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t Means to Be a Man

남자다움이라는 틀

방순호는 경상도 대구에서 누나만 넷인 딸 부잣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할머니는 “아들 못 낳는 년”이라며 며느리를 혹독히 핍박했다. 가혹한 시집살이 끝에 태어난 막내아들. 편애가 훤히 예상됐지만, 방순호의 부모는 특별한 선택을 했다. 폭력적인 가부장제 관습을 자신의 대에서 끊어야겠다고 결단한 것이다. 딸과 아들을 차등 대우하면 오히려 아들 인성을 망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방순호는 부모의 이런 교육 방침 아래 네 누나와 공평히 자랐다. 남자라는 이유로 특혜도 없었고, 집안의 기둥이 되라는 과도한 기대도 없었다.

방순호는 ‘남자니까’라는 이유로 기득권을 누리면 그것이 분명 ‘남자니까 이 정도는 해야지’라는 굴레로 되돌아온다는 사실을 일찌감치 깨우쳤다. 남자니까 돈을 더 내야 하고, 남자니까 성공해야 하고, 남자니까 힘을 과시해야 한다는 사회 문화적 압박을 만든 건 여성이 아니고 가부장제의 낡은 관념이라는 사실도. 이 젠더 박스 때문에 고통받는 건 여성만이 아니다. 방순호는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성평등 운동이 남성에게도 무척 이로운 일이라고 믿는다.

특정 성을 가졌다는 이유로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행복할까? 그리고 그 행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일까? 방순호·이예지 부부 그리고 딸 이립이가 보여주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사랑의 에너지는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이다.

누나만 넷인 집의 막내아들이니 굉장한 편애를 받았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1980년대만 해도 남아 선호 사상이 팽배했으니까요.
할아버지가 암 투병으로 가산을 탕진하고 저희 아빠가 초등학생 때 돌아가셨어요. 할머니에게 아빠는 아들이자 남편의 투사 대상이었죠. 아빠가 결혼한 뒤 할머니는 남편을 빼앗긴 기분이 들어 며느리 시집살이를 아주 심하게 시켰다고 해요. 밥상 뒤엎고 아들 못 낳는 년이라고 폭언하는 일이 계속되어 아빠가 보기에 이러다 아내가 정신병 걸리겠다는 위기감을 느끼실 정도였대요. 그래서 어느 날 아빠가 할머니 앞에서 목을 매는 시늉까지 하셨대요. 그제야 할머니가 조금 나아졌고, 제가 태어날 무렵에는 미국에 있는 고모 댁으로 이사 가셔서 부모님이 벗어날 수 있었어요.

시집살이하던 며느리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 군대에서 억압당하던 신병이 고참이 되었을 때, 신입 사원이 관리자가 되었을 때 등 ‘을’이던 사람이 ‘갑’이 될 때, “내가 폭력의 대물림을 끊겠다”며 결심하는 사람도 있고 “너도 한번 당해봐라”라고 대물림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힘들었는데 너는 왜 편하려고 해?’라는 생각이 깔려 있으면 후자의 반응을 보이는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이해가 안 돼요. 자기가 그렇게 싫었으면서 왜 똑같이 구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다들 변명하죠. 세상이 그렇다고. 엄마는 사슬을 끊어내려고 강박적일 정도로 노력하셨어요. 주변 친척 누구라도 제 와이프에게 며느리 본분을 강요하거나 부담을 주면 엄마가 먼저 나서서 제지하실 정도였죠. 폭력의 대물림을 끊어내는 사람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사회가 변할 거예요. 제 신조가 그거예요. 거창하게 세상을 바꾸려 하지 말고, 내가 먼저 바뀌자. 내가 끊어내는 사람이 되자. 만약 주변 사람이 저를 보고 ‘아,저렇게 사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하며 영향을 받으면 그게 사회운동의 출발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04-01

젠더 감수성은 거창한 개념이 아니고 일상 속에서 성 불평등 구조를 알아차리는 감각이라고 생각해요.
성장하면서 ‘이건 좀 아니지 않아?’라고 느낀 순간이 있나요?

저는 대구에서만 자라서 다른 도시와 객관적으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대구에서는 마초처럼 센 척하는 남자가 인기 있어요. 대학생 때 남녀가 섞여서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는데, 여자 친구 하나가 담배를 피우니까 한 남자 친구가 “어디 가시나가 밥상머리에서 담배를 짝짝 피쌌노”라고 비난하는 거예요. 자기도 테이블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면서요. 여자니까 안 된다는 말에 화가 나서 결국 싸웠죠. 당시엔 젠더 개념이란 게 없었는데도 그냥 뭔가 이상한 거예요. ‘왜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 되지?’ 의아해하던 기억이 나요.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은 문화와 관습의 형태로 다양한 영역에서 뿌리 깊이 영향을 미쳐요. 그 존재를 알아차리는 감수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요?
감정이입 능력에 달린 것 같아요. 내가 이렇게 말하거나 행동했을 때 상대방이 어떤 감정을 느낄지 상상할 수 있으며, 감정을 읽어낼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면 불합리를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그런데 우리 사회는 감정을 느끼는 일, 상대의 감정을 헤아리는 일을 나약한 행동으로 치부하며 남성을 향해 강해지라고 요구해요. “남자는 우는 거 아냐”라고 아들을 가르치는 문화도 여전하고요.
강한 남성상에 대한 집착은 군사 문화의 잔재라고 생각해요. 별말 없이 명령에 복종하는 인간을 만들어야 전쟁에서 잘 써먹을 거 아니겠어요? 감정이입을 하는 순간 적과 전쟁을 할 수 없죠. 감정이 거세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사회화가 대대로 이어져 왔다고 생각해요. 현대 한국 사회의 교육과 입시 체제는 일본에서 들어왔는데, 일본 관료제 뿌리엔 군사 문화가 있거든요. 써먹기 편한 인간을 만들기 위한 체제예요.

어릴 때 아버지에게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궁금해요.
아빠는 정치적으로 보수적 성향인데 마초 문화는 너무나 싫어하셨어요. 군부 독재 시절에 경찰로 일하셨는데 “아빠 성격에 어떻게 경찰을 했어?”라고 물을 정도로요. 집안 형편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찰이 되었는데,그와중에어떻게든 상대적으로 위계가 덜 잡힌 부서에서 일하려고 노력해서 경무계, 교통계 같은 사무직 보직을 맡으셨어요. 제가 중학교 때 일본 영화 〈쉘 위 댄스〉를 감명 깊게 보고 아빠 생각이 많이 나서 보여드렸는데, 아빠가 그제야 고백하시더라고요. 오랫동안 춤이 너무나 배우고 싶었다고. 그런데 주변 눈치도 보이고, ‘춤바람 난 가장’으로 오해받을까 봐 배우지 않은 게 한이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고정된 성 역할에 자신을 맞추는 건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고통스러운 일이죠. 경제활동보다 자녀 양육을 더 하고 싶은 남성도 있을 수 있고, 반대의 경우인 여성도 있을 수 있는데요.
맞아요. 문제는 남자가 돈을 더 잘 벌게 만들어놓은 사회 시스템이에요. 한국은 남녀 임금 격차 OECD 1위이고, 여성 평균임금이 남성 평균임금보다 36%나 적어요. 당장 주변만 봐도 여자가 더 능력 있고 성장 가능성이 있는데도 여자는 집에 앉혀놓고 남자를 키워주는 집이 너무 많아요. 경제적 부분에서 남성에게 부양 의무가 지워질 수밖에 없는 카르텔이 이미 있어요. 이 카르텔은 남성 여성 모두에게 고통이에요. 과도하게 노동하고 남성 육아휴직은 꿈도 꿀 수 없는 이런 문화 때문에 가족과 더 많은 시간을 못 보내서 고통스러운 남자들도 분명 있어요.

얼마 전,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남성 비율이 역대 최고라는 소식을 알리는 신문 기사의 제목에 ‘집돌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더군요. 가사 노동을 하는 남성을 모자라는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이 오랫동안 있어왔고, 여전히 존재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도 그렇게 생각한다니 놀랍네요. 남성 중에도 분명 아기를 돌볼 때 더 행복한 사람도 있어요. 밖에서 돈 버는 것보다 집 안 가꾸는 데 시간을 더 쓰고 싶은 사람도 있고요. 반대 경우의 여성도 있을 수 있고요. 남자든 여자든 스스로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파악하고 최대한 행복할 수 있는 길을 선택해야 하는데, 말도 안 되는 성 역할 고정관념 때문에 자신이 어떤 성향인지 알 기회조차 박탈당하고 있는 거예요.

04-07

성평등을 말하면 일부 남성은 굉장히 방어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해요.
몰라서 그래요. 제대로 알려주는 사람이 없었을 거고, 듣고자 하는 귀가 열리기 전에 움츠러들었을 수도 있고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 안에 여성을 뜻하는 어근이 있어서 막연히 여성 우월주의로 오해하는 듯해요. 하지만 페미니즘이 궁극적으로 이루려는 목표는 남성 해방이기도 해요. 지금은 불평등한 구조가 심하니까 일단 기울어진 운동장의 수평을 맞추자는 거죠. 인터넷에서 걸핏하면 나오는 이야기 있죠. “남자가 결혼할 때 집 해오지 않냐”, “남자가 데이트 비용 더 내지 않냐”, “여자도 군대 가라” 등등. 페미니즘은 이 불균형 자체를 해결하자는 거예요. 남자라고 데이트 비용을 더 많이 내야할 것 같아서 스트레스받고 죄책감 느끼고 하는 일이 없도록 여성의 경제활동 기회를 늘려주자는 거예요. 여성 인권이 올라가고 경제 기회가 균등하게 배분되면 여성의 책임도 역시 높아질 거예요. 여성 인권과 남성 인권은 항상 영향을 주고받는 상호 보완적 관계예요. 그래서 여성이 올라가면 남성이 내려가는 것처럼 느낄 수 있지만, 남성의 짐도 함께 내려놓게 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해요. 짐과 기득권은 결국 한 몸이니 그걸 좀 내려놓자고요. “나는 나가서 돈 벌어오잖아! 그러니까 내 말에 순종해”라는 말로 가족을 다스리던 가부장은 혼자 뒤돌아 소외감과 압박감에 시달리잖아요. 그러지 좀 말자고요.

여성을 성적 대상화하는 문화가 공기처럼 퍼져 있어요. 쏟아지는 미투 #MeToo 고발만 봐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성폭력에 둔감해왔는지 알 수 있죠. 근본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세요?
폭력적 문화를 모르고 살던 사람까지 물들게 만드는 군대 문화를 들고 싶어요. 예전에 해병대 군가를 듣고 경악한 적이 있어요. 앞에 있는 여성의 팬티를 벗겨서 어떻게 하자는 식의 가사로 이루어진 군가였어요. 군대에선 음담패설 잘하는 남자가 인기 많은 이야기꾼 대접을 받고, 그게 재미있는 놀잇거리가 돼요. 그렇게 퍼져나가는 이야기가 비폭력적이던 사람의 생각까지 지배하는 듯해요. 역사적으로 가장 강간을 많이 하는 조직은 군대였어요. 폭력, 괴롭힘, 나쁜 짓이 위험한 이유가 뭔지 아세요? 재미있다는 거예요. 나쁜 짓을 하는 게 제일 재밌을 때, 그거 말고는 더 재미있는 누릴 거리가 없는 환경일 때 사람들은 폭력에 쉽게 물들어요. 군대가 딱 그런 환경이죠. 우리에겐 나쁜 짓보다 더 재미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요.

04-04

딸 이립이를 낳고 젠더 문제에 더 관심이 생겼나요?
강남역 화장실 살인 사건 때 와이프가 임신 중이었고, 젠더 폭력에 대해 정말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여자들끼리 놀다 헤어지면 조심히 들어가라고, 집에 도착하면 카톡 보내라고 인사하는 게 일상이라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공포가 일상화되었다고요. 저는 남자 친구들과 놀다 헤어져서 그런 인사를 해본 적이 없거든요. 그때 큰 충격을 받았어요. 우리 사회가 치안이 좋다고 하는데, 그 안전망은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거구나 느꼈죠. 딸 이립이가 태어나고 주변에서 많이들 말해요. “이 무서운 세상에서 딸 키우기 겁나지 않니?” 라고요. 이립이가 얼마나 무서운 세상을 살아가게 될지 솔직히 저는 잘 몰라요. 저는 남자고, 남자의 시선으로만 세상을 살아봤기 때문에요. 그래서 딸을 얼마나 조심시키며 키워야 하는지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무서워하면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세상이 두려워 밖으로 못 나가는 아이로 키우고 싶진 않아요. 제가 1년 가까이 해외여행을 한 적이 있어요. 여자 혼자 해외여행한다고 하면 위험하다며 허락하지 않는 부모가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데 제가 여행하며 직접 느낀 바로는 여자 혼자 몇 년씩 여행해도 아무 사고를 겪지 않은 사람이 훨씬 많아요. 무서운 세상이라는 이유로 딸을 단속하는 데 집중한다면 그 아이는 바깥을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자랄 거예요. 저는 이립이가 세상을 무서워하지 않고 조금씩 부딪치며 성장해나가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이립이가 성장했을 때 어떤 사회에서 살아가길 바라나요?
딸의 장래에 대해 제가 이래라저래라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혼자 비밀스럽게 품고 있는 로망은 있어요. 나중에 이립이에게 말해주지 않을 혼자만의 비밀이죠. 이립이가 목수 장인으로 커가는 장면을 상상할 때가 있어요. 목수는 힘센 남자에게 맞는 직업이라는 통념이 있잖아요? 딸이 목수를 하는데도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밑에서 배우는 제자들도 여자 스승이라고 무시하지 않고, 여자 목수라는 존재를 아예 특이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가 자리 잡은 미래를 꿈꿔봐요. 서로의 다름은 인정하되 차별하지 않는 공간에서 이립이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어요.

04-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