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Resolve to Become Family

가족이 되겠다는 다짐

운명처럼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나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주관적 기준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순간이기도 하지만, 삶을 새로운 방향으로 이끄는 특별한 순간이기도 하다. 김경에게는 반려견 제노를 만난 게 바로 그 운명의 순간이었다. 십수 년간 반려동물을 쳐다보지도 않던 그의 의지는 도심 속 펫 숍의 쇼윈도에 갇혀 눈만 멀뚱거리던 어린 허스키를 처음 본 순간, 꺾이고 말았다. 첫눈에 반한 미지의 존재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까지 김경은 탐험을 준비하는 탐험가처럼 이론을 익히며 공부했다. 제법 긴 시간 대상에 대해 조사하고, 시뮬레이션하고, 아내와 서로의 의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숙고의 과정을 거쳤다. 얼음 벌판에서 무리 지어 썰매를 끌던 근력과 체력을 갖춘 생명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이었다.

반려동물과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경을 만나고 나서 계속 든 의문이었다. 저렇게 진지한 자세로 한 생명을 책임지겠다는 다짐은 어떻게 하면 생기는 걸까? 끝없이 인내하고 이해하며 반려견의 의지를 북돋아주는 열정은 어디서 샘솟는 걸까? 밥만 먹이고 잠만 재우면 되는 것 같은 “키운다” 는 표현보다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상대의 본질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반려견을 품는다”는 표현을 썼다는 그의 글을 읽은 후에야 제노를 향한 마음의 깊이를 알 것 같았다.

12-03-01

시베리안허스키를 키우는 가정을 도시에서 만나기는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노를 입양한 계기가 궁금했어요.
어느 날 길을 가다 집 근처 펫 숍에 시베리안허스키 강아지가 한 마리 있는 걸 봤어요. 도심 펫 숍에서 대형견을 분양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니까 눈길이 가더라고요. 근데 보자마자 첫눈에 반했어요. 아내는 다음 날 아침까지 어제 본 강아지가 계속 생각난다고 할 정도였어요. 다시 한번 보고 싶어서 다음날 출근길에 펫 숍을 찾아갔어요. 어떤 아이인지 궁금해서 숍 주인분께 시베리안허스키는 어떤 특징이 있는 견종인지,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전혀 모르더라고요. (웃음) 그러고 나서 돌아서려니 문득 데려오고 싶은 마음이 드는 거예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지만 데려오면 좋지 않을까... 그래서 아내에게 “우리 한번 키워볼까?” 하고 문자를 보냈어요.

시베리안허스키는 보는 사람에 따라 생김새가 사납다고 하기도 하고, 덩치도 작지 않아요.
저희 눈엔 너무 사랑스럽고 예쁜 생명체였어요. 저희가 고민한 부분은 주 양육자로서 반려견을 책임지고 키워본 경험이 없다는 것이었어요. 결혼 전에는 부모님과 함께 살았으니, 저희가 오롯이 책임질 필요가 없었으니까요. 우리가 이 아이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부모로서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를 고민했죠. 그래서 제노 입양을 결정하기 전에 많이 조사하려고 노력했어요. 국내에서는 시베리안허스키에 대한 자료를 찾기가 힘들어서 아마존 킨들에서 전자책을 구입해 입양을 결정하기까지 사나흘 동안 계속 공부했죠.

브런치에 올라온 제노의 테이블 매너나 산책 습관을 바로잡기 위해 훈련 방법을 고민했다는 일화를 보면 보호자로서 공부를 꽤 열심히 한 것 같아요.
어릴 때 저희 집에서 도베르만을 2마리 키웠는데, 첫째 아이는 데려온 지 3주 만에 파보 바이러스로 떠났고, 그 뒤에 입양한 둘째 아이는 열두 살까지 살았지만 심장사상충에 걸려서 또 떠나보내야 했어요. 당시엔 예방접종 정보가 별로 없어서 기본적으로 해줘야 할 것에 대해 잘 알지 못했거든요. 미리 알았더라면 3~4년은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안타까움이 계속 남더라고요. 당시 제가 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시점이라 소홀히 한 것도 그렇고, 두 번의 이별이 상처가 됐어요. 다신 반려동물을 키우지 않겠다 결심하고, 실제로 제노를 만나기 전까지 어떤 동물에도 관심을 갖지 않았죠. 이런 기억 때문에 더 철저히 하고 싶었어요. 제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부모가 되기로 결정한 이상 제 역할에 충실하겠다고 다짐했죠. 부모로서 자식에 대해 잘 아는 건 의무니까 제노를 위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해주고, 키우면서 지난 아픔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어요.

“제가 조금만 더 애를 쓰면 훨씬 건강하고 행복하게 키울 수 있을 텐데, 그 정도 노력은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정보를 얻기 힘든 시대도 아니고, 실수를 반복하기 싫어요. 그럼 변명의 여지도 없는 거니까요.”

제노에게 좋은 부모, 보호자가 되기 위해 어떤 것을 참고했는지, 또 그것이 어떤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해요.
앞서 말했듯이 아마존을 통해 시베리안허스키 견종에 대한 책을 구입해 많이 읽었고, 그럼에도 부족한 정보는 전문 브리더들이 운영하는 웹이나 해외 사이트를 통해 습득했어요. 영어를 할 줄 아는 게 도움이 됐죠. 저는 주변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의 반려동물 ‘종’을 다루는 전문 서적을 읽어보라고 이야기해요. 물론 같은 견종이어도 아이 성격에 따라 다른 부분이 있겠지만, 모든 개와 고양이에게 적용되는 내용도 내 반려견에게는 예외일 수 있고 위협이 될 수 있기에 위험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라도 특성에 대해 미리 공부를 해야 한다는 거죠. 예를 들면 대부분의 반려견이 우유나 가죽 소재의 개껌을 간식으로 많이 먹는데, 장이 예민한 시베리안허스키에게는 이게 상당히 좋지 않은 음식이에요. 어린 제노가 설사나 구토를 하는 이유가 이런 보편적인 간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거죠. 그 외에도 시베리아 땅에서 자란 시베리안허스키의 주식은 생선이었대요. 그래서 여전히 육류보다 생선류가 몸에 잘 받는다는 것도 찾아보지 않았으면 몰랐을 사실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정보를 아니까 제노의 사료나 간식을 고를 때 성분을 충분히 따져보고 아이 컨디션에 맞는 걸 찾아줄 수 있게 된 거죠.

12-03-02

브런치 글을 보면 제노의 개춘기 이야기가 나와요. 예상치 못한 행동으로 당황스러운 경우가 많았나 봐요.
대충 4~9개월 무렵까지가 제노의 개춘기였는데, 그 시기에 사고를 엄청 쳤어요. 한창 이갈이할 때라 갉거나 물어서 뜯어낸 목줄이 대여섯 개는 됐고, 방문 틀을 죄다 긁어대 제가 DIY 자재 구해다가 문틀을 교체해야 했죠. 배변판 뒤집고 대소변 흥건히 묻힌 채로 온 데 다 찍고 다닌 건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고요. 3~4 시간 외출하고 돌아오니 거실 서랍장을 반 토막 낸 적도 있어요. 부러뜨린 게 아니라 대각선으로 잘려 나간 것처럼 반이 사라져 있고 집 안에 톱밥만 날리는데 할말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얼마 안 되어 제노를 키우며 고비라고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던 사건이 일어났어요. 결혼할 때 양가 부모님이 결혼 생활 잘하라고 원앙 목각 한 쌍을 선물로 주셨는데,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보니 또 톱밥이 날리고, 둥근 나무토막 2개가 거실에 뒹굴고 있는 거예요. 처음엔 이 나무토막은 뭔가 했는데, 원앙이 있어야 할 자리에 없으니까 이게 원앙이구나 한 거죠. 결혼해서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거였고, 제노가 한창 사고를 많이 치던 때라 정말 너무 화가 났어요. 그런데, 그날 저녁에 제노 대변에서 원앙 머리 동그란 게 2개 나오더라고요. 그걸 삼킨 거예요. 그때 진지하게 우리가 얘를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했어요. 우리가 너무 무모하게 나선 건 아닌가, 얘 본능과 성향을 감당할 수 있을까.

시베리안허스키는 활동량이 남달라서 그에 따른 에피소드도 많을 것 같아요.
시베리안허스키는 사역견으로 사육하던 아이예요. 그래서 끌고 가려는 본능과 힘이 엄청나요. 고집도 대단하고요. 제노가 어릴 때부터 비둘기나 까치 같은 새들을 좋아해서 산책할 때 자주 쫓아가곤 했는데, 제가 인지하지 못하는 타이밍에 뛰쳐나가면 80kg 가까이 되는 저도 몸이 끌려가요. 그런 상황이 산책시키는 저나 산책하며 만나게 될 다른 사람들, 또 반려동물 입장에서는 위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제노의 본능과 고집을 눌러주기 위해 한동안 산책 훈련을 시켰어요. 산책하는 도중 어떤 물체에 관심이 생겨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직진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시키고, 제 통제 아래 움직이도록 두껍고 튼튼한 끈을 손에 말아 쥔 채 당겨가며 산책했어요. 그 과정을 통해 제노가 안전하게 산책할 수 있도록 버릇을 들였는데, 무지막지한 제노의 힘을 버티느라 제가 고생을 많이 했죠.

산책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많은 반려견이 그렇지만 특히 시베리안허스키의 삶에서 산책은 가장 중요한 일이에요. 엄청난 활동량을 소화시켜줘야 하니까요. 제노는 하루 종일 그 순간만 기다리니까 내가 산책 시간 하나만큼은 꼭 지켜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일에는 아침저녁으로 두 번, 주말에는 세 번까지 산책을 나가요. 만약 제가 이른 저녁에 잠들었다가 새벽에 깨서 밤 산책을 놓쳤다면 새벽 3시라도 나가고요. 그건 철저하게 지키려고 노력해요. 제노가 배변을 밖에서 하다 보니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쩔 수 없이 나가야 하기도 해요. ‘폭우가 쏟아져도 30cm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이 아니라면 그냥 나가자. 우리 몸이 홀딱 다 젖어도 나가자.’ 이런 각오를 하는 거죠. 제노를 위한 일이라고 하지만 산책을 통해 저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어요. 한번 나가면 30~40 분 이상 산책하니까 체력적으로 건강해졌죠. 산책하며 이웃과도 친해졌고, 제노뿐 아니라 제게도 친구가 생겼어요.

12-03-05

제노의 개춘기가 끝날 무렵 햇살이가 태어났는데, 대형견과 아기를 함께 키우는 것에 대한 고민은 없었나요?
2014년 12월에 제노를 데려오고 한 달 뒤에 햇살이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나중에 알았는데 양가 부모님들께서 사돈 간에 연락을 주고받으며 쟤네 어떻게 할 거냐고 궁리하셨대요. 주변에서 뭘 걱정하는지 알죠. 저도 만약 햇살이를 낳고 제노를 만났다면 입양하지 않았을 것 같거든요. 그래서 더 꼼꼼히 찾아봤어요. 저희 부부 둘 다 많이 긴장하고 아이들의 만남을 준비했는데, 외국에는 반려동물과 새로 태어난 아이의 첫 만남 매뉴얼이 아예 따로 있더라고요. 그걸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적어놓고 실행에 옮겼어요. 먼저, “반려견을 최대한 밖에서 뛰놀게 해서 체력을 소비하게 한 다음 지친 상태로 집에 데리고 들어온다”든지, 반려견 입장에서 아이는 자신보다 먼저 집 안에 있던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도록 “방 안에서 엄마가 아이를 품에 안고 기다리다 만난다”든지, “집에 들어서자마자 아기 체취가 밴 옷가지 등을 주어 냄새를 많이 맡고 익숙해지게 한다” 뭐 이런 것들요. 제노는 워낙 성격이 좋아서 한 5분 정도 관심을 보이다가 바로 적응했는데 부모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었어요.

햇살이가 태어나기 전에 제노를 두 달간 애견학교에 보냈어요. 그것도 반려견과 아기의 첫 만남을 위한 과정의 하나였을까요?
제노가 애견학교에 간 건 현실적 이유와 제노를 위한 선택이었어요. 당시 저희가 출산 시기와 이사 예정일이 겹치기도 했고, 아내가 산후조리원에 있는 기간이 있고 저 역시 회사 일을 하면서 산후조리원까지 왔다 갔다 하면 도저히 제노를 제대로 돌볼 여력이 안 될 것 같았어요. 제노를 위해서도 보내는 게 좋겠다 싶어서 첫째 때는 두 달, 둘째 때는 3주 정도 애견학교에 보냈어요. 성향 따라 가족과 떨어지면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도 있어서 제노가 많이 낯설어하지 않길 바라며 보냈는데, 고맙게도 너무 잘 지내고 왔어요. 두 달 뒤에 애가 돌아왔는데 근육질이 되어 있더라고요.

12-03-04
12-03-03

도심에서 중·대형견을 키우기 쉽지 않은 게 현실인데, 지금 살고 있는 지역은 좀 더 자유로운 환경인가요?
저희 동네가 용산이고 미군 부대 근처여서 외국인이 많은데 외국에서는 집 안에서 대형견을 기르는 게 특별하지 않은 일이다 보니 전반적 분위기가 그런 것 같아요. 제노 친구들을 보면 맬러뮤트, 레트리버, 셰퍼드, 오스트레일리언십독까지 정말 다양해요. 몸집이 크건 작건 간에 사고 없이 아이들이 잘 어울리니까 제노를 키우기에 다른 동네에 비해 좋은 환경이긴 해요. 사실 우리나라에서 큰 개를 기르는 건 보기 드물고 키우는 입장에서도 힘들거든요. 저도 이사 오기 전 동네에서는 눈치가 엄청 보였어요. 지금 사는 아파트는 화물용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서 강아지 키우는 가정의 경우 그걸 주로 이용하는데, 신혼 때 살던 아파트는 세대 수가 많은데 엘리베이터가 딱 두 대뿐이라 이용하는 게 조심스러웠어요. 누가 이사라도 하는 날이면 계단을 이용해야 했어요. 집이 28층이었는데 말이죠.

우리나라는 특히 중·대형견에 대해 불편한 시선이 있어요. 이런 시선에 대해 고민이 있을 것 같아요.
몇 년 전 미디어에서 문제가 된 사건도 엘리베이터 안에서 일어난 사고가 원인이었잖아요. 그 사건이 터지고 나서 반려견 산책시키는 분들이 무척 힘들어하셨어요. 한창 민감할 때는 대형견을 기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길 가다가 욕을 먹기도 했다는 경험담을 많이 주고받았죠. 일부러 구석진 곳을 골라 숨어서 산책시키는 분이 더러 있었는데, 골목 안까지 쫓아와서 소리 지르고 시비 걸고 하는 사람 때문에 딸이 울면서 들어왔다고 하소연하는 분도 계셨고요. 그때는 단지 내에서도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것조차 다툼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었어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고 쉽지 않은 문제인 것 같아요. 저는 필요할 땐 제노를 엄하게 훈육하는 편이에요. 제노는 도시의 공동주택에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아무리 같은 가족이어도 사람은 사람이고 개는 개라고 생각해요. 상하 관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특성상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사람과 개는 다를 수밖에 없거든요. 가끔 반려견을 인격체로 대하는 분이 있어요. 자신의 아이에게 한없이 너그러워지다 보면 주변의 누군가는 불편해지기 마련인데, 그걸 생각 못 하는 거죠. 공공장소에서 목줄을 풀어놓는 반려동물 가족분이나, 입마개가 필수인 견종도 아닌데 길에서 만난 강아지에게 입마개 안 했다고 화부터 내는 비반려인분의 행동이나 결국은 사회 전반적인 인식이 개선되어야 하는 문제예요. 그러기 위해 서로 기본적인 것을 지키고 배려하며 바꿔나가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12-03-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