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oice that Stops Us from Stopping

잠시 멈춤을 가로막는 목소리

퇴사를 떠올린 순간부터 실제 결정을 내리기까지 과정은
각종 허들을 넘으면서 달려야 하는 일종의 장애물 달리기다.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의 작가 김보통이
그 ‘심리적 허들’의 정체에 대해 말한다.

사실 퇴사라는 건 간단한 일이다.
이유야 아무래도 상관없다. 일이 마음에 안 들거나, 조직 문화가 체질에 안 맞는다거나, 쉬고 싶다거나 등등 더 이상 회사에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니 그저 그만둘 뿐이다. 고용주 입장에서도 딱히 아쉬울 것은 없을 듯하다. 갑자기 공석이 된 자리 때문에 당분간 좀 어수선하겠지만, 대신할 사람은 차고 넘치는 세상이니 금세 제자리로 돌아와 이전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을 것이다. 흔적을 남기려야 남길 수 없는 사회고, 시대다. 되레 그게 아쉬울 정도다.

그러나 퇴사는 복잡한 일이다.
우선 당장의 생활비와 내야 하는 카드값, 자가 증식하는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드는 할부에 정년까지 다닐 거라 생각해 받아놓은 대출까지.... 설령 이런 사태를 대비해 이 악물고 빚을 지지 않았다 한들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가족! 온갖 시련에서 나를 살게 하는 힘의 원천이며, 또한 갖은 고난 속에서도 죽지 못하게 멱살을 쥐고 흔드는 나의 가족. 그중에서도 아버지. 몸무게가 100kg이 넘어 팔뚝이 내 허벅지만 하던 나의 아버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어.”
입사 후 3개월 정도 지났을 때 퇴사하겠다는 내 말에 아버지는 고리짝 눈을 부릅뜬 채 답했다. 예상하지 못한 반응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으니까. 당장에 돈을 버는 사람이 나밖에 없는 상황에, 앞으로의 생활을 책임질 주 수입원이 고작 입사 3개월 만에 그만둔다고 하니 그야말로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거꾸로 내가 학생일 때 아버지가 일을 그만둔다고 했다면 나도 같은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 아니, 아버지처럼 말로 하지도 않았겠지. 바닥에 엎어져 발버둥 치며 “아빠가 지금 내 미래를 파괴하고 있어!” 하고 외쳤을 것이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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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못 견뎌놓고서 뭘 할 수 있는데?”
이 말을 들으니 슬금슬금 겁이 났다. 회사를 다니고는 있다지만 여러모로 나는 ‘아직 모르는 쪽’ 이었다. 사회생활이란 것이 얼마나 험난한지, 회사를 벗어난 삶이 얼마나 기구한지, 그래서 맞이할 현실이 얼마나 비참할지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할 말이 없었다. 아버지의 말이 맞다는 생각도 들었다. 때는 서브프라임의 여파가 우리나라에까지 미쳐 예정된 면접이 전날 무산되고, 발표된 합격자가 채용 취소되는 기막힌 일들이 연일 벌어지던 중이었다. 취업 시즌에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대학을 1년 더 다니거나, 대학원에 진학하는 동기들이 흔했다. 와중에 취업을 한 나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기껏 탈출해놓고 석 달 만에 못 해먹겠다며 퇴사를 입에 담다니. 감사한 줄 모르는 행태였고, 배부른 소리였다.

“그래서 뭘 할 거냐? 할 거나 있냐?”
없었다. 이탈리아 로마의 테르미니역 앞 광장에서 김밥 말아 팔면 돈 좀 벌겠다 생각했는데, 그렇게 말했다간 따귀를 맞을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아버지는 승기를 잡은 듯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단은 대학 다닌다 생각하고 4년만 다녀. 다니면서 일하는 법을 배워. 그리고 그때 가서도 그만두고 싶다면 알아서 해.” 종전 제안 같은 것일까, 나는 잠자코 알았노라 답했다. 그제야 아버지는 흡족한 표정으로 “그럼 이제 자라. 내일 출근해야지” 하고 말했다. 무사히 협상이 끝났다고 여긴 것이겠지. 그러나 자리에 누운 나는 ‘이것은 어디까지나 휴전일 뿐, 4년 뒤엔 반드시 퇴사하고 말겠노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리고 4년 뒤, 나는 사표를 제출하기로 했다.
아버지는 반대하지 못했다. 당신이 한 말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회사 생활 3년 차가 조금 지났을 때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만 4년을 채웠다. 알고 싶었다. 아버지가 말한 ‘일하는 법’보다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할 수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 꼬박 4년을 보냈다. 그러나 알 수 없었다. 원래부터 그런 게 있던 사람들이야 찾아내는 게 쉽겠지만, 나로서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당연한 결과였다. 서른몇 해를 살면서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으니 떠오르는 거라곤 로마에서 김밥을 팔거나, 하와이에서 빙수를 파는 것 같은 공상 또는 망상뿐이었다.

그래서, 모르지만 일단 퇴사하기로 한 것이다. 이대로는 영영 모를 것만 같아서 악수를 둔 셈이다.
“저는 마음이 약한 남자라 돌아갈 곳이 있다면 돌아오게 될 겁니다”라며 열일곱 살에 자퇴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난 소프트뱅크 회장 손정의의 심정으로 돌아갈 거처를 불태워버린 것이다. 당장은 막연할지라도, 쓸개즙을 빨며 장작 위에서 잠을 자던 춘추시대 오나라 왕자 부차처럼 실업 급여를 갉아먹으며 묘책을 궁리할 계략이었다. 그즈음 나는 자꾸만 절치부심하여 큰 성취를 이룬 인물에 스스로 빗대는 것을 좋아했는데, 그만큼 불안하고 두려워 뭐라도 비빌 언덕이 필요했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우스운 얘기지만 그랬다. 현실은 예비 실업 급여 생활자지만 마음만은 이미 손정의, 부차와 합일한 상태였다.

“이렇게 네 발로 퇴사하면 권고사직이 아니라 실업 수당 못 받는데.”
인사과에 있던 동기가 말했다. 그와 동시에 믿었던 쓸개가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세상에 호락호락한 것이 없었다. 순간 어떻게 해야 권고사직을 당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지만 마땅히 떠오르는 게 없었다. 동기에게 물어도 구체적인 답을 하지 못했다. 애초에 인사과 직원이 알려줄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냥 좀 더 다닐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누가 봐도 그게 맞는 선택이다. 손정의도, 부차도 이미 잊어버렸다. 발을 딛고 있는 현실이 전에 없이 단단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하지만 “상관없어” 하고 말했다.
정말 상관없던 것은 아니고, 더 이상 우물쭈물하는 것이 싫었다. 그만두면 후회할 것이란 말에, 어차피 다들 이렇게 산다는 체념에, 대안은 있냐는 물음에, 그러다 실패하면 낙오자 인생이라는 겁박에, 망설이다 뒷걸음질 쳐 일어났던 자리로 돌아가 앉는 것에 지쳤다. 모두가 이곳을 벗어나면 고통과 슬픔뿐이라 걱정하듯 말하지만, 정작 이곳에서 내가 어떤 고통을 받는지는 관심 없는 듯한 그 모순적 태도에 질렸다. 어차피 아무도 감당해주지 않는 삶이라면, 내 멋대로 살아가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야 후회가 적을 테니까. 아니, 아마 후회는 많이 하겠지. 사람들의 말처럼 시련도, 실패도, 유혹도, 좌절도 많을 것이다. 그때마다 나는 매번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 봐야 아는 멍텅구리처럼 매번 주저앉아 “아. 또 똥이구나” 하며 흐느낄 게 뻔하다. 반면 미련은 없을 것이다. 단 하나의 똥도 남김없이 찍어 먹었기에 생의 마지막 순간 그때 못 찍어 먹어봐 똥인지 된장인지 영원히 알 수 없게 된 무언가를 떠올리며 ‘그건 혹시 된장이 아니었을까?’ 하는 아쉬움을 간직한 채 눈을 감아야 하는, 상상만으로도 눈물이 나는 회한은 없을 것이다. 그래, 그걸로 됐다. 그거면 됐지, 아무렴.
그렇게 기세등등하게 회사를 그만둔 나는 이후 길고 긴 비탄과 절망의 길을 걸어야 했다. 별로 권하고 싶진 않지만 적어도 미련 없는, 참으로 미련한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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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통

2013년, 20대 청년 암 환자 이야기를 다룬 웹툰 〈아만자〉 로 데뷔한 만화가다. 무거운 주제를 은유와 위트로 풀어내는 솜씨가 탁월한, 신인답지 않은 신인 만화가. 2014년 ‘오늘의 우리 만화상’ 수상. 《아만자》, 《DP: 개의 날》, 자신의 퇴사 경험을 바탕으로 《아직, 불행하지 않습니다》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