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rets I’ll Never Tell

말할 수 없는 비밀

한 설문 조사에 따르면 56.9%의 응답자가 연인 및 배우자에게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고 답했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도 차마 말할 수 없었던, 조금은 부끄럽기도 한 아홉 가지 고백.

익명의 소설가
부평 이외수(38세,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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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쓴다. 심지어 꽤 됐다. 북 카페에서 라쿤 네 마리를 키우며 ‘라쿤 만화방’을 운영 중인데 시간이 남을 때마다 한두자 씩 쓴 게 벌써 1년이 넘었다. 좀 쑥스러워 아내에게는 알리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익명으로 사이트에 글을 올렸고, 석 달이 지나자 반응이 왔다. 엄청난 인기까진 아니고 구독자가 몇백 명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출판사와 이야기가 잘 진행된다면 단행본을 낼 기회가 생길 것 같다. 문제는 ‘나약한 가장’으로 묘사된 주인공이 바로 나라는 것. 소설 소재로 아내와 있었던 에피소드를 녹였다. 아내가 본다면 “나랑 사는 게 이렇게 힘들었어?” 라고 반응할 것 같다. 하, 왜 기쁜데 좀 슬픈 걸까?

눈물 젖은 패딩
중고나라 새싹 회원(34세, 디자인 회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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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우리가 결혼한 지 벌써 1년이나 됐어. 세월 참 빠르지. 결혼을 앞두고 무작정 회사 관두고 창업 준비한다고 했을 때, 지지리 궁상이던 내 옆에서 응원해주고 묵묵히 기다려줘서 고마워. 당신 덕에 이렇게 자리를 잡았어. 어느덧 직원이 7명이나 되고 회사도 제법 안정 궤도에 접어들었어. 이렇게 편지를 쓰는 건 한 가지 고백할 게 있어서야. 음, 면전에서 말하기는 어렵지만, 에디터 친구를 둔 덕분에 이렇게 털어놓을 기회가 생겼네.
재작년 크리스마스 기억나? 당신 생일이 크리스마스랑 4일밖에 차이가 나지 않아서 내가 갖고 싶은 선물을 물어봤지. 그때 당신은 주저하지 않고 패딩이 갖고 싶다고 했어. 그래, 그 캐나다 거위로 만든 패딩. 자기가 갖고 싶어 하던 모델을 찾아봤는데 119만 원이나 하더라고. 사실 그때 회사 관두고 사정이 여의치 않았잖아. 나에게는 무척 큰돈이었기도 하고. 아니, 다른 누군가에게도 큰돈이었을 거야.

정말, 진짜, 정말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중고나라에 그 모델을 검색했는데 새 제품을 70만 원에 파는 사람이 있더라고.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게시글을 읽어봤는데 가격 태그도 그대로 달려 있는 거야. 그때 정말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어. 언젠가 대학 친구가 임신했다고 저녁 모임한다고 했던 것 기억나지? 그날, 동인천으로 직거래하러 갔어. 판매자를 만났는데 이게 웬걸, 쇼핑백까지 가지고 계시더라고. 그래서 샀어. 그리고 크리스마스 선물로 자기에게 선물했지. 박스 포장을 뜯고 당신이 입어보는 동안 어찌나 심장이 쫄깃하던지.... 혹시 안 맞아서 사이즈를 바꿔야 한다면 어쩌나 싶었어. 휴, 다행히 맞더라. 아니, 살짝 큰 것 같기도 했는데 딱 맞는다고 부추겼던 것 같아. 다시 겨울이 왔어. 3년째 당신이 그 패딩을 잘 입고 다니는 걸 보면 고맙기도 하고, 한편으로 미안하기도 해. 근데 잘 어울려. 이번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하면 진짜 좋은 패딩 사줄게. 그땐 중고가 아니라 새 제품으로!

모르는 것 같아서 말 안 했어
사슴 같은 눈망울(34세, 웹 디자이너)

그래, 나 쌍꺼풀 수술했어. 근데 엄청 대대적으로 손댄 건 아니야. 속눈썹이 눈을 자꾸 찌르기에 정말 살짝, 아주 살짝 집었을 뿐이야. 티 안 나지? 나도 그렇게 믿고 있어. 지금까지 내 눈에 대해 별다른 의심을 갖지 않길래 말하지 못한 것뿐이야. 곧 태어날 우리 딸 로율이. 엄마, 아빠가 쌍꺼풀이 있는데도 무쌍으로 태어나도 놀라지 않을게. 엄마도 했고 아빠도 했으니까. 요즘은 무쌍이 인기인 시대잖아. 쌍꺼풀 걱정은 하지 말고 아기도 당신도 건강하게 출산하기를.... 그래도 언젠가는 고백할 날이 오겠지.

분노의 질주
정릉 슈마허(38세, 디자이너)

30여 년간 바르게 살아왔다. 담배는 입에도 대지 않았고 주량이 약해 술자리도 가지 않았다. 첫사랑과 결혼에 골인했으니 아내 이외의 다른 이성을 만나본 경험도 거의 없었다. 그런데 결혼 후 대학생 때 타던 오토바이 생각이 간절하게 났다. 그때 스쿠터는 50cc. 차가 없어 타고 다니던 교통수단이었는데 50km 이상 밟으면 엔진이 터질 것처럼 굉음을 내는 귀여운 녀석이었다.
아내에게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 “그래서 얼만데?” 라고 묻기에 “한 150만 원 정도?”라고 수줍게 대답했다. 승낙이 떨어졌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150 만원 대의 스쿠터가 눈에 차지 않았다. 마치 “경차 사러 갔다가 벤츠 산다”는 중고차업계의 격언처럼. 아내와 같이 타려면 차체도 더 큰 녀석이 필요했다. 배기량을 높여125cc 기종을 살펴보다가 어느새 350cc 기종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2019년 제조한 최신형 모델이 750만 원. “어머, 이건 사야 해!” 소리가 귓가에 맴돌았고, 일주일 내내 고민했다. 그래서 샀다.
아내에게는 200만 원이라고 했다. 그동안 숨겨둔 비상금 550만 원을 더했다. 처음 아내에게 보여준 모델과 비슷하게 생겨서 구분이 가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오토바이 출고 날, 오후 반차를 내고 가지러 갔다. 첫 엔진 소리를 듣고 눈물이 고였다. 일주일에 한 번씩 정성스레 닦아 아내와 양평으로 드라이브를 간다. 어찌나 힘이 좋은지 두 사람이 타도 100km는 너끈하다. 아내도 좋아하는 눈치다. 역시 비싼 걸 사길 잘했다. 근데 언제 말하지! 이제 와서 750만 원짜리라고 하면 다시 팔라고 하지는 않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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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의 지혜
장어에는 복분자(38세, 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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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아버지께서 정년 퇴임하시고 어머니 몰래 퇴직금을 유기농 사업에 투자했다가 다 날리셨다. 두 분은 냉전 중이셨고 집안 분위기가 말이 아니었다. 아버지와 단둘이 곰장어에 소주를 기울이게 되었다. 술이 올라오자 아버지가 진지하게 운을 뗐다. “너, 지금부터 버는 돈 있으면 10%는 누구도 모르게 저축을 하렴. 만약 200만 원을 벌면 20만 원. 십일조 하듯이 말이야.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계속 그렇게 해.”
그 뒤로 생기는 돈의 10%는 저축하기 시작했다. 벌써 10년 정도 됐으니 티끌 모아 좀 더 큰 티끌만큼 쌓였다. 아내와 나는 결혼할 때 부모님께 경제적 지원을 받았다. 작은 빌라에서 시작했고, 둘 다 씀씀이가 크지 않아 아직 이 비상금에 손을 댄 적은 없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손자가 생기며 다시 사이가 좋아지셨다. 문득 그때 아버지의 뜻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날씨가 춥다. 아버지와 함께 먹은 곰장어와 소주 한잔이 그립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때가 쏙 비트(33세, 자영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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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17년 말, 대한민국이 들썩거렸다. 비트코인. ‘가상화폐’라는 형체도 없는 녀석이 실시간 검색어를 장악했다. 시사 프로그램에서는 과연 화폐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논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늦지 않았다며 사야 하는가에 대한 문의도 폭주했다. 내가 처음 비트코인을 알았을 때는 1비트코인에 500만 원 정도였다. 점점 소문이 퍼지면서 800만 원, 900 만 원을 넘어서자 부모님도 “비트코인인지 버스 토큰인지 사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전화를 하셨다. 그래서 샀다. 주변에서 떼돈을 버는 모습을 보기만 할 순 없었다. 내가 샀을 때는 1200만 원 선. 한발 늦은 시점이었지만 그럼에도 가격은 계속 올랐다. 1500 만 원을 넘었을 때, ‘아, 좀 더 넣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버는 족족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가격은 27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쾌재를 불렀다.

그러다 2018년 초, ‘가상화폐 규제’ 이야기가 연일 뉴스에 보도되었다. 그리고 폭락하기 시작했다. 끝없는 내리막을 걸었고, 결국 넣어둔 돈이 반 토막이 났다. 그리고 거기서 또 반 토막이 났다. 1000만원을 넣었다면 250만 원이 남은 것이다. 물론 나는 그것보다 훨씬 금액이 크다. 아내도 내가 비트코인으로 돈을 날린 걸 안다. 그때는 결혼 전이어서 상세히 말하지 않았다. 개인 사업을 하기에 수입이 들쑥날쑥한 탓도 있다.
이 액수는 절대 말할 수 없다. 대략 독일 3사 중형차 한 대 값을 날렸다. 비트코인만 아니라면 지금 포르쉐를 몰고 있을 텐데. 아니, 더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버티는 중이다. 지금 40% 정도 회복했다. 나머지 60%를 메우려면 더 열심히 일할 수밖에!

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최배달(36세, 회사원)

새벽에 우유 배달을 한다. “무슨 일이야. 그렇게 어려워?”라며 위로가 쏟아진다. 꼭 돈이 궁해서는 아니다. 올해 태어난 아이가 새벽녘에 깨서 우는 바람에 달래느라 밤잠을 설치기 일쑤였다. 그렇게 아이를 안아 한참을 달래고 나면 다시 잠들기 어려운 날이 많았다. 출근 시간까지 몇 시간을 뜬눈으로 보내다 ‘기왕 깬 김에 돈이라도 벌자’는 생각에 우유 배달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다. 새벽 5시부터 아파트 단지를 도는데 왠지 처량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자 차차 익숙해졌고, 지금은 새벽에 저절로 눈이 떠진다. 우유 배달을 하는 건 가족이 모두 아는 사실인데 왜 비밀이냐고? 첫 번째는 급여. 아내는 한 달에 40만 원 정도 받는 줄 안다. 그중 20만 원을 아내에게 내민다. 사실 그것보다 조금 더 번다. 차액은 비상금으로 모아둔다. 물론 나만을 위한 건 아니다. 두 번째는 주말의 늦잠. 매일 새벽에 일어나니 주말에 좀 늦잠을 자도 아내는 별다른 잔소리를 하지 않고 이해해준다. 이렇게 우유 배달은 나에게 무기 같은 것이다. 몸은 피곤할지언정 우유 배달, 회사 일, 집안일, 육아까지 담당하니, ‘슈퍼맨 남편’ 이미지도 얻었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정말 피곤하다. 이만 자야겠다. 내일도 우유를 돌려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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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인어른이 불편해
82년생 김민수(37세, 회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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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4년 차, 아직도 장인어른과 어색하다. 이 모든 게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는 혼전 임신을 했다. 임신 5주 차, 산부인과에서 확진을 받고 결혼 허락을 받기 위해 아내의 본가인 창원으로 향했다. 정장을 차려입고 백화점에서 일등급 한우를 샀다. 안다. 캐비아를 샀어도 부족할 상황이다. 장인어른은 경남 사단법인 검도협회 지부장으로 지역에서 알아주는 장사셨다. 죽도가 아니라 진검을 휘둘러도 시원찮을 상황. 아버님을 뵙자마자 무릎을 꿇었다. “그래서 어떻게 할 텐가?”, “결혼하겠습니다. 허락해주십시오.”
따귀는 면했지만 그때 흠씬 두들겨 맞고 훌훌 털어버릴걸, 하는 후회가 든다. 그 어색한 기운이 아직까지 가시지 않는다. 둘째가 태어났지만 손자는 예뻐도 사위는 그렇지 않으신 것같다. 술이라도 한잔하면 나아지려나 싶지만 내가 술을 입에도 못 댈 만큼 약해서 문제다. 이 어색함을 풀 길이 없다. 곧 설날이 다가올 텐데 이번에도 뻘쭘한 명절을 보내겠지.

천천히 갚아도 괜찮아
흔들린 우정(40세, 광고 회사 AE)

친구에게 돈을 빌려줬다. 크다면 크고 적다면 적을 수 있는데, 2000만 원 정도 되는 금액이다. 감성 카페 느낌의 고깃집을 오픈한다길래 투자 겸 종잣돈을 댄 거다. 문제는 생각보다 가게가 잘 안 된다는 거다. 아이디어는 그럴듯했다. 이화여대와 신촌 사이의 상권, 노출 콘크리트 인테리어, 어두운 조명, 구워서 나오는 노릇노릇한 고기, 맛있는 수제 맥주까지.... 안 될 이유가 없었다. 근데 장사라는 게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 없는 건가 보다. 〈골목식당〉에 이대 앞이 방영되면서 주요 상권이 그쪽으로 옮겨간 것. 그래서 친구 가게는 드문드문 손님이 올 뿐, 사람이 바글거리는 맛집은 되지 못했다. 친구는 아직도 대출금을 갚는 중이다. 이자까지 쳐서 갚겠다던 호언장담은 물 건너갔다.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있을지조차 미지수다. 혹여 우정에 금이 갈까 봐 그 이야기는 묻어두고 있지만, 언젠가 아내가 알게 된다면 무슨 말을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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