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ut Out to All the Daughter-holics

딸바보 아빠에게 고함

어느 순간 등장한 ‘딸바보’라는 용어는 한동안 긍정적 이미지로
소비되었다. 그러나 딸바보를 그저 좋은 아빠의 다른 표현으로
바라볼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다.

‘딸바보’라는 말이 방송, 온라인, SNS 등에서 번지더니 이제는 일상에서 흔히 쓴다. 그 말의 시작과 어원은 분명치 않다. 초식남, 재테크처럼 딸바보 역시 일본어에서 비롯되었을 공산이 크다. 딸바보를 일본어로 직역하면 ‘무스메바카(娘バカ)’라 불러야 하나, 그런 단어는 찾아볼수 없다. 부모를 일컫는 오야(親)와 바보를 이르는 바카(バカ)를 합친 ‘오야바카(親バカ)’라는 말은 존재한다. 해석하자면 자식을 소중히 여기고 귀여워하다 보니 부모가 어리석은 판단이나 행동을 하게 된다는 의미다. 이런 일본식 표현이 뉘앙스를 달리해 딸을 몹시 사랑하는 아버지의 과장됨이나 딸에게 유독 집착해 객관적 판단이나 행동에서 슬쩍 벗어나는 부모의 행태를 가리키는 신조어가 되었다는 게 설득력 있는 가설로 보인다. 딸바보라는 표현이 그저 대중 속에서 일시적 트렌드로 소비되다 끝날지, 아니면 나름 아버지와 딸의 관계를 표현하는 의미 있는 개념으로 자리 잡을지는 더 두고 볼 일이다. 다만 딸바보에 담긴 몇 가지 부정적 지적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아버지가 딸을 끔찍이 여기고 위해주는 것이 왜 불편할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 SNS에 딸들이 올린 짤막한 불편의 심경들을 먼저 읽어보자.

“딸바보 아빠? 딸바보 엄마는 당연히 애 키우는 거고, 딸바보 아빠는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소비되는 게 싫다.”
“딸바보라면 으레 외모가 예쁜 여아가 등장해 애교 부린다. 여자는 어린애조차 외적 기준, 애교가 적용되는 건가.”
“딸바보 워딩이 싫다. 우리 아빠는 매번 딸의 의무 어쩌고 하면서 볼 뽀뽀 강요하고 긴 머리와 치마 등을 바란다.
딸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뮤즈로 삼는 건가.”
“정작 딸의 정서적 불안이나 고민은 알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도 않으면서
딸바보인 자기를 은근 자랑스러워하는 게 웃긴다.”
03-01

딸바보라는 표현이 불편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동안 지적되어온 것들을 나열해보자.

1. 딸바보라는 표현을 펼쳐보면 첫째 남성의 ‘여성’, 둘째 ‘상대적으로 어리다’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딸을 대할 때 과거 아내와의 연애 시절만큼 또는 그보다 더 애틋해지는 남성의 심리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만약 아내를 배제하면서 대리 만족 형태를 띤다면 이것은 건강한가?
2. 애정이 분별력을 갖기보다는 맹목성이 더 강조된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건강하지만은 않다. 딸바보 아버지의 보호 속에서 자란 여성은 아버지의 가부장적 권위에 짓눌리지 않고 사랑과 긍정을 담뿍 받았으니 능동성과 주체성을 더 발휘할까? 아니면 오히려 의존적 성격이 더 강화될 것인가?
3. 딸바보 관계의 아버지와 딸에게 아내 및 어머니의 위치는 어디인가? 딸로 인해 남편이 가정에 더 충실하고 육아에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지만, 가족의 구성과 일상에서 아내(어머니)가 정서적으로 배제되지는 않는가?
4. 마초인 데다 가부장적 권위에 찌들어 있음이 뻔한 인물이 어쩌다 딸에게 애정을 쏟는 장면 한 번으로 딸바보라는 TV 자막을 달고 선한 이미지로 포장된다. 괜찮은 구석이 있는 사람이라고 보는 등 사람의 시선이 무뎌진다.
5. 딸의 정서나 감수성을 무시한 채 인생에 지나치게 간섭하는데 딸바보라는 말로 무지와 억지를 덮어버린다. 만약 딸이 아버지의 의지를 거스르고 통제에서 벗어날 때 그 아버지는 딸을 이해하고 밀어줄까, 아니면 가부장적 권위로 돌변할까?
6. 딸바보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표현 중 ‘아빠 미소’라는 것도 있다. 가족 관계가 아님에도 나이 든 남성이 어린 여성을 바라보며 흐뭇해하면 아빠 미소, 가깝게 대하면 딸바보의 연장으로 치부한다. 이런 게 과연 옳은 걸까?
7. “늑대 같은 남자 녀석에게 내 딸을 줄 수 없다”고 째려보는 딸바보 아버지는 늑대인 걸 어떻게 확신하는 걸까? 자신의 과거, 자기 친구들의 과거가 모두 그랬다며 자폭하는 걸까? 그럼 자신의 딸이 남자를 안 사귀고 무사히 젊은 날을 통과하면 축하해줄 건가?

지금껏 열거한 불편한 이야기들에도 불구하고 딸바보 트렌드는 세상이 나아졌다는 징표임은 분명해 보인다. 아버지가 어린 딸을 안고 돌보거나 딸의 손을 잡고 길을 가면 그 위 세대의 어른들이 한심하게 바라보며 “사내씩이나 되어가지고...”라며 혀를 차던 시절이 그리 먼 옛날도 아니다. 딸바보가 긍정적 가치를 갖고 있음은 과학적으로 규명된 내용이다. 남성이 딸을 키우며 애정을 쏟을 경우 인간의 존엄성과 성평등의 가치에 대한 감수성이 크게 높아짐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들이 축적돼 있다. 아버지가 딸을 키울 때 어떤 행동 변화가 일어나는가? 이른바 ‘딸 효과 (daughter effect)’에 대한 연구는 정치와 사법, 경영 등 사회 각 분야에서 진행되었다.

1. 정치

미국 예일 대학의 경제학자 에보니아 워싱턴은 ‘여성의 사회화: 딸들은 국회의원 아버지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미국경제학리뷰, 2008)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자식이 두 명인 의원을 표본으로 모아 자녀의 성별로 구분해서 젠더 이슈와 관련한 법안 의결 과정에서 어떻게 투표했는지 분석했다. 딸을 여럿 키울수록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가 높게 나왔다. 흥미로운 건 보수적인 공화당 의원들에게서 상승효과가 훨씬 뚜렷했다는 점이다.

2. 사법

에머리 대학의 정치학자 애덤 글린과 하버드 대학의 정치학자 마야 센이 공동 작업한 ‘사법적 공감: 딸을 키우는 것은 판사의 여성 이슈 재판 판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미국정치학저널, 2015) 연구도 위와 비슷한 결과를 보인다. 취업이나 직장 성차별, 출산 및 낙태와 관련한 여성권, 교육에서의 여성 차별 등 젠더 이슈인 사건을 판결하는 데 남성 판사임에도 딸을 한 명이라도 둔 판사들이 더 진보적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 연구에서 흥미로운 건 딸을 둔 여성 판사보다 딸을 둔 남성 판사가 더 뚜렷한 개선 효과를 보였다는 점이다. 역시 보수 성향의 판사들이 딸 효과가 상대적으로 더 크게 나타났다.

3. 경영

‘딸의 영향: 경영자, 여성의 사회화,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연구도 있는데, 최고경영자가 딸이 없는 사람에서 딸을 둔 사람으로 바뀔 때 해당 기업의 사회 공헌 활동이 증가했고, 반대로 딸을 둔 최고경영자에서 딸이 없는 최고경영자로 바뀔 경우 사회 공헌 활동이 감소했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연구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나타나고 있다. 경영진이 딸을 자녀로 두었을 때 여성 채용 비율이 높아지기도 하고, 거래의 성공률과 내부 수익률이 증가했다는 연구도 있다.

위의 연구들은 남성이 주도하는 영역에서도 아버지가 딸을 키우면서 젠더 이슈에 눈뜨고 성평등과 인권, 생명에 대한 감수성을 훨씬 더 키워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언론에 보도된 ‘2017년도 법관평가’에서 한 남성 판사는 여성 변호인에게 “나는 여자가 그렇게 말하는 거 싫어한다”고 막말을 했다며 지적했다. 공개된 법정에서조차 이 정도 일이 벌어진다면 우리 사회 곳곳의 그늘과 밀폐된 곳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딸들에게 가해지는 숱한 불평등과 모욕, 더 우울하고 끔찍한 이야기들은 언론에 가득하다. 그 갑질과 막말, 폭력의 당사자들은 우리가 지금껏 이야기한 딸바보가 결코 될 수 없는 특별한 사람들이었을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집에서는 다정한 딸바보이면서도 집 밖을 나서 이러한 현실과 마주했을 때 행동하지 않는 다수의 아버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걸까?
딸바보 아버지들은 이제 앞에서 언급한 딸바보의 불편함에 담긴 내용들로 자신을 성찰해봐야 한다. 더 적극적인 애정 표현이나 세세한 관심, 어린 딸이 해달라는 대로 해주는 것 이상으로 어떻게 진짜 딸바보가 될 수 있는지 고민해보자. 우선 개인의 영역부터 점검해보자. 최근 미국 콜로라도 출신의 한 남성은 아내와 이혼한 후 딸의 양육을 책임지게 되자 딸의 머리를 아내처럼 예쁘게 땋아줄 수 없어 고민이었다. 딸의 머리를 보고 아이들이 부모의 이혼을 눈치채고 놀릴 것도 고민되었다. 그의 이러한 고민은 미용 학교에 등록해 미용 기술을 익혀 딸의 머리를 누구보다 예쁘게 땋아주는 걸로 마무리됐다. 사랑하기에 변하는 것, 사랑받기에 변하는 것 그것이 딸바보가 갖는 가치이다. 더 공적인 영역, 공공선의 문제도 생각해보자. 다른 딸바보의 딸들에게, 그럴 아버지가 없는, 또는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는 딸들에게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많다. 딸바보가 되어 소중한 딸들에게 애정을 담뿍 담아 애틋하게 대해주고 싶지만, 그럴 여건이 못 돼 안타깝고 서러운 아버지도 생각하자. 그 아버지를 대신해야 할 어머니들도 들여다보자. 아버지와 딸 그리고 가족이 더욱 건강한 가정을 위해, 더 나은 우리 모두의 공동체를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기를 소망한다.

03-02

변상욱

햇수로 36년째 CBS에서 저널리스트로 외길을 걷고 있다. ‘한국민주언론상’, ‘송건호언론상’ 등을 수상했으며, 한편으로는 〈뉴스타파〉에 참여한 대안 언론인이자 페미니즘 그룹 ‘문화미래 이프’의 일원이기도 하다. 국무총리실 양성평등위, 여성가족부 정책자문위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매주 토요일 아침 CBS의 인간 회복 프로젝트 〈변상욱의 이야기쇼〉를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