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Meaning of Mine

‘나의’라는 의미

우리는 어떤 대상에 대한 감정의 깊이나 애정의 크기가 같지 않다고 그것을 비난할 수 없다. 반려동물에게 내 영혼의 한쪽을 내주고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 혹은 반려인으로 살더라도 반려동물에게 쏟는 애정의 형태나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 반려동물을 키우기 전과 후의 인생이 전혀 다르다고 고백하던 친구들의 말에도 끄떡없던 이민지는 공포증이 있을 정도로 개를 무서워했다. 4개월 된 연약한 포메라니안에게 가까이 다가서는 것도 용기가 필요했다. 그는 고 작은 강아지를 집으로 데려온 날, 자신의 어린 시절 애칭이던 ‘다미’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렇게 다미는 이민지의 강아지가 되었다.

하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의 다미’와 함께 자랐다. 반려견 다미와 외동딸 하은이는 10년간 마치 친자매처럼 살갑게 지냈지만 하은이의 다미는 아니었다. 다미 언니 하은이에게는 밀크, 후크, 포옹이가 있었다. 사려 깊은 열 살짜리 고양이 집사 하은이에게 ‘나의 고양이’라는 의미를 심어준 건 1년 남짓 키운 3마리 고양이였다.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는 아빠 이정연은 고양이 3마리와 동거하는 걸 달가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 구성원 중 누구보다 가장 큰 감정의 변화를 겪고 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작은 강아지 한 마리에서 시작된 일이다. 이들 가족을 통해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세계로 입문하는 순간, 깨어나는 감정의 울렁거림이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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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고양이 계정과 유튜브를 통해 하은이네 고양이 3마리를 알게 되었어요. 고양이 채널을 운영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민지) 워낙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을 운영해왔는데, 움직이는 영상으로도 기록하고 싶어 유튜브를 시작했어요. 이미 찍어둔 데이터가 많았고 결혼 전 편집 디자이너 경력이 도움 되어 즐겁게 운영하고 있지요. 무엇보다 제가 올린 영상으로 힐링을 느끼셨다는 분들의 의견에 보람을 느끼고 감사하게 생각해요. 개인적으로도 간직하고 싶은 모습을 더 많이 남기고자 꾸준히 업로드하고 있어요.

하은이 공부를 방해하는 고양이 게시물이 특히 인기였어요.
 (민지) 고양이는 컴퓨터를 하거나 책을 읽고 있으면 열에 아홉은 옆으로 와요. 누군가 올린 유튜브 댓글 내용을 보니, 고양이는 이 경우 사람이 심심해한다고 생각한대요. 행동반경이 크지 않고 가만히 있으니 놀아주려고 다가온다는 거예요. 그러고 보면 고양이가 감정이 있는 것 같아요. 아니 분명히 있어요. 기분이 좋을 때는 슬그머니 다가와서 비비다, 금세 멀리 떨어져 뾰로통해져 있어요. 또 상대의 기분을 존중하고 감정을 눈치채는 것 같아요. 후크가 중성화 수술을 하고 왔을 때였어요. 평소 같으면 밀크가 놀자고 달려들었을 텐데 냄새를 맡더니 거리를 유지하더라고요. 동물이지만 마치 사람처럼 상대의 감정이나 상황을 알고 거리를 지켜주는 게 신기했어요. 또 고양이는 아주 독립적이에요. 몸이 아파도 티를 안 내고, 그냥 눈만 껌뻑껌뻑하면서 움직임이 줄어들어요. 마치 사람처럼 인내하고 참는 것 같다고나 할까요. 그러다 병원 데려갈 시기를 놓치면 위험하니까 예민하게 관찰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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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남자 비율이 월등히 높다는 고양이 채널 시청자 분석 자료가 재미있었어요. 정말 그런가요? 같은 연령대 가장으로서 이 현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정연) 제 나이 또래 친구들을 보면 가장으로 살아가며 공허함이 있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도 불안정하고, 정서적·신체적으로도 변화를 느끼며 내가 좀 약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정 내에서도 약간의 외로움을 느끼는 시기인 것 같고요. 바쁜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고 감정도 점점 옅어지고…. 그런데 얘네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요. 남자들이 감정을 표현하고 꺼내놓는 것을 어려워하잖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 아이가 성장하는 대견함, 맛있는 것을 먹을 때 포만감. 3040 가장은 이런 아주 단순한 몇 가지 감정만으로 살아가요. 그런데 고양이를 키우면서 작은 설렘, 사려 깊음, 사랑스러움 등 그동안 몰랐던 감정들이 제 안에서 깨어나는 것을 느껴요. 아내는 무뚝뚝한 제가 많이 말랑말랑해졌다고 해요.
저는 알레르기도 있었고 처음에는 고양이 키우는 것을 아주 반대했어요. 근데 막상 키워보니 너무 예뻐요. 퇴근 후 집에 아무도 없을 때 앉아 있으면 옆으로 쓱 와요. 무릎에 앉거나 슬쩍 몸을 비비는데, 그럴 때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느껴요. 강아지는 무척 소란스럽지만 고양이는 사람을 살피며 아주 조용히 다가와요. 요즘 사람들이 거의 스마트폰을 쥐고 영상 매체들에 빠져 살잖아요. 게임이나 영상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다가 고양이가 비비고 기대면 문득 현실로 돌아와요. 살아 있는 생명을 이기지는 못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아이를 키우는 것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내가 에너지를 쏟아야 하고 시간과 돈을 들여야 하며, 또 행복감을 주는 존재잖아요. 동물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는 개를 먹는 문화도 있잖아요. 길고양이나 동물원의 동물을 봤을 때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요. 마치 아이를 낳고 아이가 살아갈 환경문제에 관심이 생기는 것처럼요.

“고양이는 혼내거나 짜증 내지 않잖아요.
아이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존재가 필요한데, 부모는 감정적일 때가 있어요.
아이에게 반려동물은 그런 사랑과 충성을 몸소 실천해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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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이와 반려견 다미를 키우면서 고양이 세마리를 입양했죠? 처음에는 다미와 후크, 밀크를 같이 키웠고 작년에 포옹이가 왔다고 들었어요.
 (민지) 하은이가 아홉 살 때 고양이 세마리가 순차적으로 집에 왔어요. 이 고양이들이 생김새도 성격도 제각각 달라서 함께 지내는 걸 보면서 하은이에게 형제자매가 있다면 이런 느낌이겠구나 하고 생각해보곤 해요.
도도하고 새침한 밀크는 우유 향이 난다고 해서 딸아이가 이름을 요렇게 지어줬어요. 외모와 달리 화분을 깨는 등 크고 작은 사고를 가장 많이 치지요. 마음이 너그러워 아래 동생들에게 양보도 하지만 싸움은 제일 잘하는 포스 있는 누나 같죠. 거실 한가운데 쭉 뻗어 자는 것을 좋아하고, 앞발을 사용해 장난감을 바구니에 집어넣거나 화분의 흙을 퍼낼 수 있어요. 또 이름을 정확히 알아듣는 아주 똑똑한 아이예요.
둘째 후크는 한쪽 눈을 가린 검은 얼룩 때문에 후크 선장이라고 이름 지었어요. 엉뚱한 행동을 많이 하는 아이예요. 고양이는 서로서로 그루밍을 해주는데, 후크는 거의 주기만 하는 헌신적 타입의 스위트한 고양이랍니다. 그러다가도 본인이 꼭 쟁취해야만 하겠다 싶으면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박력도 있지요. 무릎냥으로서 애교도 엄청나고요.
막내 포옹이는 정말 신기하게도 막내다운 성격으로 거침없이 당차요. 누나나 형에게 달려들면 솜방망이질을 당하는 걸 알면서도 끊임없이 돌진하는 애교 일등 사랑스러운 아기랍니다. 셋 중 골골 소리가 가장 큰 귀여운 막내예요.

첫 반려견 다미와의 만남에 대해 듣고 싶어요.
 (정연) 신혼 때 신사동에서 주얼리 숍을 운영하는데, 바로 옆 가게가 펫 숍이었어요. 4개월 정도 된 포메라니안이었는데, 작은 털 뭉치처럼 생긴 게 정말 너무 귀엽더라고요. 사랑스러운 모습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가 인사하고 놀아주며 몇 달을 보냈더니 저희를 알아보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때까지만 해도 키울 생각은 없었어요. 아내는 개를 무서워했고 아예 만지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 아이만 계속 분양이 안 된다고 하는 거예요. 오며 가며 강아지가 우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는데 계속 눈에 밟혔어요. 너무 귀여워서. 그게 가장 솔직한 답변일 거예요. 조금 즉흥적으로 키워보자고 결정한 것 같아요.

당시에는 부부 모두 반려동물을 키운 경험이 없었다고 했는데, 반려인 입문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정연) 2008년이었는데 당시에는 강아지를 키우고 싶으면 펫 숍에 가거나 가정 분양 정도의 방법이 전부이던 시절 같아요. 지금처럼 동물권이나 유기견에 대한 사회 이슈도 없었고요. 어떤 사명감이나 의식을 가지고 강아지를 들인 게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조금 낯설고 불편했어요. 똥오줌도 치워야 하고 때 되면 밥 주고 물도 줘야 하는 등 귀찮은 일을 해내야 했죠. 그런 대부분의 역할을 아내가 맡아주었어요. 그런데 아프니까 완전 다른 문제더라고요. 다미가 5개월쯤 되었을 때 소파에서 발을 헛디뎌 뇌진탕에 걸렸어요. 몸에 힘이 쫙 빠지면서 배설물이 쏟아져 나오는데 이렇게 죽는 건가 싶더라고요. 아내와 동물병원에 달려가면서 ‘내가 정말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하는 일을 시작했구나’ 하고 깨달았지요.
 (민지) 신혼이었고 아이도 없었는데, 다미 때문에 많은 것이 변했어요. 혼자 둘 수 없어 할 수 없었던 외출, 꼭 해야 하는 산책 등 전과는 달리 번거로운 일이 늘었어요. 남편과 심야 영화 보는 걸 좋아했는데 그것도 할 수 없었고요. 특히 어린 강아지는 아기처럼 잔병치레가 많거든요. 밤마다 울고 보채고. 작게는 감기나 장염부터 크게는 슬개골 탈구 수술을 경험하며 말 못 하는 작은 생명의 아픔을 보는 게 심적으로 많이 힘들더라고요. 내 몸만 건사하던 이전에는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죠.

“고양이는 혼내거나 짜증 내지 않잖아요.
아이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존재가 필요한데, 부모는 감정적일 때가 있어요.
아이에게 반려동물은 그런 사랑과 충성을 몸소 실천해주지요.”

하은이는 태어날 때부터 반려견과 함께였지요? 반려견을 함께 키우는 것이 아이의 정서에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기대하잖아요.
 (정연) 하은이는 배려심이 많고 사려 깊고 차분한 아이예요. 타고난 부분도 있지만 다미와 함께 자란 것이 영향을 주었다고 확신해요. 산책할 때 걸음을 맞춰야 하고, 강아지가 보는 데서는 간식을 먹고 싶더라도 참아야 하며, 불편하더라도 침대 한쪽을 내줘야 하고…. 형제자매라면 더 뺏고 싶고 싸우고 싶고, 양보하지 않잖아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강아지가 자신보다 약한 존재, 지켜주고 돌봐줘야 할 존재라고 인식해 배려하고 양보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 같아요. 불편한 점이 있어도 스스로 감당해내야 한다는 사실을 아는 것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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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가족이 다미의 죽음을 함께 경험했어요. 하은이의 나이가 아홉 살이었는데 당시 상황에 대해 들려주세요.
 (민지) 아침에 일어나 멀리서 다미를 보는데 움직임이 없었어요. 하은이가 있다는 것조차 잊고 너무 많이 울었어요. 사실 아직 1년이 채 안 되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한 것 같아요. 반려동물에게 엄마라는 호칭이 붙는 존재가 있어요. 다미에겐 그게 저였어요.
하은이는 오히려 더 침착하더라고요. 다미의 죽음보다 엄마의 슬픔을 더 걱정하는 것 같아 보였어요. 어느 날 거리를 걷다 같은 종의 다른 강아지를 만났는데 격한 감정이 밀려왔어요. 그런데 하은이가 말없이 제 손을 꼭 잡는 거예요. 아이 눈을 보는데 마음이 이상했어요. ‘내가 하은이를 보살피는 것이 아니라 딸이 위로해주는구나. 아이는 이별을 받아들이고 추억하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도 더 이상 울지 않고, 다미와의 추억을 묻어두어야겠다고 생각한 순간이었어요. 지금은 아이와 함께 다미 사진을 꺼내보는 용기를 내보기도 해요.

부모로서 하은이를 반려동물과 함께 키운 것을 너무 잘한 일이었다고 확신했어요.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나요?
 (정연) 고양이는 하은이를 혼내거나 짜증을 내지 않잖아요.(웃음) 아이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믿어주는 무조건적 사랑을 주는 존재가 필요한데, 부모는 감정적일 때가 있어요. 아이에게 반려동물은 그런 사랑과 충성을 몸소 실천해줘요. 이런 정서적인 부분, 그러니까 동물의 체온에서 오는 위안과 생명에 대한 존중, 생과 죽음. 이러한 의미를 부모가 말이나 책으로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건 반려동물과 함께한 10년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 수 없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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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경험이 개인 가족, 혹은 아이에게 어떤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나요?
 (민지) 동물의 눈을 보면 선함을 느껴요. 그 선한 눈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내가 겪고 있는 주변 상황들이 잠시 멈출 때가 있어요. 그 아이들이 주는 신비한 능력이죠. 나를 바라보는 깊고 까만 눈동자, 언제 어디서나 반갑다고 꼬리를 흔들며 뛰어오는 존재. 그 자체가 ‘행복’이라는 단어인 것 같아요. 말 못 하는 동물과의 교감을 통해 인간관계에서는 잠시 잊고 살던 순수성이나 맹목적 사랑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요. 챙기고 돌보는 행위를 통해 느끼는 만족감도 큰 것 같아요. 왜 아이가 부모에게 온전히 의지하는 네 살까지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고 하잖아요. 반려동물은 나이가 들어도 영원히 그 상태에 머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