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lue of Unprofitable Time

돈 안 되는 시간의 쓸모

백현오가 생업으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한 디저트 카페를 접고 전담 양육자로 딸 율아를 키우기로 결심하자 어머니와 친척 어르신들이 입 모아 말했다. “남자가 돈을 벌어야지”, “남자가 가장이 되어가지고” 등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친가와 외가 양쪽에서 장손이던 백현오가 유년기부터 반복 교육받은 남자다움의 의미이자, 아버지의 존재 가치는 유급 경제활동에 한정되어 있었다.
일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던 아내 손희가 바깥에서 유급 노동을 하고, 백현오가 집에서 돌봄 노동을 하는 시간을 1년 6개월 이상 보냈다. 성 역할을 바꿔보니 불필요한 감정 소모가 줄었다. 아내 혼자 독박육아를 하던 기간에는 다툼, 눈물, 호소가 주를 이룬 부부의 대화에 다시 신뢰와 애정이 깃들었다. 감정의 균형을 찾고 나니 앞으로 추구할 삶의 방향성에 대한 건강한 대화가 가능했다. 긴 준비 과정을 거쳐 타임푸어 time poor로 사는 서울의 삶과 이별했다. 전라도 보성으로 네 가족이 이주해 쉼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주입받은 성 역할을 내려놓고, 이웃을 새로 사귀고, 손수 밥 짓고, 필요한 물건을 스스로 마련하고, 새로 준비 중인 사업장을 보수하는 요즘 백현오는 생존에 대한 자신감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고 말한다. 직업을 좇아 자신의 삶을 맞추는 어리석은 선택은 하지 않겠다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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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는 분들이 오히려 휴가를 챙기거나 쉬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신이 일하지 않으면 바로 수입이 줄어드는 게 보이니까요.
2014년 연남동에 작은 디저트 카페를 차렸는데, 어쩌다 보니 연남동이 뜨는 동네가 되면서 예상치 않게 장사가 잘되었어요. 직원 하나 두고 제가 종일 가게를 지키면 대기업 직장인 정도 수입을 올릴 수 있었지요. 제 기준에는 분에 넘치는 수입이라 부담스러웠어요. 이참에 규모를 늘려서 돈을 더 벌어야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고,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하며 시간을 보냈어요. 연남동에 젠트리피케이션 문제가 생길 즈음이 마침 아내가 육아휴직 후 복직해야 하는 시점이어서 결단을 내렸죠. 가게를 접고 제가 전업주부 역할을 맡았습니다.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고 하는데, 뜨는 게 부담스러워 가게를 접었다는 게 놀랍네요.
제 경험 때문일 거예요. 아버지가 금융업에 종사하셨어요. 집도 강남에 있었고 친가 친척들 모두 돈에 대한 셈이 굉장히 빨라요.어릴 때 오히려 실체 없는 숫자를 좇는 삶을 보았다고 할까요? 부를 쌓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 인풋과 아웃풋의 격차가 지나치게 커요. 일은 조금 하고 벌어들이는 건 너무 많죠. 저는 그게 허상이라고 느꼈어요. 닮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죠. 아버지가 평생을 숫자에 일희일비하면서 너무나 고통스럽게 신경 쓰시며 사셨고, 결국 그것 때문에 병을 얻어서 돌아가셨다고 생각하거든요. 저는 원초적으로 몸을 쓰며 정직하게 살고 싶다는 욕구가 컸어요. 직업이 무엇인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자기 안의 변화에 대처하는 적응력을 쌓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점점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미래는 점점 더 예측하기 어려워지니까요. 내가 어떻게든 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만 있으면 직업은 얼마든 바꿔가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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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에 적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올까요?
저희 아버지가 고학력자에 번듯한 금융계 회사를 다니셨어요. 이런 식으로 일하면 월급이 얼마이고, 애들은 어떻게 키울수 있겠다... 미래가 딱딱 그려지는 삶이었죠. 아버지도 그렇게 미래 설계를 하고 살다가 IMF 외환 위기 때 타의로 퇴직하셨어요. 예측 가능한 세상에서 도전도 실패도 없이 살다가 갑자기 50대에 일터를 잃은 거예요. 일에서는 전문가이던 아버지가 삶의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완전히 젬병인 모습을 보이셨죠. 자기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당연히 요리도 못 하시고, 늘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산에 다니시는 게 전부였어요. 그 모습을 보고 허망했지요. 제가 고등학생 때였는데, 삶을 가꾸는 기술을 전혀 터득하지 않은 채 일만 하는 삶의 위험성이 피부로 와닿았어요. 아버지가 아는 세상은 집 아니면 회사가 전부였어요. 그게 변화에 적응할 힘을 잃게 만든 거예요. 저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최대한 열심히 경험하고 시도도 해보고 실패도 하겠다는 결심을 했죠.

결혼과 출산 같은 인생의 중요한 변곡점에서는 보통 안정성 위주의 일자리를 선호하는데, 아이의 출산으로 일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진 않았나요?
서울에서 전업주부로 살던 시기에 틈틈이 이주할 만한 지방 도시를 알아봤어요. 그러다 장흥에서 귀농·귀촌한 친구를 만나 그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충격을 받았지요. 과거에는 우리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던 능력들, 이를테면 불 지피고, 집 짓고, 농사짓고, 요리하는 능력을 현대 도시 사람은 많이 잃었잖아요? 그런데 그 친구들은 남자든 여자든 나이가 많든 적든 그런 생존력을 지니고 있더라고요. 조금 많이 나간 상상일 수 있지만, 재난 상황이 벌어졌을 때 제가 우리 가족을 지키려면 적어도 비 피할 움막 정도는 지을 줄 알고, 기본 식자재는 자급자족할 줄 알아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몸 쓰는 노동의 중요함을 깊이 깨달았죠. 기본 생존 스킬이 있으면 내가 어딜 가도 가족과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죠. 직업에 삶을 맞추지 않아도 되는 거예요. 도시에서 엘리트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자신감의 근거로 생각하는 능력들, 컴퓨터 앞에서 숫자와 씨름하는 능력, 고위직에 올라서 타인을 관리 감독하는 능력은 그 지반이 사실 허약한 것 같아요. 당장 전기만 끊겨도 발휘하지 못할 능력이잖아요. 아이가 태어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좀 더 원초적으로 정직하게 몸을 쓰며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서울을 떠나 보성으로 왔고, 빈 한옥을 개조해서 게스트하우스와 카페를 운영하려고 지금 열심히 공사 중이에요.

분명 “그런 식으로 네 가족이 어떻게 먹고살아요?”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우리 가정이 순조롭게 돌아가려면 이 정도의 수입이 반드시 있어야 하고, 삶의 질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대도시에 살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당연히 그럴 수 있겠죠. 하지만 환경이 바뀌면 소비가 줄고, 솔직히 먹고사는 방법은 찾으면 다 있어요. 저도 게스트하우스 준비하면서 일당 10만~13만 원짜리 아르바이트를 다양하게 경험하고 있어요. 시골이라고 다 농사짓는 것도 아니고, 전문직종 종사자는 작은 도시에 살면 쓰임새가 많아요. 공무원 자리도 있고요. 새로운 정보를 찾아볼 생각도 안 하고 그저 이전까지 익숙하던 관성에서 벗어나면 안 될 것 같으니까 ‘먹고사니즘’ 핑계를 대는 것일 수 있지요.

교육과 문화 인프라 때문에 이러니저러니 해도 서울살이가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죠.
맞아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요.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빠지는 착오가 있는데요, 서울에 산다고 위안을 얻지만, 막상 너무 바쁘고 삶이 팍팍해서 서울의 인프라를 즐기지 못하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오히려 춘천 같은 근교에 사는 분들이 서울 사람보다 전시나 공연을 더 많이 볼지도 몰라요. 주거 비용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으니까요. 온 가족의 근거지를 연고도 없는 보성으로 옮기는 결정이 쉽진 않았어요. 집을 구매할 때처럼 이것저것 따지면서 홍성, 예천, 해남, 제주, 장흥, 순천, 여수, 경주, 파주 곳곳을 다녀봤어요. 그 과정에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든 비슷비슷하고 ‘어디냐’보다 ‘우리가 어떻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어요. 평생 보성에서만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살아보다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결정하기 쉬워져요.

퇴사 후 인생 2막을 고민하는 아버지들께 어떤 말을 가장 해주고 싶으세요?
가장이라는 감투가 참 무겁더라고요. 남편과 아빠 역할에 대한 책임감에 잠이 안 올 때도 있었고, 솔직히 다 벗어던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어요. 아내는 아내대로 고충이 쌓였고요. 진로에 대한 고민이 깊을 때 한번 서로의 성 역할을 바꿔보는 시간을 가져보라고 권해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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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성 역할을 바꿔보는 게 인생 2막 설계에 어떤 도움이 되나요?
안정된 부부 관계없이 전직이나 퇴사 용기를 내기 힘들어요. 저희 부부는 성 역할을 바꿔서 지낸 1년 6개월 동안 정말 많은 대화를 했어요. 이전에 저는 돈 번다고, 아내는 독박육아한다고 각자 바쁘고 지치고, 또 서운해서 대화가 삐걱거렸거든요.
서로 억울함이 있으면 건강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어요. 남자가 육아에 무지해서 벌어지는 나쁜 일이 참 많아요. 육아 노동의 특수성은 말로 설명이 안 돼요. 직접 해봐야 알지요. 경험치가 쌓이지 않으면 소통이 안 되기 때문에 독박육아만큼 부부 관계에 해로운 것도 없어요. 제 아내도 생계 부양자 역할을 한 1년 6개월 동안 제 입장을 정말 깊이 이해했다고 고백했어요. 회식에 시달리다 퇴근해 들어오면 제가 생활용품 무엇무엇이 떨어졌는데 생활비가 부족하다고 보채니 생계 부양자의 고독을 깊이 느껴본 거죠.(웃음)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선 부부 사이의 이해와 신뢰가 가장 근본인데, 서로의 성 역할을 경험해본 게 큰 도움이 됐어요. 요즘 저희 부부는 인생 베프예요.(웃음) 관계에 대한 안정감이 있으니 이주, 이직, 전직 등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요. 게스트하우스 사업도 일단 경험해보고 어느 순간에 접어야 한다는 판단이 들면 아내랑 상의해 또 우리 가족에게 맞는 길을 찾아낼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먼 미래 계획까지 세우지 않는군요.
계획이 많으면 현재에 포기할 것도 많아지니까요. 보성에 내려오자마자 토박이 주민들이 이렇게 조언해주었어요. 서울 전세값으로 이곳에서는 집을 사고도 돈이 남으니까 적어도 1년 정도는 직업을 확정하지 말고 귀촌살이의 좋은 점 나쁜 점 모두를 충분히 느껴보고 생업을 시작하라고요. 조금 천천히 결정해도 괜찮으니 일단 호흡을 고르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최소한 가족과 이웃에게 해 끼치지 않는 선에서 유연하게 현재를 살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 생각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