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Ordinary, Splendid Saturday

어느 평범하고 멋진 토요일

동네는 아이들을 기억한다. 삼삼오오 둘러앉아 놀이 규칙을 정하고, 서로의 비밀을 나누고, 한데 엉겨 뛰놀던 계절들이 동네 어귀에 켜켜이 쌓여 있다. 여기, 늘 활기차고 소란스러웠던 마포구 신수동 골목길의 정서를 공유하는 세 친구가 있다. 박종범, 엄효진, 김성현은 각각 사진가와 사업가, 회사원으로 이제는 각자의 분야에서 각자의 길을 걷고 있지만 여전히 서로의 생활과 일상을 공유한다. 아버지가 된 후의 삶을 나의 옛 친구와 가까이에서 나눌 수 있다는 건 어쩌면 대단한 행운일지 모른다. 이들이 결성한 토요일 스케이트보드 모임은 1995년 프리스타일 스케이트보드에 심취한 청춘과 그 시절의 친구들, 그리고 그들을 꼭 닮은 아이들이 만나는 절묘한 순간이다. 유쾌하게, 자유롭게, 그리고 좀 더 쿨하게! 어느 토요일 오후 이태원 거리에서 건강한 땀 냄새와 뜨거운 열정으로 가득한 여섯 소년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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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마다 세 아빠가 모여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있어요. 다른 스포츠가 아닌 스케이트보드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종범) 저랑 성현이가 어릴 적부터 스케이트보드를 탔어요. 스케이트보드의 한 종류인 프리스타일을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탔으니까 1995년부터 시작했네요. 우리의 놀이 문화이기도 하고, 아이들과도 자연스럽게 함께 할 수 있는 운동이니까 하게 됐어요.
(효진) 저는 어릴 때부터 탄 건 아닌데 아들 둘이 있으니까 아무래도 활동적인 것을 하면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요. 두 친구가 같이 하고, 또 다른 것보다는 훨씬 더 같이 즐길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아이들에게 스케이트보드가 위험하지는 않나요?
(종범) 정말 신기한 게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잘 타요. 몸 자체가 유연하기도 하고 겁도 없거든요. 제가 볼 때 유연한 게 큰 몫을 하는 것 같아요. 뻣뻣하지 않으니까 넘어질 때에도 잘 넘어지는 거죠. 낙법을 배운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부드럽게 넘어지더라고요.
(효진) 내 생각인데 그건 애들이 조그마하니까 그런 것 같아. 저는 키가 크니까 더 높이 보여서 무섭거든요.
(종범) 뭔 소리야! 웃기지 마.
(성현) 겁나면 나가시든가.

처음이 중요하잖아요. 뒤늦게 시작한 초보 스케이트보더로서 어려운 점은 없나요?
(효진) 나이가 들어 시작해서 그런지 겁이 많이 나요. 자전거랑 비슷해 보이거든요. 다치면서 깨치는 것도 생기고요. 다른 친구들처럼 회전하고 점프하는 건 꿈도 못 꿔요. 그런데 사실 저는 열심히 탈 생각은 없어요.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를 탈 때 아빠가 같이 참여하면 더 열심히 하고, 더 즐거워하며 좋아하니까 같이 하는 것뿐이거든요. 스케이트보드는 겁먹지 않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안 다치는 거요. 어릴 때에는 멋지게 잘하는 게 중요하지만 이제는 다치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한 나이니까요.

아이들 반응도 궁금해요.
(효진) 엄청 신나 했어요. 땀을 뻘뻘 흘리면서 타더라고요. 애들이 워낙 체력도 에너지도 좋잖아요.
(성현) 혼자보다 여럿이 하니까 더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저는 아이가 하나잖아요. 같이 하기 전에는 가끔 저희 둘이 타고 그랬어요. 근데 그때는 적당한 관심 정도만 보이다가, 또래 친구들이랑 같이 타니까 재미나 흥미가 배가되는 것 같아요. 엄청 즐거워하더라고요. 저랑 있을 때면 스케이트보드 영상 보여달라고 말하기도 해요.
(종범) ‘숀 화이트’ 보여주지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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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은 어린 시절 어떻게 스케이트보드를 접하게 된 거예요?
(종범) 저희 또래는 미국 문화에 많이 노출된 세대예요. TV만 틀면 외국 영화가 자주 나왔고, 미국 시트콤도 쉽게 볼 수 있었어요. 심슨 만화나 미국 농구 대회, 팝 음악, 밴드 문화 등 다양했어요. 뉴스에는 심지어 10대 청소년이 대중가요를 안 듣고 팝송만 듣는다며 문제를 삼기도 했으니까요. 근데 그때 스케이트보드가 많이 나왔거든요. “야, 우리도 학교에 스케이트보드 타고 다니자” 하면서 시작했지요. 이태원 가서 직접 스케이트보드 고르기도 했고요.

호기심 반 허세 반으로 시작한 거네요?
(종범) 그렇죠. 학교에 가면 선생님한테 혼나니까 타고 가서 들어갈 때 정문 부근에 몰래 숨겨놓고 그랬어요. 학교 끝나면 다시 나와서 꺼내 가지고 학교 언덕에 타고 내려가고. 여자애들이 쳐다보는 거 즐기고....
(성현) 가방에 스케이트보드 막 매고 다니고.

오래 탔으니 점프하고 도는 응용 동작도 가능하겠어요.
(종범) 아, 그럼요. 제가 처음에 점프하는 거 보여줬을 때 아이들이 엄청 놀랐어요. 아무 말도 못 하더라고요. 저 삼촌 멋있다, 나도 저 삼촌처럼 되고 싶다 하더라고요. 분명 표정이 그렇게 말했어요.(웃음)

멋진 게 중요한가 봐요. 폼생폼사!
(종범) 쿨한 거요. 아주 중요하죠. 아이들이 한국 교육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개성 없이 획일적으로 자라는 것 같아요. 음악을 초·중·고 12년을 배우는데 악기 하나 못 다루잖아요. 공교육에서 문화적 혜택을 못 누리는 거죠.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악기도 다루고 스포츠도 즐기는 아이로 자라면 좋겠어요. 그래서 저는 애들한테 항상 말해요. “너, 나중에 수학여행 갈 때 버스 맨 뒷자리 앉으려면 이거 타야 해! 다섯 명밖에 못 앉는단 말이야.”
(성현) 쿨이에요. 다른 단어는 안 돼요. 힙스터, 인싸 이런 거 안 돼요. 무조건 쿨, 쿨해야 해요.(웃음)
(종범) 학교에서는 배울 수 없는 것이 필요해요. 몸을 쓰는 법을 배우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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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의 날짜가 고정적으로 정해진 건가요?
(종범) 아니요, 때마다 달라요. 언제 만나자고 정확하게 정해둔 건 없고, “그날 시간 돼?” 하고 묻다가 되면 그냥 만나는 거죠. 토요일에 아점 먹고, 하루 종일 스케이트보드 타고, 보드 타다가 좀 힘들면 음료수도 마시고요.
(성현) 하루 종일 애들이 지쳐서 쓰러질 때까지 타고 놀아요. 애들이 워낙 좋아하니까요. 근데 무작정 보드만 타는 건 아니고, 놀다 타다 쉬다 타다 하는 거죠. 수다도 떨고 누워서 과자도 먹고요.

이 모임 이전에도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나요?
(효진) 그렇죠. 맛있는 거 먹고 볼링장 가거나 놀이공원도 가고요. 영화, 쇼핑 등 다양했어요. 최근엔 종이접기를 그렇게 좋아해요.
(성현) 스케줄이 없을 때에는 무조건 아이들이랑 함께 시간을 보내는 편이에요. 특히 평일에는 직장인이 모두 공감하겠지만 하루가 빠듯하니 아이들이랑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어서 아쉽죠. 무엇보다 요즘이 아이에게 중요한 시기예요.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데, 학교 가면 아이가 시간이 많지 않잖아요. 죽기 전에 못 해보는 게 천지인데 같이 다 해봐야죠.

입학 이후에는 아이도 바빠지겠어요.
(성현) 몇 해 뒤면 많은 게 달라지겠지만, 아들과 아빠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하고 싶어요. 같은 시간을 살아도 저마다 다른 생활을 하게 되잖아요. 공감하고 교감할 수 있는 것을 많이 하고 싶어요. 할 수 있을 때 최대한 해야죠. 제가 솔선수범해야 아이가 사회 구성원으로서 잘 살아갈 수 있을 테니까요.

스케이트보드가 서로 교감하는 매개가 됐다는 생각도 들어요.
(성현) 아이가 아직은 어려서 중요한 활동이나 어떤 스포츠라고 여기기보다 그냥 재미있는 놀이라고 받아들이고 있어요. 덕분에 즐거운 기억만 남죠. 자빠져도 울지 않아요. 넘어지는 자체가 무언가를 남기거든요. 깨달음이 있는 거죠. 안전 장비가 있을 때와 없을 때 넘어지면 이렇게 다르구나, 이런 식으로 본능적으로 알아가는 것 같아요. 이게 꼭 스케이트보드가 아니더라도 직접 활동하지 않으면 느끼거나 알 수 없는 것들이거든요. 컴퓨터 앞에서 손가락 까딱한다고 이런 느낌을 어떻게 알 수 있겠어요.
(효진) 저는 다른 친구들이랑 달리 제가 아이에게 비법을 전수하거나 가르치는 게 아니라, 같이 배우는 입장이잖아요. 그게 정말 서로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효진 씨는 남자아이가 둘인데, 한 번에 케어하기 힘들진 않나요?
(종범) 그래서 저희가 다 같이 돌봐요. 저는 딸 비비안이 캐나다에 있으니까 제가 대신 둘째를 본다든지 하면서 같이 돌봐요.
(효진) 공동육아라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아이들도 어른들을 무서워하거나 어려워하지 않거든요. 워낙 오랫동안 자주 만나서.
(종범) 저한테도 ‘미스타 빡’이라고 불러요. “미스타 빡! 이거 해줘!”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들이 내 아이를 돌보고 놀아줄 때의 기분이 남다를 것 같기도 해요.
(효진) 너무 고맙지요. 여러 감정이 들지만 고맙다는 마음이 가장 커요.
(성현) 같이 시간을 보내는 그 순간보다는 나중에 그 시간을 뒤돌아봤을 때, 회상할 때 너무 좋은 것 같아요.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고, 그립고요. 그런 기억에 순간순간 기쁨이 연결돼 있어요. 저는 이렇게 모여서 같이 노는 것 자체가 큰 축복이라고 생각해요.

아이들을 보다 보면 내 친구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기도 하나요?
(효진) 아이들끼리 노는 모습을 보면 ‘우리도 이랬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가 놀았던 방식, 우리가 싸우고 화해했던 과정들 같은 거요.
(성현) 아이들이랑 친구들이랑 리액션이나 순간적인 표정이 똑같을 때가 있어요. 같이 앉아서 맛있는 거 먹을 때 안심하고 편안해하는 표정이 빼다 박은 것 같거든요. 그럴 때 딱 그런 생각이 들어요. DNA 어디 안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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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임을 통해 아이들이 어떤 것을 경험하길 바라나요?
(종범) 사실 그런 건 없어요. 저희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이렇게 만나서 스케이트보드를 타는 건 아니니까요. 워낙 가까이 살고 오랜 친구니까 자주 만나는 게 자연스러울 뿐이에요. 정확히 어떤 스포츠여야 한다는 건 없고, 그냥 애들이랑 같이 돌아다니고 같이 하는 게 좋을 뿐이에요.
(효진) 요즘 애들이 만날 핸드폰 게임만 하고 조그만 화면만 들여다보니까 더 많이 놀고 더 많이 돌아다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최소한 이렇게 노는 동안에는 핸드폰을 안 하니까.

아내 입장에서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신나게 놀아주니까 좋아할 것 같아요. 부부 모두에게 좋은 모임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성현) 엄마들 앞에서 하면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어요. 애들 앞에서 〈울버린〉, 〈엑스맨〉, 〈어벤저스〉 이런 얘기 못 하게 하거든요.
(종범) 엄마들은 놀라면서 싫어하는 것도 있어요. 만날 햄버거 사주고 콜라 사주고 그러니까. 그래서 “이거 남자들끼리 비밀이다” 하지요.(웃음)

집에서 탈출하기 위해 나오는 경우도 있나요?
(성현) 항상 갈증을 느끼죠.(웃음) 갈증은 마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어떤 에너지를 분출하고 쏟는 시간을 갖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종범) 아이들 사회성을 위해서라도 좋아요. 삼촌들도 만나고 스케이트보드를 타면서 새로운 사람도 만나고.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장이 되는 거죠. 특히 남자아이들한테는 이런 액티비티가 많이 필요해요.
(성현) 사실 도심에 사는 아이들은 야외 활동이 전부 소비와 직결되는 것뿐이거든요. 놀이방, 키즈 카페처럼요.
(종범) 근데 사실 우리도 간 적 있어요. 그리고 미친 사람처럼 놀았지요. 방방에서 막 팔이 천장에 닿게 과격하게 뛰고, 미끄럼틀에서 “다 비켜!” 하며 데굴데굴 굴러 내려가기도 하면서요. 삼촌보다는 친구처럼, 동네 형처럼 놀았죠. 그때 주변에 있던 처음 보는 애들도 다 같이 놀았어요.
(성현) 아이들이 느끼는 희열은 좀 다를 것 같아요. 텀블링이든 스케이트보드든 아이들이 생각하는 얌전하게 노는 건 없거든요. 아이들에게도 자기 안의 에너지와 힘을 분출할 수 있는 시간인 거죠. 그래도 키즈 카페는 실내 공기도 답답하고 야외 활동과는 많이 다르긴 해요.

어른들끼리의 여느 모임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회포를 거하게 풀지 못할 때 아쉽거나 하지는 않나요?
(효진) 훨씬 건전하고, 좀 다른 느낌이에요. 맛있는 거 먹고 재미있게 놀고 그대로 귀가하는 것도 기분이 좋아요.
(성현) 아이들이 있으니까 절제가 돼요. 언어 순화도 되고요. “에이...” 하다가도 “비씨디...” 하며 얼버무리기도 하고.(웃음) 근데 오래된 친구는 술친구나 사회 친구와는 개념이 좀 다른 것 같아요. 같이 있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거든요. 편안하고 익숙해요. 자연스럽게 긍정적인 힘이 나와서 감정을 공유하거든요. 그게 그대로 아이들한테 전해지기도 하고요. 시간이란 게 굉장히 한정적이기 때문에 요즘은 시간의 소중함도 깨닫고 있어요.

앞으로 스케이트보드 말고 다른 것도 해볼 예정인가요?
(종범) 원래는 스노보드로 시작하려고 했거든요. 근데 스케이트보드를 타면 스노보드도 쉬우니까, 겨울이 되기 전에 날 따뜻할 때 스케이트보드부터 시작한 거였어요. 겨울이 오면 다들 스노보드 타러 떠나겠죠.

옷은 새 옷이 좋고 친구는 오래된 친구가 좋다는 말이 있어요. 좋은 친구란 무엇일까요?
(효진) 1년 만에 보든 10년 만에 보든 한결같은 관계요. 어제 본 것처럼 반갑고요. 힘들어도 만나면 좋고, 이해하게 되는 관계라고 생각해요.
(성현)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친구는 ‘도움을 주는 사람’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도움이 아니라, 함께하고 곁에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내가 도와줄게”가 아니라, “같이 하자. 거기 갈래?” 이런 식으로.
(종범) 서로 기대하지 않는 사이요. 서로의 치부를 드러내도 있는 그대로 봐주는 그런 사이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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