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nking About the Architecture of Schools

학교 건축을 생각하다

어린 시절 운동장에는 보이지 않는 계급이 있었다. 통제하는 데 효율적인 일자형 복도, 획일화된 동선, 한 방향으로 향한 교실. 21세기 학교에도 여전히 권력이 작용한다.

운동장을 되찾기까지
중학교 시절, 나는 ‘체제의 몰락’이나 ‘가문의 파산’에 맞먹는 급격한 정세의 변화를 겪은 적이 있다. 어릴 때부터 늘 관심에 목말라하던 나는 몇 년간 모범생과 반장의 지위를 놓지 않으며 아이들의 부러움과 재수 없음을 동시에 독차지하곤 했다. 6학년 무렵이 되어 감지한 변화의 조짐은 관심받는 아이의 유형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대체로 코밑이 까맣고, 키가 크고, 목소리가 두꺼웠다. 아직 켜지지 않은 기계처럼 어린아이 상태로 남아 있던 나는 아이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중학교에선 키 순서대로 자리를 배치하고 키 순서대로 출석 번호를 부여했다. 내 번호는 7번. 교실의 맨 앞자리는 양계장의 병아리 보육실 같은 곳이었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아이들끼리 모여 병아리처럼 종알거리는 그곳에 내 자리가 있었다. 어릴 땐 운동도 공부도 꽤 잘하던 아이였는데, 이상하게 중학교에 와서는 모든 것이 조금씩 뒤처지기 시작했다. 물에 소금을 10g 넣으면 소금의 농도는 얼마가 되는가? 다시 물을 100g 넣으면 소금의 농도는 얼마가 되는가? 수학 시간에 소금물 이야기만 나왔다하면, 그것이 무슨 소린가 하고 정신을 놓아버리곤 했다. 더 이상 축구나 농구에서 근육이 붙은 단단한 아이들과 맞붙는 건 무리였다. 사춘기라는 병에 걸린 아이들은 꽤 예민해져 있었기에, 맞붙는 것은커녕 나는 그들을 피해 다니기에 급급했다. 나와 노는 친구들은 5번과 6번이었다. 키 작은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는 모습은 무척 치욕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양옆과 뒤로 모두 키 작은 아이들뿐이었으니 키 큰 아이들과는 만날 일 자체가 별로 없었다. 키 큰 아이들은 우리를 567이라고 불렀다. 나는 567 중에 내가 가장 크다는 것으로 겨우 위안을 삼았다.


학교 운동장은 큰 아이들의 것이었다. 체육 시간과 점심시간에 덩치 큰 아이들은 큰 소리를 내며 운동장 한가운데서 축구를 했다. 가끔 웃옷을 벗기도 하고, 물을 머리에 뿌리기도 했다. 그보다 작은 아이들은 핸드볼 골대에서 발재간을 부리며 큰 골대를 주시했다. 혹시라도 핸드볼 골대 쪽으로 공이 넘어오면 아이들은 최선을 다해 공을 차주었다. 그것은 주전을 꿈꾸는 후보 선수의 마음이었다. 567의 자리는 학교 뒤편이었다. 선생님들이 자동차를 주차하는 곳 바닥은 흙이 아닌 콘크리트로 되어 있었다. 대략 1번부터 10번까지 키가 작은 아이들은 체육 시간에 그곳에 있으면 보이지 않았다. 테니스공으로 도시가스 배관을 맞히는, 세상에 있지도 않은 공놀이를 만들어내 하곤 했다. 웃고 떠들고 시끄럽게 놀긴 하지만, 서로 이 놀이가 재미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키 작은 아이들은 운동장 흙을 밟을 일이 거의 없었다. 선생님들은 등·하교 시간에도 운동장을 가로질러 걷지 말라고 가르쳤으니, 키 작은 아이들은 그 큰 땅의 지분을 조금도 가지지 못한 셈이었다. 키 작은 아이들 중에는 다정한 아이도, 랩을 잘하는 아이도, 그림을 잘 그리는 아이도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 눈엔 그런 게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도태된 사람일 뿐이었다. 키 작은 아이들끼리 몰려다니는게 싫었고 부끄러웠으므로 누군가 운동장으로 불러만 준다면 언제라도 서로를 버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운동장에서 계급이 작용하는 학교에서는 모두가 삶의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칠 수 없다. 학교에서 주인공은 운동장을 차지한 아이들뿐이다. 그 아이들은 빨리 뛰고 크게 소리 지를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들은 뛰다 멈춰야 하고 뛰면서 다른 곳을 쳐다봐야 한다. 핸드볼 골대에서 축구를 하다가 운동장에서 공이 날아오면 욕심에 가득 찬 표정으로 강하게 공을 차주던 아이들의 표정을 기억한다. 선생님들이 차를 세워놓던 시멘트 바닥에서 도시가스 배관 맞히기 놀이를 하던 것은 567에게 추억이 아닌 비밀에 가까운 일이다.

클린 패밀리
고등학교 때 아침마다 운동장을 뛰는 선생님이 있었다. 학생들이 등교하기 이전부터 수업 시작 종이 울릴 때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그는 영어 선생님이었으면서도 체육 선생님보다 몸이 훨씬 다부졌다. 어느 날인가부터는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는데, 매일 운동장을 같은 방향으로 돌아서 그런 거라며 그다음 날부터는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그 후에는 정말로 다리를 절지 않았다. 선생님을 우습게 보는 아이들도 그의 우람한 육체만큼은 우습게 볼 수 없었다. 다른 선생님이 부르면 뭉그적거리며 걸어가는 아이도 그 선생님이 부르면 부리나케 달려가곤 했다.


며칠 동안이나 지루하게 비가 내린 적이 있었다. 그 선생님은 그동안 운동장을 돌지 않았고 비가 그친 후에도 돌지 않았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냥 달리는 것이 지겨워진 것 같았다. 대신 그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쓰레기를 주우라 하고 아이들의 머리를 지적하기 시작했다. 아마 그는 달리기를 할 때에도 한두 바퀴 정도 달리는 것으로 가볍게 시작했을지 모른다. 가볍게 시작한 그의 계도는 점점 엄격해져서 모든 학생이 두려워하는 정도가 되었다. 담배를 피우거나, 복도에서 뛰거나, 쓰레기를 버리거나, 쉬는 시간이 아닌데 복도를 서성거리거나, 심지어 교실에서 엎드려 있는 것까지.... 규정에서 벗어난 모든 일에 대해 그는 벌을 주기 시작했다. 변명이나 해명 따위는 필요 없었다. 그의 눈에 걸린 아이는 일주일 동안 쉬는 시간마다 복도로 나와 청소를 해야만 했다.


그의 이런 열정에 청소하는 아이는 점점 늘어나고, 나중엔 쉬는 시간에 교실에 있는 학생보다 복도에서 청소하는 학생이 더 많은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포자기한 어조로 스스로를 ‘클린 패밀리’라고 불렀다. 귀찮아하고, 한편으로는 키득거리며 절반은 학생으로, 절반은 청소부로 그렇게 살았다. 근육질의 선생님은 운동장을 도는 대신 복도를 돌았다. 구석구석 세심하게 볼 필요는 없었다. 복도 한가운데에 서면 누가 청소를 하는지 누가 청소를 빼먹었는지 한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청소를 빼먹으면 일주일 더 연장되었다. 나는 클린 패밀리의 일원이 되지는 않았지만 늘 부당한 기운에 억눌려 있어야만 했다. 복도를 걸을 땐 슬리퍼를 끌지 않고, 선생님이 지나갈 때가 되면 똑바로 앉아 교과서를 꺼내는 척했다. 이런 식으로 사는 것이 수용소와 다른 게 무엇인가 생각하기도 했다.


세상은 변했는데 교육 공간은 여전히 그대로다. 요즘 아이들의 학교도 변한 것이 없다. 많은 건축가가 학교 건축에 대해 비판할 때 “학교가 교도소의 평면과 같다”는 지적을 하곤 한다. 도면을 보면 그 건물이 품고 있는 생각을 읽을 수 있다. 감옥의 평면과 건축 평면이 같다는 것은 그 둘의 생각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준다. 관리자가 다수를 감독하고 통제하는 설계다.


각 층의 모든 교실이 한 줄 복도로 연결된 점은 관리의 효율성 측면에서 높게 평가할 수 있다. 꼬불꼬불 꺾을 필요 없이 이 끝에서 저 끝으로 앞으로 걸어가면 모든 교실을 둘러볼 수 있는 것이다. 관리하기 위해 운동장은 될 수 있는 한 커야 한다. 그래야 모든 사람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한 번에 전달할 수 있다. 모든 층의 모든 교실이 복사한 듯 똑같은 이유도 역시 관리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계획하고 짓는 과정이 단순해야 유지 관리 측면에서도 유리한 것이다. 예를 들어 창문이 깨지면 동일한 규격의 창문으로 곧바로 갈아 끼울 수 있으므로 시간과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학교 건물이 아이들을 망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문제가 있다면 아이들을 획일적인 통제의 대상으로 여기는 어른들에게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관리의 대상이 아니다. 네모반듯한 교실에서 나를 옥죈 것은 보이지 않는 힘이었다. 감옥의 평면과 비슷한 학교 건축은 그 힘을 발휘하기에 아주 좋은 수단인 것이었다.


다행히 요즘은 학교 건축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려는 움직임이 활발한 추세다. 획일적인 공간 구조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게 공간을 해석하는 학교가 많이 생기고 있다. 설계 관계자들에게 들은 바로는 학교를 변화시키려는 이러한 종류의 시도는 늘 극심한 난항을 겪는다고 한다. 안전에 대한 우려, 비용의 부족, ‘학교 하나 짓는데 뭐 이렇게까지 하느냐’는 식의 관계자들 태도.... 학교를 아무렇게나 짓는 것은 뒷산에 아이들을 아무렇게나 풀어놓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일이다. 아니, 사회적 측면으로 볼 때 그보다 훨씬 위험한 일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현대사회에서는 차별과 편견으로 가득 찬 한 사람이 뒷산 멧돼지보다 훨씬 더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다.

모호한 건축
어느 날 조카가 나보고 여자 삼촌이라고 놀렸다. 어느 날은 머리가 길어서, 어느 날은 분홍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그런 것이다. 늘 개구쟁이 같던 아이가 사진을 찍을 때 꽤 여성스러운 포즈를 취하기 시작했는데, 이 모두는 조카가 유치원에 다니기 시작했을 무렵에 나타난 변화들이었다. 아주 짧은 기간에 원시인 같던 아이가 사람처럼 변하는 모습을 보며 교육의 힘을 느끼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 한계도 느꼈다. 한국에서의 교육은 이것과 저것을 구분 짓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육을 받기 이전 둥글둥글하던 아이들의 세상은 참 매력적이었다. 자동차는 어떻게 달려? 삼촌하고 엄마는 어떻게 아는 사이야? 할아버지 모자는 누가 만들어? 유치원에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세상에 구분선을 만들어주었다. 세상을 남자와 여자, 차와 사람, 빨간색과 초록색, 해와 달로 구분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 아이들 머릿속에는 체계라는 것이 자리 잡는다. 녹색불이 켜지면 길을 건너고 빨간불이 켜지면 멈춘다. 대답을 할 땐 손을 들고, 화장실에 가고 싶을 때도 손을 들어야 한다. 그런 것에서 벗어나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을 이상하다고 느낄 경우 비로소 그 아이들은 우리 세계로 들어올 자격을 갖추는 것이다. 조카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2학년이다. 아이의 질문은 좀 더 알아들을 만한 것으로 바뀌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카아이의 질문에 대한 누나의 대답은 한결 간결해졌다. 그건 위험한 거야, 그건 나쁜 거야, 그건 안 좋은 거야. 구분 짓기의 교육이 다음 세대의 꼰대를 만들고 있다고 생각하니 무척 우울해졌다. 구분의 벽을 허무는 데에는 겨우 한두 달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그에 대한 반발 심리로 팔 안쪽에 새긴 초록색 염소 문신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삼촌 문신했어.... 엄마가 하지 말라고 했는데!”


구분과 제도는 어쨌든 사람의 머리속에 있는 것이므로 그것을 꺼내 올 수는 없다. 건축은 그것을 머리 밖으로 꺼내어 공고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무척 흥미롭다. 학교 건축은 구분 짓기 교육이 힘의 원리와 결탁한 사례를 보여준다. 중·고등학교 시절 건축의 구분법은 대부분 힘의 우위를 보여주는 데 사용하고 있었다. 평가하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 감시하는 사람과 감시받는 사람, 일진과 쭈그리들, 현재의 학교 건축은 그 위계를 보여주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구분이 필요한 것은 관리하는 어른의 입장일 뿐, 아이들 입장은 아니라는 점을 알아두었으면 좋겠다. 지나치게 명확한 구분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성공보다 실패이며,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다. 키가 작은 게 좋은 건지 큰 게 좋은 건지, 운동장이 중요한지 어느 구석 잔디밭이 중요한지, 학교는 그런 것을 알 수 없도록 최대한 많은 것을 모호하게 만들어야 한다. 건물 안에는 숨을 곳이 있고, 누을 곳이 있으며, 뛰는 곳이 있어야 한다. 어느 날 근육질 선생님이 ‘이 녀석들 다 잡아주겠어!’라고 생각해도 그 기준이 모호해서 결국은 포기해버릴 수밖에 없는 곳이어야 한다. 아이들은 그렇게까지 위험한 생명체가 아니다. 뛰어도, 숨어도, 엎드려 있다 해도 쉽게 무언가로 변하지는 않는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협은 어른들이 귀찮아질 수 있다는 점, 그것뿐이다.

한승재

건축사무소 ‘푸하하하 프렌즈 FHHH’의 건축가. 글쓰기와 건축 사이에서 과감한 줄타기를 하며 활동하고 있다. 엉뚱한 생각을 글로 모아 책으로 만들어 길거리에서 팔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출판사를 만나 《엄청 멍충한》 소설집을 발간하며 비공인 소설가로서 명맥을 잇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