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th Time of Courage That Changed Our Lives

삶을 바꾼 N번의 용기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직장을 세트로 그만두고 나와 1년간 세계 일주를 떠났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분명 금수저일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전제우와 박미영은 금수저와 거리가 멀다. 둘은 온갖 공모전과 아르바이트, 취업과 창업을 경험하며 학비를 벌고 장학금을 받아 학교를 마쳤다. 그리고 ‘남들 다 가고 싶어 하는’ 대기업에 입사했다. 모두가 말하는 안정적인 삶의 시작이었다.
사회에서 맞다고 하는 길만 걸어온 이들의 삶의 방향이 흔들리기 시작한 계기는 결혼이었다. 신혼여행길, 연착된 비행기를 기다리며 그냥 써본 버킷 리스트에 ‘같이 사업하기’가 있었다. 어린 나이부터 다양한 경험을 쌓으며 적성에 맞는 일을 고민하던 둘이 그려본 막연한 미래의 일이었다. 그 버킷 리스트를 계기로 둘은 공들여 꾸민 신혼집을 공유 숙박 서비스에 올렸다. 손님이 찾아왔고, 만남을 통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삶의 방식이 있는지, 원하는 대로 삶을 만들어가는 용기 있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이런 기대와 자신감은 1년간의 세계 일주로 이어졌다. 이후 둘의 삶에는 ‘디지털 노매드’, ‘N잡러’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작가, 강사, 애플리케이션 기획 개발자, 에어비앤비 호스트... 전제우와 박미영을 지탱하는 끈은 지금도 계속 늘어나고 있다. 둘은 퇴사 후 시간의 자유를 얻었다고 말한다. 그 자유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원하는 대로 삶을 꾸려나갈 수 있는 행복이다.

얼마 전 낸 책 《시작은 언제나 옳다》에서 ‘천직의 조건’에 대한 이야길 했어요.
작가, 강사, 애플리케이션 기획자 등 많은 일을 하는데, 그 중 두 분에게 천직인 일이 있나요?

(제우) 제가 직업에 대한 고민을 계속하다 보니까 “내 일이 천직이야”라고 말하는 사람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도 천직이라고 느끼는 일을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무슨 일이 천직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봤어요. 일단 내가 좋아하는 일이어야 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이어야 해요. 잘하지 않는 일은 취미일 뿐이니까요. 또 돈도 잘 벌 수 있어야 하죠. 자유경제 체제에서 돈을 벌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잖아요. 그리고 미래에도 가치 있는 일이어야 하더라고요. 아무리 ‘좋아하고 잘하고 돈이 되는’ 일이라도 5년 뒤에 인공지능이 대체해서 직업 자체가 사라지면 천직이 될 수 없으니까요. 이런 조건을 곰곰 생각하다 보니 천직이라는 것 자체가 유니콘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에는 하얀 말도 있고, 날개 달린 새도 있고, 뿔 달린 동물도 있지만 다 합쳐진 유니콘은 본 적 없잖아요. 모든 조건을 만족시키는 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그럼 우리가 좋아하는 일도 하고, 잘하는 일도 하고, 지금 돈 되는 일, 미래에 가치 있는 일을 모두 해보자, 이렇게 된 거죠. 그게 저희 직업이 지금처럼 많아진 이유예요.
(미영) 조건을 두 가지 이상 만족시키기도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각각 하나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SK 텔레콤 사내 커플이었다가 동반 퇴사를 했어요. 함께 그만둔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영) 저희가 퇴사를 결정한 시점에서 한 생각은 지금껏 살아온 우리 삶의 방식을 바꿔보자는 것이었어요. 일의 적성 문제였거나 창업을 생각했다면 둘 중 한 명만 관둘 수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게 아니었기 때문에 함께 그만두고 리셋해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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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후 끊임없이 도전을 해왔어요. 순탄치 않은 순간이 있었을 테고 한 번쯤은 회사의 울타리를 벗어난 걸 후회한 순간이 있었을 것 같아요.
(미영) 계속 회사에 다녔다면 육아휴직을 써볼 수 있었겠죠? 육아만 집중할 수 있었을 텐데....(웃음)
(제우) 그리고 건강검진요. 회사 관두고 제 돈 내고 받으려니까 비용이 많이 들더라고요. 그런 복지 혜택이 아쉬워요. 자영업자는 복지 혜택이 없으니까요.(웃음) 가끔 저희를 보고 되게 단단한 가치를 지니고 있고 그걸 바탕으로 삶을 꾸려나가기 때문에 아예 후회 같은 걸 하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분들이 계세요. 그런데 저희는 정말 평범한 사람들이고, 그냥 이 삶의 방식이 좋아서 시작한 거다 보니까 일이 힘들거나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후회를 해요. 그냥 회사 다닐걸 그랬나 종종 생각하죠. 그런데 회사 다니는 친구들을 만나면 내가 예전에 했던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어요. 그 고민을 듣다 보면 ‘아, 내가 이 길을 선택한 게 잘한 걸 수도 있겠다’ 싶어요. 결국 회사에 계속 있든 나오든 정답은 없고, 고민은 이어지는 것 같아요. 회사에 있는 사람은 ‘그냥 관둘걸’, 나온 사람은 ‘왜 관뒀을까’ 후회하는 거죠. 하지만 이 과정을 통해 배우는 게 있을 거라고 믿어요. 앞으로 내가 나아갈 길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과정이라고요.

꾸준히 후회하면서도 회사 울타리로 돌아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우) N잡러가 가능한 이유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기 때문이에요. 시간과 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는 순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무궁무진해지거든요. 만약 저희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오늘 이 인터뷰를 하기 위해 여러 난관과 마주했을 거예요. 미리 휴가계를 올려야 했을 거고, 중요한 미팅이나 회의가 있어서 불가능한 상황이 되면 날짜를 다시 조정해야 했겠죠. 회사에 들어간다는 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다시 생긴다는 거예요. 내가 잘하고 좋아하고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싶은 모든 일을 놓아버리고, 회사에서 돈 주는 일만 해야 하는 거죠.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의 자유 외에 N잡러여서 얻는 행복이나 장점에는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제우) 단점이 고쳐졌어요. 제 가장 큰 단점은 ‘할 수 없다’는 말을 하지 못하는 거였어요. 무조건 “네, 할 수 있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 했어요. 회사에 다니다 보면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하고, 할 수 없는 일도 잘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잖아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요. 내가 소화할 수 없는 일도 떠맡아 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어떤 일을 줬을 때 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할 용기가 없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모든 일의 주체가 저희잖아요. 그러다 보니 일의 우선순위도 명확하게 정해야 하고, 저희 능력과 상황을 파악해서 할 일과 못 하는 일을 판단해야 하니, 안 되는 건 안 된다는 말할 수 있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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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한 이유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라고 했어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미영) 갭이어 동안 세계 여행을 하면서 일하는 네덜란드 커플이 우리 집에 손님으로 왔어요. 여행 중간에 괜찮은 도시가 있으면 머물러서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친구들도 저희처럼 디자이너와 개발자였는데, 저희는 그때까지 그런 삶의 유형이 가능할 거란 생각을 못 했어요. 그 친구들을 보면서 ‘아, 이렇게도 살 수 있구나. 우리도 할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었고, 그게 세계 일주를 떠난 직접적 계기가 됐어요.

세계 일주를 하기 전에 바라본 일과 현재 N잡러로서 바라보는 일의 의미도 바뀌었을 것 같아요.
(미영) 전에는 일이라고 하면 “하기 싫어”라는 말이 관용구처럼 튀어나왔어요. 하기 싫지만, 돈을 벌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게 일이었죠. 지금도 일은 돈을 벌기 위해 해야 하는 거지만, 이제 일이라고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 잘할 수 있는 것, 미래를 위해 도전할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다양한 수식어가 생겼어요. 저희는 지금 24시간 일하는 상황에 놓여 있어요. 그런데도 스트레스는 훨씬 적어요. 일과 개인의 시간 경계가 모호해지니까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생겼는데, 회사 안에서 받던 유의 스트레스는 아닌 거예요. 내가 하고 싶은 일이고 스스로 가치를 높일 수 있는 일이기에 일하며 받는 스트레스도 부정적이지 않은 거죠.
(제우) 일의 범위가 넓어졌어요. 예전에는 회사에서 하라고 해서 하는 거, 정해진 곳에서 정해진 무언가를 하는 행위만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냥 일상이 일이라는 범위에 들어갔어요. 일상이 일이고 일이 놀이이고요. 저희가 블로그 소개란에 ‘평생 놀고 먹고 일하는 게 꿈’이라고 썼는데 우리가 놀고 먹고 하는 모든 행위가 일이 된 거 같기도 해요.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사람은 많지만, 선뜻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 아닐까 해요.
새로운 도전이 이도 저도 아닌 게 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요. 경험자로서 이런 불안감을 이겨내는 방법이 있을까요?

(미영) 내 몸을 지탱하고 있는 끈을 한 번에 다 자른다고 하면 당연히 불안하고 무섭죠. 그런데 끈이 한 5개 정도 있으면 그중 한 개를 잘라요. 그럼 4개가 남잖아요. 거기에 내가 새롭게 하고 싶은 하나를 다시 묶는 거죠. 이런 식으로 조금씩 해보고 ‘어, 아니네’ 싶으면 관두면 돼요. 예를 들어 내가 꽃집을 차리고 싶다면 하던 일을 다 접고 바로 꽃집을 차리는 게 아니라 요즘엔 채널이 많잖아요. 꽃을 만들어서 텀블벅이나 블로그, 인스타 같은 루트를 통해 판매해보는 거예요. 이게 반응이 좋고, 나도 그 시간이 재밌고 행복하면 작은 테스트 과정을 반복하며 자연스레 넘어가면 되는 거예요. 그러면 불안감도 덜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줄어들지요. 저희는 지금까지 그런 방식으로 일을 늘려왔어요. 당장 퇴사해야지 하는 생각으로 사표를 쓰지 않았어요. 1년의 준비 기간이 있었고, 모든 일을 아주 사소한 것부터 시작했어요.
(제우) 엄청 큰 걸 계획했다가 좌절하면 당연히 데미지가 클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소소한 도전을 하면서 실패하고 성공하는 경험을 반복하면 그 과정을 통해 마음에 단단한 근육이 생겨날 거예요. 그리고 실패했다고 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도 없을 거고요.
(미영) 요즘 유행하는 말이 소확행이니까 조금 바꿔서 ‘소소하게 확실한 성공’을 목표로 잡고 도전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가짐이 많이 바뀌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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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분이 일을 대하는 시각이 성숙해진 계기나 영향을 준 인물이 있나요?
(미영) 일=직장이라는 개념을 깨게 만든 건 특별한 누구 한 사람이 아니라, 그동안 차곡차곡 쌓아온 만남이라고 생각해요. 대학교 때 공모전에 나가기 위해 창업한 적이 있었어요. 그 이전까지는 저도 ‘대학에 왔으니 취업을 준비해야지’, ‘공무원 시험을 봐야 하나’ 생각하는 학생이었는데, 창업을 경험하면서 회사에 속해 있지 않으면서도 일하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만났어요. 스스로 직업을 만들고 직장을 만들고 기존의 회사에 자신을 끼워 맞추지 않고도 돈을 버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더라고요. 그때 처음 길은 다양하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제우) 저 역시 그래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회사 테두리 안의 사람들을 만날 때는 몰랐다가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어요. 호주에는 산불을 감시하는 직업이 있대요. 세상에 직업이 150만 개가 넘는다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직업은 정말 극소수인 거잖아요. 에어비앤비를 통해 만난 사람들은 삶의 방식이나 직업이 다 달랐어요. ‘우리 집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이렇게 다양한데, 내가 만나지 못한 사람들은 얼마나 다양할까, 얼마나 새로운 형태로 일하고 삶을 꾸려나가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얼마 전 아기가 태어났어요. 퇴사 전후의 변화처럼 또 한 번의 변화가 일어난 것인데 앞으로의 삶은 어떤 모습일까요?
(제우) 저는 크게 달라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해요. 사실 아이는 고민이 된 부분이었어요. 아이가 생기면 지금 저희 삶의 방식을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그런데 여행을 하며 다양한 라이프스타일의 가족을 만났어요. 아이를 키우면서도 디지털 노매드의 삶을 유지하는 가족도 있었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일대로 하면서 일반 방식과는 다르지만 아이를 건강하게 키우는 가족도 있었고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을 보며 다른 형태의 삶에 눈뜬 것처럼 여행을 하면서 만난 가족들을 통해 아이가 삶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그런 가족을 보면서 우리 부부도 아이를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했지요.
(미영) 임신과 출산을 경험하며 그런 질문을 꽤 많이 받았어요. 그리고 저희는 아이도 독특하게 키울 것 같다는 이야길 듣기도 했고요. 그런데 솔직히 아이를 어떻게 키울 거란 생각은 없어요. 부모가 방향을 세운다기보다 아이와 같이 맞춰가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삶의 방식도 마찬가지죠. 내가 이런 방식으로 살고 있으니까 널 이렇게 끼워 맞출 거야 하는 건 아이 삶을 강요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이제 아이가 태어났으니까 아이한테 어느 정도 자아가 생기면 우리 셋에게 맞는 방식으로 서서히 맞춰가려고 해요.
(제우) 아이 이름을 ‘하진’이라고 지었어요.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진짜 네 인생을 살아라’ 해서 하진인데, 그 뜻대로 살았으면 좋겠어요. 얘도 그렇고 저희도 그렇고요. 진짜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우리 가족의 인생을 살 거예요.

07-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