절 아내를 만났고, 졸업 후 런던에 있는 학교에 함께 지원해 대학원 과정을 밟았어요. 유학 생활이 누군가에게는 로맨틱하게 그려질지 모르지만 실상은 오로지 학교와 집을 오가는 신혼을 보냈어요. 어학연수 과정 없이 하루하루 수업을 따라가느라 정신적·물질적으로 풍요롭지 못했어요. 학생 신분의 순수함과 호기심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는데, 학업적 측면에서는 아쉬움이 없을 만큼 열심히 한 것 같아요. 타국에서 서로 의지하며 지낸 아내와의 시간은 여러 번 곱씹어도 좋을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독일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삶은 어떤가요?
런던에서 학업을 마치고 평소 가고 싶었던 자동차 회사에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겨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첫 직장 생활을 시작했어요. 디자이너라는 직업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곳에는 이른바 인턴 적응 과정이 없어요. 회사는 필요한 인력에 부합하는 사람을 정확하게 채용하고, 현장에 바로 투입시켜요. 입사 다음 날부터 머리 위로 총탄이 날아다니는 전투가 시작되는 거죠. 한국의 대기업처럼 신입에 대해 배려를 하거나, 조직에 적합한 인재로 재교육하는 과정이 없어요. 지금 생각해도 혹독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 경험을 바탕으로 독일로 건너와 메르세데스-벤츠사에 입사했고, 현재는 아우디사에서 일하고 있어요.

독일은 자동차 분야에서 최고로 불리잖아요. 독일 현지에서 자동차 디자이너로 일하며 느낀 점이 있다면요?
저 역시 독일 기업 시스템 안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는 혁신적 디자인, 탁월한 기술, 훌륭한 리더 같은 대단한 비결이 있지 않을까 기대한 것 같아요. 지금에 와서 제가 내린 결론은 자동차 산업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독일 사회 전반에 흐르는 국민성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예를 들어 기본을 지키는 것, 혹은 개인주의 같은 것들.

독일이 디자인 선진국이라는 인식은 있지만, 그 비결이 ‘개인주의’에서 비롯한다는 것은 새로운 관점이네요.
자동차 산업 강국으로서 독일을 말할 때 누군가는 디자인 조직의 힘이 강해서라고 말할지도 모르죠. 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아요. 어떤 조직도 비교 우위에 있지 않아요. 독일 사회에서 조직은 그저 개인을 묶는 형식에 불과해요. 아우디사의 예를 들어보면 엔지니어는 결정한 디자인을 그대로 구현하는 것이 본인의 임무라는 것에 충실해요. 가령 기술적 문제로 0.5mm의 오차가 있으면 엔지니어는 디자이너에게 바로 통보해요. 이를 공론화하고 몇 개월의 시간을 소모하기도 하고요. 이것은 디자인에 대한 존중이라는 긍정적 해석과는 좀 다른 것 같아요. 일종의 책임 회피라고 할까. 디자인 부서에 책임을 전가하고 한편으로는 이 차이에서 생기는 추후 문제에 대해 ‘나는 모른다’는 엄포이기도 해요. 다른 사람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고, 내가 맡은 기본 임무를 수행하는 것, 이것이 모든 일의 기본이에요. 때로 불편하지만 합리적 개인주의 사고가 독일 자동차 산업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나 유대를 중시하는 정서 안에서 ‘개인주의’는 까다로운, 혹은 이기적인 것으로 비치기도 해요. 우리에게 개인주의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나요?
이건 조금 다른 얘기인데, 나라마다 그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언어를 보면 그들의 사회나 문화를 읽을 때가 있어요. 한국 사회에도 특유의 몇 가지 언어가 있고요. “저는 할머니가 키웠어요” 같은 유죠. 자신의 성장을 말할 때 한국인은 대부분 ‘나’ 라는 존재를 수동형으로 표현해요. ‘나’는 자라지 않고 길러지는 거죠. 더 흔한 말 중 “부모님은 뭐 하시니?” 같은 것도 같은 맥락이에요. 부모를 보면 자식을 안다는 인식을 거리낌 없이 용인하곤 하죠. 바꿔 말하면 나라는 존재는 불완전한 개체가 되어버리는 결과를 낳아요. 개인주의 사고는 자존감과 연관이 있어요. 누군가에게 휘둘리지 않고 자신을 믿고 존중하는 마음을 갖춘 사람들이 건강한 개인주의자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15-04-03

그러고 보니 저도 아이를 키운다고 표현하는 것 같아요. 수동형 언어가 부모로부터 독립을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면이 있다고 생각해요. 부모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 성인이 될 경우, 대학이나 직장을 선택할 때도 부모의 의견이 중요해져요. 사랑하는 사람 혹은 결혼을 선택할 때도 마찬가지죠. 배우자를 양가 부모에게 소개하고 허락받는 과정이 있잖아요. 반면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누구에 의해 ‘길러진다’는 표현을 거의 쓰지 않아요. 나에 의해, 나를 위해, 스스로 자란 사람은 쉽게 독립해요. 그리고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인생을 위해 나아가죠. 내가 가장 중요하니 부모가 되어서도 아이를 위해 희생하지 않아요. 과다 경쟁의 불씨도, 소모적인 비교도 촉발되지 않아요. 부모, 자식, 부부 관계에 대해 말하기 전에 한 개인이 자아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어요.

기혼 남성들 사이에서는 결혼이 무덤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오가기도 해요. 결혼이 불행한 사람에게 행복한 결혼 생활의 비결을 조언한다면?
연중 몇 번 한국에 들어와 친구들을 만나면 답답할 때가 있어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장으로서 고민이 하나같이 비슷해요. 직장의 과도한 업무에 대한 토로, 아이들 학교와 사교육 문제, 아파트 평수와 재테크, 시댁이나 부부 갈등 같은 것인데, ‘한국에 다시 돌아와 살기는 힘들겠구나’ 하고 느껴요. 나의 행복은 개인 문제이지 사회문제, 가정 문제, 내가 속한 조직 문제일 수 없어요. 물론 한국 사회의 구조적· 제도적 어려움이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그 고민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타인의 시선에 좌우되는 것이 많거든요. 저는 개인주의가 ‘행복’을 느끼는 것과도 관련이 있다고 봐요. 개개인이 더 중요해지면 사교육, 직장, 명절 스트레스, 옆집 아파트 평수 같은 이야기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면 정작 우리가 생각해야 할 본질적인 것에 대해 더 집중할 수 있고요. 결혼으로 절대 내 인생 끝나지 않아요. 더 풍성하고 재미있는 세계가 펼쳐질 수 있어요. 혹시 결혼 생활을 불행하다고 느낀다면 그건 결혼이라는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결혼했으니 이제 나의 인생은 없어’라고 포기하는 대신 내가 진정으로 행복을 느끼는 것은 무엇인지를 새롭게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15-04-05

프랑스 여행 중 박물관에서 머리가 하얗게 센 노부부가 옷을 멋지게 차려입고 미술관을 나란히 산책하는 광경을 보면서 저렇게 나이 들면 참 좋겠다 생각한 적이 있어요. 우리 부모 세대에선 그런 모습을 보기 어렵잖아요.
한국 사람은 정이 많고 가슴이 뜨겁다고 생각해요. 개개인에게, 부부간의 사랑이 부족하다고 생각하진 않아요. 그런데 부부 생활이 지속되면서 왜 점점 서로를 미워하고 냉랭해질까 생각해보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꺼이 하는 희생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는 부모 자식 간은 물론, 하물며 배우자 사이에서도 어느 정도의 희생과 노력을 당연하게 여겨요. ‘부부의 사랑’이라는 형이상학적 의미를 너무 차갑고 냉철하게 본다며 불편해하는 낭만주의자도 있지만, 과도한 노력과 희생은 사랑을 유지하고 지속하는 데에는 좋은 방법이 아니에요.

노력하고 희생하지 않는 것이 부부 로맨스를 더 오래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생각하나요?
연인 관계의 바탕이 사랑이라는 것에 이견이 없다면 사랑은 당사자의 감정과 생각이 가장 중요해야 해요. 이건 결혼하고 부부가 되어도 같다고 생각해요. 먼저 내가 중심이 되고 서로의 존재에 대해 있는 그대로 존중하는 관계로 시작하는 것이 중요해요. 결혼하고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갈 시간이 더 길잖아요. 우리가 함께 더 오래 행복과 사랑을 추구하려면 개인의 영역을 애써서 수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가족 관계를 말하기 이전에 한 개인의 행복과 감정이 오히려 더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몰라요.

아내와 갈등 상황이 생길 때는 어떻게 해결하나요?
위기나 갈등으로 느끼는 지점은 상대적이라서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 상대에겐 관계를 뿌리째 뽑아버릴 만큼의 사건일 수도 있어요. 흔한 성격 차이도 문제 삼지 않는 상대라면 마찰이 없겠죠. 사실 저희 부부의 갈등은 마치 일상의 일부처럼 자주 일어나요. 주로 사소한 것인데, 요령이라면 제가 쉽고 빠르게 사과해요.(웃음) 보통은 티격태격하다 마무리되는데 쉽게 투정하고, 토라지고, 갈등하는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우리의 여전함을 저는 긍정적으로 봅니다.(웃음) 저는 해외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별것 아닌 사소한 일도 서로 소상히 대화를 나누는 편이에요. 참 다행스럽게도 이런 대화들이 위기를 부드럽게 넘길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갈등에 대해서는 아내의 생각도 좀 들어봐야 하지 않을까요?(웃음)
부부 위기에 대한 인터뷰를 같이 하겠냐고 아내에게 물어봤는데, 바쁘다며 단칼에 거절했습니다.(웃음)

15-04-04

부부간의 애틋함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건 보험회사 영업 사원이 해야 하는 일이에요. 사랑의 감정을 나누는데, 나라는 존재 외에 무엇이 더 필요할까요? 안타깝게도 그것은 제 일이 아니에요. 저는 아내에게 노력하지 않아요. 아니 노력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연인처럼, 우리가 함께하는 이 시절의 시곗바늘 위에 서 있는 친구처럼 우리가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화가 날 때는 화 내고, 미안할 땐 주저함 없이 먼저 사과할 거예요. 사랑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를 기쁨이 가득한 관계로 이끄는 힘을 지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앞으로도 삐걱대는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까치발을 딛고 애쓰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서로 노력이 필요해지는 순간이 오면 어쩌면 이 사랑을 아낌없이 끝내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할 거 같아요.

가정을 꾸리는 데 부모의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았다고 확신하고, 무척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저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을 때 기꺼이 의견을 나눌 수 있고, 여전히 자신만의 꿈을 찾는 부모님이 계시다는 건 큰 힘이 됩니다. 물론 부모님 역시 십수 년을 함께 사셨는데도 여전히 티격태격 싸우시고요.(웃음)

아버지 역시 같은 일을 하셨다고요?
저의 아버지는 한국에서 자동차 디자이너 1세대셨어요. 산업이 중심이던 당시 한국에 ‘디자인’이라는 뿌리를 내리는 데 많은 노력을 하셨죠. 은퇴 이후에는 경기도 고양시에서 미술관(FOMA 자동차 디자인 미술관)을 열어 여전히 당신의 열정을 쏟고 계셔요. 저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스케치하는 모습을 보며 디자이너의 꿈을 키웠어요. 빈 종이 위에 그림으로 생각을 채워가는 것을 아버지한테서 배웠어요.

지금 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있나요?
여전히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해요. 또 더 많은 것에 호기심을 보이려고 합니다.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이런저런 취미 활동이나 경험을 하며 스스로에게 충실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박찬휘, 저는 그저 박찬휘이고 싶어요. 페르소나를 설정하듯 아빠로서, 아들로서, 남편으로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는 순간 나는 내가 아닌 느낌이 들 것 같아요. 만약 그 역할을 성실하게 수행하는 것이 내가 사랑하는 가족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해도 이미 저는 불행해지고 있을지도 모르겠어요. 주어진 역할과 소임을 다해야 하는 것은 아마도 평생 업으로 삼은 디자이너로서의 저 자신일 것 같습니다. 그것 하나 제대로 해내기도 이미 버겁거든요.

인터뷰를 통해 부부의 사랑을 말하기 전에 나 자신을 찾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지막으로 어떤 아버지가 되고 싶은가요?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경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함께 하려고 해요. 경험하지 못하면 아이는 삶의 다양성을 스스로 찾아낼 수 없거든요. 또 용기 내지 못하고 자신의 삶을 주도하기 어려워요.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아이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편견 없이 맑은 눈으로 세상을 향해 성큼 나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어른으로 자라길 바랄 뿐이에요. 제가 스스로에게 진심과 열정을 보이는 삶을 살면 아이도 자연스럽게 따라오리라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