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a Father Mentions Quitting

아빠가 퇴사를 말할 때

아빠에게 퇴사는 금기어가 아니다.
월급 좀 깎여도, 번듯한 명함이 사라져도 내가 ‘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나와 가족 모두 행복한 변화여야 한다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퇴사’가 화두다. 관련 책과 TV 프로그램이 나왔고, 모임과 강연부터 심지어 ‘퇴사’ 단어가 내포한 불안을 앞세워 영리를 추구하는 곳까지 생겨났다. 그러나 이러한 퇴사 관련 이야기 대부분은 20~30대 초반 젊은 세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실제 퇴사를 실행에 옮기는 이들 역시 대부분 몸이 가벼운 미혼인 경우가 많다. 맞지 않는 선택지를 부여잡고 긴 인생을 살아가기엔 아직 젊기 때문일까? 그들의 퇴사에는 곧잘 ‘도전’이라든지 ‘응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오기도 한다.
반면 30~40대 기혼 남성에게 퇴사는 결코 가볍지 않은 단어다. 가족의 생계를 짊어지고 시시포스처럼 힘겨운 하루를 버텨내야 하기 때문일까? 그들의 퇴사에는 ’도전’과 ‘응원’의 말이 쉽게 따라붙지 않는다. 아버지들의 퇴사가 무거운 이유 중 하나는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형성된 분위기에서 그들의 노력은 안타깝고 씁쓸한 것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똑같이 존중받아야 할 도전이 밀려날 것 같은 상황에서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버둥 취급을 받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고 퇴사를 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이자 남편인 ‘우리’의 퇴사에는 기준이 필요하다.

선택의 기준은 ‘나’
우선 ‘나’를 중심에 두는 self-centered mind가 필요하다. 내가 퇴사 관련 상담을 하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제 상황이 지금 이러한데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퇴사해야 하나요? 말아야 하나요?”이다. 대부분은 자신을 둘러싼 주변 환경에 관해서만 얘기한다. 이 질문에 나는 대부분 결정을 내려주지 않는다. 대신 스스로 생각할 수 있도록 질문을 계속 던진다. 2시간 정도의 시간으로 인생의 가장 주체적이고 중요한 질문에 쉽게 결정을 내리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 질문에는 맹점이 있다. 대부분 ‘나’라는 알맹이가 빠져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런 일을 하려고 하는데 지금 퇴사하고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것이 맞을까요?”라고 묻는 사람은 만나기 쉽지 않다. 나는 퇴사를 ‘태어나 처음 내린 가장 주체적인 결정’이라고 정의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남들이 그래야 한다는 대로 살아왔다. 중·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 가야 대접받는다. 대한민국은 아직은 학벌이다”라는 말을 신봉하며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교에서는 “좋은 회사 들어가야 한다. 1학년 때부터 취업 준비를 해야 한다”라는 주위의 말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우리도 모르게 강요받아온 이런 생각들은 우리 안에서 나온 게 아니다. 주위 사람들과 세상이 ‘그래야만 한다’고 하는 것을 별생각 없이 따른 것일 뿐이다.
이렇게 내 생각인지 아닌지도 모르게 주입받아온 사고를 지니고 살아온 채 회사에 들어간다. 그러니 당장 혼란에 부딪힌다. 스스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윗사람이 시킨 일로 매일 야근을 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이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내가 이러려고 회사에 들어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자신에 대해 그리고 자신이 서 있는 환경에 대해 고민을 시작한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리고 회사를 떠나기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퇴사는 인생에서 처음 내린 주체적 결정이 된다. 이것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모두에게 해당된다. 따라서 퇴사는 가장 힘들게 스스로 내리는 첫 번째 중요한 결정이 되어야 하며, 퇴사라는 의사 결정의 중심에 ‘나’를 두어야 하는 것이다. ‘나’를 소외시킨 채 주변 환경만 고려해서 내린 답이 만족스러울 확률은 대한민국의 6월에 눈이 올 확률과 같다.

09-10-01

같은 곳을 바라봐줄 가족이라는 존재
다음으로 가족의 동의가 필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동의란 ‘approved’나 ‘confirmed’가 아닌 ‘이해, understand’를 말한다. 특히 남편에게 아내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18년 동안 직장인으로 일하면서 대기업 팀장, 중견 기업의 임원을 거친 A가 있었다. 늘 자신감에 찬 모습으로 일했고, 전문성도 충분했다. 하지만 중견 기업에서 오너와 의견 충돌이 생기면서 강제로 회사를 떠나게 되었다. 교직에서 일하는 아내는 사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두어 달 정도는 출근하지 않는 남편의 생활을 이해했다. 하지만 석 달이 넘어가면서 “이제 새로운 회사에서 일해야지?”라며 채근했다. 그렇게 시작된 대화는 “이제 돈 안 벌어 올 거야?”로 넘어가면서 가족의 불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기업의 구조와 시장 상황을 잘 모르는 아내와 의견 출동이 자주 생겼다. 저녁 식사 후 일하고 돌아온 아내를 위해 설거지하는 남편의 뒤통수에 “설거지하려고 회사 때려치웠어?”라는 화살이 꽂혔다. 이제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문을 닫고 방 안으로 사라졌다. 당장 돈이 없어서 생활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내의 채근은 계속되었다. A는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매일 단타로 주식 매매를 하다가 돈을 벌 때도 있었다. 하지만 잃을 때면 어김없이 집안 분위기는 냉랭했다. 두 번째 인생을 준비해야 할 시간은 월급 정도 벌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으로 시작한 주식 투자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 되었다.
A에게 절실한 것은 아내의 이해였다. “여보, 힘들지? 괜찮아. 아직 힘들지만, 준비 잘해봐” 라는 따듯한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는 상담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돈을 잘 벌어 올 때의 모습, 가족끼리 해외여행 갈 때의 행복은 가짜였던가 하는 회의가 든다고 했다. 아내가 이토록 나와 다른 곳을 바라보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도 못 한 것이다. 인생의 가장 힘든 순간에 아내는 자신과 다른 곳만 보고 있었다. 인생 방향성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맞닥뜨린 갑작스러운 그의 퇴사는 절망이 되어버렸다. 가족은 같은 곳을 바라봐야 한다. 같은 곳을 바라보고 같은 생각을 해야 현재의 고단함과 급작스럽게 닥친 괴로움을 이겨낼 수 있다.

나는 이 칼럼에 ‘아버지도 과도한 생계 부양 부담에서 벗어나 자신을 위한 선택을 해도 괜찮다’ 는 취지의 글을 써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물론 ‘자신만’을 앞세운 채 꿈을 좇는 결정을 하라고 말할 수는 없다. 아버지는 파랑새가 살고 있는 동화 속 주인공이 아니고, 매주 무모한 도전을 하는 예능의 출연자도 아니기 때문이다. 현실을 외면하는 순간 삶은 방구석 판타지가 된다.
하지만 반대로 현실에 찌들어버리면 삶의 의미는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럼에도 아버지의 퇴사는 ‘자신의 삶의 가치’를 좇는 선택이 되어야 한다. 단지 아버지의 퇴사를 생계유지 또는 책임감이라는 무게로 짓누르기만 한다면 아버지라는 ‘사람’은 사라지고, 밥을 먹이면 돈을 벌어 오는 ‘기계’ 하나만 남게 된다. 꿈과 시간, 삶을 포기하면 돈이 나오는 ‘자판기’ 말이다.

아버지의 퇴사에는 가족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삶의 영점 맞추기’가 꼭 필요하다. 당신이 누군가의 아버지이고 누군가의 남편이라면 그 선택이 ‘당신 자신을 중심에 두되, 가족의 이해가 뒷받침되는’ 선택이길 바란다. 그것이 우선이다. 월급이 좀 깎이면 어떤가? 대기업 명함이 없어도 여전히 당신은 당신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두 번째 인생이 나와 가족 모두 행복한 변화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09-10-02

손성곤

직장생활연구소 소장. 국내 1호 퇴사 컨설턴트이자 16년 차 현직 직장인. 자신이 과도하게 힘들었던 직장 생활 경험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도록 돕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고 강연을 한다. 직장인을 위한 오프라인 모임인 ‘퇴근후 2시간’, 다양한 퇴사자의 심층 인터뷰인 ‘회사를 떠난 사람들’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나는 무적의 회사원이다》라는 책을 썼다.