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cean I Want to Pass Down

너에게 물려주고 싶은 바다

돌아보면 어린 시절 우리는 모두 꿈을 꾸며 살았다. 부모와 같은 어른이 되었을 때 과연 어떤 모습일지 끝없는 상상을 하던 시절은 그러나 오래가지 않았다. 철들고 나이 먹을수록 현실에 맞는 모습으로 꿈의 높이는 낮아져갔다. 유년 시절 꿈꿔온 파일럿이 되기 위해 남보다 오래 레이스를 이어가던 이광호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늘을 가르는 멋진 미래를 꿈꾸며 대한항공 파일럿 준비생으로 치열하게 20대 초반을 보냈지만, 아쉽게도 그 꿈은 성공의 문턱에서 좌절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 순간 너무나 당연해서 소중함을 알 수 없었던 바다가 눈에 들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늘 곁에 있던,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한 존재. 바다 위에서 그는 다시 나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자신을 꼭 닮은 아들과 함께 서프보드를 타고 바다 위를 누비고 다닐 머지않은 미래를 그려본다. 그 바다 한가운데에서 그의 인생 내내 가르침을 주고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준 바다의 존재를 아들에게 물려줄 것이다. 여느 부모가 그렇듯 자신의 경험을 자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날 아이의 미래를 꿈꾸며.

인스타그램을 보니 아빠와 아들과 반려견이 같은 취미를 공유한다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재서(아들)가 서핑을 시작한 건 굉장히 의도적이었어요. 제가 서핑을 해보니 가족도 함께 하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20대 초반 외국 유학 시절에 서프보드 만드는 공방에서 꽤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그래서 만들 줄 아니까 제 것을 만들고 아내와 아이 것도 만들었죠. 만들어주면 타지 않을까 해서요. 아내는 실패했는데 수영을 배우던 아이가 어느 날 자기는 이제 물이 무섭지 않다고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보드를 쓱 내밀었죠. "이거 아빠가 널 위해 만든 거야"라면서요. 처음엔 반응이 시큰둥했어요. 그때가 여섯 살이었는데 아직 장난감이 제일 좋은 나이고, 보드는 장난감이 아니니 그러려니 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방에서 혼자 이불을 깔고 위에서 보드 타는 시늉을 하더라고요. 혼자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고요. ‘아, 계획대로 됐다’ 했죠. 반면 탄이(반려견)가 서핑을 시작한 건 우연이었어요. 탄이 같은 래브라도종이 천성적으로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한대요. 탄이도 바닷가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데 아직 아기라 발이 닿지 않는 물은 두려워했거든요. 그런 와중에 앞에 서프보드가 있으니까 그냥 올라탄 거였어요. 그러곤 물에 빠지기 싫어 보드 위에서 균형을 잡길래 바닷가 쪽으로 밀어줬죠. 그게 시작이었어요. 몇 번 타보더니 이젠 좀 즐기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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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재서가 서핑을 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지켜보는 부모 입장에서 욕심이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만약 재서가 프로 서퍼가 되겠다고 하면 전폭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싶어요. 제 입장에선 가문의 영광이거든요. 그래도 기대는 안 해요. 처음 아이가 서핑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제가 해보니까 좋아서였어요. 서핑은 건강한 스포츠예요. 서핑하는 사람은 저녁에 술도 안마셔요. 다음날 새벽에 파도를 타려면 최상의 몸 상태를 유지해야 하니까요. 최근 서핑을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놀이’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기도 하는데, 외국에서 서핑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즐기는 건전한 스포츠예요. 바다를 안전하고 깨끗하게 유지해야 할 책임감도 따르죠. 그런 본질을 알수록 아이에게 더 알려주고 싶었어요. 아이에게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이왕이면 나와 같은 취미면 좋겠다 하는 마음이었죠. 욕심은 탄이 쪽에 더 있어요. 부산 송정에서 매년 강아지 서핑 대회가 열리는데, 탄이 같은 래브라도 아이들 성적이 좋더라고요.

‘아이에게 바다에서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하나쯤 있으면 좋겠다’ 는 바람은 어떤 이유에선지 궁금하네요.
저는 해운대가 고향이라 늘 집 문밖으로 2~3분만 걸어가면 바다가 보였어요. 그냥 집 앞 풍경이다 보니 바다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랄 것도 없었어요. 늘 옆에 있는 존재, 일상의 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러다가 외국 유학을 가서 제 인생 처음으로 바다가 없는 곳에서 살아보니 바다의 부재가 엄청 크게 다가오더라고요. 저는 늘 바다를 한쪽에 두고 살았잖아요. 바다를 곁에 두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분해지고, 생각의 깊이가 깊어질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제가 성장하며 바다를 통해 얻은 것을 아이에게도 물려주고 싶어요. 바다를 자주 접하면서 재서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고 바다처럼 큰 꿈을 꾸는 어른으로 자라면 좋겠다는 바람이 생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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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영어 학원을 운영했다고 들었는데, 뒤늦게 취미가 직업이 될 만큼 서핑이 좋았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서핑은 라인업에서 언제 올지 모르는 파도를 계속 기다려야 해요. 기다리다 내가 원하는 파도가 들어올 때 그걸 잘 잡아서 라이딩을 하는 거죠. 생각보다 기다림이 더 중요한 스포츠예요. 타는 순간은 짧은 데 비해 바다를 읽고 대기하는 시간이 더 길죠. 그런데 그 시간을 버텨서 성공적으로 파도를 잡아낼 때 쾌감이란! 그 성취감과 희열은 이루 표현할 수 없어요. 서프보드를 만드는 작업도 비슷한 것 같아요. 사실 보드 하나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아요. 보드 형태를 만들고 다듬는 셰이핑 작업과 색을 입히는 작업인 글래싱 자체가 오래 걸리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글래싱할 때 한쪽 면에 페인트를 칠하고 마르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긴 거예요. 그 기다림을 견디고 보드를 완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도 비슷한 감정을 불러일으켜요. 생각해보면 어려서 가장 좋아하는 일도 뭔가를 만드는 거였던 거 같아요. 재서만 할 때 취미가 프라모델 만드는 거였거든요. 뒤늦게나마 운 좋게도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거죠.

부산 기장이 국내 서퍼들 사이에서 메인 스폿은 아니라고 알고 있어요. 기장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나요?
중급 이상의 서퍼들은 서핑 트립을 다녀요. 좋은 바다 좋은 파도를 찾아서 헤매는 건데 저 역시 서핑 숍을 열기로 마음먹고 동해안 쪽 스폿은 다 돌아다녀본 것 같아요. 그렇게 찾다보니 이곳 임랑이 전국 해수욕장 중 가장 물이 맑은 곳 중 하나더라고요. 서핑을 하려면 파도 빈도수나 파도의 질도 중요한데, 임랑은 모든 조건이 나쁘지 않았어요. 이미 유명한 스폿들에 비해 한적하기도 했고요. 너무 많은 사람이 동시에 서핑을 하면 좋은 파도를 놓칠 확률도 높거든요. 그런 곳은 위험한 요소도 있어서 서핑을 가르치는 입장에서나 서퍼 개인 입장에서나 여러모로 임랑이 좋은 장소였어요. 서퍼들이 말하는 이른바 황제 서핑을 할 수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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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바다를 지켜보는 입장에서 서핑하기에 가장 좋은 계절과 날씨는 언제인가요?
많은 분이 여름휴가 때 서핑을 배우는데, 정작 서퍼들은 여름에 서핑을 잘 안 해요. 우리나라 바다는 겨울이 시즌이에요. 춥지만 겨울 파도가 가장 좋아요. 가을부터 시작해서 다음 해 봄까지 좋은 파도가 들어오는데, 실제로 임랑 같은 경우 겨울엔 발리 못지않은 파도가 들어와요. 그럼 저는 아주 두꺼운 드라이 슈트를 입고 바다로 들어가죠. 그리고 약간 의아할 수도 있는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는 비 오는 날이에요. 비 내리는 바다 위에서, 파도 뒤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정말 아름답거든요. 비가 내리고 파도가 치면 물보라가 이는 순간이 있어요. 그 순간보다 멋진 바다는 없는 것 같아요. 인생 대부분을 바다와 가깝게 지내면서도 서핑을 하고 난 뒤에 바다의 가장 멋진 모습을 안 거죠.

요즘 서핑을 즐기는 분이 많아지긴 했지만 우리나라는 이제 막 시작인 것 같아요. ‘앞으로 서핑이 이렇게 자릴 잡았으면 좋겠다’ 하는 롤모델이나 청사진이 있나요?
미국 캘리포니아에 가면 각 서핑 스폿마다 로컬이 있어요. 캘리포니아 각각의 스폿을 발전시킨 1세대 서퍼들을 로컬이라 부르죠. 일반 서퍼들은 그 로컬들을 존중해주고 로컬들은 자신이 속한 스폿과 바다를 깨끗하고 안전한 곳으로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런 의식을 기반으로 서핑 문화가 더 건강하게 확대되는 거라고 생각해요. 우리나라의 서핑 문화는 몇 년 사이 엄청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어요. 체감상 서핑 인구가 매년 10배는 증가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와중에 서핑에 대한 대중의 이미지는 ‘자유로움’, 안 좋게는 약간 한량들의 취미나 지나친 자유로움 정도로 쏠리기도 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서핑을 건전한 스포츠로 인식하고 남녀노소 모두 즐기는 건강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선 국내에서 처음 서핑을 시작한 1세대 서퍼들과 지금 서핑 숍을 운영하는 분들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각 스폿의 로컬로서 해야 할 일, 일반 서퍼는 로컬에게 갖춰야 할 예의를 지켜가며 서핑을 모두가 즐길수 있는 대중적 스포츠로 확장해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 역시 제가 개척한 스폿을 지키기 위해 선배 로컬분들의 조언을 들으며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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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ssons for fathers

파도 정복 도전!
내게 맞는 서프보드 찾기

롱 보드 Long board
길이 9피트 이상 / 난이도 ★★
커다란 세단과 같이 클래식한 매력이 돋보이는 가장 보편화된 보드. 물에 닿는 면적이 큰 만큼 물에 잘 뜨고 안정적이다.

쇼트 보드 Short board
길이 5~7피트 / 난이도 ★★★
스포츠카와 같은 다이내믹한 매력을 가진 보드. 턴이나 묘기를 부리기에 최적화한 보드로 속도감 있게 파도를 즐길 수 있다.

피시 보드 Retro Fish
길이 5~6피트 / 난이도 ★★★☆
생선과 닮은 형태로 쇼트보드보다 너비가 넓다. 움직임이 날렵해 중간 이하 크기의 파도를 타기에 좋다.

펀 보드 Fun board
길이 7~8피트 / 난이도 ★★☆
롱 보드의 부력과 쇼트 보드의 유연성을 두루 갖춘 보드. 적은 노력으로 많은 파도를 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