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How We Choose to Live

우리는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남들은 어떻게 한다더라”는 말의 힘은 특히 ‘집’과 ‘교육’에서 더욱 강력해진다. “남들은 어디에 산다더라”, “남들은 애들을 요즘 어디에 보낸다더라”. 개인의 성향은 물론 자라온 환경, 경제적 상황 모두 천차만별이지만 대부분의 우리는 이상하게도 이 두 항목에서만큼은 공통의 기준을 향해 달린다.

각각 서울과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에서 2년, 부산에서 2년의 결혼 생활을 이어가던 우세진·한송이 부부에게 귀촌은 이러한 공통 기준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들이 정한 삶의 기준대로 살아가기 위한 선택이었다.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의 밝은 얼굴’을 떠올리며 층간 소음에 시달리는 아파트 전셋집을 처분하고 옥상에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시골 단층 주택으로 이사를 감행한 지 어느덧 4년 차. 경쟁으로 점철된 소모적 교육 환경에서 벗어난 부부의 아이들은 밤늦게까지 피아노를 치고 집 담벼락에 그림을 그리며 마당에서 뛰논다.
아픈 아이를 안고 가까운 도시의 병원까지 내달릴 때면 대도시의 인프라가 다시금 그리워지긴 하지만, 부부에게 도시로 회귀하는 것은 여전히 선택지 밖의 일이다. 누군가는 귀촌을 경쟁에서 밀려난 선택 혹은 대책 없는 도피라고 하지만, 부부에게 남해로의 이주는 먹고살겠다고 쉬지도 못하고 돈만 벌어야 하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내려놓음으로써 얻은 삶의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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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전에 스스로에게 질문을 했어요.
똑같은 돈으로 120평짜리 내 집에 살래? 30평 전세 아파트에 살래?
당연히 마당 딸린 120평 집에 살고 싶잖아요. 게다가 지금 집은 부산 아파트 전셋값보다 2000만 원이나 저렴했거든요.”

도시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대도시에 살다가 지방으로 내려온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서울에서 학원 관리자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부산에 학원을 운영하시던 분이 관두면서 제가 넘겨받게 됐어요. 그때가 결혼하고 2년이 지난 시점이었는데, 아내 고향이기도 하고 직접 사업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어 도전한 거죠. 그런데 자영업이라는 게 신경 쓸 일이 많잖아요. 임대료 걱정, 직원 고용이나 비즈니스 차원에서 사람들과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필요하고요. 결국 일에 치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고 개인적으로 견디기 힘든 상황에 이르렀죠. 아이가 둘이나 있는 상황이었는데, 내 사업을 하면서도 가족들 얼굴을 하루에 1시간도 볼 수 없었어요. 결혼이라는 건 가족이 되어 함께 살려고 하는 건데, 이건 함께 사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던 차 남해로 여행을 갔는데 너무 좋더라고요. 당시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법이 가족 여행이어서 시간이 될 때마다 근교로 여행을 다녔거든요. ‘국내 유일 청정 지역이라더니 그래서 이렇게 좋은 건가?’ 하면서 가고 또 가곤 했어요. 그러다가 아내와 “펜션에 이렇게 돈 쓸 바에야 여기에 집을 알아보는 건 어떨까?” 하는 이야길 주고받았죠. 그냥 지나갈 말이 어쩌다 보니 “시세나 물어볼까?” 하는 호기심으로 이어져 부동산까지 가게 됐어요. 그리고 지금 사는 집을 보게 된 거예요. 저희가 귀촌을 한 거의 결정적인 이유였어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집을 여기서 만났으니까요.

호기심에 갔다가 집을 샀다는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요. 이 집의 어떤 점이 귀촌까지 하게 만든 걸까요?
저희 부부는 삶의 기준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나누곤 했어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서로 생각하는 과정을 가진 건데, 그때마다 정확하게 일치하는 기준이 ‘살 집이 제일 중요하다’는 거였어요. “아파트는 벗어나고 싶고 마당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표정이 밝은 집이었으면 좋겠다”는 조건에 딱 맞는 집이었어요. 창고와 집 사이에 넓은 마당이 있었고, 집 옥상에 올라가면 바다도 잘 보였어요. 그리고 당시 저희 판단엔 가격도 저렴했고요. 120평 땅에 창고까지 딸린 집의 매매가가 1억1000만 원이었는데, 당시 저희가 살던 부산 아파트 전셋값보다도 2000만 원이 쌌으니까요. 도시에서 사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감당 안 되는 집값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남해로 간다는 이야길 하고 나니 주변에서 “넌 무슨 생각으로 남해에 가서 살겠다는 말을 하냐”는 소릴 많이 했는데 저는 되레 “너야말로 무슨 능력이 있다고 그 감당 안 되는 비싼 아파트에서 살려 하냐”고 반문했거든요. 우리가 꿈꾸는 집을 선택하는데 경제적 부담이 오히려 줄어든다니, ‘아, 이 집이다. 여기서는 잘 살 수 있겠다.’ 싶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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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에 연고가 없다고 알고 있어요. ‘비빌 구석’이 없으니 경제적으로 더 많은 준비를 했을 것 같아요.
저희는 귀촌하신 다른 분들에 비해 귀촌을 체계적으로 계획해서 실행한 게 아니어서 고민과 준비 과정이 길지 않았어요. 당시 운영하던 학원을 정리하면 몇천만 원 정도의 여윳돈이 생길 거고, 지역 영농조합에서 일거리를 찾을 수 있을 테니, 아껴서 생활하면서 뭘 할지 생각해보려는 심산이었어요. 물론 처음에 자리 잡을 때까지 어려움이 많을 거란 생각은 했어요. 그래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앞으로 도시에서 10년 사는 것과 남해에서 10년 사는 걸 비교하면 도시에서 사는 게 더 힘들 것 같은 거예요. 당시에도 힘들었지만, 경제적으로 수입의 변화는 더딜 테고, 아이들은 계속 커나갈 테니 생활비는 더 들어갈 테고요. 그래서 10년 뒤를 생각하면 더 일찍 변화하는 게 좋을 수 있다고 생각한 거죠. 당장 ‘좀 덜 버는 대신 덜 쓰자’는 생각이었어요.

10년 뒤의 밝은 미래를 생각하고 선택했지만, 초기에 정착하는 과정이 예상보다 더 어려웠다고 알고 있어요.
진짜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었어요. 도시에서 사업하며 받은 스트레스 때문에 여기서는 월급 받는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싶었죠. 지금처럼 가게를 열 생각은 전혀 없었고요. 와서 처음 한 일이 석교팜이라는 지역 영농조합에서 시금치 단을 묶고 정리하고 유통하는 일을 돕는 거였어요. 남해에서 시금치 작업은 겨울 한 철이라, 그 작업이 끝나고 3월부터는 옆 마을 멸치 어장에서 일을 도왔어요. 그러던 중 몸이 안 좋아져서 병원에 갔더니 허리 디스크라는 거예요.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된 거죠. 초기 정착 자금이라고 가지고 있던 돈은 집 리모델링 비용이 예산을 초과하면서 그걸 메우느라 써버린 참이었는데, 당장 수입원이 끊겼으니 답이 없었죠. 일을 쉬기 시작한 게 4월이고 상점을 9월에 열었으니 5개월간은 벌이가 없어 생활비도 부족해 대출을 받기도 했어요. 정말 힘들었어요. 모든 게 불분명하고 보이는 게 없고, 고비였어요. 상점 문을 열고도 바로 장사가 잘되는 게 아니잖아요. 외진 곳이라 인적도 드물고요. 9월 첫 달에 번 돈이 100만 원 남짓이었으니까 그 뒤로 자리 잡기까지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실은 5개월보다 훨씬 길었죠. 아내는 진지하게 도시로 돌아가는 걸 생각해보자고 했고, 저도 최후의 수단은 집을 팔고 도시로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미 모든 걸 접고 떠나왔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다시 돌아간다면 정말로 큰 빚을 져야 하는 상황이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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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작업을 시작하고, 창고에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무엇인가요?
일을 쉬면서 동네 사람들을 관찰하다가 모든 경제활동이 창고를 중심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시골 분들은 농산물을 창고에 쌓아두기도 하고, 거기서 그걸 가공해 내다 팔기도 하고…. 창고가 쉬는 일이 없거든요. 그걸 보고 그럼 나도 창고에서 뭔가를 해보자는 생각을 한 거예요. 마침 집 리모델링 공사를 해주신 분에게 산 중고 목공 장비가 있었어요. 그걸 살 때만 해도 이런 상황에 부닥칠 줄 몰랐고, 남자들 로망 중 하나가 자기 창고를 가져보는 거니까 저도 창고에서 뭔가를 만드는 취미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었어요. 아이들 의자며, 책상이며 하나씩 만들어보자는 거였는데, 그걸로 제가 마당 덱이나 아이들 그네를 만들기도 했고요. 자신감이 붙어서 목공예품을 만들어서 팔아도 되겠다 싶었고, 상점을 내보면 어떨까 생각한 거죠.

집에 딸린 창고에 상점을 열면서 장사가 안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은 안 했을까 궁금해졌어요. 너무 외진 곳에 있으니까요.
문을 열고 알았어요. 얼마나 외진 곳인지. 가게 바로 옆이 마을 노인정이라 동네 사시는 할머니들이 이른 아침부터 지나다니세요. 한창 공사할 때 저희 가게 앞을 지나다 들여다보시면서 “여기서 뭐해?”, “여기 누가 오겄어?’, “그래… 뭐든 열심히 해서 먹고살아야지” 하면서 한마디씩 던지시니까 현실이 느껴지는 거죠. 근데 그만큼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뭐라도 해야 하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웃음)

대도시 두 곳과 지금의 삶은 경제적으로 매우 다를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귀촌 전후 수입과 지출에서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가게가 자리를 잡고 나니 수입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나 부산에서 학원을 운영할 때나 지금이나 큰 차이는 없어요. 다만, 도시에서는 수입이 고정적이었고, 지금 같은 경우는 관광객이나 외지인을 상대로 하다 보니 5~8월에 판매가 급증하고 나머지 기간은 판매가 미미하다는 차이는 있어요. 4개월 매출로 1년을 운영해야 하는 거죠. 큰 변화는 지출에서 느끼고 있어요. 우선 아이들 3명을 도시에서 키우려면 유치원, 어린이집 보내는 기본 비용이 아무리 적어도 100만 원은 들어갈 거예요. 그런데 저희 첫째가 초등학교 2학년, 둘째가 유치원생, 셋째가 어린이집에 다니는데 이 비용이 안 들어가요. 유치원, 어린이집이 공짜고, 학교 급식비도 안 내고요. 아이들 운동복 사는 비용이나 소풍 참가비도 여기서는 학부모 부담이 아니더라고요. 가끔 수영장 가고 어디 놀러 갈 때 1만 원 안팎 참가비 내는 거 말고는 교육비 지출이 전혀 없어요. 그리고 시골에 살다 보면 도시가스가 안 들어온다는 게 단점인데, 겨울에는 난방 때문에 기름값이 적잖게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도시 아파트에 살면서 내던 1년 관리비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적고요. 이런 필수 지출 항목에서 세이브되는 비용이 꽤 커요. 그 밖에도 도시에서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을 만난다거나 계절 바뀔 때 옷이라도 한 벌 산다거나 하는 품위 유지비 항목으로 묶이는 비용이 있는데, 그런 것도 절약이 되고요. 그러다 보니 전보다 지출이 40% 가까이 줄어들었어요. 안 먹고 안 쓰고 아껴가며 줄인 게 아니라 환경이 바뀌면서 줄어든 비용이고, 줄이겠다고 노력하면 도시에서 쓰던 생활비의 30%만 있어도 가능하겠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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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희가 이사오고 나서 도시에서 사고 치고 온 사람들이라는 소문이 돌았더라고요. 할 게 아무 것도 없는 시골에 젊은 부부가 애까지 데리고 들어왔으니 동네 할머니들 보기엔 무슨 일인가 싶으셨겠죠.”

앞서 귀촌 후의 안정적인 생활을 기대했다고 하셨는데, 월별 수입에 차이가 크면 고민이 될 것 같아요. 전체 수입에는 차이가 없다고 하셨지만요.
저희 가게 고객이 대부분 관광객을 비롯한 외지인이다 보니 아무래도 불안정한 게 있어요. 그래서 수입 늘릴 방법을 계속 생각하고 변화하려고 해요. 첫해에는 목공예품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두었다가, 두 번째 해에는 오프라인 숍을 활성화하는 데 집중을 했어요. 인스타나 온라인 홍보도 시작했고요. 이제 여기서 더 수입을 늘리려면 온라인 쪽에서도 자리를 잡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제 막 온라인 숍을 오픈했어요. CS(고객 서비스)라든지 어려움이 많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일단 온라인 판매 경험을 쌓고 싶어요. 규모가 작은 가게이긴 하지만, 아이들이 다 클 때까지는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다음 단계를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귀촌 후 삶에 대해 가족들의 만족도는 어떤지 궁금해요. 어른과 아이들 입장은 또 다를 것 같기도 한데요.
모두 만족하는 편인데 아이들이 커서 손이 덜 가니까 이제 아내는 가끔 심심해해요. 그리고 아이들이 갑자기 아플 때가 있잖아요. 한 번씩 열이 오르거나 하면 남해에는 큰 병원이 없어서 진주까지 나가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그때마다 도시 생활에 대한 미련이 생긴다고도 하고요. 그런데 그때뿐이죠. 아이들 경우는 여기 삶을 더 좋다고 해요. 부산에서 떠나올 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도시 생활과 이곳 생활의 장단점을 100%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지만, 첫째 같은 경우엔 이제 좀 커서 할머니 할아버지 만난다고 부산에 다녀오면 공기나 환경 이야기를 하면서 남해가 좋다고 해요. 부산은 싫다고요. 사실 아이들 입장에서는 시골에서의 삶이 훨씬 좋다고 생각해요. 학교 끝나면 학원 가는 도시 아이들 중 자기가 배우고 싶어서 찾아다니는 아이는 거의 없잖아요. 여기 애들은 그런 부분에서 자유롭죠. 부모의 억압이 없고 자기 시간을 마음껏 누릴 수 있으니까요.

돈에 흔들리지 않고 초연한 사람은 극히 적을 테지만, 돈에 휘둘리며 살지 않을 수는 있죠. 우리가 돈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저는 자신이 버는 돈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꾸뻬 씨의 행복 여행》이라는 책에 나오는 말인데, 100만 원을 벌든 1000만 원을 벌든 자신이 버는 돈의 액수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거죠. 그러기가 쉽지 않아요. 저도 쉽지 않았고요. 결국 삶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돈이 아닌 다른 기준을 찾는 거죠. 제게는 그 기준이 가족과의 시간이었어요. 가족과 하루 1시간도 보내지 못하고 돈을 버는 게 과연 중요할까? 스스로 질문을 던지면 그건 아니었으니까요. ‘돈은 조금 나중에 벌어도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우리와 안 놀아줄 때 열심히 벌면 되지 않을까’, ‘요즘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나이 오십이라고 일할 데가 없을까’, ‘돈은 꾸준히 벌면 되는 거고 돈을 벌기 위해 지금의 시간을 전부 쏟아부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아이들이 있어서 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돈과 달리 시간은 때가 있고, 지금 못 해주면 영영 못 해주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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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ps for Fathers

귀촌 전, 생각해봐야 할 최소한의 것

11-03-07

지자체 혜택만으로 살 곳을 결정하지 마세요.
시골에서의 삶은 집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집에 대한 애착이 삶의 질을 높이기도 떨어뜨리기도 합니다. 귀촌 정책만으로 살 곳을 판단하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조건과 혜택보다 집의 위치와 환경이 마음에 드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세요.

사전 답사 시 이웃을 만나보세요.
시골에서는 마을도 회사와 같은 하나의 조직입니다. 이사 전, 마을 대표와 구성원이 어떤 사람들인지
잘 살펴봐야 하는 이유이지요. 사전 답사 시 마을 대표나 이웃들을 직접 만나 이야길 나눠보세요. 시골 생활의 만족도는 마을 사람들과의 관계에 큰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웃에 대한 조사는 꼼꼼할수록 좋습니다.

뭐든지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시골 생활에서는 당연한 것이 당연히 없을 확률이 높습니다. 남해와 같은 군소 도시에는 여전히 대형 마트가 없어 인근 도시로 1시간씩 이동해야 하고 도시에서는 눈만 돌리면 보이는 편의점 역시 관광지가 아니라면 찾아보기 힘듭니다. 따라서 귀촌할 계획이라면 도시의 인프라가 주는 편리함에서 미리 벗어나도록 노력하는 것이 현명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