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 Look Alike, to Understand

닮아간다는 것, 이해한다는 것

한때 세계에서 가장 많은 톨릭스 Tolix 의자를 보유한 컬렉터이던 구자영이 빈티지 의자를 모으기 시작한 계기는 의외로 단순했다. 오랜 시간 무역업에 종사하다 꿈에 그리던 이탤리언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하며 가게 안에 들여놓을 가구를 수소문하던 그의 눈에 누군가의 손길이 느껴지는 차갑고 단단한 철제 의자가 들어왔다. 무던히도 찾아 헤매던 상업 공간에 어울릴 가장 튼튼하고 아름다운 의자. 자신의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각자의 레스토랑을 운영할 때 조금씩 꺼내놓을 심산으로 시작한 빈티지 의자 수집은 가족 몰래 임대한 80평 창고가 가득 찰 때까지 멈출 줄 몰랐다.
오랜 시간 이리저리 치여온 철제 의자가 켜켜이 쌓인 창고 문을 열었을 때 구선우는 아버지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었다. 여느 또래처럼 옛것에 대한 흥미라곤 전혀 없던 그가 아버지를 사로잡은 빈티지 의자의 매력을 깨달은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성한 곳이 없는 의자를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해 마지막 나사 하나까지 분해해서 닦고 조이며 매만지는 시간을 통해 그는 자세히 들여다보기 전엔 알 수 없었던 것을 발견했다. 나사 하나, 철제 뼈대 하나마다 담긴 건 만든 이의 고민과 의자를 사용했던 주인의 애정, 시간을 통해 스스로 다져진 단단함이었다. 이제 구선우는 아버지의 옷을 물려받아 입는 것도 좋다고 말한다. 그의 바람대로 세월의 흔적이 가득 스민 옷을 통해 부자는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닮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빈티지 문화가 주류는 아닌데, 빈티지 가구를 수집하고, 수리하는 일을 시작한 계기가 있나요?
(자영) 우리나라는 빈티지라고 하면 ‘중고’라는 이미지가 강해서 남이 쓰던 걸 사용한다고 안 좋아하는 사람이 많죠. 쓰던 걸 주면 기분 나빠하는 사람도 있고 새것을 원하는데, 그게 저는 안타까워요. 빈티지 가구는 요즘 제품보다 훨씬 실용적이에요. 디자인과 내구성 측면에서 모두 훌륭하죠. 특히 미드센추리 mid-century 시대라고 불리는 1930~1950년대 의자는 유명 건축가들이 한창 가구를 만들던 시기에 나온 것들이에요. 그러니 디자인의 우수성은 말할 필요도 없고, 몇십 년이 지난 지금도 안전하게 쓸 수 있을 만큼 튼튼하니까 이보다 실용적일 수 없는 거잖아요.
(선우) 저는 빈티지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가구든 옷이든 새것, 지금 가장 유행하는 것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었죠. 그런데 아버지가 수집하신 빈티지 의자를 카페에 두기 위해 수리하면서 개인적으로 많은 깨달음을 얻었어요. 빈티지 가구를 수리한다는 건 거의 완전히 분해했다가 재조립하는 과정이에요. 마모된 부분은 보완해야 하고 새 옷을 입히듯 패브릭이나 가죽도 교체하고요. 그 과정에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던 옛날 가구, 제품의 우수성을 알게 됐죠. 고장 나거나 기능이 떨어지는 의자가 다시 좋아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작업의 희열도 느꼈고, 제가 세상에 좋은 일을 하고 있단 생각도 들었어요. 빛을 잃은 좋은 제품을 되살리는 일이 제게 행복감을 가져다준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문화 자체를 더 알리고 나누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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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와 빈티지를 나누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선우) 저는 빈티지는 조금 더 버틴 것이라고 생각해요. 시간도 버티고 사람 손도 버티고 반복되는 쓰임의 상황도 버티고 남은 것이 빈티지라고 생각해요. 그 과정을 통해 소장 가치를 부여받는 것들요. 그러다 보면 유명 디자이너 제품을 이야기하게 되지만, 꼭 유명 디자이너 이름이 없어도 오랜 시간 버티고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그 또한 빈티지가 되는 거겠죠. 중고 제품도 감가상각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올드카 같은 경우도 점점 쪼그라들던 가치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다시 올라가기 시작해요. 그 시점부터는 빈티지가 되는 거죠.

수집하는 것이 왜 의자일까 생각했어요.
(자영) 의자에 처음 관심을 둔 건 제가 2000년 초반에 레스토랑 오픈을 준비할 때였어요. 그때 만난 건축가분께서 “모든 건물의 기본은 의자”라는 말씀을 하셨지요. 자신은 공간을 디자인할 때 그곳에 어떤 의자를 놓을 것인가를 먼저 염두에 두고 시작한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가 와닿았어요. 제가 좋아하는 건 미드센추리 시대에 만든 인더스트리얼 체어인데, 그 이야길 듣고 얼마 후 프랑스 여행을 갔다가 길에서 우연히 길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톨릭스 의자를 본 거예요. 그게 그렇게 예뻐 보일 수가 없었죠.
(선우) 의자는 작은 건축물 느낌이에요. 이 작은 플랫폼 안에 중심을 잡기 위한 수많은 과학이 들어가 있죠.그래서 의자는 일반인이나 아마추어가 만들기 어려운 가구예요. 밴딩도 들어가고, 밸런스도 맞춰야 하고, 인체 공학적이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이 기능적·철학적으로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그게 흥미로운 부분이죠. 그렇기 때문에 많은 건축가가 의자를 디자인하는 것 같기도 해요. 자신의 철학을 반영한 건물은 몇 개씩 마음대로 지어볼 수 없지만, 의자는 가능하니까요. 의자를 수리하다 보면 그 고민과 노력이 보여요. 엄청나게 많은 부속을 사용한 의자가 있어요. 보통 불투명한 소재로 마감하니까 보이지 않는데 그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수리할 때 등받이 부분과 좌석 부분을 투명하게 바꾸기도 해요. 사람들이 의자 안을 봤으면 싶어서요. 작은 부속품 하나하나가 다 제 역할을 하고 그게 예쁘고 감동스럽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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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개 가까이 되는 빈티지 의자로 가득한 아버지의 창고 문이 열렸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선우) 지금처럼 초겨울의 약간 쌀쌀한 날씨였어요. 아버지가 창고 문을 열어주시는데 진짜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았어요. 제가 〈해리포터〉를 좋아하는데 그 영화에 보면 ‘필요의 방’이라는 게 있어요. 온갖 쓸데없는 것을 모아놓은 마법의 방인데, 마치 그걸 보는 기분이었어요. 그때는 창고가 지금처럼 잘 정리되어 있지도 않아서 일단 이 세상은 아닌 것 같고,(웃음) 아버지도 우리 아버지가 아닌 것 같고, 현실감이 없었죠. 얼마 뒤에 아버지가 해외에서 구입한 물건을 담은 컨테이너가 들어오는 날도 현장에 있었는데, 그때 기억이 더 또렷해요. 컨테이너에서 전봇대, 가로등, 어떤 집 대문... 이런 것들이 나오더라고요. 그때 ‘아, 아버지가 일을 벌이셨구나! 그것도 작게 벌이시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죠. 다만, 저와는 절대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재미 반 걱정 반으로 관망하는 입장에서 꽤 흥미진진했죠.

카페 이름을 톨릭스라고 지을 만큼 그 많은 의자들 가운데 톨릭스에 빠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영) 긴말이 필요 없는 것 같아요. 의자가 지닌 아름다움 때문이니까요. 톨릭스 의자를 처음 봤을 때 ‘아!’ 싶었어요. 지금껏 봐온 어떤 의자보다 다리 셰이프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선우) 카페 이름이 톨릭스이다 보니 톨릭스를 잘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공부를 많이 했는데, 브랜드 스토리도 매력적이에요. 톨릭스는 디자이너가 만든 제품이 아니에요. 그냥 평범한 지붕 고치는 아저씨가 만들었지요. 미국으로 유학 간 딸이 사 온 책 《아연합금기술》을 딸에게 번역해달라고 해서 읽기 시작해요. 그 책으로 독학하면서 직접 가구를 만들기 시작한 거죠. 주방 가구를 하나씩 만들다가 브랜드가 되고, 나중에 아들이 물려받아서 공장 자동화를 시작하고, 지금의 톨릭스라는 회사로 키워낸 거예요. 혼자 뚝딱뚝딱 만들던 아버지의 기술을 딸이 지원하고 아들이 발전 시킨 거잖아요. 그 가족의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아버지가 톨릭스를 좋아하는 이유를 여러 가지 말씀해주셨는데, 하나가 자신과 닮았다는 거였어요. 아티스틱하지만 아마추어 같은 감성이 있고, 조금은 독특하면서도 쓰임에 충실한 제품이고, 여러 가지 면에서 아버지가 자신을 투영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던 게 아닌가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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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을 일방적으로 대물림당한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톨릭스라는 카페 이름도 아버지가 미리 지어놓은 거란 이야길 듣곤 더욱더요.
(선우) 여러 가지 이유로 아버지가 너무 많은 의자를 수집하셨고, 그런 아버지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한국에 돌아왔어요. 저 나름대로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던 시기와 맞물려서 내린 선택이었기에 무작정 떠밀려 시작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1년쯤 지나니까 덫에 걸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카페 사업을 시작하는 분 대다수가 카페를 오픈하기까지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를 생각하지, 1∼ 2년 후는 잘 생각 안 하잖아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게다가 취미에 없던 빈티지 의자를 알아가는 과정과 맞물려서 카페 문을 열고 1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어요. 바깥 구경도 못 하고 카페 안에서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지요. 결계가 걸린 공간 안에 갇힌 기분이었죠. 그러다 보니 모든 원망이 아버지에게로 향해 심술이 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주위에서 아버지를 보고 좋은 분인 것 같다고 하면 “한번 살아보세요”라고 말했죠. 진심 반 농담 반으로 지금도 그렇게 이야기하지만요. 사실 다들 좋은 면만 보시는데 저는 아버지에게서 엄청난 의자를 물려받은 대신 엄청난 빚도 함께 물려받았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버지는 빚을 내서라도 의자를 모으는 분이세요. 사람들 생각처럼 가진 돈이 많아서 사는 건 절대 아니에요. 그 속사정을 모르시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와 사이는 꽤 가깝게 느껴져요.
(선우) 아버지를 옆에 두고 이런 말을 하긴 그렇지만, 솔직히 조금 사랑스럽고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예요. 되게 솔직하시고 러프하시고 그래서 더 좋은 것 같아요. 어릴 때는 사실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았어요. 술 마시고 들어오셔서 입 냄새 뿜으며 괴롭히는 아버지셨거든요. 그런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 같이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버지가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게 뭔지, 가족은 어떤 의미이고, 할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지 등 아버지의 개인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조금씩 이해하게 된 것 같아요. 배울 점도 많고요. 무역업에 오래 종사하셨기 때문에 동물적인 감각이라고 할까요? 사업적으로 밀어붙이는 힘이나 사람을 아끼는 자세 같은 것요. 다만 일을 벌이는 걸 좋아하시는데 옆에서 계속 말리죠. 아버지는 일을 마무리 지으시라고요. 이제 제가 벌일 차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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