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ehicles We Loved Back in the Day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탈것

우리 모두는 한때 먼 곳을 꿈꿨다. 이전까지 몰랐던 놀라운 세계에 누구보다 빨리 도착해 모험을 펼치거나 그런 모험을 목격하고 싶어 안달한 때가 있었다. 난관을 뚫기 위해 궁리하고 힘을 모으는 사람들, 결국은 풀리는 갈등과 찾아오는 평화에 대한 상상, 이 모든 상상의 시작이 된 만화와 영화. 이런 이야기 속에는 언제나 매혹적인 탈것이 있었다. 탈것은 우리를 더 먼 곳으로, 더 높은 곳으로, 더 놀라운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공책이나 교과서 끄트머리에 상상을 옮겨 그리며 우리는 자주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나곤 했다. 김형규의 소년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결혼하고 밥벌이를 하고 육아를 하면서도 여전히 그때처럼 먼 곳을 꿈꾼다는 것뿐. 1990년대 KMTV라는 채널에서 활약한 VJ 1세대, 힙합 그룹 ‘킹조’ 멤버, 서울대 출신 치과 의사, 자우림 김윤아의 남편이자 매니저, 방송인.... 김형규를 설명하는 이런 다양한 수식어에 최근 ‘초딩 아빠’라는 단어가 추가됐다. 방송에서 웃자고 붙인 별명이지만, 나는 그 안에 숨어 있는 크리에이티브한 에너지가 전혀 우습게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순수한 몰입과 유희하는 여유, 호기심에 눈을 반짝이는 소년의 마음이 갖고 싶다. 오래전 내게도 있었을 그것을 회복하고 싶다.

이번 호 주제가 탈것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하면 조금 더 빨리, 더 편하게 이동할 수 있을까에 대한 관심과 욕구가 없었다면 아마 현대사회가 이만큼 발전하지 못했을 겁니다. 내가 다녀올 수 있는 만큼이 곧 삶의 반경이 됩니다. 탈것이 발전한다는 것은 이동 범위가 넓어진다는 뜻이고, 삶이 조금 더 역동적으로 변한다는 뜻인 것 같아요. 만약 제가 탈것이 부족했던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지금처럼 호기심이 많지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만화책을 1만 권 정도 소장한 유명한 만화 덕후로서 소년들이 로봇, 우주선, 비행기 등 탈것이 등장하는 만화에 왜 열광한다고 생각하나요?
슈퍼맨과 아이언맨을 비교해서 설명하면 와 닿을 것 같네요. 슈퍼맨은 태어나면서부터 초능력이 있었고, 아이언맨은 후천적으로 자신의 노력이나 재력을 이용해 능력을 습득했어요. 슈퍼맨을 볼 때는 나와는 다른 차원의 존재라는 거리감이 있지만, 아이언맨을 볼 때는 ‘아! 나도 저 슈트가 있으면 날 수 있을 텐데!’ 하고 상상하게 되죠. 만화 속에 나오는 탈것은 대부분 주인공의 능력을 수천수만 배로 증폭시키는 존재예요. 상상만 하던 행동을 실현할 수 있게 도와주죠. ‘저런 게 나에게도 있으면 나도 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전해주니까 아이들이 열광하는 거예요. 전 어릴 때 사촌과 《가면라이더》, 《사이보그 009》 같은 일본 만화를 보면서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신체 개조에 대한 상상을 펼치곤 했어요. 안드로이드나 사이보그로 저 자신을 개조시켜 남들이 지니지 못한 능력을 표출한다는 상상을 자주 했죠.

02-03

여전히 동심을 잘 유지하고 있는데요, ‘소년성’을 어떻게 정의하나요?
채널A 〈아빠본색〉에 출연하면서 초딩 같다는 얘기를 자주 듣고, 동안의 비결이 동심을 유지하는 덕분이라는 말씀도 하시는데, 제 입장에서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에요. 동심을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고요, 저는 그냥 즐거워요. 물론 삶은 빠듯하고, 하고 싶지 않은 일도 해야 하며, 하루하루가 굉장히 짜임새 있게 돌아가지만, 저는 틈을 내 만화책을 보거나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거나 전동 킥보드를 타거나 게임을 하거든요. 그런 잔재미들을 더 이상 재미없다고 느낄 때 마음이 굳어지는 것 같아요. 행복의 역치가 점점 높아지는 거죠. 행복해지려면 해외여행을 떠나거나 비싼 차를 타야 한다고 믿는 대신, 만화책을 보며 쥐포 먹으면서도 즐거워할 수 있는 마음이 소년성을 뜻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지금도 길 가다 동전을 발견하면 그렇게 신기하고 재밌어요. ‘10원짜리 동전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 생각하기보다 ‘와, 여기 동전이 있다니 놀랍다!’ 즐거워하는 편이죠. 즐거워하는 마음이 호기심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해요.

뮤직비디오가 좋아서 VJ가 된 것도 그렇고, 평생 만화책을 모아온 것도 그렇고, 뭐 하나를 좋아하면 깊이 빠져드는 성향 같아요.
‘향유자’가 아니라 ‘실행자’가 되어야 직성이 풀린달까요?

저는 “나는 이걸 정말 좋아해” 말할 수 있는 대상을 모두가 하나씩 가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덕후가 다소 자폐적이고 부정적 이미지였지만 지금을 달라졌어요. 전설적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겔리온〉을 만든 회사 가이낙스 창립자이자 일본에서 ‘오타킹’이라고 불리는 오카다 도시오가 그랬죠. “이제 세상은 오타쿠가 이끌어간다.” 문화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주변에 자신이 좋아하는 걸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또 다른 활동으로 이어가며 재미있는 현상을 만드는 힘은 덕력에서 나오거든요.

킥보드를 좋아한 지도 오래되었다고요?
제가 어릴 때는 스카이씽씽이나 스카이콩콩이 유행했는데요, 현대식 킥보드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일본 레이저사의 ‘올드에이’라는 모델이 1998년 출시됐습니다. 당시 VJ로 활동하던 시절이었는데, 일본까지 가서 백화점에서 줄 서서 직접 사 왔어요. 나중에 민재에게 물려줄 생각입니다. 킥보드가 좋은 이유는 질주하며 바람을 타는 느낌 때문인 것 같아요. 잠시나마 자유로움을 느끼는 거죠. 그런 잔재미를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아빠본색〉에서 아들 민재와 과학 실험 하는 장면이 여러 차례 방송되었습니다. 직접 두 손으로 체험하며 지식을 깨우치는 걸 중요하게 여기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일을 할 때 제일 중요한 게 재미라고 생각해요. 외워야 하니까 외우는 지식은 한계가 있어요. 학창 시절 기억을 떠올려보면 책을 보다 재미있게 느끼는 부분이 있으면 ‘이건 내일 친구들한테 이야기해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럼 수학 공식 암기하듯 애써 외우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기억이 나죠. 실험 과정을 지켜보면 생각이 곁다리로 뻗어나갈 가능성이 많기도 해요. ‘A는 B다’처럼 결론을 그냥 외우면 볼 수 없는 가능성이죠. 무엇보다 제가 실험하는 걸 좋아해요. 실험을 하다 보면 엉뚱한 행동도 할 수 있고 지저분해지기도 하는데, 민재가그런점을좋아해서둘이서과학실험을틈틈이하고 있습니다.

서울대 출신 치과 의사 아빠는 역시 자녀 교육법이 다르다는 기사가 많이 났습니다. 엄친아 아빠 이미지가 부담스럽진 않나요?
궤변일 수도 있고 엉뚱한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 저는 공부라는 걸 정말 원없이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민재가 공부하는 걸 그리 원치 않습니다. 사교육에도 전혀 관심이 없고요. 공부 많이 해서 좋은 대학가고 좋은 직장을 얻어도 자신이 즐거워 하는 일이 아니면 스트레스받고 괴로워하는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봤거든요. 저는 민재가 어떤 일을 하든지 재밌고 즐거운 일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제 역할은 민재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 물어보고, 진짜 적성에 맞을지 조언해주는 정도이지 “이게 좋은 길이야”라면서 먼저 제안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더알아보고싶다,더멀리가보고싶다’같은호기심과 창조적 에너지는 왜 어른이 되면서 줄어드는 걸까요?
어른이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생각 안에 스스로를 가두게 만드는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잖아요. 일례로 만화책만 해도 저에게 “넌 아직도 만화 보냐?”라면서 만화책은 애들이나 보는 거라는 식으로 말하는 친구들이 있으니까요. ‘어른에게 적합하지 않은 행동’이라는 규율을 스스로 만들면서 호기심이 사그라드는 것 아닐까요?

하지만 아빠가 된다는 건 자유를 일정 부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내키는 대로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되죠.
물론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게 곧 호기심을 잡아먹는 규율을 의미하진 않아요. 저는 민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가장 즐겁습니다.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려고 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잖아요. 기꺼이 자연스럽게 저녁 시간대 스케줄을 줄이고 집에 가게 돼요. ‘나는 아빠니까 이렇게 행동하자, 이런 건 하지 말자’ 생각하기 보다 그저 ‘다시 오지 않을 지금 이순간을 최대한 즐기자’는 생각을 가장 많이 합니다. 민재가 아기일 때 제가 씻기고 먹인 적이 많았기 때문에 민재의 모든 걸 알고 있습니다. 손·발·등·배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디에 뾰루지가 올라왔는지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였죠. 이제는 민재가 아빠보다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아요. 제가 통제하고 파악할 수 없는 영역이 점점 더 늘어날 거예요. 어느 날 “아빠가 뭘 알아!” 하며 방문을 쾅 닫는 사춘기가 찾아오기도 하겠죠. 그러니 지금이 정말 소중한 시간입니다.

생활 구석구석을 아내 김윤아 씨에게 맞춰주는 모습이 방송에서 화제를 모았습니다.
단순히 애처가여서가 아니라 압도적 예술가인 아내를 존경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자우림 데뷔 20주년 기념 콘서트에서도 또 생각했습니다. 아내는 인간계를 초월해가고 있는 아티스트입니다. 모차르트를 시기하는 살리에르처럼 그녀를 바라봅니다. 저도 음악을 사랑하지만 아내 같은 재능은 없거든요. 아내가 곡 작업을 마치고 제게 들려줄 때 ‘와, 장난 아닌데!’ 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질투가 나면서 동시에 그런 빛나는 재능을 돋보이게 해주기 위해 제가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전 같으면 아내에게 잡혀 산다고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유교적이고 가부정적 문화가 워낙 뿌리 깊어서 요즘에도 여전히 저에게 “넌 왜 그렇게 잡혀 사냐?”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긴 합니다. 하지만 저는 신경조차 쓰지 않아요. 양성평등이 이렇게나 중요해진 시대에 아직도 저런 생각을 하고 살 수 있을까 속으로 생각하고 넘기죠.

김윤아 씨가 한 다큐멘터리에서 김형규 씨에 대해 “양지바른 곳에서 햇빛을 충분히 받고 자란 나무처럼 마음에 사랑과 여유가 많은 사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분명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훌륭한 정서적 유산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아버지를 생각하면 늘 떠오르는 장면이 있습니다. 제가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껴서 따라 하고 싶었던 순간이에요. 저녁이 되면 부모님이 요를 깔고 주무셨는데, 머리맡에는 백열등 스탠드가 켜져 있었지요. 그 옆에는 〈리더스 다이제스트〉나 이런저런 책, 만화책이 놓여 있었어요. 아버지는 주무시기 전에는 늘 백열등 밑에서 책을 읽으셨어요. 결혼 예물로받은시계를흔들면서책읽는습관이있었죠.그모습이 너무 멋져 보여서 저도 따라서 책을 읽으려고 노력했죠. 그때 아버지가 어문각 클로버 문고에서 나온 길창덕 작가의 《선달이 여행기》라는 만화를 사서 선물해주셨습니다. 이후로 제가 완전 만화책에 빠진 거예요. 그때 만약에 아버지가 “야, 눈 나빠져”, “학생이 무슨 만화책을 보냐? 다른 책을 봐” 하셨다면 지금의 김형규는 없었겠죠. 무조건 부모 입장에서 이걸 해라 저걸 해라 정해놓지 않고 길을 열어주신 것이 고맙고, 저도 민재에게 그런 아빠가 되고 싶습니다.

02-01

Lessons for fathers

김형규의 큐레이션, 탈것이 등장하는 멋진 만화책

02-10

《AKIRA》, 오토모 카쓰히로
1980년대 사이버펑크 만화의 최고봉.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뒤 30년, 도쿄만에 새로 지은 네오 도쿄라는 미래 도시에서 살고 있는 카네다와 테츠오라는 반항아들의 이야기다. 테츠오는 폭주족 멤버였는데 우연히 당한 교통사고로 정부의 비밀 프로젝트 존재를 알게 되고, 결국은 아키라 비밀 프로젝트의 실험체가 된다. 카네다와 테츠오가 타고 다니는 오토바이는 초전도 구동 방식으로 바퀴가 떠 있는 상태로 회전한다.

《완간 미드나잇(논스톱 죽어도 좋아)》, 구스노키 미치하루
《이니셜D》와 《완간 미드나잇》은 레이싱 만화의 투 톱이다. 지금도 일본 오락실에 가면 두 만화의 게임이 있다. 완간은 순환선 같은 도로를 뜻하는데, 이 위를 달리는 스피드광들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속도 경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현실에서 어떤 대가를 치르며 레이싱을 계속하는지 보여준다.

《이니셜D》, 시게노 슈이치
초인적인 운전 실력을 갖춘 후지와라 타쿠미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버지 때문에 강제로 두부 배달을 하는 소년이 5년여간 시골 언덕길을 달리면서 수많은 기술을 혼자 터득하고, 우연히 목격한 공도 레이싱 배틀에 매료되어 쟁쟁한 드라이버들과 배틀을 벌이며 성장해가는 이야기. 만화에는 자동차 튜닝에 대한 수많은 지식과 정보가 나오는데, 단행본만 4800만 부가량 판매되었을 정도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 야스히코 요시카즈
이동 수단으로서 탈것을 넘어 나의 능력을 증폭해주는 로봇의 대표작이라면 건담과 마징가를 들 수 있다. 《모빌슈트 건담 디 오리진》에서 ‘모빌슈트’는 인간형 메커닉 병기를 총칭한다. 사람이 타서 조종해 움직이는 모빌슈트나 마징가 모두 소년들의 로망을 자극한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내가되는꿈을꾸는것.마징가는한자로‘악마,신, 나’를뜻한다.악마도신도될수있는나라는뜻.

《우주 형제》, 코야마 주야
어릴 때 우주 비행사가 되자고 약속한 뭇타, 히비토 형제. 우주 비행사의 꿈을 먼저 이룬 똑똑한 동생과 현실에 치이다 뒤늦게 우주 비행사 시험에 응시한 형이 결국 꿈을 이뤄 우주 곳곳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이야기. 우주선, 우주복, 우주정거장, 착륙선 등 수많은 우주 기술에 대한 정보가 등장한다.

《도라에몽》, 후지코 F. 후지오
본편 56권, 특별판 20여권, 번외편 10여 권 등 총100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만화. TV 애니메이션으로는 1973년 이후 지금까지 9600편 이상 방송되었다. 주인공 진구에게 문제가 생기면 미래에서 온 도라에몽이라는 로봇이 주머니에서 신기한 미래의 발명품을 꺼내 문제를 해결한다. 차원을 넘나들 수 있는 ‘어디에나문’, 소형 단일 프로펠러 ‘대나무 헬리콥터’, 대답하면 빨려 들어가는 페트병, 액체 사이를 텔레포트하면서 이동할 수 있는 ‘점핑 잠수함’ 등 상상을 초월하는 탈것과 발명품을 감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