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rfing with GoPro

고프로와 함께 서핑을

고프로는 한 캘리포니아 소년의 취미에서 출발했다. 세상을 바꾼 많은 일이 그렇듯 순수한 뜻과 몇 차례의 우연이 고프로의 시작이었다. 그 작은 일이 모여 액션캠이라는 새로운 기록 도구가 태어났다. 파도처럼 출렁이는 고프로의 시작과 지금과 미래를 짚어본다.

GoPro is B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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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로 나가기
서핑이 없었다면 고프로도 없었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고프로의 결정적 순간은 늘 서핑과 겹친다. 고프로의 창립자와 고프로의 시발점, 고프로의 데뷔 무대는 모두 서핑이라는 수상 스포츠와 이어져 있다. 서퍼의 몸과 서핑보드를 이어주는 리시 leash 처럼. 리시는 비유뿐 아니라 실제로도 고프로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고프로 창립자 닉 우드먼은 대단한 서핑 애호가였다. 그는 캘리포니아의 명문고 멘로 스쿨을 졸업했는데, 그가 학교에 남긴 것 중 가장 유명한 건 서핑 동아리다. 그는 멘로 스쿨 서핑부 초대 회장이다. 이미 그때부터 서핑부 기금을 모으는 등의 일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고 한다. 사업가 기질이 다분했던 셈이다.
멘로 스쿨은 미 서부인 캘리포니아에서도 아이비리그 진학률이 높다. 아이비리그는 미국 동부에 있다. 그래서였을까, 닉 우드먼은 멘로 스쿨 졸업생의 진학 추이와 달리 샌디에이고의 캘리포니아 대학교에 진학했다. 여기는 캠퍼스에서 바다가 보인다. 가히 멘로 스쿨 서핑부 초대 회장다운 선택이다. 캘리포니아 소년이 우중충한 동부 같은 곳에서 파도를 타고 싶어할 리 없다. 전공도 스타트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시각예술과 창의적 글쓰기다.

진짜 혁신은 혁신과 상관없어 보이는 곳에서 온다는 것이 혁신의 혁신적인 역설이다. 고프로가 탄생할 무렵의 카메라업계는 정체와 혼란 상태였다. 첫 고프로가 나온 시점은 2004년, 카메라가 디지털이라는 기술 혁명을 한창 받아들이고 있을 때다. 카메라업계는 방향을 잡지 못한 채 과도기적 물건만 계속 내놓고 있었다.
파도타기와 비교하면 이렇다. 카메라업계에 디지털 기술 혁명이 일어났다. 지각변동이다. 기존의 카메라 강자들이 파도를 타기 좋아하던 해안이 잔잔해졌다. 소비자의 마음이라는 파도는 어딘가에서 계속 치고 있지만, 그게 어디인지 곧바로 알기는 어려웠다. 멘로 스쿨 서핑부 초대 회장 닉 우드먼은 마침 그 파도의 낌새를 알아챘다. 세계적 서핑 명소 발리에서.
캘리포니아 서퍼 닉 우드먼이 왜 발리에 갔을까? 왜긴, 서핑하러 갔다. 닉 우드먼은 대학을 졸업하고 ‘펀버그’라는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다. 대학을 갓 졸업하고 차린 마케팅 회사가 잘된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그는 첫 사업을 산뜻하게 접고 미국인의 자아 찾기 코스인 동남아 여행을 떠난다.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같은 이야기다. 다만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주인공이 자아를 찾은 것과 달리 닉 우드먼은 돈 될 거리를 생각했다.

파도에 올라타기
닉 우드먼은 발리와 호주를 오간 서핑 여행에서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은 자기가 스포츠를 즐기는 순간을 기록하고 싶어 한다는 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자신의 자세를 교정하고 싶어서, 자신의 멋있었던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일 수 있으며, 같은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과 수다를 떨고 싶어서일 수도 있다. 나의 특별한 순간을 기록하고 싶다는 수요가 확실히 있다.
이 사람들에게 중요한 건 따로 있다. 카메라 제조사가 내세우는 화질이나 디자인은 둘째다. 내가 잘 찍히느냐, 어디 잘 매달 수 있느냐, 매달리면 튼튼해서 떨어지지 않느냐, 매달릴 수 있을 정도로 작으냐... 이런 요소가 훨씬 중요하다. 닉 우드먼은 발리에서 서핑 여행을 하는 동안 스포츠 애호가의 수요라는 거대한 파도를 깨달았다.
그가 얻은 깨달음의 순간이 자료로 남아 있다. 닉 우드먼이 2001년에 찍은 거울 앞에서의 셀피다. 사진 속 닉 우드먼은 발목에 감는 리시를 손목에 감고 있다. 이 리시에는 35mm 필름을 쓰는 소형 카메라가 감겨 있다. 사용자의 몸에 감기는 카메라 하우징. 지금까지 이어지는 고프로의 본질이다.

사용자의 몸과 카메라 하우징은 고프로를 이해하는 아주 중요한 키워드다. 고프로로 뭔가를 가르쳐야 하는 학원 강사라면 여기에 밑줄을 다섯 번쯤 그을 것이다. 고프로가 데뷔한 장소 역시 2004년 샌디에이고 액션 스포츠 리테일러 트레이드 쇼였다. 광학 기술에 기반한 촬영 장비가 아니라는 점, 사용자의 몸을 비롯해 사용자 근처 곳곳에 튼튼하게 체결할 수 있다는 점이 고프로가 찾아낸 혁신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며 찾아낸 파도였다.
고프로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광학 기술에 기반하지 않은 카메라라는 점이다. 카메라를 비롯한 모든 제조사는 필연적으로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을 기반으로 발전을 꾀한다. 포커싱 속도, 화소 수, 디자인... 다 중요하다. 하지만 어느 업계든 업자 입장에서만 생각하면 손님 생각을 놓치게 마련이다. 광학 기술 기반의 카메라업체도 그랬다. 카메라는 디지털 기술을 맞이해 대중화됐고, 대중화되면서 프로용에서 아마추어용이 되었다. 카메라 전문 업체는 이러한 사실을 간과했다. 세상이 바뀌었는데 파도를 잠깐 놓쳤다.

카메라업계의 손님 출신이자 서핑업계의 업자 출신 CEO 닉 우드먼은 무엇이 중요한지 간파했다. 그는 고프로를 출시하며 크기를 줄이는 것과 광각으로 풍경을 담는 일에 집중했다. 고프로 히어로 5 세션은 순댓국집의 깍두기만큼 작다. 따라서 카메라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기능이 없다. 하지만 작으면 다양한 마운트에 체결할 수 있다. 마운트에서 시작한 회사니까 할 수 있는 디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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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마운트에 체결한다는 건 단순히 활용성이 넓다는 의미 정도가 아니다. 마운트의 위치는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의 문제다. 시점의 위치가, 즉 앵글이 바뀐다. 사진 역사상 가장 중요하게 꼽히는 사진은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이 아니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남자를 찍은 사진이나 독수리에 쪼아 먹힐 여자아이를 찍은 사진은 근본적으로 사진가가 그곳에 있었기 때문에 기록된 것이다. 기록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기록하는 기계가 어디에 위치할 수 있느냐다.

시점이 다양해진 것, 고프로의 결정적 성공 비결이자 고프로가 만들어낸 새로운 세상이다. 고프로는 소형 카메라와 다양한 마운트로 새로운 촬영 앵글을 만들어냈다. 고프로가 자랑하는 자료가 노골적 증거다. 1인칭 시점으로 찍은 액션 영화, 곰에게서 도망가는 영상, 고프로를 달아둔 막대기를 강아지에게 물려두고 찍은 영상, 쇼핑카트에 고프로를 매달고 아이의 표정을 보는 영상. 이렇듯 상황과 창의력에 따라 고프로가 만들 수 있는 앵글은 무한하다.
고프로 자사 자료에 따르면 2017년 2월 현재 고프로에는 20종에 가까운 공식 하우징이 있다. 손목에 감는 더 스트랩, 세 방향으로 꺾이는 3-웨이, 시속 200km가 넘어도 떨어져 나가지 않는 흡착기, 가슴에 매달 수 있는 체스트 하네스, 고프로 마운트가 달린 백팩, 악기에 붙일 수 있는 더 잼까지. 움직이는 걸 찍어야겠다 싶으면 고프로를 사는 게 가장 좋은 선택으로 보일 정도다.

고프로는 성공했다. 스타트업이라 부르는 신생 대기업 열풍 중에서도 고프로는 희귀한 제조업 기반 스타트업이다. 이런 요소가 겹쳐 고프로는 제대로 파도 위에 올랐다. 2014년의 미국 기업공개 시점에서 고프로는 29억5000 만달러의기업가치를인정받았다.멘로스쿨서핑부초대 회장 닉 우드먼의 혜안이 맞았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시작한 고프로가 새로운 파도를 탔다.
하지만 아무리 큰 파도도 언젠가는 끝나게 마련이다. 바닷가에 가까워질수록 파도는 흐물흐물해진다. 고프로 역시 그랬다. 2014년 기업공개 이후 고프로의 주가는 7분의 1까지 떨어졌다. 닉 우드먼은 몇 차례 TV에 나와 “우리는 괜찮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다음 파도가 있을까?
고프로를 성공의 길로 이끈 건 특별한 시점이었다. 카메라 회사 바깥에서 카메라를 이용할 새로운 방법을 찾았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었다. 특별한 시점은 세상을 바꿀 수 있어도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는 못한다. 베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런 면에서 봤을 때 고프로의 위기는 당연한 면이 있었다.
고프로의 근본 한계는 전문 광학 기술의 부재다. 고프로는 기술적으로 뛰어난 브랜드가 아니다. 훌륭한 아이디어와 적재적소에서의 실행력을 바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제약이나 합금처럼 원천 기술이 있는 게 아니다. 명품처럼 따라해 봐야 바보가 되는 독보적 이미지가 있는 것도 아니다. 추격당할 여지가 워낙 높다.
추격당한다고 해도 30억 달러짜리 회사가 가만있을 수는 없다. 고프로는 다양한 대응책을 모색했다. 슬로건을 바꾸었다. 이름에 프로가 들어가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듯 고프로는 익스트림 스포츠의 프로들을 노렸다.
지금의 고프로는 한층 부드러워진 채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갔다. 고프로의 새로운 슬로건은 ‘당신의 모든 일상은 이야기가 된다’다. 누구나 쉽게 쓰는 장비, 가족의 일상을 기록하는 장비로 거듭나겠다는 뜻을 읽을 수 있다.
고프로의 전략 수정은 불가피했다. 일상을 이야기로 만든다는 건 포지션을 넓힌다는 뜻이다. 성장하려는 기업이 세우는 전략 중 고프로가 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였다. 좀 더 비싸고 훌륭한 고가 물건을 만들어 물건과 브랜드의 부가가치를 높이거나, 제품이 팔릴 범위를 넓히는 것.

고프로는 두 번째 방법을 택했다. 고프로라는 이름과는 조금 다른 행보지만 이해는 할 수 있다.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보다 잔잔한 일상을 즐기는 사람이 훨씬 많다. 고프로 정도 규모의 회사가 큰 시장을 노리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큰 시장을 노리려면 물건을 쓰기 쉬워야 한다. 고프로도 더 쓰기 쉬운 물건을 선보이기 위해 노력했다. 2016년 11월 ‘큅’을 출시한 것. 고프로를 쓰는 사람들이 쉽게 쓸 수 있는 영상 편집 소프트웨어다. 모바일과 데스크톱 둘 다에서 잘된다. 고프로 스튜디오와 함께 쓰면 슬로모션이나 타임랩스 등 한층 전문적인 영상 편집도 할 수 있다. 전용 클라우드 서비스인 고프로 플러스도 출시할 예정이다. 하나같이 편리하며, 초보부터 전문가에 이르는 다양한 레벨의 소비자에게 모두 좋다는 사실을 홍보했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함께 잘 돌아가면 사람들을 생태계에 가둘 수 있다. 애플이 아이폰-앱스토어로 했던 것처럼. 일상이 이야기가 되게 하려면 좋은 카메라만으로는 부족하다. 이야기를 완성하려면 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상을 다듬고 나누는 도구가 필요하다. 요리로 치면 좋은 카메라가 만들 수 있는 건 좋은 식재료를 준비하는 것까지다. 식재료를 요리하려면 부엌(편집 프로그램)이 필요하고, 음식을 나누려면 모두가 모일 수 있는 공간(클라우드 서비스) 이 필요하다.
고프로의 독자 생태계는 고프로에 새로운 ‘빅 웨이브’가 되어줄지 모를 일이다. 독자적 생태계를 만드는 건 리스크가 큰 서비스다. 독자적 생태계는 미분양 아파트 단지처럼 소비자가 생태계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다. 현재는 고프로로만 만들어낼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가 있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고프로 생태계에 들어가서 딱히 좋은 게 보이지 않는다. 고프로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카메라업계의 강자들은 빠르게 시장에 적응하고 있다

고프로를 위협하는 경쟁자

소니
소니의 별명은 ‘기술의 소니’. 아이디어는 부족했지만 기술이 있었다. 고프로가 잡아준 방향을 따라 소니는 무섭게 치고 올라온다. FDR- X3000R은 초고화질 4K 영상이 촬영 가능한데, 광학식 손 떨림 보정 기능까지 집어넣었다. 기술 기업 특유의 무뚝뚝한 태도 역시 여전하다. “에프디알 엑스 삼천 알 있어요?”와 “히어로 파이브 있어요?” 중 뭐가 더 말하기 편하겠나.
-50만 원대

가민
미국의 GPS 전문 제조사 가민의 버브 울트라 30이 내세우는 가장 큰 장점은 정보량이다. 버브 울트라 30은 사용자의 속도, 당시 온도, 맥박, 자동차의 경우 엔진 회전수, 현지 고도계 등 다양한 추가 정보를 입력할 수 있다. 진짜 프로페셔널 익스트림 스포츠를 위한 기능. 대신 방수 기능은 없다.
-가격 50만 원대(하우징 별도)

샤오미
고프로는 특허나 원천 기술이 없다고 여러 번 언급했다. 이미 시중에 수많은 ‘짭프로’와 ‘짭짭프로’가 나와 있는 중에서도 샤오미의 이 Yi 카메라가 눈에 띈다. 고프로의 오리지낼리티가 필요하지 않다면 고프로의 3분의 1도 안 되는 가격으로 고프로와 비슷한 만족도를 느낄 수 있다.
-가격 10만 원대

고프로는 좋은 파도를 다시 탈 수 있을까? 앞으로의 고프로는 어떻게 될까? 결국 고프로의 척추인 마운트가 고프로를 지탱해줄 것이다. 마운트를 바꾸면 카메라 세트를 다 바꿔야 한다. 기존에 팔려나간 고프로 마운트의 판매량을 생각하면 고프로가 당장 망할 리는 없다. 소프트웨어에 더 공들이고 고객 커뮤니티에 지속적으로 신경 쓴다면 고프로 애호가는 점점 늘어날 것이다. 일반인 입장에서 봤을 때 기록 장치라는 액션캠의 성능은 거의 엇비슷하다. 고프로가 사용자를 얼마나 애지중지하느냐가 곧 고프로의 성공 척도가 될 것이다.

고프로는 새로운 파도를 타고 정점에 올랐다. 파도 냄새를 맡은 용기 있는 사람들이 액션캠이라는 세상을 열었다. 이제고프로에는파도를찾는감각말고또하나의감각이 필요하다. 지금 찾아낸 파도를 지키는 감각. 그래서 고프로는 이미 확보한 사용자에게 최고 경험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들이 욕심을 버리고 마운트 전문 회사로 나가줬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독자적 시장의 선도자 대신 빠질 수 없는 시장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어차피 사람들은 고프로가 주는 새로운 앵글 맛을 알아버렸다. 소니나 가민의 액션캠에 고프로의 든든한 마운트가 달리는 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일까? 고프로를 창업하기 전 마케팅 사업이 망하고도 발랄하게 발리로 떠난 닉 우드먼식의 용기가 고프로에게 절실하다. 큰 파도를 타려면 그만큼 몸이 탄탄해야 한다. 고프로 정도로 덩치가 커졌다면 그 정도는 해줘야 한다. 닉 우드먼은 그 사실을 몸으로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고프로의 탄탄한 행보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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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용

<에스콰이어> 피처 에디터. 여행 잡지와 시계 잡지와 고가품 잡지에서 일했으며, 라이프스타일 전반에 대한 기사를 만든다. 테크 웹진 <더 기어>에 시대의 이정표가 될 만한 기계를 소개하는 ‘아이콘’을 연재한다. 닉 우드먼처럼 발리에서 서핑해본 적이 있지만 사업 아이템은 못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