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erfect Family Myth

완벽한 가족이라는 신화

영화와 드라마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식사 장면을 보다 보면
질문을 하나 건네고 싶어진다. “이런 가족이 현실에 있는 거 맞아?”

이 세상에 없는 가족
한국 드라마에서 자주 묘사하지만 가장 현실과 동떨어진 클리셰 중 하나는 가족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 오순도순 수다를 떨며 보내는 식사 자리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는 한 가족으로 부족해 할아버지, 할머니, 이모, 삼촌, 이웃 친구까지 함께 밥을 먹는데 그게 거의 매일 일어난다. 정말 초현실적 장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현실에서 만약 그렇게 대가족이 모이는 식사 자리를 준비한다면 어떻게 될까? 사실 우리는 그 답을 이미 알고 있다. 설이나 추석 연휴에 바로 그런 자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사소한 감정싸움, 심각한 말다툼, 심지어 이로 인한 의절이나 이혼 등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고, 아주 가끔은 신문 사회 면에 보도될 정도의 사건으로 비화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순간에 하하호호 이야기를 나누고 즐겁게 식사하는 가족도 많다. 하지만 그 비결은 서로를 존중하고 상대방에게 선을 넘지 않는 예절을 모두가 공유하기 때문이지, 문제나 갈등이 없어서가 아니다.


완벽한 가족은 드라마 속에만 존재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그렇다. 이혼을 예로 들어보자. 한때 나에게 ‘이혼’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혼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 중 하나인 결혼에 실패했다는 뜻으로, 실직과 같은 수준의 재난이자 당사자에게 대단한 결함이나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 같았다. 당시에도 미국 드라마나 영화에서는 이혼한 주인공이 드물지 않게 등장하곤 했지만, 나에게는 미국이라는 사회의 어두운 면을 반영하는 설정 정도로만 비쳤다. 하지만 더 이상 이혼은 대단한 일이 아니다. 내 친구 중에도 이혼남과 이혼녀가 있고, 심지어 내가 아는 사람들끼리 재혼한 경우도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결혼한 사람 1000명 중 4.5명 정도만 이혼한 상태라니 오히려 내 체감보다 통계가 더 적다. 이혼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전체 가정에서 양친 중 한쪽이 없는 한부모 가정의 비율은 10% 안팎까지 증가했다. 열 집 중 한 집은 아버지 혹은 어머니만 계시다는 얘기다. 그 외에 가족의 다양성까지 눈을 돌리면, 갈수록 우리의 삶은 드라마에서 보던 ‘함께 식사하는 대가족’과는 계속 멀어지는 것 같다.

비로소 갈등으로부터 시작한다
가족은 태생부터 갈등의 기원이다. 부부 단둘의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소소하게 충돌이 일어난다. 게다가 가족 간의 문제 중 당장 해결되는 것은 거의 없으므로 인내심이 필요하다. 관계가 오래될수록 감정도 더 깊어진다. 특히 오래 유지해온 관계는 갈수록 ‘친밀감’이라는 감정적 접착제가 늘고, 그래서 웬만한 일로는 잘 깨어지지 않는다. 문제는 친밀감 같은 긍정적 감정만 깊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소한 서운함과 실망감, 작은 배신감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쌓이고 그만큼 더 크고 복잡해진다. 상담심리학에서는 심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그 문제가 생기는 데까지 걸린 시간과 같다고 말한다. 가족 간의 오해나 갈등도 그렇다. 서로 간에 쌓인 앙금을 해소하려면 풀리지 않은 채로 쌓여 있던 기간만큼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가 생기면 갈등의 여지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육아 부담을 어떻게 분담할지,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할지, 어떤 유아원·유치원·초등학교·학원 등에 보낼지에 대해 의견이 온전히 일치하는 부부는 거의 없다. 더욱이 이는 자기 문제가 아니기에 양보하기 어렵기도 하다. 게다가 아이가 크면 갈등의 축이 하나 더 생긴다. 바로 아이 자신이다. 아이에게 자아가 생기는 세 살 무렵부터 아이는 사사건건 부모와 충돌하려 든다. 자신의 존재 영역을 만들어가는 정상적인 성장 과정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갈등은 아이가 성인이 되어 자기 자리를 찾아 가족을 떠날 때까지 계속 차원을 높여가며 커지기 마련이다. 이 말은 성장하는 가족이라면 언제나 갈등을 겪는다는 것과 같다. 그러니까 갈등은 성장의 증상인 셈이다. 물론 여기서도 신뢰는 필수적이다. 신뢰는 가족을 지탱하는 핵심 자원이어서 부부가 서로 신뢰하지 않으면 사소한 갈등도 이내 파멸로 이어지고 만다.


아이도 그렇다. 자기 부모가 나에게 공부를 강요하는 이유가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내 미래를 위해서라고 믿는다면, 그 아이는 공부가 힘들고 가끔은 투정을 부릴지언정 가족의 일원으로 최선을 다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부모의 의도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아이는 부모에게 저항하고, 부모를 속이고, 원수로 여길 수도 있다. 신뢰는 자신감으로도 이어진다. 우리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면 자신에 대한 신뢰, 즉 자신감도 줄어든다. 자신감이 없으면 우리는 남의 시선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영화 〈기생충〉의 흥미로운 점은 기택(송강호)네 가족이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보다 자기들끼리는 더 솔직하다는 점이다. 기택의 가족은 이미 온갖 실패를 겪었고, 그 결과 지금 현재 반지하 방에서 통신비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렇게 외부적으로는 힘든 상황인 이 가족은 서로에게 쌓인 감정이나 원망이 없다. 기택의 가족이라고 갈등이 없을까. 피자 박스 접기 노동을 하면서도 누군가는 허황된 꿈을 꾸고, 누구는 대충 접어 수당을 깎아 먹으니 다른 일에서도 서로 눈에 거슬리고 한심한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들이 서로에게 솔직하고 원만할 수 있는 비결은 그 어떤 작은 분노나 원망도 미루거나 숨기지 않고 즉각적으로 표출하는 데 있다. 기택의 가족은 갈등을 직면할 수 있을 만큼 서로를 신뢰한다. 반면 박 사장네 가족은 겉보기에는 완벽하다. 멋진 집에서 아무런 부족함 없이 모든 안락함을 누리며 이들 사이에 갈등은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갈등이나 문제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걸 아무도 모르게 잘 숨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건 서로를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데서 시작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숨겨온 사소한 것이 가족 내부 신뢰의 틈새를 만든 것이다. 기택의 가족이 박 사장 가족에 기생을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틈새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갈등을 환영하는 법
한국 사회에서 ‘갈등’은 결코 환영받지 못하는 단어다. 갈등을 좋아하는 국가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특히 우리나라는 갈등에 대한 공포가 더욱 심하다. 가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가족 간의 갈등도 남에게 드러내기를 싫어하고, 심지어는 갈등을 인정하지 않으려 들기도 한다. 사실 가족은 갈등을 가장 많이 내재한 집단이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그 갈등을 어떻게 대응하느냐다. 신혼 초에는 특히 갈등이나 다툼이 많은데, 그동안 각자 영위해온 삶의 방식이 충돌하고, 미묘하게 다른 가치관이나 태도가 더 이상 피할 곳 없는 상태에서 마주치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한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지를 돌이켜보면 나에게 결혼은 인간 갱생 과정에 가까웠다. 결혼하기 전에는 스스로 깨닫지 못한 나의 약점들을 아내라는 거울을 통해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소심함과 지독한 오만 사이를 오가는 내 자의식은 아내라는 조절자가 없었더라면 다른 곳에서 지금보다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고 말았을 터였다. 처음에는 내 모든 가능성을 속박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아내의 존재는 지나고 보니 내 안전판이었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건 내가 정말로 완벽과는 거리가 멀며, 우리 부부는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 어떤 부부와도 다른 존재라는 사실이었다.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나는 아내의 지적을 수용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실을 부정하고 오히려 반발하다가 인격을 닦을 기회를 놓치고, 무엇보다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조력자를 잃고 말았을 것이다. 드라마와 영화 속 완벽해 보이는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가족이 정상이라고 믿는 태도는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내가 살아가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데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비슷하지만 동시에 다른 존재다. 생각과 태도와 목적의 차이는 우리를 개별화된 존재, 개성을 지닌 인간으로 만들어주는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 다른 존재들이기에 갈등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영화 속 클론처럼 완벽하게 서로 같은 존재가 되지 않는 한,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은 결코 완전히 해결될 수 없다. 어떤 사안이든 생각의 차이, 대안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이 때문에 대립하게 된다. 문제는 그 갈등을 어떻게 타협으로 연결하느냐다. 이런 갈등 해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신뢰’다. 상대방의 선의를 믿는 한, 우리는 상대방의 의도를 의심하지 않고 타협에 임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승복하고 다시 협력할 수 있다. 가족도 똑같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의 선의를 믿을 수 있다면 그 가족은 갈등을 타협으로 바꾸고 함께 갈 수 있다. 이렇게 갈등하고 신뢰를 바탕으로 이 갈등을 타협으로 이끌어가는 경험이 축적될수록 우리는 자신과 서로에 대한 믿음을 키우며 더 든든한 가족이자 건강한 개인이 될 것이다.

장근영

동생의 마음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어서 심리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심리학자. 일명 ‘짱가’로 불린다. 게임 ‘리니지’를 소재로 논문을 발표하고, 영화와 드라마 속 인물을 통해 흥미로운 심리학 이야기를 펼친다. 사람의 마음이 만들어낸 완고한 선입견과 편견을 심리학 조각으로 유연하고 자유롭게 만들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