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s Your Dream Home?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좋은 집에 대한 정의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편리하게 생각하는 집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집일까?

나는 ‘너’를 좋아해. 매일매일 ‘너’를 생각하고, ‘너’를 생각할 때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져. 하지만 나는 지금 ‘너’를 가질 수 없어. 어떻게 하면 ‘너’와 평생 함께할 수 있을까?
소문을 들어보니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첫 번째 방법은 조금 이상해. 살면서 매달 은행이라는 ‘친구’ 에게 돈을 보내야 해. 그렇게 평생 같이 살면 보낸 돈보다 더 많이 받을 수도 있고, 보낸 돈보다 더 적어질 수도 있어. 솔직히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어. 만약 한 번이라도 안 보내면 ‘너’를 영영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만은 확실해.
두 번째 방법은 매우 간단해. 그냥 ‘가족’ 같은 친구처럼 매일 함께 있어주면 돼. 같이 밥 먹고, 같이 얘기하고, 같이 즐기고, 그렇게 같이 있으면 돼.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같이 있다’는 마음만 바뀌지 않으면 돼. 영원히 ‘너’는 나의 것이 아니지만, 절대 나는 ‘너’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건 믿어도 돼. 그런데 너는 아니? 사람들은 ‘너’를 ‘집’이라고 불러. ‘너’와 평생 함께하기 위해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집과 연애를 시작하다
나는 집을 좋아한다. 근사한 집을 그려보고 싶어서 건축과에 진학했고, 공부할 때도 집 설계가 가장 즐거웠다. 대학 졸업 전, 우리 집은 마당 있는 집을 헐고 다가구주택을 지었다. 실무 경험이 없었던 나는 건축사사무소의 배려로 평면 계획에만 참여했다. 이후 우리 집을 지은 소규모 건설 회사(집 장사라고 부른다)에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전혀 다른 10여 채의 주택 평면을 비슷비슷하게 그려내면서 널리 통용되는 도면이 우리 삶을 얼마나 단순화시키고 있는지 느꼈고, 이처럼 모순된 구조가 땅과 돈 때문이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렇게 집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기 시작한 즈음, IMF 외환 위기가 닥쳤고 갑자기 집이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내가 그렇게 좋아하는 집을 왜 심각하다고 이야기하는지 궁금했다. 나는 세계 곳곳의 주거 문화에 대한 기사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집이라는 문제가 단순히 건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집과 아파트의 드라마틱한 관계는 나의 무한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단순히 기사 스크랩을 넘어 경제, 사회, 문화, 예술, 디자인, 인문, 철학 등 집과 관련한 다양한 책을 읽고 분석해서 아카이빙하기 시작했다. 아주 사소한 궁금증에서 출발한 집과의 연애 일기는 이제 11년째 되었고, 밤을 새워가며 남긴 이야기만 3000개가 넘는다. 언제든 집 이야기로는 하루 종일, 밤을 새워도 매번 아쉽다. 이제 한순간도 집을 말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을 정도다.

좋은 집이란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은 집을 구할 때(지을 때) 1. 얼마의 돈으로 2. 어떤 곳에 3. 어떤 크기를 구할지 (지을지) 먼저 생각한다. 삶의 반경과 가족의 성장을 만족시키기 위해선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데, 이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는 사이에 한 가지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을 놓치게 된다. 바로 그 집에서 누구와 살면서 어떤 추억을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다. 오랜 시간 좋은 집의 조건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보았지만, 좋은 집을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가 다르고, 현재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절대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적용 가능한 좋은 집에 대한 정의는 처음부터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다만 대부분의 사람이 편리하게 생각하는 집은 분명히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정말 내가 살고 싶은 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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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두 다르다
건축가와 건축주는 대부분 비슷한 불만이 하나씩 있다. 건축주는 건축가가 마음대로 했다 말하고, 건축가는 건축주가 원하는 걸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한다. 건축주는 그동안 살면서 느꼈던 불편을 우선 해결하길 원한다. 반면 건축가는 현실과 이상을 조율하는 전문가이기에 앞으로 당신이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를 묻는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집의 이상향을 상상해본 시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느 날 갑자기 집의 형태를 그리는 것조차 무척 힘들고 어려운 일이 된다. 이런 상황을 반복적으로 지켜보면서 나는 도구를 한 가지 개발했다.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삶에 필요한 우선순위를 6개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집을 구성하는 요소를 100장의 카드로 정리해 3 단계로 구성한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라는 워크숍을 시작한 것. 살고 싶은 집을 이야기하고, 그려보고, 만들어보게 하는 워크숍을 마치면 대부분 흐뭇해하며 만족한다. 가장 큰 이유는 ‘처음 해본 일’이기 때문이다. 유치원, 초등학교 이후 한 번도 어떤 집에 살고 싶은지 구체적으로 그려본 기억이 없다. 또 워크숍을 통해 다양한 삶의 스토리를 듣는다. 어느 하나도 같은 삶, 같은 집이 없다. 나를 다시 돌아보고, 남의 일상과 취향을 들으며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면들을 되뇌게 된다. 워크숍을 경험하면 자신의 삶이 특별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일상으로 돌아가면 결국 우리는 ‘거실 방방방’이라는 아파트와 빌라에 산다. 비슷한 평면, 비슷한 집에 사는 우리의 삶이 단순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가 아닐까. 누군가는 잘 만들어 잘 쓰고 잘 파는 집을 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가족과의 기억이 평생 유지될 수 있는 집을 원할 수도 있다. 좋은 집을 선택할 때 ‘사야 한다 vs. 사지 않아도 된다’의 논쟁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팔아서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미래를 담보로 불안하고 불편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면 분명 우리는 다른 선택을 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선택할 수 없는 것과 선택하지 못하는 것
지난해 겨울, 나는 가족과 함께 워크숍을 했다. 나를 제외하고 모두 아파트에서만 살았다는 어처구니없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동안 남을 위해서만 일했구나 하는 미안함에 우리 가족을 위한 집은 무엇일까 고민했다. 나는 마당이 주는 경험, 아파트와 다른 집에 사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에게도 선택권을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연히 좋은 기회가 왔고 잔디 마당이 있는 작은 집을 빌렸다. 두 달 만에 아파트를 팔고, 새로운 집의 모험을 시작했다. 사실 조금 두려웠다. 하지만 이사한 후 한 달이 지나서 이 모든 걱정은 말끔히 사라졌다. 좁고 오래되고 어색하다는 첫인상은 잠시뿐, 이후 흘러가는 일상의 시간들이 아이들에게 집에 대한 기억을 바꾸고 있다. 이제 1년이 지났다. 가끔씩 어떤 집이 좋은지 아이들에게 묻는다.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지금 사는 집”이라고 답한다. 조금 불편한 점도 있었지만, 사계절을 겪으며 느낀 것은 분명 아파트와 다르다는 것, 다른 집에서 엄마 아빠와 함께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있다는 것이 이 아이들에겐 더 중요한 일이었다. 아이들은 요즘 ‘다른 집’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보고 있다. 펜션 여행이나 캠핑 같은 이벤트를 통해 가끔씩 다른 집, 다른 곳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공간과 시간의 만남을 직접 경험하고 기억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장해서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할지 나는 모른다. 다만 전혀 다른 삶을 살아보았기 때문에 적어도 아이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생겼다. 어릴 적 마당과 다락에서 놀던 기억이 없었다면, 난 아파트를 절대 팔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 팔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온라인의 수많은 소문보다 살면서 만나는 경험들을 더 믿는다. 내 아이들은 분명 좋은 집을 선택할 것이다.

다른 집과 다른 삶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라는 질문은 “어떤 삶을 살고 싶으세요?”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집이라는 형태적 물리적 공간에서만 사는 게 아니라 시간이라는 ‘지금의 기억’ 사이에서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연애를 상상하는 것이 즐거운 이유는 언젠가 나타날지 모르는 이상형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미래는 언젠가 일어날 무엇이 아니라 오늘의 작은 순간들이 만드는 축적된 경험과 기억의 흔적이다. 세상 모든 것은 원하든 원치 않든 길들여지거나 길들이거나 둘 중 하나다. 나를 스스로 길들일 것인가, ‘너’에게 길들여지길 바랄 것인가. 몸의 습관을 바꾸는 것만큼 마음의 습관을 바꾸는 것도 어렵다. 돈을 모아서 집을 살 수 없으니 ‘집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를 고민하지 말고, ‘나는 집에서 무엇을 하고 싶을까’, ‘나는 집에서 무엇을 즐겁게 할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생각해보면 좋겠다. 거부할 수 없다면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집’이 없어도 ‘삶’은 존재하기 때문에. 그 삶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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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건축가, 전시 기획자, 세 아이의 아빠다. ‘좋은 집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갖고 ‘어떤 집에 살고 싶으세요’라는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집의 이상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다른 삶이 담긴 다른 집의 모습을 아카이브하고 있다. 현재 공간을 기획하는 ‘리마크 프레스’를 운영하며, ‘새동네’의 연구소장을 겸하고 있다. 최근 엄마와 아이들을 위한 작업실 ‘이문238’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무한한 상상력의 세계에 빠져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